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빠진 공 / 박정원 시창고
바람 빠진 공/ 박정원
책상 밑 저 구석에 처박힌 고무공 하나
빠져나간 아이들 웃음소리처럼
한 쪽이 푹 꺼져 있다
탄력 잃은 중력이 손을 놔버린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지 오래고
튀어 오르지 못한 꿈들은 퍽퍽하다
누구에게도 치달아 갈 수 없는 몸뚱이
한때 수많은 길을 만들고자
온몸을 내던지며 살았구나
그나마 바람이 빠지고 나니 폼이 영 말이 아니다
하기사 내 언제 누군가에게로
한가득 바람 불어넣고 팽팽히 몰입해 보았는가
어찌보면 저 바람 빠진 공이 비어있는 空인 것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공인 것을
저것도 분명 처음엔 둥글지 않았을 것을
나는 다시 찌그러진 공을 슬쩍 굴려본다
박정원 시인
충남 금산 출생.
1998년 《詩文學》을 통해 등단.
시집『세상은 아름답다』『그리워하는 사람은 외롭다』『내 마음속에 한 사람이』『고드름』등
‘함시’ 동인으로 활동 중
[출처] 바람 빠진 공 / 박정원|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