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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 나채
'신은 죽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니체라는 철학가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 들었던 그의 유명한 말이다. 그 당시에는 이 말이 단지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 이 말이 의미하는 뜻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에 이상한 이름의 제목에 호기심을 가지기도 해보았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난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위대한 철학가의 저서라는 것이 첫 장을 넘기는 데 커다란 벽이 되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의 주관과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까', '오히려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들이 앞섰다. 그러나 제1부를 몇 번 읽어가면서 그런 걱정들은 점차 사라지고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말은 종교개혁도 끝나고 과학의 발달과 그로 인한 산업혁명으로 신의 위치는 점점 좁아만 가는 시대였다. 그리고 철학 역시 그 시대에 맞는 실존주의 철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는 조그마한 마을의 루터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가치관 아래에서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하기 전까지 니체는 단지 고독을 사랑하는 온순한 청년, 그리고 목사로서의 길과 철학자로서의 길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이었다. 본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동시에 공부하던 그가 과감히 신학을 버리고 고전문헌학으로 돌아설 수 있었던 데에는, 포타에게 받은 고전교육의 영향, 니체 자신의 고대에 대한 사랑, 문헌학자 리첼 교수에 대한 존경과 그의 권유, 신학에 대한 반감 등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기독교를 떠나 기독교를 가장 신랄하게 공격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 등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실존주의와 생철학을 받아 들였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창조하였다. 철학자들을 만나고 배우면서 느꼈던 것을 그리고 자신의 살면서 느꼈던 것과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서 자라난 기독교의 것들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쓴 것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의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창시자 조로 아스터를 본뜬 이름이다. 이는 유럽 문화에의 반감과 더불어 동양사 상과 생활, 잠언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짜라투스트라와 조로아스터교는 상관 관계가 없다. 짜라투스트라는 니체의 유일한 벗인 동시에 그 자신이다. 문학과 음 악, 산책으로 소일하며 늘 외로웠던 니체는 그만큼 깊은 우정을 늘 동경했다.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는 냉철한 사고와 예리한 감수성, 성스러움을 겸비한 인물이다. 니체는 인생 행로에서 훌륭한 벗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깊은 우정을 표명했지만 완전한 친구라 믿던 그들에게서 실망을 느낀 나머지 이상적인 벗으로서 짜라투스트라를 창조해냈다. 그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자신의 우정과 이상, 환희, 환멸, 고뇌 등 내적 경험의 역사를 털어놓으며 이상향을 담아냈다. 언어의 음악성과 시적 특성을 지녀 한 편의 서사시와도 같은 「짜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총4부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제1부는 1883년 2월 3일부터 13일까지의 10일간에 완성되었고, 1883년 6월 초 슈마이츠너 서점에서 출판되었다. 제1부의 처음에는 '짜라투스트라의 서설'이 나온다. 이 부분은 완전한 도입부로써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신의 죽음 이후, 그리고 모든 철학적 체계의 좌절 이후 개인적인 입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몰락의 결심과 은둔자의 대화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해준다. 그리고 군중을 향한 연설의 세 등분된 형식을 통해서 논제적인 도입이 시작된다. 군중 앞에서의 설교의 좌절과 동반자를 찾으려는 결심은, 이 책이 새로운 신앙의 교리 문답서가 아니라 자율적인 태도를 향한 외침으로 읽혀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본문은 '모든 이를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이 어떤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
서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30세 때 고향을 떠나 산중에서 10년 동안 지낸 짜라투스트라는 어느 날 아침 문득 깨달은 가르침을 인간세계에 계시하기로 결심한다. 산에서 내려오던 도중에 한 늙은이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지만 '신이 죽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그 늙은이와 얼른 작별하고 만다. 허상에 불과한 마지막 믿음이나마 빼앗지 않기 위해서다. 짜라투스트라는 한 장터에서 줄타기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에 게 ‘초인’을 가르쳐주지만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자 창조력이 있는 친구를 찾아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 순간 독수리와 뱀이 옆으로 다가온다. 짜라투스트라는 뱀처럼 영리하고 독수리처럼 긍지를 가진 행동에 나서리라 다짐한다.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짜라투스트라의 연설'이 시작된다. 짜라투스트라는 주로 얼룩소라는 이름의 도시에서 초인의 이상을 설교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해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짜라투스트라의 첫 연설<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는 입문적인 지시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는 앞으로 이어지는 연설의 정신과 짜라투스트라에 있어서의 사유와 철학의 방법이 암시되고 있다. 또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해방의 자유 정신이 되는, 하나의 변화가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외경심을 품은 자들이 해방의 자유 정신이 되고 "창조자의 유희"를 긍정하는 유희의 자유 정신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비판에서 실험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다.
여기서는 현실에 대한 구속성과 통상적인 생각들의 풍자화가 그려지고, 그 안에서 부분적으로 구체적인 새로운 가치 규정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덕성, 정열, 가식과 몸에 대한 적대성 범죄, 전쟁, 국가, 순결, 우정, 이웃애, 남녀 관계와 교육, 자유, 죽음에 대한 지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일상적인 것과 삶의 여러 다른 영역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된다. 당시대적인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의무들에 대한 의문이 또한 제기된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국가에 대한 비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국가를 신의 죽음 이후에 나타나는 대치 종교로 설명하며 격하시키고 있다. 대신 자기자신의 욕구와 정열에 대한 신뢰와 모험에 대한 용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몰락에 대한 용기도 강조되고 있다.
<배후 세계자들에 대하여>는 다른 형식 속에서 '짜라투스트라의 서설'에서의 요구사항을 반복하고 있다.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대지를 초월한 희망에 대해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이것은 초월자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고, 현존의 피안과 배후에서 참되고 영원한 그 무엇 혹은 다른 그 무엇을 부여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며, 동시에 삶의 내재적 의미를 회의하지 않을 것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의 설교자에 대하여>라는 장을 이러한 사상을 계속 전개시켜 나간다. 삶에 대한 회의 혹은 다른 이유에서의 삶에 있어 내재적인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며, 그 대신 삶으로부터의 도피를 설교하는 자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는 "어서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저주하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천 개의 목표와 한 개의목표에 대하여>, <시장의 파리 떼에 대하여>, <산상의 수목에 대하여>, <그리고 창조자의 길에 대하여>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와 낡은 의무의 파괴라는 중요한 사상을 정의하고 있다. 광범위한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개인적인 관점의 추구는 창조의 전제 조건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그 결과로서 고독과 고독해짐이 인식될 수 있게 한다.
<나누어주는 덕에 대하여>는 제1부의 종결이며, 절정을 이루는 장이다. 첫 단락은 남는 것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모든 것을 요청하고 형성하고 변형하는 덕, 즉 창조의 총괄 개념인 덕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둘째 단락은 내재성에 대한 외침을 반복하고 있다. 시험으로서의 인간, 착오 없이는 살 수 없고 많은 착오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에 관한 논제가 강조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부분은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많은 삶의 가능성과 삶의 관점에 대한 인식과 지식에 대한 길을 그리고 있다. 셋째 단락은 제자들과의 이별을 그리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의 연설을 신성한 이론으로 추종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율성에로 되돌아갈 것을 가르친다.
제1부에서 니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초인"이라는 단어인 것 같다. 초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그리고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형이상학적인 가치관으로 인해서 인간이 무시된 세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런 현실을 뛰어넘는 도덕적 자기 초극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인간이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이고,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더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초극되어야 할 존재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이 사라진 위선과 가식에 갇혀있는 이 세계를, 배후 세계론자들 즉 형이상학자들의 허황된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이 모든 가치들을 떠나 육체를 중시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런 기독교와 형이상학자들에게서 온 삶에 대한 권태에서 떠나 초인을 향해 인간의 본질을 찾고 더 나아가 형이하학적인 세계를 뜻하는 대지에 삶의 기반을 두고 그것들과 싸우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맞서 싸우면서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고독에 사로잡혀 고뇌와 싸우더라도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인간상이 될 때가 비로소 초인의 인간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한 초인을 어린아이에 비유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정신이 참된 자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정신적 단계인 세 가지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어떻게 사자가 되며, 끝으로 사자가 어떻게 어린아이가 되는지를 말한다. 이렇게 비유되는 인간의 정신세계의 변화는 낙타의 단계에서는 위해 자기를 버리고 타인이나 전통적 가치에 철저히 복종하고, 다시 낙타의 정신에 철저히 복종하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는 '사자의 정신'을 거쳐 어린아이의 단계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변화는 인간이 초인으로 나아갈 때의 과정으로, 처음에는 무거운 짐을 갖고 있는 낙타처럼 정신적 자유를 얻지 못하고 전통의 굴레에 매여 세상의 가치들을 그저 매고만 있는 상태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이러한 정신적 고뇌에서 기존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아니 버렸다기보다 더 위에 올라간 상태에서 정신적 자유를 찾아 창조의 단계에 오른 인간의 모습을 사자라고 비유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 복종하고 메여있던 것이 낙타였다면 다시 이모든 것을 버려버리고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고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사자인 것이다. 이런 정신적 자유를 찾은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사자는 할 수 없는 것을 어린아이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을 니체는 초인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유희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창조의 유희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순수하고 절대적인 자기 긍정을 하는 어린아이의 사유의 세계, 바로 처음 세상에 나올 때 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외부적인 유토피아 사상에 젖어 있지도 않고 자신의 의지와 행동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그러나 악하지 않게 행동하는 어린아이의 세계, 무수한 세계의 끝에 비로소 긍정자의 반열에 오른 초인의 모습, 즉 짜라투스트라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여기의 세 가지 비유는 니체 자신의 철학을 보이기 위한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자신의 사상적 성장과 초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 본연의 자유로움을 신적인 것에서 찾지 않고 생의 가운데서 인간 본질 그 자체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제1부에서는 초인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초인을 초점으로 하여 창조적 인간으로의 성장과,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도 자 신의 향상을 위한 계기로 바꿔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이 곳곳에 담겨져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가르침의 씨를 뿌려놓은 뒤 제자들과 작별하고 홀로 있기를 결심한다. 그는 "너희들이 모두 나를 부정했을 때 비로소 나는 너희들 옆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고별사를 통해 제자들이 자신의 설교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도록 타이르면서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맨 처음에 나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서두로 삼았다. 이 말이 지닌 의미를 잘 몰랐으나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니체는 아버지가 목사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그의 어린 시절과 적어도 청소년 시절까지는 기독교 아래에서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사상으로 둘러싸여 자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생활 환경이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니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기독교에 대한 원초적인 원망과 시기심보다는 자신이 사랑했던 기독교가 본래의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본질은 잃어가고 껍데기만 남은 모습에 실망하여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런 세상에서 나태해진 기독교인들에게 경각심을 깨우치자고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교의 교리와 인간의 욕구 속에서 갈등하고 메여서 어떠한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삶에 충실하라는 말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대지에 충실하여 초인이 되라는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삶에 주인이 되라는 기독교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 사상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새로운 주장이었으며, 그리고 그가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은 것으로 인하여 그의 생각은 미친 사상으로 치부되었으며 사회에서 배척 당하였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사상은 20세기 철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매우 선구적이고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명언 모음집
"신이 어디있냐고? 좋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너와 내가! 우리는 모두 신을 죽인 살인자다!"
"희망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속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 군중속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
"오늘 가장 좋게 웃는 자는 역시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결국 죽고 만다. 인간도 완전히 이와 같다.
낡은 자의 허물 속에서 언제까지 갇혀 있으면 성장은 고사하고
안쪽부터 썩기 시작해 끝내 죽고 만다.
늘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 없는 전진이다. 먼 곳을 항해하는 배가 풍파 없이 조용히 갈 수만은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더 이상 자신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사람이 높이 날아오를 수록 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작아보이는 법이다."
"개인에게서 광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집단,당파,민족,시대 등에는 거의 예외없이 광기가 존재한다"
"젊은이를 타락으로 이끄는 확실한 방법은,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대신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이를 존경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 저지른 실수에 불과한가? 아니면 신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른 실수에 불과한가?"
"삶을 알차게 그대가 삶을 값지게 보내고 싶다면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라.
오늘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좋으니 누군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라고"
"강한 신념이야 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나를 죽이지 못한 많은 시련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살아있는 한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군중 속에 매몰되고 싶지 않은
인간은 자신의 안이한 행동을
중단하면 된다. "너 자신이 되어라! 네가
지금 행하고 생각하
고 욕구하고 있는 일체의 것은 네가 아니다." 라는
양심의 부르
짖음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청춘의 영혼은 날마다 이 같은 부르짖음에 시달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혼의 참된 해방을 떠올릴 때마다 손에
잡히
지 않는 행복에 도취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이
현실이라는
공포의 사슬에 묶여 있는 한 이 행복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인생에서 이런 해방을 맛볼 수 없다면
삶
이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일까!
사방을 곁눈질하는 인간처럼 보기 흉한 생물은 자연계에 없다.
이렇게 겁에 질린 인간은 마침내 의지할 곳마저 모두 잃고 만다.
그는 핵이 사라진 잎사귀이며, 좀이 슬고 한물간 의상일 뿐이다.
공포는커녕 동정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삶의 흐름을 건너고자 만든 저 다리는 너를 제외하곤
누구도 건널 수 없다. 물론 이 세상에는 너를 짊어지고 강을 건
너겠다는 무수한 지름길과 다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
을 위해 결국 너를 희생시키고야 말 것이다. 너는 그들의 인질
이 되어 조금씩 사라져갈 것이다. 세상에는 너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건널 수 없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다. 대신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묻지 마라. 오직 그 길을 가라. "내가 밟는 이 길이 어
디를 향하는지 모를 때처럼 기쁜 일은 없다."고 말한 자는 과연
누구였는가(괴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스스로와 대면케 되는 것일까.어떻게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것일까.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젊은 영혼 요한은 "지금까지 네가 진정
으로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너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너의 영혼을 점령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떠올리며 과거를 회상했다.
네가 존경을 바친 대상과 너의 모습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자.
아마도 그 차이가 너에게 하나의 법칙을 일러줄 것이다. 그 법칙
을 따라가면 너는 본래적 가치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비교해보자. 네게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먼 미래에
확신을 갖게 하고, 지금의 너를 능가하고, 잘못된 그림자가 정화
되는 과정을 지켜보도록 하자. 그 모든 과정들이 네가 밟아야 할
계단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도록 하자.
너의 참된 본질은 너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아니라 이미 너를
초월해버린 수많은 사건과 시간 위에, 또는 만나지 못한 '자아'
로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너의 참된 교육자 형성자는 네가 가진 본질의 참된 의미와 소재
를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즉 교육자는 해방자의 다른 이름이다.
해방이야말로 교육의 참된 목표이다. 어린 나무의 연약한 싹을
침범하려는 갖가지 잡초와 해충을 뜯어내고 빛과 온기를 채워주고,
애정으로 비를 맞게 해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반시대적 고찰 Unzeitgem sse
Betrachtungen 1873~1876』중에서
나는 이제 홀로 가려 한다. 나의 제자들이여, 이제는
너희들도 홀로 가거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이니. 나를 떠나가라! 그리고는 짜라투스트라를 거부하라, 아니 차라리 더 좋은 것은 그를
부끄러워하라, 그는 너희를 속였을 테니. 너희가 진정코 지식을 가졌다면 자기의 적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자기의 친구를 미워할 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언제나 제자인대로 있다면 너희는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너희들은 나의 월계관을 빼앗고 싶지 않으냐? 너희들은 나를
공경한다. 그러나 어느 날 너희들의 공경심이 무너진다면 어찌하겠는가? 조심하라, 넘어지는 조상(彫像)에 깔려 목숨을 잃을 염려가 있느니. 너희는
짜라투스트라를 믿는다고 말하느냐? 그러나 짜라투스트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너희는 나의 신자이다. 그러나 신자가 되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너희는 아직 너희 자신을 찾지 못하였을 때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는 나를 믿는 모든 신자가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믿음이라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너 스스로를 찾으라, 너희가 나를 완전히 부정하였을 때 나는 너희에게 다시
돌아가리니.
1. 『서광』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도덕에 관한 일련의 전투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화약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신의 후각이 상당히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그것과는 다른 훨씬 사랑스러운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라. 여기에는 크고 작은 통들도 없다. 이 책의 결과가 부정적이라고 해서 그 수단도 부정적이라는 법은 없다. 이 수단을 통하여 나오는 결과는 대포알이 아닌 하나의 추론에 의한 결론을 던져주는 것이다. 도덕이라는 이름 하에 이제까지 존경받고 숭배받던 것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경계심을 갖고 이 책을 읽어 본다면 이것은 이 책이 어떤 부정적인 말이나, 어떤 공격, 어떤 악의도 없다는 사실과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이 책은 햇볕 속에서 웅크리고 누워 있다. 마치 바위 틈에서 햇볕을 쪼이는 바다동물처럼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이러한 바다동물이다. 이 책의 거의 모든 문장들은 제노아 근처의 무수한 바위들 사이에서 거닐면서 생각해 낸 것들이었다. 제노아에서는 나는 혼자 있었으며 바다와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도 우연히 이 책을 들치면, 내게는 거의 모든 문장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을 건져 올리는 그물로 변하곤 한다.
나는 이 『서광』으로서 처음으로 인간을 상실시키는 도덕에 대한 투쟁을 선언하는 바이다.
선악을
넘어서
이 책이 19세기, 나아가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들중의 하나에 속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점에서 이 책이 위대한가에 대해 간략하게 열거한다면, 우선 이것에 일관되어 흐르는 정신의 예언자적 독자성을 들 수 있고, 우리의 정신의 새로운 조망, 새로운 문제점, 새로운 연관성에 도달할 수 있도록 수많은 통로를 열어주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현대 사상과 문학과 역사에 대해 풍부한 이해를 얻게끔 해주었다는 점 등이다. 예를들어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과 정신분석학이나 분석철학, 실존주의 등과의 관련성을 아무리 추적해 본다해도 결국 이 책의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하며, 여전히 또다른 부분이 남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예외적인 복합성과 전체성을 지닌 매력적인 한 인간과 부딪칠 기회를 제공해 주는 희귀한 책들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1. 『도덕의 계보』에 대하여
『도덕의 계보』는 세 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도덕적 현상의 기원을 다루고있다. '선과 악'을 '우와 열'과 대조시킨 첫번째 에세이는 주인과 노예의 도덕을 병치 시키고, 두번째 에세이는 '죄', '양심의 가책'과 그에 연관된 문제를 고찰하며, 세번째 에세이는 금욕적인 이상을 탐구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단지 전면만을 본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에게 후면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책에서 니체는 주인의 도덕이 선한 것이며 반면에 노예의 도덕은 악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혹은 양심의 가책과 금욕적 이상은 열등한 것이며 반면에 그 두 현상에 선행하는 야만적 상태가 우월한 것이라고 왜곡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니체는 통상적 이어서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도덕적 평가, 도덕적 현상, 도덕적 이상이 어떻게 그 나쁜 혹은 어두운 모습을 지니게 되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2. 『이사람을 보라』에 대하여
『이사람을 보라』는 세계문학의 진귀한 보물 중의 하나이다. 그가 이 저서의 초고를 마친 두 달만에, 즉 그가 이 저서를 한번 더 검토한 지 한 달도 채 못되어 발광하였다는 것은-그가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불행을 어떻게 해서 피하지 못하게 되었는가를 명심 한다면-한없이 고양된 비극적 차원을 이 저서에세 던져주는 것이다.
『이사람을 보라』는 자신의 성장, 자신의 작품,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니체 자신의 해석이다. 또한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
말하자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일원과 같은 이미지도 아니고, 아폴로적 현인도 아닌 바로 디오니소스적인 철학자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이
불가사의한 철학자 니체가 의도하는 바이다.
머지않아 나는 인류로 하여금 역사상 가장 어려운 요구를 직면케 하리니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가를 이미 알고 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나 스스로를 입증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사업의 위대함과 현대인의 비천함 사이에 놓인 불균형은 곧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심지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사실로 표현된다. 나는 내 자신이 발행한 어음으로 살고 있으니 내가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단순한 편견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나는 나의 습관, 심지어 나의 본능에 대한 자존심이 근본적으로 거부하지만 다음과 같이 말할 의무감이 있으니
『나의 말을 들으라!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러하니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나를
혼동하지 말라.』
1. 『우상의 황혼/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니체의 책들은 어느 책이고를 막론하고 인간의 근원적 사유를 자극하여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생산적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니체의 모든 저술이 정신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아무런 의문이나 이의제기 없이 공인된 가치 체계에 대한 비판과, 나아가서 새로운 가치체계의 건설을 위한 파괴라는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목적성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비판, 건설을 위한 파괴는 『모든 가치 체계의 재평가』 라는 말로 집약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우상의 황혼』『반그리스도』에서 절정을 이룬다. 『우상의 황혼』이 니체가 그동안 다루었던 주제의 대부분을 간결하게 압축한 것으로 영구적인 우상들에 대한 가차없는 선전포고라면 ,『반그리스도』는 기독교와 기독교 도덕에 관한 성찰들을 도전적인 에세이로 묶어 어떤 타협이나 저의의 틈입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하고 명료한 틀 속에 집약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우상의 황혼』에 대하여
150 페이지도 못되는 이 에세이는 문장이 쾌할하면서도 전조적(前兆的)이며 하나의 미소짓는 악마이다. 이 저서는 얼머나 오래 걸렸느냐를 답변하기가 거북스러울만치 극히 짧은 시일에 완성하여 책으로서는 하나의 예외적인 저서이다. 그렇지만 내용이 풍부하고 독존적이며 파괴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책에 비할 수 없다. -심지어는 심술구ㅊ다는 점에서도, 만일 나 이전에 모든 것이 어떻게 물구나무섰는가에 대해 재빨리 생각을 얻어내려면 이 에세이를 읽어보라. 표지에 있는 이른바 『우상』이란 이제까지 진리라고 일컬어졌던 것들을 말할 뿐이다. 『우상의 황혼』-말하자면 옛 진리는 이제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있다.
3. 『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 책은 극소수의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그 독자들은 아직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짜라투스트라를 이해하는 독자들일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이해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또 그 조건하에서는 나를 필연적으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조건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선 내 진지와 내 열정만을 견뎌내기 위해서도 지적인 문제 있어서 냉혹할 만큼 솔직해야 한다. 그리고 산 위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
1. 『비극의 탄생』에 대하여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처녀작이다. 우선 이 책은 그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전에 비극에 관해 씌어졌던 연구들 중에서 시사하는 바와 영향을 주는 바에 있어서 가장 으뜸이다. 또한 『비극의 탄생』은 단지 비극과 바그너만을 다루지 않고, 과학과 예술의 관계, 그리이스 문화의 현상, 그리고 현대를 다루고 있으며,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하여 니체는 많은 흥미 있는 발언과 비범하게 뛰어나고 통찰력 있는 수많은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바그너의 경우』는 이 책이 마땅히 받아야 했을 주목을 오랫동안 받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 매우 짧고 우아한 작품은 니체와 바그너의 쇼펜하우어에 대한 공통된 열광과, 바그너가 위대한 예술가이며 그리고 니체가 알고 있던 어떤 예술가 보다도 훨씬 대단히 매혹적인 예술가임과, 그 둘 사이의 개인적 친교와 정신적 편차 등을 잘 보여준다. 니체의 마지막 저서인 『니체대 바그너』 가 씌어진 이유는 『바그너의 경우』 가 갑작스레 마음을 사로잡은 어떤 악의에 의해 착상된 것이 아니며, 니체가 오랫동안 바그너와 유사한 입장을 지녔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니체 대 바그너』는 아마도 그가 지은 가장 아름다운 책일 것이다.
「첫째」
비극의 탄생의 첫째 출판은 니체가 스물 일곱이던 1872년에
나타났다. 우선 이 책은 그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전에 비극에 관해 씌어졌던 연구들 중에서 시사하는 바와 영향을 주는 바에 있어서 가장
으뜸이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만이 이 책을 능가할 것이다. 비극에 대한 어떤 다른 연구가 이에 어깨를 견줄 수 있겠는가? 아마도
헤겔의, 이 주제에 대한 분산된 발언들을 제외하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둘째」
<비극의 탄생>은 단지 비극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비극과 바그너만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과학과 예술의 관계, 그리이스 문화의 현상 전체, 그리고 현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하여 니체는 많은 흥미있는 발언과 비범하게 뛰어나고 통찰력 있는 수많은 생각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니체는 현대 철학자들 중 가장 심오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독일의 가장 위대한 산문 문체가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비극의 탄생의 많은 부분은 니체 자신이 "자기의 자기 비판의 시도"중 3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너무 과장되고 모호하게 씌어졌다. 그리고 어떤 때는 그 이상 그의 후기의 문체에 대하여 극도로 반대되는 문체는 상상해 보기도 힘들 정도의 것이 나온다. 그의 후기의 성취를 완전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초기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책 속에서 주장되는 니체의 핵심점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그리이스인이 겨우 억제해 놓았던, 자유분방한 디오니소스적 추진력을 고려해 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리스인의 업적과, 니체에 의해서 아폴로적인 것이라고 불리우는 절제의 힘의 승리의 두 가지를 정당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명료성과 경구적 간결성으로 뛰어난 그의 후기의 문체는, 우리가 그 문체를, 니체 스스로도 1886년까지도 몹시 난처해 했던 자기의 문장들, 즉 종종, 특히 마지막 열 개의 절들 속에 나타나는, 바그너에 대한 풍자처럼 보이는 문장들과 비교해 볼 때 더더욱 인상적이다.
1. 『반시대적 고찰』에 대하여
『반시대적 고찰』은 근대 세계에 대해 가차없는 전투로써 전진 하라는 일종의 도전장이다. 이 도전은 근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하여, 이를테면 폭풍 뒤의 고요함처럼 『모든 싸움과 신음과 울음 소리가 없어진 미래의 시대』 를 예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독일적 교양과 상식에 대한 혐오감, 학문의 너무 많은 잡동사니로부터의 탈출, 삶을 짓밟고 삶을 해치는 것에 대한 존재적 위기감의 발로로서의 철학, 인간성 상실의 메카니즘에 대한 비판, 보다 고차원적인 문화 개념의 도출을 위한 시도와 엄격한 자기 수렴의 사색이 청년 철학의 형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은 그 자체로 독립되고 완성된 작품으로 내용상으로는 역사론, 교육론, 문화론, 예술론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청년 니체가 청년들에게 바치는 철학인 것이다.
『반시대적 고찰』은 니체가 『비극의 탄생』(1872)에 이어서 73년부터 76년에 걸쳐서 발표한 네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니체가 29세부터 32세에 걸쳐서 발표한 작품이다.
「제1편」
『다비트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는 1873년 4월 말부터
6월에 걸쳐서 바젤에서 집필, 8월에 출판 되었다.
「제2편」
『생에 대한 역사의 공과』는 같은 1873년 가을에 바젤에서
집필, 다음 해인 74년 2월에 인쇄가 완료되어 츨판되었다.
「제3편」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는 1874년 3월부터 7월에 걸쳐서
주로 바젤에서 집필, 8월 초에 완성되어 10월에 출판 되었다.
「제4편」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는 1875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 처음의 9절이 완성되었는데, 니체는 아직 출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1876년 5월에 페터 가스트가 제 8절까지 정서하여 니체에게 공표를 권했고, 니체도 같은 해 여름 바이로이트의 축제에서 『니벨룽겐』의 상연에 협찬했기 때문에 새로 제 9절에서 제 11절을 덧붙여서 7월에 출판했다.
[칼럼 > 봉주르! 이정아의 미술박물관] 니체와 릴케, 프로이트가 사랑한 여인, 루 살로메
니체와 릴케, 프로이트가 사랑한 여인, 루 살로메
루 살로메 Lou Andreas-Salome
1861~1937
철학자 니체와 시인 릴케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들과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까지 사로잡은 여인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루 살로메, 그녀는 당대 최고의 천재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었던 독일인 여성 작가로 남성들을
파멸로 이끈 마성의 여인이었죠. 그녀가 쓴 몇 권의 작품에서 루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엿볼 수 있지만, 정작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과의 격렬하고도, 비정상적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861년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루의 아버지는 막강한 러시아 장군이었습니다. 당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예술적, 문학적의 황금시대를 맞이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시대를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적, 예술적 활동의 중심지에서 루는 부족함 없이 성장했습니다. 이런 그녀가 처음 청혼을 받은 것은 18세 때로 상대는 스승이었던 43살의 헨리 길로트로였습니다. 그는 루에게 형이상학, 논리학, 문학, 종교학, 예술학, 철학 등 서구 문화의 넘치는 지식을 심어준 사람이었습니다. 루는 길로트를 깊이 존경했지만, 그가 자신에게 육체적인 욕망을 느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절망적인
사랑
1880년 길로트와 헤어진 루는 러시아를 떠나 취리히 대학에 입학을 합니다. 그리고 휴양차 간
로마에서 철학자 파울 레(Paul Ree)를 알게 되었습니니다. 레는 루의 이지적인 용모와 학문을 향한 욕구, 정열에 빠져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이번에도 루는 자신을 향한 사랑을 거절합니다. 이때 루는 레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면서 좀 독특한 제안을 했는데요, 당시 러시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던 ’가상 결혼’, 그것도 남자 한 명을 더한 세 사람의 동거를 말이지요.
고심하던 레는 자신의 스승인 니체에게 부탁을 했고,
1882년 4월, 니체가 로마에 도착합니다. 이때 니체는 서른 일곱 살, 루는 스무 한 살, 레는 서른 두 살이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니체는
루에게 첫 눈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려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운명입니다’ 그녀를 처음 본 니체가 한 말, 이렇게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1882년 여름, 루는 니체의 초대로 그의 별장에서 한 달을 머물었죠.
니체는 루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고 프로포즈를 합니다. 니체는 그 당시를 ’내 인생에 새로운 여명이 빛나고 있음을 느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체는 후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루를 ’이 지상에서의 이상’으로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니체는 루에게 청혼했고, 루는
거절했습니다.
베를린으로 돌아온 루는 레와의 동거에 들어갑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니체는 심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질투와 배신감에 사로잡힌 니체는 루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쓰고, 그녀의 사생활을 폭로한다는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지인들에게 루를 비난하는 편지를 썼고, 레에게는 결투를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루에게 조종당했다는 말에
비유했던 니체는 루에 대한 극심한 미움에 사로잡혀 결국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며 10년이 넘는 세월을 광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근대 철학사에 실존주의 사상을 확립시킨 니체, 주체할 수 없이 격정을 터트렸던 한 여인의 대한 깊은 상처는 이 위대한 철학자에게
평생을 방랑 생활로 전전, 절대 고독 속에 스스로를 내던진 삶을 살게 했습니다.
루를 두고 니체와 사랑의 싸움을 벌여 승리했던 파울 레,
하지만 그들의 만남의 주도권은 항상 루였습니다. 그리고 동거한 지 5년만에 레는 루로부터 카를 안드레아스라는 동양언어학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루에게 버림받은 레는 4년 뒤,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든 바닷가 절벽에서 투신 자살합니다.
레를 버리고 선택한
남자 안드레아스, 하지만 그와의 결혼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26세의 루에게 반해있던 41세의 안드레아스가 자신과 결혼해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가슴에 칼을 찌르는 소동을 벌인 끝에 이루어진 결혼이었습니다. 하지만 루는 ’섹스는 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의 자유로운
교제는 허락한다’는 조건을 내세웠고,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 안드레아스는 이런 결혼 조건에 동의합니다. 루는 후에 결혼 생활을 ’서로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고 있다’라고 회고하면서 남녀가 완전히 평등하게 서로의 재능을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생활로
표현합니다.
어쨌든 결혼은 했으나 그녀의 남성편력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사실 루는 정신적으로 끌리는 남자와 육체적으로 끌리는 남자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고, 정신적 교류를 한 남자와의 육체적
관계는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
후에 독일 사회민주당 창시자인 에고르크 레데부르크가 그녀의 첫 애인이 되었고, 얼마 후 빈의 의사
프리드리히 피넬레스가 뒤를 이었죠. 후에 루는 피넬레스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유산을 합니다. 루는 피넬레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남편에게 돌아갔고,
피넬레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젊은 시인과의 교제
1897년 5월,
루는 뮌헨대학을 다니며 시를 발표하던 한 젊은 시인을 만납니다. 그의 이름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때 릴케의 나이 21살, 루는
36살이었습니다. 릴케를 처음부터 루에게 애정을 느꼈고, 루 역시 젊은 릴케의 정열에 매료되었습니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로
일컬어지는 릴케는 그녀를 평생토록 존경하고 흠모했습니다. 릴케에게 루는 처음으로 자신의 본질을 이해해주는 여성이었죠. 두 사람은 만난 지 한
달만에 3개월 동안 동거를 했고, 루의 남편 안드레아스와 함께 셋이서 러시아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결별 후에도 릴케와 루는 수시로 만났으며, 4백여통의
편지를 교환했죠. 언제나 릴케의 작품을 가장 처음 읽는 사람은 루였고, 그녀는 릴케의 훌륭한 조언자였습니다. 1926년 릴케는 죽음의 순간에도
루를 잊지 못했음을 고백, 그녀를 찾았다고 합니다.
릴케와의 결별, 레의 자살 소식으로 힘들어하던 루는 옛 애인인 피넬레스에게서
마음의 안식처를 발견합니다.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갔고 41살의 루는 그의 아이를 임신했죠. 피넬레스는 루의 남편 안드레아스에게 사실을 알리자고
루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이혼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아기를 낙태시킵니다. 피넬레스는 그녀를 떠났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죠.
지그문드 프로이트 Sigmund
Freud
점차 정신이 이상해지는 릴케를 지켜보면서 루는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녀가 파울
브예레의 소개로 프로이트를 만난 것은 1911년, 바이마르에서 열린 국제 정신분석 학회에서였습니다. 당시 정신과의사 파울 브예레는 루의
연인이었죠. 루는 프로이트의 연구에 깊은 감동과 존경을 표현했고, 프로이트는 루를 빈의 정신분석 학회 회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녀의 출현은
니체와 프로이트, 빈과 독일 문학과 정신 분석 사이의 연관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죠.
이때도 루의 마력은 또 한 번 힘을
발휘합니다. 상대는 프로이트의 유능한 제자인 젊은 타우스크 박사였습니다. 하지만 한 때의 열정이 지나고 루가 남편에게 돌아가버리자 자살을
선택해버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와의 교류는 계속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적 연인이자, 후원자로서 루와의 관계를 평생토록 지속했습니다.
그녀는 1930년 남편 안드레아스가 죽고 7년 뒤,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을 수많은 사람들의 연인으로 남성들을 파멸의 길에
이르게 했던 루 살로메, 철학자 니체와 시인 릴케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들과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그 외에도 그녀의
연인이었던 많은 사람들은 파멸하거나, 자살, 또는 평생을 그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도대체 그녀에게는 어떠한 마력이
있었던 걸까요?
모든 사랑은 영원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루 살로메의 삶은 유동적인 사랑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상대의
내면 깊은 곳에 파고 들어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루 살로메, 그녀는 남성을 파멸로 이끈 마력을 지닌 여인이었지만, 지적, 예술적,
창조적 영감의 원천으로 위대한 지성인들의 작품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