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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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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숙 시인의 방 스크랩 2012발표작---전숙
전숙 추천 0 조회 101 14.08.24 14: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5.18 제32주년 추모시

주먹밥의 전설    /전숙

풀꽃아 풀꽃아 날개가 너무 작아 눈물겨운 풀꽃아

모진 바람에도 쉬임 없이 쉬임 없이 피어나라

된바람에 작은 날개가 속절없이 꺾이거든

그 몸짓 그대로, 그 기원 그대로 마른꽃이 되거라

역사의 찻잔에 띄워지는 날

고흔 눈물로 아리땁게 아리땁게 돌아오리니


풀꽃들의 눈물 눈물로 주먹밥을 뭉치면

얼마나 단단한 반석이 되는지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지

얼마나 큰 기도가 되는지

옛이야기처럼 전설이 된 주먹밥이 있습니다


전설의 나라에는 짓밟힌 꽃들끼리 서로서로

우리 새끼요 우리 어버이요 우리 곳간이어서

모두가 한 식구인 대동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어머니가 눈물로 쥐어준 주먹밥의 힘으로 

자식들은 목숨으로 피투성이 추가 되어

독재의 강철벽을 두드리고 두드려서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제 빛깔과 제 향기로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5.18 민주의 종을 울렸습니다


주먹밥처럼 자유의 번제물이 된다는 것은

꽃잎 꽃잎마다 피 끓는 심장과 고동치는 혈맥을

생짜로 끊어내는 일이어서 

어머니의 노심초사 심장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천둥 같은 울음으로

서러운 꽃잎 한 장을 하늘 깊이 묻었습니다


빈 가슴에 뜨거운 소낙비가 내리는 날이면

참담하게 시간이 멈추어버린 마른꽃처럼

아픈 꽃때로 활짝 되돌아온 꽃차 같은 상처에서

또 다른 오월인 재스민이 목마르게 피어납니다


붉디붉은 꽃물에서 오월을, 재스민을 안아 올리며

피 끓는 심장에서 색색이 피어나는 꽃이 자유라고

고동치는 혈맥으로 향기를 지켜내는 꽃이 민주라고

그날처럼 작은 주먹을 울컥 쥐어보는 전설이 있습니다.

 

*******************************

 

어미의 마음으로

                     전숙

                         

예수께서 물으시네

사백아흔 번을 용서해보았느냐

믿음 깊은 바람들은 고개를 떨구는데

‘예’하고 박하향처럼 환하게 대답하는 꽃이 있네

세상의 모든 어미네

하나님이 하와에게 어미를 명하실 때

하와는 출산의 고통을 씻어낼 행복한 선물을 받았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이었네

어미는 전설처럼 사랑이 되었네

세상이 악으로 고꾸라질 때마다

세상을 구원한 것은 어미의 사랑이었네


꽃들의 심중에 열려있는 사랑주머니에

어미의 사랑이 그윽하게 채워져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네

이제,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교만한

판단의 손가락을 홀연히 거두고

어미가 되어

세상의 모든 미움들에게 사랑의 선전포고를 하네


돌아온 탕자를 끌어안는 아비의 애틋함으로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의 간절함으로

왼쪽 뺨까지 마저 내어주는 친구의 다정함으로

길 잃은 양들이, 탕아 연어 떼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으로 어미가 되어 쳐들어가네


우리의 대포는 사랑의 대포

우리의 수소폭탄은 용서의 폭탄

우리의 미사일은 화해의 미사일

우리의 작전은 눈물 젖은 기다림


닫히지 않는 천국문처럼

실뿌리까지 사립을 서성이는 어미의 사랑밭으로

캄캄한 흑암에서 방황하던 꽃들이

태초의 언약처럼 아리땁게 아리땁게 돌아오네.


*나주교회 음악회 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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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를 부탁해

                            전숙

고목 한 그루 타워아파트 경비실에 들어섭니다

가쁜 숨을 한동안 몰아쉬더니

“우리 아덜 집 좀 찾아주소.”

진땀에 젖은 쪽지가 어룽어룽해서

경비는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전화를 겁니다


“댁네 고목이 한 보따리 들고 오셨소.”

“경비실에 맡겨두라고 하세요.”


갑자기 내린 무서리에

푸르게 사운거리던 것들의 가슴에 살얼음이 듭니다

돌아서는 고목의 다리가 휘청거리자

갸우뚱 접혀있던 헌 의자가 잽싸게 몸을 내밉니다

햇살과 바람을 통째로 삼킨 밭두렁 같은 눈이 캄캄해집니다

쥐어짠 듯 흘러내린 수액 한 줄기에 경비실바닥이 금세 흥건합니다


뭉클해진 경비가

“고목이 꺾였으니 보따리나 찾아가쇼.”

“아저씨가 깡그리 가지세요.”


돌연 미아가 된 보따리를

잎새 홀랑 털어버린 나목이 앙상한 가슴으로 안아줍니다

대리석바닥에서 뒹굴던 낙엽이 보따리 속내를 들여다봅니다


볶은 깨 반 되, 두 홉 들이 참기름 두 병,

고춧가루 닷 근, 찹쌀 서 되, 말린 토란대…….

보따리 맨 아래층에는 농협봉투에

빳빳한 만 원짜리가 스무 장 들어있습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미나리꽝에서 품 팔아 번 돈입니다.


추신: 달무리가 생기는 것은 어딘가 가엾은 영혼이 울먹거릴 때라고 합니다.

오늘밤 달무리는 보따리만큼 크고 무겁게 둥글겠습니다.

 

 

동행

                       전숙


아프리카 나미비아사막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새둥지가 있다고 합니다

무리베짜는새는 수 백 마리가 힘을 합쳐

나무를 뒤덮을 만큼의 큰 둥지를 짓는답니다

그 둥지는,

길을 잃은 나그네의 길라잡이가 되기도 하고

인해전술처럼 밀려오는 땡볕을 막아주는 그늘이 되기도 하고

생활보호대상자 새들에게는 둥지를 빌려주기도 한다지요


새들은 새끼들을 위해

나뭇가지나 마른 풀잎을 물어다가

제 눈물만큼의 둥지를 지을 뿐이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길이 되고 그늘이 되고 집이 되는 것이지요

어느 작은 별이 애면글면 빛나는 모습만 보아도

바다가 사리 때처럼 가슴 가득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한 생을 둥지를 짓는 데 바치는 저 작은 새가

이웃을 보듬는 사랑인 것처럼

풀꽃보다 작은 우리도

단지 한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실의에 빠진 누군가에게 윙크를 보내는 별빛이지요.


*리토피아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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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손

                              전숙


사막을 보고 있다

만지면 고운 모래가 묻어날 것 같은

고요가 고요를 말리는 건조증이 아직 진행 중이다

저 사막에도 용트림하듯 거센 강물줄기 흘렀었다

회초리를 들어 내 장딴지를 후려치던

그 강단진 패기는 어디쯤에서 말라버렸을까

한 장 한 장 생을 굽듯이 아슬하게 구워낸

내 대학등록금을 은행창구에 들이밀 때

아버지의 손은 사바나로 변하고 있었으리라


나는 회초리 든 아버지의 푸른 손만 기억하였다

모래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내가 편히 쉴 푸른초장인 줄 알았다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혹독한 시절을

무소의 뿔처럼 홀로 지고 걸어간

아버지의 강과 샘은 하얗게 말라붙어


눈감고 만지면 아버지의 손은

죽어 천년을 산다는 사막의 나무

한때 그 몸에 푸른 이파리 살랑거렸던 기억까지

깡마르게 지워낸 호양나무의 수피처럼

갈기갈기 거친 호흡으로 덮여 있었다.




모진

                        전숙


 그랑께 금동아짐이 새끼들 셋을 뺏기고 쫓겨난 것이 한 스무 해는 지났을 것이구만 잉. 아짐이 하도 궁상이어서 동네서도 암도 모른 척 하고 살았제. 말이 한동네지 아짐하고 말 섞어 본 것이 언제 적 일인지 생각도 안 난당께. 먼발치서 내다보면 동네쓰레기는 무슨 고물상도 아니고 다 물어다가 쟁여쌌드만.


 그 세월을 그 흔한 옥장판 한 장 없이 냉골로 건너왔다는 디.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들은 모다 얻어온 시레기죽이었다는구먼. 그렇게 덜컥 소한날 아침에 아짐이 죽었어도 한 보름은 암도 몰랐제. 소한 전날 장날에 아짐본 것이 마지막이었당께 그렇게 짐작해보는 것이제. 남정네들이 수건을 물고 콘테이너에 들어가서 글씨, 옷을 벗겨봉께 항꾼에 입은 옷이 열다섯 벌이었다는디  옷마다 주머니엔 돈다발이 들었드리야. 얼마나 오래 묵혔는지 돈다발에 곰팡이가 하얗게 주저앉았드라만.


워메, 두고 온 새끼들 줄라고 그랬으까 잉

아이고, 

모진.


한 뼘 자란만큼

                                     전숙


내가 한 뼘 자란만큼 한 뼘 작아진

엄마는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얼굴에 자글자글 패랭이꽃이 피었습니다


내 눈에는 패랭이꽃 꽃송이마다

숭얼숭얼 이슬 같은 눈물이 어룽거립니다


할 수만 있다면 무릎에 맷돌이라도 달고

다시 한 뼘 줄어들고 싶습니다


내 겉몸이 한뼘두뼘 자라도

속몸은 여전히 철부지임을 아는 까닭입니다

엄마 겉몸이 한뼘두뼘 줄어들어도

속몸은 더욱 깊어짐을 아는 까닭입니다


내가 한 뼘 자란만큼 한 뼘 작아진

엄마는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얼굴에 자글자글 패랭이꽃이 피었습니다.


*문학들2012

 

귀향

                             전숙


1.안개 속으로

 무진댁의 고향이 무진이란 걸 봄 안개의 아득한 품에 잠들어있는 그녀를 보고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치매를 앓던 무진댁은 자식들이 팔아버린 논배미를 에돌았다. 눈치 보듯 슬금슬금 피를 뽑고 나락을 쓰다듬었다. 무진댁을 돌보던 사촌이 대처에 있는 아들에게 통문을 하고 그녀는 요양원을 거쳐서 딸네로 갔다. 딸네서 백 일째 되는 날 무진댁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 이레 후에 순찰을 돌던 경찰이 안개 속으로 까무룩 스러져가던 무진댁의 진달래 빛 스웨터를 알아보았다.


2.낙화

 길을 벗어난 자동차바퀴 같은 그녀를 젖은 논바닥이 안쓰럽게 물고 있었다. 갈기를 세운 꽃샘바람에 실낱같은 숨결은 살얼음이 바삭거렸다. 무진댁의 몸을 물고 있던 논은 볏짚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그녀는 생의 담벼락 아래로 능소화처럼 통꽃 째 툭 떨어졌다.


3.귀향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삭아가는 볏짚을 한가슴 따뜻하게 안은 채로 질척거리는 생의 습기를 거두어들였다. 볏짚을 들어내자 논바닥에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무진댁의 얼굴과 가슴과 무릎이 음각으로 새겨져있었다. 귀향한 그녀의 몸을 타고난 지형뿐만 아니라 그녀의 퇴행된 시간들이 무채색으로 덧칠한 활처럼 휜 무릎이며 굵어진 손가락매듭까지 한 장의 항공지도처럼 논바닥이 기억하고 있었다.


*열린시학2012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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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꽃이다

                             전숙


갓 피어난 장미꽃은 보름달이다


닳고 닳은 세월에 굴뚝까지 절뚝거리는 굴뚝새도

귀향길 교통사고에 아랫도리 이지러진 청노루도

느닷없는 돌팍길에 벌러덩 넘어진 신용불량 이팝나무도

낭떠러지처럼 하늘이 캄캄한 치매할미꽃도

그리고 몽골리즘의 웃음바다 명아주도


우리 모두 꽃이다

우리 모두 꽃이다


그믐달처럼 

초승달처럼 


아리따운 영혼이


아픈 그늘에 가려져있을 뿐이다

아픈 그늘에 가려져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 꽃이다.


*행복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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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탁

                                     전숙


뭣이라고라, 전라도에서 제일가는 음석이 홍탁이라고라

푹 삭은 홍어처럼 알싸한 설움이

타는 목구멍을 매콤하게 핥고 지나가면

막걸리처럼 부드러운 강물이

저 속없이 허허거리는 노을처럼 붉시글허게 어루만져준다고라


이녁 설움들 다 합쳐서 홍탁에 몸을 맡기면

영산강 흘러가듯이

땀띠 꼭꼭 백인 논고랑밭고랑 고상도 굽이굽이 흘러가고

죄 없는 땅만 파먹다가

허구헌 날 중매쟁이 뜬구름에게 속기만 허던 울분도 자분자분 흘러가고

저그 유채꽃 같던 옛날 그 노랑댕기 가시나도

꽃잎처럼 흘러가고 그런다고라

왔따, 쓰긴 쓰겄소

다 그렇게 부드럽게 흘러가불면

누가 밤마다 소피 마려운 강아지맹키로 애면글면 뒤채이겄소 잉

염통에 미운 메주 한 뎅이 매단 것 같이 답답하겄소 잉


평생 손톱 세울 일도 삿대질할 일도 없던

우리 엄니 속이 어찌 그리 부드러운가 했더니

알고봉께 홍어애처럼 푹 삭아서 그랬구만이라

홍탁이 씹을 것도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게

바로 우리 엄니 팔십평생 내장 삭은 덕 아닌가베


아니여라, 그 땡볕에도 여직 덜 삭은 가슴이

요러쿠럼 구수하게 씹히는디

우리 엄니도 가끔은 설움에 뼈가 있었던지 애문 내 궁뎅이

부지깽이질 몇 번 당했구만이라.




해바라기의 시간

                                    전숙

해바라기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뜨거운 일인지


불이 되어 제 몸을 태우고

불이 되어 제 이름을 태우고

불이 되어 제 영혼을 태워서


꽃이 된 사랑이여


호수에 얼비친 사랑을 한 생의 숙제로 껴안았을 그녀는

파닥거리는 비늘에 반사된 실낱의 희망으로

수수 억 가닥의 제 유전자 암호를 풀어내어

수수 억년 동안 열사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저와 다른 무늬에 찔리고

저와 다른 식성에 찔리고

저와 다른 관습에 찔려서


고운 얼굴은 죽은깨투성이가 되고

이마엔 석줄 골 깊은 주름이 파이고

능지처참의 고통으로 천수관음처럼 천 개의 사랑이 분화되어

비로소 천의무봉의 사랑을 완성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대 바라보며, 닮아가는 시간의 아픔이여


찔리고 찔려서

찔리고 찔려서


해바라기처럼 온 우주로 번져가는 피맺힌 상처에서

사랑은 뜨겁게 발아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옹다옹 으르렁거렸을

평생웬수들의 심장에 죽죽 그어진

마름모꼴 흉터마다 사랑의 씨앗이 여물고 있듯이.

 

*광주문학2012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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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의 농심이여, 우리 영산강이 되어 흘러가자/전숙

-노안농민회 창립20주년 축하시

삼복의 태양을 어르고 얼러서

저를 태우는 열화를 거름삼아

꽃을 피우고 향기를 짓는 자미나무처럼

‘너다, 나다’ 울타리 친 마음밭에 꽃을 피우자

우리 흘러가는 소리에 어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던

어린 샛강이었을 때처럼

그렇게 낮은 소리로, 그렇게 맑은 영혼으로

우리, 영산강이 되어 흘러가자


목구멍으로 넘기는 뭇 먹거리가 겨레의 역사다

민족의 심장인 농업이 굳건해야

나라의 걸음걸음이 지구촌 꼭두머리로 옹골차리니

거센 폭풍우에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겨레의 밥상을 위해, 누리 누리의 목숨을 위해

가슴엔 빈 둥지요 등허리에는 희생의 멍에뿐일지라도

이제 우리 농심은 해오름으로 다시 깨어나서

겨레의 피와 살을 지켜낼

오체투지의 용오름으로 솟아오르리니


금수강산 누리누리 쌀밥 먹는 한 가마솥 우리네 식구들

높고 낮은 어깨 나란히 겯고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눈물을 씻어주는 강물이 되자 

그래서 우리 겨레 아무도 꺾이지 않고

언젠가 고봉쌀밥으로 환생할 자미꽃처럼 

아름다운 동반이 되는 그날까지

아프지도 말고 비틀거리지도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굽이가 있으면 굽이굽이 휘어 돌고

벼랑이 있으면 날개를 펼쳐 무지개를 띄우자


모든 풍경도 모든 바람도 모든 상처도

더욱 깊어지고 더욱 넓어진

고향의 강폭에서 싸목싸목 쉬어 갈 수 있도록

노안의 농심이여, 우리 모두

겨레의 어머니강, 영산강이 되어

허기진 명줄들 꿀꺽꿀꺽 젖먹이며

희망의 바다까지 남실남실 흘러 흘러서 가자.

 


**********************

 

오천년의 밥상이 농민의 눈물뿐이랴

-2012 나주농민대회에 부쳐

                                      전숙

우리 어머니들의 행주치마처럼

눈물로 어룽진 논두렁밭두렁 핏줄삼아

오천 년 민족의 밥상을 차려낸

이 땅의 농업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


가슴은 빈 가슴이요 등허리에는 희생의 멍에뿐일지라도

이제 농심은 피눈물로 다시 깨어나서

겨레의 피와 살을 지켜낼 오체투지의 솟대로 솟아오르리라


그대 농부여, 오늘의 절망이 내일의 희망이 되기까지

옹이뿐인 소나무가 선산 지키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프지도 말고 비틀거리지도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산이 있으면 산을 넘고 강이 있으면 강을 건너라

목구멍으로 넘기는 뭇 먹거리가 겨레의 역사다


꽃샘바람이 아무리 매서워도

뿌리 깊은 나무의 꽃눈이 얼어 죽으랴

모진 가뭄에도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 법

청보리밭 철없는 바람소리에도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웅숭깊은 격언처럼 들려오는데

귀를 틀어막고 못 알아듣는 자, 그 누구인가


일제에 의해 날조된 역사 고려장처럼

또 누구에 의해 민족의 명줄인 농업이

이토록 참담하게 고려장 당하는 것이냐

누대의 터전인 금수강산 온 누리에

백의민족의 웃음 같은

희디흰 벼꽃이 다시 피어나지 못하면

오천년밥상의 무성한 뿌리도 무참하게 말라죽는다


두 다리가 없으면 백척간두의 벼랑에서 어찌 당당히 버티랴

민족의 다리인 농업이 굳건해야

나라의 걸음걸음이 지구촌 꼭두머리로 옹골차리니

간난신고의 시절에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겨레의 밥상을 위해, 누리 누리의 목숨을 위해

우리 농민은 일어나고 또 일어나리라.

**************

 

환어*의 춤

                                                        전숙


 백내장처럼 무명씨가 박혀있는 물고기의 젖은 눈을 훔쳐보고야 말았다. 저 눈으로 길을 찾기 위해 얼마나 헤맸던 것일까. 너덜거리고 몽그라진 먹구름이 서러운 가락을 내며 몰려들었다. 뇌성을 후려치던 지느러미에서 후드득 실뿌리가 내렸다. 그날 밤 물고기는 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설움의 뿌리는 구멍을 숭숭 뚫어 무게를 덜어내고 어린 꽃대를 밀어 올렸다. 물고기는 수면의 뜨거운 이마를 짚어보고 꽃이 얼마나 여물었는지 짐작했다.


 목울대가 미어지도록 울던 안개 때문에 무장무장 가슴이 답답해지던 호수가 봉그슴한 앞섶을 풀어헤치자, 잘 익은 꽃망울이 물고기 몸에 들었다. 수캐구리들의 바람주머니가 일제히 음을 고르고 매미들의 날개가 달아올랐다. 불꽃놀이처럼 펑펑펑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 세상의 모든 귀들이 호수 쪽으로 길을 내어 들리지 않는 노래를 듣고 홍련은 보이지 않는 등을 켰다.


 눈앞이 캄캄하도록 막막한 월식을 한바탕 앓고 나자 물고기는 울컥울컥 비늘을 쏟아냈다. 그리고 아직 비늘빛 우련한 흔적에서 두드러기처럼 푸른 깃털이 마구 돋아났다.


 새가 된 물고기는 날개를 들썩거리더니 깨끼춤을 펼쳤다. 마디마디 옹친 매듭을 어르듯 풀어내는 춤사위에 달빛이 돌아오고, 고요하던 호수도 늘어진 소맷귀를 휘어잡아서 하늘에 흩뿌렸다. 날개와 안개와 달빛이 실타래처럼 감기며 둥둥둥 원무를 추었다. 설핏 졸던 별들도 어느덧 퐁퐁퐁 춤판에 끼어들고 있었다.


*鰥魚: 물고기가 새가 되다







잔치

                                         전숙                      


 난장판이었다. 누군가의 생이 폭발한 파편들을 구둣발로 밀며 항진을 계속하던 후각이 일순 미간을 모았다. 간밤 술기운이 덜 풀린 눈이 게슴츠레 열렸다.


 텔레비전케이블에 목이 감긴 주검을 구더기들이 해체하고 있었다. 그가 걸어온 길들이 얼마나 너덜너덜 했었는지 말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 헤진 잇몸뿐인 구두가 반쯤 벗겨진 채 밤처럼 어두워진 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해체라고 해봐야 섬이 세상에서 주워 먹은 설움을 약간의 노임만 뜯어먹고 배설하는 단순작업이었다. 아무리 단순해도 일은 일인지라 술과 안주가 필요했다. 담배 한 개비 타오를 휴식도 필요했다. 몇 가지 필요조건만 갖추면 노동은 금세 잔치로 변할 터였다.


 잔치는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아직 알콜기가 남아있는 빈 소주병과 쇠파리가 뒹구는 음료수캔과 하얗게 곰팡이가 내려앉은 단팥빵과 향처럼 피어오르던 담뱃재가 사이키조명처럼 빈 집의 거실공기를 뿌옇게 흔들고 있었다.


 모두들 싫어하는 혐오작업인지라 독점계약을 한 구더기업체는 제법 재미가 쏠쏠하였다. 중요장기가 다 모인 상체가 아무래도 인기여서 모두들 섬의 상반신으로 몰려 잔치를 벌이는 중이었다.


 아직 아무도 개봉하지 않은 바지주머니엔 만 원짜리 두 장과 버스카드 한 장이 재개발축의금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2012동산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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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전숙


서울 사는 딸네 갔더니

잘난 우리 사위가 속곳 바람으로

안방 건넌방 거실을 하 싸돌아다니기에

보는 장모 눈이 남세스러워서 슬그머니 빠져 나왔제

밤늦은 시각에 만리타향에서 갈 데가 있남

아파트놀이터 서성거리다가 아들네로 길을 잡았어

택시에서 내렸더니 저녁을 놓친 뱃구레가 울기 시작하데

며늘애 귀찮게 않으려고

편의점에서 햇반 한 개 사들고 아들네로 들어갔어

화들짝한 며늘애에게 어여 자라고 손짓하고

렌지에 햇반을 돌려

한 숟가락 목구멍으로 퍼 넣는디

느닷없는 비가 오데

웬 굵은 장대비가 어찌나 펑펑 쏟아지는지

이녁 가슴이 햇반 속에 퐁당 빠져버렸당께

가슴이 네 발로 허우적거리는디

암만 혀도 건져낼 수가 있어야제

잡아채고 잡아채도

미꾸라지맹키로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사는 일이 꼭

고향 개울에 이끼 낀 몽돌 위를 걷는 것 같드랑께.



*2012문장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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