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3/05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학교장 인사말
효성초등학교와 효성 교육
“행복은, 지금 여기에!”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엄청나게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이런 성장의 변곡점마다 부모님께서 아이와 함께 동행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큰 든든함이요 부모님께는 큰 기쁨이 되는 줄 압니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님께서 아이와 동행하는 방법은 조금씩 달라져야 합니다. 내 품속에 있던 아기가, 이제 내 품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사회를 구축하고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부모님께서는 내 아이가 좌절하고, 부끄러워하고, 위축되는 순간들을 막아주고 싶겠지만, 오히려 한 발 더 물러나는 것이 좋습니다. 바꿔 말해, 도와주지 않는 힘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잘 기른다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소화해 내는 그 과정을 함께하는 데에 있으니까요.
윤우상 박사는 책 「강강술래 학교」에서 그 내용을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이가 맞지 않도록 보호막을 쳐줄 게 아니라, 사회로 나가 받을 온갖 상처에서 금세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다’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현대의 부모는 어떤 걸 해 줄까 보다 어떤 걸 안 해 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일명, 좋은 부모란 아이의 세계가 더 확장되도록 지켜봐 주는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최현정, “좋은 부모란”, 가톨릭신문 24.03.03. 22면 참조)
부모님께서 한 발 더 물러나기 위해서는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믿음직스러워야 하겠지요. 이런 측면에서 잠시 효성초등학교의 역사와 효성 교육의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I. 효성초등학교
1. 1898년 시내에 있는 계산성당 별관에 한문 서당 ‘해성재’(海星齋)가 세워졌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그 자리에 ‘성립학교’(聖立學校)가 세워졌습니다. 성립학교란, 성당에서 세운 학교 혹은 거룩한 성교회에서 세운 학교라는 의미입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10년에 성립학교에 ‘여성부’가 생겼는데, 이 여성부가 훗날 ‘효성초등학교’가 됩니다.
한문 서당의 이름 해성재에서 ‘해성’(海星)은 ‘바다의 별’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별은 샛별, 효성, 금성, 비너스 등으로도 불렸고요. 이 명칭들은 모두 성모 마리아의 애칭입니다. ‘샛별’은 새벽에 가장 먼저 뜨는 별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새벽까지 남아 있는 별입니다. 다른 별들이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별로서 ‘희망의 별’로 불리지요.
샛별은 다른 별들이 어둠 속으로 하나둘씩 사라질지라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별입니다. 그리고 태양이 떠오를 때 비로소 마지막까지 지킨 그 자리를 흔쾌히 내어줄 줄 아는 별이고요. 효성초등학교는 샛별처럼 마지막까지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목숨처럼 지킨 그 자리를 ‘태양’에게 흔쾌히 내어줄 줄 아는 인물을 양성합니다. 이때의 ‘태양’이란 신앙적으로는 하느님 나라이고, 영성적으로는 조건 없는 사랑이며,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는 조국의 독립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효성초등학교는 자기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끈질긴 사람, 근성이 있는 사람을 양성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목숨을 다해 지킨 자리를 숭고한 가치를 위해 흔쾌히 내어줄 줄 아는 헌신적인 인재를 양성합니다. 그래서 효성초등학교의 교훈도 믿음, 사랑, 봉사입니다. 곧 믿음과 사랑으로 봉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
2. 그런데 성립학교에 여성부가 생긴 연도를 떠올려 보십시오. 1910년입니다. 1910년은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해이지요. 효성초등학교는 남녀불문하고 민족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민족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입니다. 그만큼 효성초등학교는 전통 교육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전교생이 판소리와 민요를 배우는 학교는 아마 전국에서 효성초등학교가 유일할 것입니다. 효성초등학교는 민요뿐 아니라 1년에 10시간씩 도예수업과 예절수업도 실시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것을 바탕으로 세계시민과 교류하기 위한 효성초등학교의 ‘세계화 교육’이지요. 영어 수업과 중국어 수업, 그리고 컴퓨터 수업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II. 효성 교육의 방향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가장 본질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도 있습니다. 지난 125년간 효성초등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추구해 왔습니다.
1. 효성 교육은 한 마디로, 알파벳 “C”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교육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21세기의 주요 역량으로 꼽는 것은 창의력과 소통, 비판적 사고력과 협업입니다. 이 네 가지 역량은 모두 알파벳 “C”자로 시작합니다. Creativity, Communication, Critical thinking, Collaboration.
이 역량들은 한결같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하지는 않지요? 독창적인 방법을 찾게 마련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행위이고, 협업을 추구하는 몸짓입니다. 그리고 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사고력이, 곧 분별력이 필요하고요. 이처럼, 네 가지 역량의 뿌리와 열매는, 그 역량의 원천과 목적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에 해당하는 라틴어를 찾아봤더니 이 또한 알파벳 “C”자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인 ‘카리따스’(Caritas), 사랑의 화신인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살아있는 또 한 명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것은 모두를 환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곧 ‘카톨리쿠스’(Catholicus) ‘가톨릭’이란 단어에는 ‘보편적인’이란 뜻도 있지만 ‘모두를 환대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를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그리고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유용한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런 태도가 곧 오늘을 즐기는 참된 모습이고요(Carpe diem).
이런 뜻을 지닌 여덟 개의 알파벳 “C”자를 모아보면, 그리스어 시그마 모양(Σ)이 됩니다. 그리스어 시그마를 영문 알파벳으로 표현하면 ‘S’자 입니다. 가톨릭 학교는 예로부터 “3S” 교육을 추구해 왔습니다. 곧 ‘Scientia’, ‘Santitas’, ‘Sanitas’! 일명, 지 · 덕 · 체 교육! 이런 지향을 본관 출입문에 “Σ”(시그마)와 알파벳 “C”자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이곳은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가톨릭 학교다’는 뜻입니다.
2. 전인교육의 꽃은 단언컨대,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기쁨’은 정서적인 만족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으니까요. 학부모님께서는 때때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힘겨워하시지만, 그것을 기쁨으로 승화시키지 않으시는지요? 우리는 기쁨을 고통 속에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기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것이 Carpe diem, 곧 오늘을 즐기는 참된 모습이지요.
효성 교육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오늘을 즐기는 참된 모습 안에는 내일을 위한 투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는 것’과 ‘내일을 위한 투자가 포함된 오늘을 즐기는 모습’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쁨은 ‘항상’ ‘즉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지금 여기에 숨겨져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 여기에 숨겨진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역량이 그 어떤 역량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입문 신발장 위에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문구를 새겨놓았습니다. 그것도 라틴어로! 왜냐하면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깨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게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라틴어 문장 ‘베아티투도, 힉 엣 눈크’(Beatitudo, hic et nunc)는 매우 유명한 문구이기에 학부모님께서 검색해 본다면 곧바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굳이 라틴어 문장을 사용한 것은, 학부모님께서 그 문장의 의미를 찾아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효성 가족들이 애써 행복을 찾아 나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cf.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행복을 뜻하는 라틴어 명사 ‘베아티투도’(beatitudo)는 ‘복되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 ‘베오’(beo)와 ‘태도’를 뜻하는 명사 ‘아티투도’(attitudo)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 beatitudo라는 단어에는 ‘마음 가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효성 동산을 오고 가시는 분들 모두,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곧 평범함 속에 · 보잘것없음 속에 · 나약함 속에 숨겨진 하느님의 선물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3. 끝으로, ‘까꿍 놀이’에 대해 한 말씀 덧붙이고 싶습니다. (cf. 신입생 입학식 때 1학년 아이들에게 ‘까꿍 놀이’에 대해 훈화했었습니다.)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원만하면, 아이는 두려움 없이 부모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놀이에 빠져들 수도 있고요. 그것은, 아이는 자기 눈에 부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찾으면 부모는 언제든지 자기 곁으로 찾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사용한 ‘아이의 눈에 부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아기에게 부모는 생명 줄이자 사랑의 원천이요, 풍요로움이자 피난처이지요. 그 부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사회적 실패가 될 수도 있고,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으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일 수도, 무미건조함이나 삭막함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한 아이는 그 모든 상황을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지요. 지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먹구름 뒤에 태양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절망 속에서도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 것,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다가오는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육지를 발견하는 것을 ‘희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희망의 열매가 기쁨이고요. 한 마디로, 효성은 희망의 덕을 키워주는 학교입니다.
(교육학적 표현으로 바꿔 본다면, 효성은 사회적 성공을 지향하는 교육 풍토 속에서 실패와 좌절 그리고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곳입니다. 일명, 좌절저항력과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곳이지요. 결국, 효성은 참된 자유와 기쁨 그리고 평화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저희가 올해도 학부모님의 어여쁜 자녀들과 함께 희망의 덕을 키우고 나눌 수 있게 기회를 주셨음에 학부모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학부모님들과 아이들 그리고 교직원들 모두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과 희망 간직한 채 ‘그리스도의 평화’(요한 14,27)를 나누는 나날 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