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안의 돈, 돈 안의 삶 당신의 선택은?
- 임춘 공방전(孔方傳)과 자본주의 바이트칼럼 / 보람
사물을 의인화한 소설인 가전(仮傳)은 우리나라 초기의 소설형태이다. 또 사물을 사람인 듯이 생애를 서술하는 방식을 차용해서 ‘전기패러디’라고도 한다. 가전은 구체적인 사물의 풍자를 통해 우리에게 삶에 필요한 교훈적인 내용을 건넨다.
『공방전』은 임춘의 작품으로 『동문선』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가전이다. 『공방전』의 주인공인 ‘공방(孔方)’은 엽전의 둥근 모양에서 ‘孔(공)’, 구멍의 네모진 모양에서 ‘方(방)’이 합쳐진 이름이다. 그는 겉으로 웅변을 잘하고 변통에 능해 벼슬을 얻어 출세하자 권세를 잡는다. 하지만 백성들로부터 뇌물을 거두어들이며, 당시 상업보다 중요한 농업은 돌보지 않고 장사로 얻는 이익을 좇았다. 결국 공방은 백성을 해치고 나라를 좀먹었다는 이유로 벼슬에서 쫓겨나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임춘은 『공방전』을 통해 돈의 내력과 성쇠를 보여주며 사회에서 돈과 관련해 생기는 문제를 풍자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 임춘의 삶은『공방전』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임춘은 귀족의 잔존세력에 속하나 무신란을 만나 겨우 목숨을 보전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구차하게 보낸 불우한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돈은 필요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어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쌓여 결국 돈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임춘은 그의 삶을 통해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나타내는 서술방법을 택했다고 보여진다. 또 그는 『국순전』과 『공방전』을 통해 술과 돈의 생애를 서술하면서 고사와 전거를 갖다 대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삶의 불운을 한탄하기도 했다.
옛날 화폐인 엽전의 모양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심오하다. 밖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떴다. 안이 모난 것은 땅을 본 떠, 이는 만물을 하늘이 덮고 땅이 실어 존재를 없어지지 않게 하려는 이치를 구현하고 있다. 이런 생김새의 돈에는 어디든지 흘러 다니고 백성에게 두루 퍼져 날마다 써도 무디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해석이 담겨있다. 이렇듯 엽전의 단순한 모양 안에는 하늘과 땅,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신성하게 여기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돈, 그리고 자본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신문과 뉴스에는 금품비리와 횡령사건들이 자주 보도된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폭행이나 사기, 심지어 살인으로 남의 ‘돈’을 무자비하게 갈취하는 사건들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영, 경제에 관한 책들은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 몰두하고 있다. 한 때 유행이었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는 부자가 되고 돈이나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절대적 목표인 듯 황금만능주의, 물신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또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갖는 목적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궁극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되어버렸다.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던 공방과 같은 인간형이 우리시대에 넘쳐나고 있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그것에 따른 폐해가 많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돈을 없앤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 『공방전』의 내용 중, 상공은 황제에게 공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산야(山野)의 성질을 가져서 쓸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그러하오나 폐하께서 만일 만물을 조화하는 풀무나 망치를 써서 그 때를 긁어 빛이 나게 한다면, 그 본래의 바탕이 차차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원래 왕자(王者)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올바른 그릇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 사람을 저 쓸모없는 완고한 구리쇠와 함께 내버리지 마시옵소서.”
임춘은 돈을 비판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상공의 말처럼 바르지 않게 쓰이는 돈은 단지 구리쇠에 불과하나 바르게 쓰이는 돈은 우리 생활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임춘은 『공방전』을 통해 돈의 폐해에 대해 비판하지만 공방을 통해 나라가 부유하게 된 것은 인정한다. 그것은 폐해가 있으니 돈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으로 돈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는, 과거 임춘이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남기는 암호일 것이다.
* 이 칼럼은 미래 지성을 위한 시사교양지, 바이트 웹진에 실린 글로 www.i-bait.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