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시 노래〕
시쓰기 수업과 어린이시 노래
서현옥(합천 묘산초)
내게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어린이시 수업 기억이 있다. 지금부터 몇 년은 지난 이야기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다. 어린이문학을 공부하던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수업이 뭘까 고민하다가 어린이시쓰기를 공개수업 주제로 잡았다. 수업 계획은 간단했다. 어린이시 노래로 동기유발을 한 다음, 시쓰기 주제인 ‘놀이’를 한 경험을 말하고, 시를 쓰고, 발표해 보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활발하게 자신의 경험을 꺼내 이야기하고, 부모님과 함께 아이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수업은 나의 기대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한 교실에서 여러 교사가 줄줄이 공개수업을 하다 보니, 미리 확인해놓지 못한 컴퓨터 파일이 문제를 일으켜 시작부터 10분이나 늦게 되었다. 겨우 어린이시노래 파일을 틀게 되었지만 이미 나는 당황하였다. 발표하려는 아이들은 적었고, 참관하는 선생님과 학부모님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껏 웃는 표정으로 아이들의 경험을 끌어내고 쓴 것을 칭찬해주려고 애썼지만, 싸한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시쓰기 공개수업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아이들과 어린이시 노래를 신나게 잘 불렀는데, 공개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일부러 어린이시 노래를 부르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왜냐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우니까.
이런 나에게 어린이시 노래를 듣고 감상을 쓰는 일이 맡겨졌다. 최종득 선생님께서 나에게 잘 어울리는 곡으로 골라 주신 노래는 거제 제산초 6학년 김송아 학생이 쓴 ‘달팽이’였다. 노래를 들은 첫 느낌은 일단 기타 반주 소리가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고, 남자 어른의 목소리가 잔잔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시를 먼저 읽을 때와는 달리, 노래를 먼저 들으니 가사의 내용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 노래를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감상해 보기로 했다.
노래를 먼저 들려주면 아이들도 나처럼 가사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 악보부터 나누어주고 살펴보게 하였다. 아이들은 용케 악보에 ‘누구누구의 시’라고 적힌 것을 알아보았다.
“이거 시다, 시!”
신기한 듯 시라고 크게 외치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3월 한 달 동안 어린이시선집 1권씩 모두 읽었다. 교육과정에 나온 대로 암송하기 공부도 착실하게 했다. 내가 열심히 어린이시를 지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와 가까워 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뿌듯하였다.
아이들은 가사를 보더니, 달팽이가 큰 것 같다고 했다. ‘커다란 달팽이’란 말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잘 발견한 것 같다. 택배 받기 전에 달팽이를 밟으면 기분이 나쁠 것 같다고 한 아이도 있었다. 달팽이를 잡아서 괴롭히거나 다른 친구 놀리는데 쓰지 않고, 밟히지 않도록 벽에 붙여 준 것을 보니, 글쓴이는 참 착한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래 가사는 전문은 이렇다.
어제 저녁 택배 받으러 내려갔다 내가 밟을 뻔한 아주 커다란 달팽이 커다란 달팽이
바닥에 있어 밟힐까봐 벽에 붙여놓았던 그 달팽이 오늘 아침에 다시 보았다
내가 밟을 뻔한 커다란 커다란 달팽이
이번에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좋아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요. 아기 재울 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연인들이 데이트 할 때 좋은 느낌이에요. 기분이 좋아요.’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워낙 장난꾸러기 아이들이라 삐딱하게 부정적인 단어들을 이야기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아이들에게 정말로 이 노래가 좋았던 모양이다. 나는 아이들의 말 중에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노래는 우리 아이들이 예전에 절대로 들어볼 수 없는 곡일 것이다. 그런데도 들어본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 노래가 그만큼 익숙하고 대중적이고 편안한 느낌이라는 뜻이 아닐까? 딱 두 번을 들려주고 나서 따라 부르기를 해보았는데, 세상에! 따라 부르기가 가능하였다! 심지어 그렇게 한번 불러본 노래를 한동안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달팽이’ 어린이시 노래의 전파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익숙해지자 노래 가사가 더 마음에 와 닿아서 지은이의 입장에서 시를 살펴보게 되었다. 저녁에 택배를 받으러 내려갈 때는 아마 신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커다란 달팽이를 밟을 뻔해서 놀랬을 것이다. 만약 나였으면 여기서 어떻게 하였을까? 아마도 나는, 아휴, 놀래라, 하며 그냥 지나갔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시의 지은이는 다른 사람이 달팽이를 밟을 것을 염려하여 달팽이를 벽에다 붙여 준다. 작은 배려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어 지은이는 다시 그 달팽이를 만났다. 나는 이 부분이 좀 재미있었다. 밟을 뻔했지만 살려준 달팽이를 다시 만나서, 지은이와 달팽이는 서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하니 재미있었다. 가사를 하나씩 음미하며 읽어보니 꽤 잘 쓴 시 같다. 어린이시의 느낌을 살려서, 아이 목소리로 부르는 것도 녹음하면 좋을 것 같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어린이시를 지도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가끔씩 어린이시 노래를 아이들과 함께 불러보는 것이 좋겠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시 노래를 잘 받아들이니까 말이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시를 공부하는 좋은 기억을 많이 쌓으면, 예전의 부끄러웠던 시쓰기 공개수업의 기억이 점점 옅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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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15_거제제산6 김송이(박성훈)-달팽이-박성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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