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한 조각
1988년 일기장을 보다가 발견한 사건이다. 1988년 8월 9일에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던 허채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와 아내가 서울성전 봉사자로 봉사하라는 부름이 대관장단으로부터 왔다고 했다. 예비 교육은 8월 16일 12:30-16:00까지 성전에서 있다고 하셨다.
그 전화를 받고 가슴이 쿵닥거림을 느꼈다. 주님의 인정을 받은 것 같은 기쁨이었다. 주님의 집에서의 봉사라니! 바깥 30도의 날씨도 지금은 시원하게 느껴졌다.
1988. 8.14. 내가 교회에 들어온 이래로 처음으로 화곡와드에서 기초복음반 공과를 진행하였다. 개종 이후로 계속해서 복음교리반 교사였는데 오늘 구도자가 있는 기초복음반에서 가르치니 다른 설렘이 있었다. 반원은 처음 참석한 황선숙 자매와 기존의 한서운 자매님 두 명이었다. 구도자에게 친절히 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대화하였다.
주일 모임 후에 서기들을 도와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박래정 스테이크 부장이 오셨다. 내게 잠깐 접견을 하자고 하였다. 그간에 나의 교회 부름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물으셨다. 인천 지역에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서울 스테이크에서 스테이크 보조서기, 서기, 집행서기, 고등평의원,
서울서스테이크에서 고등평의원, 개봉지부장, 개봉와드감독, 신정지부장
인천스테이크에서 고등평의원
강서스테이크에서 신정지부장단 제1보좌, 화곡와드 감독단 제1보좌.
스테이크부장님은 내게 강서스테이크 집행서기 겸 고등평의원으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주시겠다고 하였다. 다음 주 2시 30분 스테이크 신권집행위원회 모임부터 참석하라고 했다.
접견을 마친 후 아내가 있는 이도환 형제님 댁으로 갔다. 점심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
아올 때 김재숙 자매님이 다운이 주라며 민아가 깨끗하게 입었던 옷가지와 예쁜 검정구두도 주셨다.
아프던 아내의 건강이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8. 26. 금. 오전 10시 경에 누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시골 계신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여 진주에 있는 제일병원 360호실에 입원해 계시다고 했다. 일과를 마치고 아내에게서 10만원을 받아 나 혼자 5시반 고속버스를 타고 진주로 갔다.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병원에 들어서니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계셨다. 기관지천식으로 인해 평생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밤새 새어머니와 함께 지내다가 다음날 아버지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보고 오후 3시 고속버스로 서울로 왔다. 도착하니 밤 9시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여러 생각을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새어머니는? 연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창밖 하늘을 보았다. 그 하늘에는 우리 모든 가족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박혀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다가 갈 수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