뇌려타곤(懶驢 坤) 35-1
제 35 장 가족(家族)
북풍이라는 이름으로 표국을 개업한 칠호 백철군과 천궁 옥형진은 곤란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호북으로의 표행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확실히 이런 혼란스러운 때 전쟁터로 표사를 보낸다는 것은---." "그러니까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해도 그 표물을 맡으면 안됩니다. 이자성(李自成)이 그곳에서 신순왕(新順王)이라 칭하고, 군대와 싸운다는 것을 형님들도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왕질악이 입을 열었다. 천하제일의 정보통이라고 알려진 개방의 소문주인 왕질악이었다. 거기 모여 있는 일곱명의 의형제들 중 여섯이 왕질악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왕질악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호북 쪽뿐만이 아닙니다. 사천 쪽에는 장헌충이 대서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주민들을 마구 학살한다는 소식이 연일 개방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천쪽의 표행도 불가능합니다." 왕질악의 말의 천궁이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호북과 사천쪽으로의 표행이 불가능하다니--, 뭘 먹고살라는 거야? 조선 쪽은 어떠냐?" 천궁이 고개를 돌려 왕질악에게 질문을 할 때, 산해관의 국경 근처에 갔다 온 종남파의 남명이 대신 대답했다. "그쪽도 힘들어요. 여진족의 청이 자리를 꽉 잡고 있고, 조선은 명(明)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청과 군신관계를 맺었단 말입니다."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던데? 내가 듣기로 몇 년 전에 조선을 침략한 여진족의 왕에게 조선의 왕은 한 겨울에 맨발로 땅에 엎드려서 항복해야 했다고 하던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화산파의 악종진이 말하고, 칠호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흐--유---. 심하다. 아무리 작은 나라의 왕이라지만 한 겨울에 맨발로 엎드리게 하다니---, 역시 오랑캐는 어쩔 수가 없다니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조선(朝鮮)이 어쩔 수 없이 명(明)과 단절된 것이라 치고, 사방의 표행 길이 막혀 버렸어! 이대로 가다간 표국이 망하게 생겼다고!" 의형제를 맺은 아우들이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 천궁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이 나이에 거리에 나가서 구걸하며 살아야겠냐? 나만 그런가? 너희들도 마찬가지라구! 표국이 망하면 너희들도 모두 거리에 나 앉는 거야! 정신들 차리고 빨리 대책을 세워야지!" 갑갑하다는 듯 가슴을 한 손으로 탕탕 치면서 소리치는 천궁의 고함도 소용없이, 나머지 여섯 명의 형제들은 별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모두가 각자의 문파가 있으니 표국이 망하면 자신들이 속한 문파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칠호 역시 백초당의 방화련과 결혼한 탓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표국이 망하면 아내를 데리고 엄청난 부자인 장인의 백초당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탓이었다. 오직 홀홀 단신에 표국에 목을 매달고 있는 천궁만이 갈곳이 사라지기에, 표국이 망할까봐 노심초사하는 상태였다.
북풍표국에 있는 사람들이 곤란해하고 있는 동안, 백초당에 있는 사람들도 곤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양 낭자, 조금만 시간을 더 주게나. 내 어떡해서든 낭자에게 어울리는 신랑감을 찾아 줄 테니까---." 방종대는 백초당을 뱀으로 뒤덮어 놓은 묘강의 아가씨 양려군을 향해 사정하고 있었다. 항상 뱀과 같이 돌아다니는 양려군을 아내로 맞이하려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고, 남편감이 없다고 화가 난 양려군은 백초당을 뱀으로 포위한 상태였다. 이래서야 아무도 백초당을 들어오고 나갈 수가 없는 상태였다. 백초당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뱀 때문에 문 밖으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고---. "싫어요! 당장 제 신랑감을 보여주세요! 신랑감을 찾아 준다고 해 놓고는 벌써 한달이나 지났단 말이에요!" 새침한 양려군의 고함을 들은 뒤, 방종대는 한 여름의 더위와는 상관없는 땀을 뻘뻘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방종대가 머물러 있는 건물 안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시선이 마주칠까 두려워 모두가 고개를 피하고 있었다. 방종대는 뚱뚱한 배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소리쳤다. "거기 자네!" 고개를 푹 수그리고 탁자에 코를 쳐 박고 있던 신기서생 정옥은 우거지상을 하고 고개를 쳐들면서 물었다. "저 말입니까, 대인?" "그래. 자네 아직 혼인하지 않았지?" "고향에 약혼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 한마디로 매몰차게 방종대의 다음 말을 끊고 정옥은 다시 탁자에 코를 박았다. 자신을 또 부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탁자 밑에 감추어진 그의 두 다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나 방종대의 시선은 그에게서 이미 떨어진 상태였다. 이 안에 서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단 둘 뿐이었다. 하나는 거금을 주고 백초당의 회계사로 고용한 신기서생 정옥이었고, 또 하나는 방종대의 장남 방종구였다. 방종대는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장남 방종구가 일하는 탁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고, 방종구는 기겁한 표정이 되어 아버지의 시선이 닿기가 무섭게 고개를 마구 좌우로 흔들었다. 방종대는 무섭게 아들을 쏘아보면서 이리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들과 아버지의 눈빛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서 이리와!' '싫어요, 아버지!' '네가 모두를 위해서 희생해라!' '제가 왜요?' '네가 내 아들이잖아! 아비를 위해서 이 정도 일은 해결해 줄 수도 있지 않느냐?!' 나중에는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대는 방종대였다. 방종구는 탁자에서 일어나 비실거리면서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다. 양려군은 입가에 함박 미소를 흘리면서, 개봉 제일 아니 하남 제일의 신랑감이라고 소문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호호, 이게 웬 행운이지? 저 남자가 내 남편이 되는 건가?' 얼굴도 준수한데다 능력도 있다고 소문난 남자였다. 게다가 엄청난 부를 이어받을 신분을 지니고 있었으니, 저 남자의 아내가 된다면 평생 하녀들의 시중을 받아가며 살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종대는 다가온 장남을 양려군의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내 아들이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신랑감이지.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양려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뱀을 치워 주겠는가?" "그럴께요." 방종대의 질문에 양려군은 짧게 대답하고, 낮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초당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색색의 크고 작은 수천 마리의 뱀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남아 있는 것은 양려군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금빛의 뱀 한 마리뿐이었다. 방종구는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어깨에 뱀이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밖에 나가 있을 걸---,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아들을 팔아먹다니---.' 양려군에게는 남자의 마음이 어떻다는 건 알 바 아니었다. 드디어 자신에게도 신랑감이 생긴 것이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나이이기는 했지만 묘강에서는 그 나이면 노처녀였고, 이제 더 이상 같이 중원으로 데리고 나온 부하들에게 노처녀라는 놀림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흐뭇한 미소를 흘리면서 양려군이 남자(방종구)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백초당의 문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백초당 앞의 문 앞에 거지꼴로 도착한 두 사람은 아쉽다는 얼굴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깝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한 마리라도 건질 수 있었는데---." "사형, 뱀 고기에 너무 열 올리는 것 아니에요?" "무슨 소리냐? 남자 하면 정력이지. 정력에는 뱀만큼 좋은 게 없다고." "체, 나중에 스님이 될 사람이 정력은 왜 찾아요?" 소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투덜거렸다. 숭산에서 개봉까지 오는 동안 두 사람은 찬이슬을 맞으면서 노숙을 계속해야 했고, 식사도 객점에서 할 수가 없었다. 소림사를 떠날 때 두 사람은 한푼의 돈도 없이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 사람이 식사로 주로 먹게 된 것은 뱀이었고, 소구는 뱀 고기에 질린 상태였다. 그러나 사형인 양평은 아직도 뱀 고기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소구는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대문 위쪽으로 크게 백초당이란 글자가 적혀 있는 현판이 소구의 눈에 아프게 들어왔다. 이제 집에 도착한 것이다.
시끄러운 고함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난리법석을 떠는 사람들 한 가운데에서 소구는 망연한 얼굴로 흐린 하늘을 올려 보았다. 행복했던 시간은 일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고, 지금은 온 가족이 모두가 도망치는 중이었다. 북경이 이자성의 반란군의 손에 넘어가고 황제는 자살했다는 소문이 들리기가 무섭게, 다시 여진족이 북경을 점령하고 청나라의 병사들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개봉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쁘게 피난을 가는 중이었다. "여보, 어서 출발하자고요." 멍한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소구는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 아내 취하를 바라보았다. "마차와 말들이 모두 개봉 밖으로 나간 상태예요. 우리도 어서 아버님과 합류 해야돼요." 보따리를 하나 들고 소구의 등뒤에 있는 건물에서 밖으로 나온 또 다른 아내 취앵이 소구를 향해 말했다. "청나라의 병사들이 성문 앞까지 다가왔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백초당에 마지막까지 남아 뒷처리를 담당하고 있던 신기서생이 다가와 소구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 백초당에 남은 것은 우리들뿐입니까?" 신기서생을 향해 고개를 돌린 소구가 물었다. "모두 떠난 상태입니다. 어서 떠나도록 하지요. 이곳의 일은 모두가 처리가 끝난 상태이니--, 우리는 몸만 떠나면 됩니다." 소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에 집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은 양려군이라는 묘강의 여자와 결혼하고, 그 때 소구 역시 취하와 취앵이라는 자신의 하녀들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혼인하지 않은 두 아들을 한꺼번에 혼인시켜서 혼인 경비를 절감하려는 아버지의 결정 탓이었다. 이미 취하와 취앵은 아주 어릴 적부터 소구의 아내가 되어 있기로 정해진 상태였기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소구 역시 둘이 자신의 아내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집에 돌아와서 소구가 가장 놀란 사실은 큰 누나인 방화련은 이미 혼인을 한 상태였고, 매형이 된 남자가 원수였던 칠호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세상에서의 원수들이 이곳에서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라는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것이 너무나 기쁜 소구였다. 아직 혼인을 못한 작은누나 방수련이 있었지만, 매형이 되었던 신기서생 정옥이 백초당의 회계사로 있는 모습을 보고 소구는 둘이 어떻게든 인연이 닿아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혼인할 사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봉에서 지켜보게 된 이런 저런 모습을 보면서 소구는 즐거웠다. 그는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무공을 높이고 극악봉을 검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면서 모두가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이제 끝이 난 것이다. "표국에 있는 식구들도 모두 떠났답니까?" 검은 쇠몽둥이를 어깨에 걸치고 걸음을 옮기면서 소구가 옆에 나란히 서서 걷고 있는 신기서생을 향해 물었다. 개봉에 있는 북풍표국에는 매형이 되는 칠호 백철군과 누나 방화련이 머물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곳도 이미 모두 떠나고 없을 겁니다. 천하제일의 고수라고 소문난 백 대협이 있으니 그쪽 식구들은 모두 무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백초당의 회계사인 정옥의 말에 소구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매형인 칠호 백철군의 무공이라면 어렵지 않게 개봉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
첫댓글 전쟁땜에 피난을 가는군요
소구는 여기에서 다른 말썽을 안피우나요 ?
잼나게 읽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변화된 삶에서 방소구와 양평은 어떻게 새로운삶을 살아갈지 두고보아야겟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