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 박제영 시창고
전봇대 / 박제영
벽과 벽, 골목과 골목, 허공과 허공, 막다른 사이에는 언제나 그가 서있다
그는 빛과 예언이며 또한 어둠과 상처였으니, 모든 기도는 그를 통해 전송되었지만 그로 인해 혼선도 빚어졌다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하였지만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었지만 아이의 가출을 부추기기도 했다
취한 자나 떠돌이 개가 오줌을 갈길 수도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막다른 곳에서 막다른 자들에게 신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출처] 전봇대 / 박제영|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