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문장수업 - (408) 시 쓰기 상상 테마 3 - ③ 부품 또는 도구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3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toll0305/ 23. 상상테마22 - 부품 또는 도구로 상상하며 시 쓰기
③ 부품 또는 도구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작고 단순한 사물이나 현상으로 상상하여 시 쓰기’ 장이 있음에도
‘부품 또는 도구로 상상하여 시 쓰기’를 추가한 이유는 그만큼 크고 총체적인 사물이나 현상보다
작고 단순한 사물이나 현상이 훨씬 더 매력적인 모티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부품이나 도구로 상상을 적용할 땐 그 소재가 개별자의 정서적 맥락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상상으로 비유하거나 상징화시켜서 교묘하게 맞물리게 해야 한다.
망치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다.
망치를 소재로 설정했다면 피할 수 없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과 맞물리게 해야 한다.
목요일마다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존재를 만난다면 제목으로는 ‘목요일의 망치’가 좋을 것이다.
하나 더 오븐을 예로 들겠다.
봄에 대한 시가 너무나 식상해서 상상을 적용해 ‘오븐+봄’을 만나게 하여
‘햇살 오븐’이란 제목을 짓고 시를 써도 좋다.
그렇게 일상 속 부품이나 도구가 상상을 통해 화자나 시적 주체의 간절한 상태와 맞물리게 되면
나만의 좋은 시를 무궁무진하게 쓸 수 있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어머니의 저항(Ω)
건전지 갈아 끼우듯 여자를 바꾸던 아버지가
안방에 들어서면 스파크가 튀는 밤이다
두꺼비집에 두꺼비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저항 한 개를 추가하며
꼬마전구처럼 소심하게 깜빡거리고만 있다
아버진 뒤늦게 어머니와 접속을 시도하지만
어머닌 차단기 내린 지 오래
전압이 센 할아버질 수발한 이력을 어머니가 토해낼 때마다
양과 음이 쪽쪽 빨아대는 전류의 본능만 탓하는 아버지
어머닌 한이 충전된 배터리를 꺼내
아버지 몸속에서 헤엄쳐 다니는 여자들을 지져댄다
눈이 뒤집힌 여자들이 하나둘 꽁무니를 뺄 때
아버진 수명 다한 필라멘트처럼 퍽 맥이 풀린다
과부하가 걸리는지
면상에 손가락까지 찔러대는 어머니
오긴 왜 와? 여기가 어디라고!
급기야 하늘과 지상 사이에 퓨즈가 나가는 소리
이승과 접속이 끊기는 소리 살벌하게 튄다
어휴, 난 어머니가 차려준 전기만 먹고 살아야지
눈물이 마르지 않는 희한한 발전기를 몸 안에 단 어머니
다 타버린 향불 앞에 독주 한잔 따라 올리며
40년이 넘은 울음 센서 스위치를 누른다
누전(漏電)인지 누전(淚田)……
제삿밥도 못 먹은 방전된 아버지, 내년에도 오실라요?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문학세계사, 2010.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이 시는 비윤리적인 아버지 때문에 고된 삶을 살고 있는 화자
어머니의 존재성을 재미있게 형상화시키기 위해 쓴 작품이다.
이 시를 쓸 때 필자는 두 가지 상상을 적용했다.
첫째, 화자와 시를 쓰는 필자를 분리해 시 속 아버지와 어머니를 전혀 다른 인물로 설정했다.
필자의 아버지는 살아계신 분이다.
그리고 이 시에 나온 것처럼 비윤리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상상으로 화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탄생시킨 것이다.
둘째, 저항 심리를 보이고 있는 어머니를 대변하기 위해 전기적 현상을 상상으로 끌어와 적용시켰다.
특히 전기 부품에 해당하는 ‘Ω’과 어머니의 저항(抵抗)을 동음이의적으로 활용해
유쾌한 상상력을 활성화시켰다.
이 시의 장점은 당연히 두 번째 상상에 해당하는 전기적 현상과 부품적 요소를 재미있게 활용한 점이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저항(Ω)을 중심으로 한 전기적 현상과 제사 행위이다.
저항은 위에서 설명한 바대로 어머니가 갖는 저항 의식을 대변한다.
그리고 제사 행위는 어머니의 구체적인 심리적 맥락을 암시한다.
바람기 잘 날 없던 아버지의 외도는 “스파크가 튀는 밤”의 제사를 연출했고,
어머니가 “한이 충전된 배터리를 꺼내/ 아버지 몸속에서 헤엄쳐 다니는 여자들을 지져”대게 만들었다.
일평생 외로움에 시달렸을 어머니의 숨은 ‘분노’ 내지는 ‘한’을 간접적으로 풀어내는데
전기적 현상과 제사 의식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쓰기 위해 메모한 단어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저항(Ω), 건전지 갈아 끼우다, 스파크, 두꺼비집, 꼬마전구, 접속, 차단기, 전압, 양과 음, 전류, 한을 충전하다, 배터리, 지져대다. 수명 다한 필라멘트, 맥이 풀리다, 과부하, 하늘과 지상 사이에 퓨즈, 희한한 발전기, 울음 센서, 스위치, 누전(漏電), 누전(淚田).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의 상상적 체험은 어머니의 저항 심리를 재미있게 형상화하는 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위에서 제시한 대로 일부러 시 속 아버지가 여러 명의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게 만들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병든 시아버지를 어머니가 수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저항 심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과부하가 걸리”는 상황,
“하늘과 지상 사이에 퓨즈가 나가는”, “이승과 접속이 끊기는” 상황 등을 착안했다.
그리고 각종 전기 용어를 활용해 해학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의 기재는 생략함-옮긴이)
· 신성률의 ‘파이프’ (2018년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작)
· 임은주의 ‘경운기를 부검하다’ (201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조영란의 ‘용수철의 힘’ (『당신을 필사해도 되겠습니까』, 시인동네, 2021)
<직접 써 보세요>
* 여기서 제시하는 단어를 바탕으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시를 한 편 창작하시오.
- 제시 단어: 망치, 엔진, 프레스, 핸들, 해머, 오븐, 도마, 분쇄기, 파쇄기, 콘센트, 차단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식칼, 도마 등
(이 밖에 나만의 시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면 다른 것을 바탕으로 써도 된다. 꼭 이 단어를 제목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 속에 주로 활용되는 사물이나 형상을 가지고 창작을 하면 된다.
그리고 일상 속 도구가 나와 당신의 존재성을, 나와 당신의 관계성을 훨씬 더 잘 반영한다,
라는 생각으로 상상을 펼쳐야 한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
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1.13. 화룡이) >
[출처] 고급문장수업 - (408) 시 쓰기 상상 테마 3 - ③ 부품 또는 도구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