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38)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 ③ 산문시와 짧은 시/ 시인, 우석대 문창과 교수 안도현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Daum카페 http://cafe.daum.net/amtb/ <산문시> 아버님 / 無一우학스님
③ 산문시와 짧은 시
벌목정정(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러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듸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長壽山) 속 겨울 한밤내―
―정지용, 「長壽山 1」, 『정지용 전집 1』(민음사, 1988,137쪽) 전문
이 시의 정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화자가 나무 찍는 소리를 생각하며 겨울 밤 고요하고 깊은 산 속에 있다는 것,
‘웃절 중’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절로 올라간 뒤 그의 무욕의 자세를 생각한다는 것,
슬픔이며 꿈과 같은 세속적 욕망을 넘어 시름을 견디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쉽게 연결되지 않는 이 셋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어져 있는 것은
이 시가 산문적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마침표를 찍지 않음으로써 문장의 종결을 피했다.
그것은 시의 호흡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서로
다른 내용과 이질적인 이미지를 하나로 연결시킨다.
시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나무 찍는 소리 ‘벌목정정’이 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산문 형태의 효과이다.
오규원은 『현대시작법』에서 “시행이 산문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은 개별적인 리듬이나 이미지보다
전체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산문시는 시의 고유 영역인 행과 연을 스스로 반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립해야 하는 양식이다.
행과 연이 주는 단절을 산문 형태로 극복하고자 할 때 시인은 자연히 말과 말 사이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의미나 정서를 한통속으로 묶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산문시가 의미나 정서를 한통속으로 묶는 일이 수월할 때도 있다.
형태상 산문시는 하나의 행을 이루고 있으므로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의미나 정서를 비벼대는 데
수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개구리라는 말로 개구리를 보고 있었다 올챙이라는 말로 올챙이도 물론 줄창 그리하였다 망개나무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망개나무가 빠알갛게 눈 맞고 서 있다고 까지 쓴 걸 보면 알쪼다 애인이라는 말로만 애인까지 껴안고 있었던 걸 보면 더욱 알쪼다 개구리도 올챙이도 제대로 알았을 리가 만무하다 나의 애인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떠나가버렸다 지리산 꽝꽝나무라고 쓴 것도 있는데 그건 더욱 캄캄이었다 이젠 개구리로 개구리를 보고 올챙이는 물론 망개나무도 망개나무로 보고 있다 안경도 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다 보여서 떳떳하다 도감도 찾아보았고 실물도 속리산 가서 확인하였다 망개나무 자생지는 속리산이다 애인과 꽝꽝나무는 아직도 미필(未畢)로 남아 있다 할 일이 남아 있다 미필이 힘이 된다 특히 애인이 생기면 애인을 애인으로 껴안을 작정이다 별정(別定)도 있다 어려서부터 드나든 안성 칠정사 소나무는 그 때도 미필이었다 그가 돈독하게 손잡는 허공까지 상세하게 보았다 나는 거기 태생(胎生)이다
―정진규, 「미필(未畢)」, 『껍질』(세계사, 2007, 88쪽)
개구리를 모르고 개구리에 대해 쓰고, 망개나무를 모르고 망개나무를 안다고 쓴 것을 시인은 반성한다.
기의(시니피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기표(시니피앙)인 말만 가지고 놀았다.
이러한 반성과 후회를 한 후에 시인은 공부와 경험으로 몇몇 사물의 본질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생에 대한 공부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
“아직 끝내지 못하다”는 뜻의 ‘미필’을 겸허하게 제목으로 삼고, 그게 힘이 된다고 밝힌다.
시인에게는 미필을 필하는 과정이 시를 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 속에는 적어도 몇 십 년의 시간이 서사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산문시의 정서를 두고 “비유로 만들어진 정서가 아니라
소설적 체험(리얼리티)의 행간을 통과하면서 묻혀 가지고 나온 정서, 그 끈끈함”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당신도 행갈이가 애매하고 기성품 양복처럼 지겨워지면 아예 행을 무시한 산문시로 건너가보라.
거꾸로 산문시가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지면 다섯 줄 이하의 짧은 시로 건너가보라.
짧은 시는 독자의 머릿속에 벼락을 치듯 전율을 안긴다.
다음은 재연 스님이 옮긴 인도의 고대시가 『수바시따(자음과모음, 2000)』의 한 구절이다.
다른 사람의 심장을 뚫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도 않는
시나 화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아프다. 시를 공부하는 당신이라면 이 시의 말씀이 화살이 되어 가슴에 와 박힐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전통 시가인 ‘하이쿠’는 5-7-5의 음수열을 가지고 있는 정형시다.
하이쿠는 17자의 짧은 형식 속에 인간 존재의 근원과 자연의 거대한 질서를
기막히게 압축해 놓아 아직도 일본인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양식이다.
류시화가 엮은 『한 줄도 너무 길다』(이레, 2000)에 실려 있는 다다토모의 절창이다.
이 숯도 한 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숯은 고체(생나무)와 기체(연기) 사이에 머물러 있는 존재다.
삶과 죽음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와도 같다.
그 숯에게도 흰 눈을 온몸으로 받던 생나무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언젠가는 다 타버리고 재로 사라져갈 운명이라는 것을 이 시는 한꺼번에 말한다.
일체의 상념을 벗어던지고 공(空)의 상태로 돌아가기 직전의 숯을 통해 시인은 삶을 돌아보고, 또 관조한다.
우리의 현대 시인들 중에 단시의 촌철살인의 묘법을 가장 많이 활용한 시인은 역시 고은이다.
그의 시집 『순간의 꽃』(문학동네, 2001)에 박혀 있는 시 한 편.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아무렇지도 않은 듯, 중얼거리는 듯 말하는 이 발견 속에 생의 비의가 숨어 있다.
이것은 원래 있던 것을 보지 못하는 눈에 대한 자책이면서 새로운 눈을 갖게 된 후에
터져 나오는 환호의 소리이다. (이 짧은 시의 설명을 덧붙이는 건 군더더기!)
<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안도현, 한겨레출판,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 7.1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38)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 ③ 산문시와 짧은 시/ 시인, 우석대 문창과 교수 안도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