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21)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③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좋은 시 찾기 4-1/ 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이승하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Daum블로그 http://blog.daum.net/sook01220/ 신춘문예는 알고 있다 / 김영남
③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좋은 시 찾기 4-1
김영남 형께 올립니다.
2005년 새해를 맞아 가내 다복과 형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오늘이 1월 6일, 전국 일간지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되어 영광의 얼굴들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 문학도가 2개 신문의 문학평론과 1개 신문의 영화평론(가작)에 뽑혀 3관왕을 했다는 기사와,
3개 신문의 문학평론 당선작이 공히 소설가 ‘천운영론’이라는 기사가 눈에 띕니다.
인터넷 몇몇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시 당선작이 표절 시비에 휩싸여 있군요.
표절의 혐의를 불러일으킨 원래의 시를 봤는데,
제 판단으로는 두 신문의 당선작을 표절작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표절이 아닌 작품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른바 ‘중앙지’로 불리는 7개 신문의 당선작(여름에 공모하는 중앙일보는 제외)과
‘지방지’로 불리는 16개 신문의 17편 수상작(전북중앙신문은 2편의 가작을 냄)을 다 읽어보았습니다.
모두 합쳐 24편이군요.
연초에 이렇게 많은 시를 읽게 되었으니 대한민국은 누가 뭐라해도 문학의 나라, 시의 천국입니다.
23개 신문사에 투고된 시의 편수는 수만이 아니라 수십 만일 것입니다.
11월 1일이 ‘시의 날’인데, 수많은 시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의 날을 기념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일 것입니다.
주요 일간지에 매일 시가 실리는 나라 또한 대한민국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4편의 시를 읽은 제 기분이 영 흐뭇하거나 유쾌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1994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에서는 시인과 문학평론가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통계치를 낸 결과를 갖고
신춘문예의 폐단을 집중적으로 성토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어언 11년 전인데,
그 특집을 보면 신춘문예가 바람직한 문인 등용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이가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숱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제도임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지적했고,
대한민국에밖에 없는 이 제도를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김형이나 저나 모두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시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쁜 제도’를 통해 등단한 것일까요?
저는 최근 몇 달 동안 문혜원, 이재복 두 문학평론가와 함께 2002~2004년 3개년 동안
등단한 시인 리스트를 만들어 그들 중 20인의 유망주를 가려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제가 2002년 신춘문예 당선자를 살폈고,
문혜원 씨가 2003년 당선자를,
이재복 씨가 2004년 당선자를 살폈습니다.
저와 문혜원 씨는 2명씩을 뽑아 20명에 포함시켰는데 이재복 씨는 중앙지·지방지 할 것 없이
신춘문예 당선자를 살펴보았지만 유망주가 없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선정 기준에 ‘전위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시를 쓰는 신인’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그해의 당선작이 대체적으로 수준 미달이라는 것이 이재복 씨의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엊그제 그분을 만났는데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도 형편없다면서 혀를 차는 것이었습니다.
24편 시를 다 읽어보지는 않았겠지만 중앙지 중심으로 살펴본 바,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던가 봅니다.
시의 경우 신문사마다 5천 몇 편 6천 몇 편이 투고된다는데(지방지는 이 정도는 안 될 테지요).
그 가운데 딱 1편 뽑힌 것이 역량 있는 한 명 문학평론가의 눈에는 영 신통치 않은 작품으로 비쳤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1월 1일자 신문에 실리기 때문에 지나치게 어둡거나 난해한 작품,
너무 길거나 짧은 작품이 뽑힐 수 없습니다.
심사위원의 취향도 문제가 될 것이고 열흘 정도의 짧은 심사 기간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현대시》는 심사위원의 토착화와 일부 심사위원의 여러 신문 동시 심사 및
그분들의 높은 연배를 지적했습니다.
높은 상금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한 탓인지 응모자의 중복 투고와
표절에 따른 시비도 자주 일어났었지요.
하지만 저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매일신보에서 모집하여 시작된 신춘문예라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결사반대합니다.
언론사가 문학에 이만큼이라도 투자를 하는 것이 다행스런 일이고,
문학 지망생에게 이 상만큼 탐나는 상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월간문학》을 통해 1986년에 등단했던 형이 10년 세월 동안을 더 습작하여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재등단한 것은 신춘문예가 그만큼 매력적인 등단 지면이었기 때문이겠지요. 형처럼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분이 다시금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사실 비일비재합니다.
2004년 계간지 《시작》으로 등단한 이영옥 씨가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2004년 계간지 《시와 사상》으로 등단한 박지웅 씨가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다시금
등단하는 사례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방지 출신 문예 당선자가 온전한 당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중앙지를 두드려
다시 당선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무튼 수많은 기성문인이 지금도 신춘문예 사고(社告)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서 이 제도가 화려한 등용문이자 등단의 축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이제 막 읽은 24편의 시 가운데 좋다고 여겨지는 몇 편의 시를 골라 평을 해볼까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을 골라 공격을 하려 들면 이 글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테니까요.
그 전에 형의 등단작 중 하나이자 두 번째 시집 《모슬포 사랑》에 실려 있는 한 편의 시를 먼저 감상해볼까요.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인이 되면 나는 그때
호미, 삽을 대학 8차 학기 끝날 무렵 다시 든 부모님께 제일 먼저
고추처럼 매운 시 한 수를 바치리라 다짐했었다.
일류 회사 중역 꿈꾸며 교문을 빠져나가는 대학 동창들
그리운 모습들 모두 곁을 떠났을 때도 나는
삐걱이는 강의실 책상에 버려진 볼펜처럼 홀로 남아
원고지 구멍을 메우고 빈혈의 사연을 고향에 부치면서
남도의 제일 가는 서정시인으로 떠오르리라 다짐했었다.
지난 가을 전지(剪枝)한 덩굴장미가 새로 자취방까지 기웃거리고
언제쯤 졸업사진 찍어낼 수 있겠느냐는 부모님 기별이
철 지난 나뭇잎처럼 날아들 땐
느렛골 파밭에서 언 땅을 파고 계신 어머님의 구부정한 허리가 보였고,
대밭에서 후박나무 밑동을 쓰러뜨리는 아버님의 다리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종일토록 휴지통 가득 버려진 니코틴 그을린 시간들.
그해 겨울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생활비마저 하루 두 끼로 줄어들었을 땐
나는 세상의, 문학의 버린 자식으로 흑석동에 싸늘하게 살아남아
시인이 될 수 없는 시인들 신분을 부정하기 시작했었다.
글이 될 수 없는 글의 심사위원들까지 부정했었다.
매번 패배의 변(辯)과 야멸찬 다짐으로 가득 찬 대학노트,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쓰라림을 삼키면서도 나는
고추처럼 매운 시 한 수를 바치리라 다짐했었다.
―〈신춘문예는 알고 있다〉 전문
신춘문예로 말미암은 맺힌 한을 신춘문예로 푸셨군요.
형의 오기와 집념이 놀랍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형이 퇴근 이후 시내 모처의 시 창작반 사숙에 등록해 다년간 다니면서 이를 악물고
시를 썼던 일은 잘 모르고 있을 거예요.
저 역시 패배의 변과 야멸찬 다짐으로 가득 찬 대학노트가 있었답니다.
자, 그럼 올해의 당선작 가운데 “고추처럼 매운 시”가 있을까요?
< ‘이승하 교수의 시쓰기 수업, 시(詩) 어떻게 쓸 것인가?(이승하, 도서출판 kim, 2017)’에서 옮겨 적음. (2022. 4.2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21)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③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좋은 시 찾기 4-1/ 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이승하|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