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학, 「교육평론」(24년 2월호), 96-107쪽 편집
초·중등학교에 ‘행복 교육’을
구현하기 위한 접근 방안
I. ‘행복 교육’의 필요성
1. 학생 관점
아침 등교 시간에 중고등학교의 교문을 통과하는 아이들을 보면 온통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그들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오직 공부에 몰입하여 어떠한 학교생활도 부담스럽게 느끼며 끊임없이 공부에만 매달린다. 정규 시간이 끝나면 학원을 돌며 2~4개의 교과를 학원 수업에 의존하는 것은 이제 생활화되어 있다. 학교는 낮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내신을, 학원은 밤에 문제 풀이를 통해 높은 수능 점수를 위한 곳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그러니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하느라 지친 학생들과 잠자기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보편적이다.
학교 시험에서 점수 한 점을 더 얻어 내신등급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학생들은 주변의 친구들을 학습의 동반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인식한다. 이는 인성교육의 해악이자 우리 교육에 깊은 주름살을 덧씌운다. 살벌한 경쟁의식이 존재하는 곳에는 행복이 존재할 수 없다. 잘하면 잘할수록, 못하면 못할수록 공부 스트레스를 주는 교육제도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비교적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교수 · 의사 · 판검사 · 변호사 등도 예외 없이 정서적 불안감과 열등의식에 휩싸여 있다. 경쟁 체제 속에서 습득된 부정적인 정서가 깊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고교 내내 1등으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학생이 어머니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한다며 가출하는 사례까지 발생했을까?
한때의 성적이 일생을 좌우하는 진로 선택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은 청소년들의 도전정신과 호연지기를 망가뜨리며, N수생을 양산하고, 매년 5만 명이 넘는 학교 밖 청소년을 배출한다. 이는 앞으로도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을 기록하는 우리 교육의 불명예의 원인이 될 것이다.
2. 학부모 관점
요즘 학교는 자퇴생이 크게 늘었다. 그 이면에는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 힘들어하는 부모들의 호소가 있다. 아이의 자퇴 요구에 시달리는 어느 부모는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야”를 외치며 협박하는 아이에게 “더는 시달리고 싶지 않다”거나 “불쌍해서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며 자퇴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학교의 학업숙려제 기간(2주~4주)조차 거치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있다. 가정에서 부모의 행복은 갈수록 도전받고 있다. 부모의 행복은 사치에 불과할 만큼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갈수록 늘어나는 불행한 청소년의 숫자에 비례해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현실이다.
부모 중에 혹자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놓아두면 될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되는 것이 있기는 있다. 예컨대 예쁜 꽃밭을 망치고자 한다면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마구 짓밟거나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면 잡초가 무성하여 결국 저절로 황폐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멋대로 살아가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눔, 그리고 공감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3. 교사 관점
요즘은 교사로 살아가기 정말 힘든 시대이다. 학부모와 맺는 관계는 갈등과 반목의 연속이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갑질, 아동학대 신고, 교권 침해 등의 여파는 최근 10년 내 144명의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어느 한쪽을 탓하기 이전에 국가적인 불행이다.
오늘날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피고, 일상의 언어를 통해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 이를 ‘생명을 살리는 행복 교육’이라 부르고자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친절한 말, 아름다운 말,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을 들으며 자랄 때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매우 소중한 생명이고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교육에는 그 바탕에 정직함 · 진실함이 내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교사는 생명을 존중하고 거짓 없는 정직한 마음과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청소년들에게 생각 없이 말하거나 타인과 비교하는 말이나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꾸중하는 말 뒤에도 반드시 칭찬하는 말로 마무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말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꿈의 씨앗이 되어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동들은 보고 듣고 배우는 데 있어서 마치 흠뻑 물을 머금는 스펀지와 같다. 아동들은 오늘도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들의 행복은 교사의 언어를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표정과 옷매를 가다듬는 행복한 교사에 의해 키워진다.
II. 학부모의 ‘행복 교육’을 위한 실천 방안
과거에는 부모가 아이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지능력에 관심이 높았다면, 이제는 학습의 스트레스와 심리적 안정 및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정서적인 면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서지능은 무엇을 통해 어떻게 형성될까? 이에 대한 교육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행복한 아이를 양육하는 기본적인 처방이기도 하다.
정서지능은 타고난 아이들의 기질보다는 부모의 돌봄과 교육을 통해 발달한다. 특히, ‘말’이야말로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도구이다. 부모의 말에 아이들은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정서지능을 계발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시기는 만 3~5세 때와 사춘기 시절이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부모가 아이에게 사용하는 말은 아이의 성격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자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끄는 통로가 된다. 이 시기에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정서지능과 자율성은 달라진다.
부모의 잔소리는 아이가 대화를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중요 요인이다. 부모가 무심코 많이 쓰는 잔소리를 살펴보자. ▲도대체 너는 잘하는 게 뭐가 있어? ▲이것 밖에 못하겠니? ▲이 바보야~ ▲너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이젠 널 포기했다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부모의 감정이 폭발하여 조절을 잘못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목적에 맞게 잘 활용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결국 목적을 망각한 말들은 불행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하다. 다만 이런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하고 잘 다스려야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예컨대 마트에서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뛰지 마. 뛰면 혼내줄 거야”라고 부정적인 감정을 직설적으로 자극하기보다는, “나와 손잡고 걸어 다닐래? 아니면 카트에 앉아 있을래?”라고 묻고 아이에게 선택을 제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엔 아이에게 자신의 선택과 그로 인한 행복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교육이 함께 한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다가가기 위한 부모의 말은 어떤 게 있을까?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지 않아 답답하고 속상하지? ▲성적이 당장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네 실력이 나아지지 않은 것은 아니야. 지금 당장은 네가 노력한 게 눈에 띄지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남아서 반드시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널 도와줄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해주면 내가 같이 노력해 볼게. 이들의 공통점은 아이가 위로를 얻고, 힘든 일이 생겨도 자기감정을 조절할 능력이 생기며, 자기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아이를 죽이는 잔소리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말을 일방적으로 끊고,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고,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경우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정서지능이 다른 나라의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무조건 통제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잔소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아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 부모의 낮은 자존감, 아이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동일시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곧 부모의 ‘애착’이 ‘집착’으로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는 자녀교육에서 아이의 모든 것이 부모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해야 한다. 즉 아이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큰 문제가 되는 마마보이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럼,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정윤경 교수는 다음의 방법을 순차적으로 실천해 보기를 권한다. ▲부모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기 ▲아이 입장에서 이해하기 ▲아이가 먼저 말하고 표현하게 하기 ▲최대한 짧게, 한 번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아이에게 해야 할 것 위주로 대안을 주고 선택하게 하기 ▲아이의 특성과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하기 등이다. 이를 위해선 부모가 조바심을 버리고 시간적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무조건 잔소리 하면서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기 전에 부모가 원하는 목적을 좀 더 현명하게 실천하는 가정교육이 필요하다. 잘 기억하고 연습하고 반복하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더 좋아질 수 있다. 소통은 기다림이고 인내다.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가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아이가 행복하게 성장한다.
III. 결론
교육의 모든 답은 학생 안에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행복한가? 결코 그렇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 최우선의 교육 정책은 무엇인가? 그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덴마크나 독일처럼 ‘행복 교과’ 운영을 제도화해서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 마디로, 경쟁이 아닌 협력과 연대를 통해 집단지성을 배우고, 미래에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역량을 키워 행복한 민주시민이 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문제는 ‘초등학교 의대반’처럼 입시에 몰입하는 선행교육을 초등학교에서 앞서 실현하려는 교육 가치의 혼란이다. 영재고 · 과학고 · 자사고 · 외고 등 특목고에 진학하려는 중학생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대학입시에 매몰된 우리의 고교 교육은 N수생을 양산하는 거의 병든 상태이며, 대학 교육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무능할 정도로 한참 밀려 있다.
이제 기성세대의 의식혁명과 교육 가치의 절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학벌 사회의 노예로 고통스럽게 살기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야 어른들도 행복하다. 우리는 이제 입시 위주의 교육을 폐기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행복 교육을 실천해야 마땅하다.
필자는 행복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몇 가지 행복 교육 정책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도덕적 개인을 넘어 합리적인 민주시민이 되기를 가르쳐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경청한 뒤 토론하고 합의안을 찾는 것을 입시 교육보다 우선하여 가르쳐야 한다. 둘째, 청소년과 연대하고 그들의 혁신 역량을 키워야 한다. 무턱대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과 ‘왜’라는 철학과 가치를 묻도록 해야 한다. 셋째, 기성세대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성공과 출세 지향의 가치를 넘어 한국 사회에 세습되는 계급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강력한 비판의식을 키워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소명이다. 이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교육은 이제 교육과정 하나하나를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까르페 디엠’(Carpe Diem)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어른을 만든다. 이는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복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왜냐하면 행복한 삶은 좋은 습관에 의해 가능하고, 좋은 습관은 충분한 연습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운영을 통해 ‘행복 교육’을 새롭게 부각하고 구체적인 운영 과정을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학습을 통해 알게 된 행복해지는 행동 유형을 학교마다 하나씩 공유하여 실천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적극적인 동반자이자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이 학교에서 서로 언제 행복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는 교육적 관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행복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결론을 맺고자 한다. 국가는 아이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단호한 교육 개혁을 실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