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75) 소유, 얼마다 더 가져야 채워질까 - ③ 남기고, 버리고, 사라진다/ 시인, 한양대 교수 정재찬
소유, 얼마다 더 가져야 채워질까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loftyland/ 버리지 못한다 / 김행숙
③ 남기고, 버리고, 사라진다
불다 사그라들다 하는 미니멀리즘 열풍도 어찌 보면 이런
소유의 거품을 빼자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미니멀리즘이 각별히 주목받는 것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관련이 깊습니다.
집안에 있다가 내가 애지중지 구입한 가구나 집기에 짓눌려 죽기도 하고,
한평생 모아온 재산이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하며,
소유일변도로 살아온 무조건적 가치관에 반성이 일어난 것이죠.
기본적으로 미니멀리스트는 일상생활에 정말 꼭 필요한 아주 적은 물건만 소유하며 살자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아주 심플한 생활방식을 추구하자는 주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충동구매는 하지 않고, 하나를 사더라도 의미 있는 제품만 사려고 하죠.
하지만 시도해보신 분은 아시듯이 미니멀리즘은커녕 합리적 소비도 쉽지 않습니다.
옷 하나 고르려 해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물 보고, 온라인 가서 가격 비교하고,
가성비 따져가며 겨우 마음에 드는 디자인 찾아 구매를 결정하고 나면 사이즈가 없기 일쑤죠.
돈만 있다면 쉽기야 역시 과소비가 더 쉽습니다. 그쵸? 그
래서 또 방향을 바꿔보는 겁니다.
있는 것 리폼해서 재활용하고, 부피만 차지하고 쓰지도 않는,
쓸데없는 물건들로부터 처분하기로. 아,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네요.
버릴 것 투성이였는데 막상 버릴라치면 버릴 게 없는 게 살림 아닙니까.
버리지 못한다
김행숙
얘야, 구닥다리 살림살이
산뜻한 새것으로 바꿔보라지만
이야기가 담겨 있어 버릴 수가 없구나
네 돌날 백설기 찌던 시루와 채반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고
투박한 접시의 어설픈 요리들,
신접살림 꾸리며 사 모은 스테인리스 양동이
어찌 옛날을 쉽게 버리랴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립다
코흘리개 맨발의 가난한 시절
양지쪽 흙마당의 웃음소리
오늘이 끝인 양 마침표 찍고
내일부터 새 목숨 살아갈 순 없지
유유한 강물로 흐르면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가는 것
지난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
한 번 맺은 인연도 끊을 수 없는 거란다.
― 《멀고 먼 숲》(책만드는집, 2004)
구닥다리 살림살이건만, 하나하나 장만할 때마다, 손때 묻힐 때마다, 세월이 지날 때마다,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담겨 있고 정이 묻어서 버릴 게 없답니다.
물건도 인연입니다.
한 번 맺은 인연 어이 끊겠습니까.
생애란, 추억이란, 세월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감히 끊어 생각해볼 수조차 없는 것.
새 인생, 새 목숨, 새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이냐며, 물건을 버리는 건 지난날을 버리는 거라며
엄마들은 한사코 버릴 줄을 모릅니다.
아주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제가 책을 잘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그게 다를 바 없습니다.
읽은 책은 읽어서 못 버리겠고,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아서 못 버리겠다고 핑계 대며 살지만,
실은 그냥 지나온 시절 그대로 부여안고 버텨보려는 것뿐임을 제가 잘 압니다.
그러니 부모님 세대는 오죽하시겠습니까.
너무나 간난신고(艱難辛苦)한 세월을 살아오셔서 도무지 버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저 옛날 냄새 나는 것 좀 제발 버리라고,
새 거 사드릴 테니 버리라고 아무리 타박해보아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그분들이 막상 버리기 시작하면 그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입춘
배한봉
암 수술로 위를 떼어낸 어머니
집에 돌아오자 제일 먼저
세간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아팠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인가를 하나씩 버리는 것이 아파서
자꾸 하늘만 쳐다보았다.
파랗게, 새파랗게 깊기만 한 우물 같은 하늘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눈물도 못 흘리게 목구멍 틀어막는 짜증을 내뱉었다.
낡았으나 정갈한 세간이었다.
서러운 것들이 막막하게 하나씩 둘씩 떠나는 봄날이었다.
막막이라는 말이
얼마나 막막한 것인지, 그 막막한 깊이의 우물을 퍼 올리는 봄날이었다.
그 우물로 지은 밥 담던
방짜 놋그릇 한 벌을 내게 물려주던 봄날이었다.
열여덟 살 새색시가 품고 온 놋그릇이
쟁쟁 울던 봄날이었다.
― 《주남지의 새들》(천년의 시작, 2017)
참 막막하죠? 막막이란 말이 참 막막하죠? 산다는 게 이렇습니다.
버린다는 것이 곧 정리한다는 의미라면, 내 삶을 버리게 될 때 과연 나는 무엇을 정리해야 할까요?
무엇을 남겨주고 떠나야 할까요? 버린다는 일에는 이런 아픔이 있는 겁니다.
이 시의 어머니는 몸도 아프셨겠지만, 더 아프게 세간살이를 하나씩 버리고 계십니다.
버릴 때마다 하늘 한 번 쳐다보신 그 심경을 자식은 그저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그녀에게도 열여덟 새색시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그때 신접살림으로 품고 오신 방짜 놋그릇 한 벌을 이제는 자식이 물려받아,
그 그릇이 들려주는 어머니의 온갖 사연과 이야기를 고이고이 간직하게 될 겁니다.
놋그릇 볼 때마다, 놋그릇 서로 부딪칠 때마다,
자식의 가슴속에서도 쟁쟁 우는 소리 들려올 겁니다.
다 가지고 갈 것은 아니라지만, 다 가지고 가려고 욕심내서 못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소유한다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간절히 원했고, 기다렸고, 준비했고, 모으고 모아서, 혹은 능력을 키우고 키워서 내 것으로 만들고,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아끼고, 만지고, 다듬고, 품고, 익숙해져 왔던 것들입니다.
영원한 소유야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나와 아무 인연 없던 사람, 동식물, 사물을 잠시라도 소유한다는 것은,
그러기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을 주기도 했던 겁니다.
그만큼 아꼈기에 버리기 아까울 따름, 하지만 때가 옵니다.
상실을 당하기 전에, 타의로 빼앗기기 전에, 정리해야 할 때.
그걸 안다는 건 차라리 복일지 모릅니다.
그럴 때가 오기 전에, 차라리, 아무 이유 없이, 아무런 계기 없이,
창고의 빗장을 풀어 방출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봄볕 좋고 등 따습던 아무 날, 저는 그냥 연구실의 책들을 왕창 버렸습니다.
도와준 제자들에게 일당과 더불어 치맥을 대접하면서, 지갑만 열고 입은 닫았어야 했는데,
그중에 담배 못 끊는 친구에게 그만 잔소리를 한마디했습니다.
“그냥 끊게. 무슨 계기 기다리지 말고. 그건 대개 안 좋은 일이라네.”
미루다 보면 때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는 것. 그렇습니다.
물질은 소유할 수 있어도 어느 누구도 시간은 소유할 수 없습니다.
젊을 땐 시간은 많아도 돈이 없어 여행을 못하더니만,
늙어서는 돈은 많은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야 할 게 여행이라면 젊을 때들 가십시오.
돈은 모을 수 있지만 시간은 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돈은 내가 버릴 수도 있지만 시간은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치 있게 써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어느 누구도 독과점도 과소비도 꿈꾸지 못하는 시간만큼은 절대 함부로 버리거나 정리할 일이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을 끝까지 곱고 곧게 지키며 선하고 귀한 사연과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야 할 뿐인 것입니다.
지금 세대들 가운데에는 시간과 경험에 투자하여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참 다행입니다.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정재찬, 인플루엔셜,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10. 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75) 소유, 얼마다 더 가져야 채워질까 - ③ 남기고, 버리고, 사라진다/ 시인, 한양대 교수 정재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