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38) 시 쓰기 상상 테마 4 - ① 동물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4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toll0305/ 31. 상상테마30 - 동물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① 동물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동물 이미지로 상상을 적용할 땐 A동물에게 A동물 이미지를 입히는 게 아니라
A동물에게 전혀 다른 성질의 이미지를 입히거나
다른 존재에게 A동물 이미지가 녹아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게 고양이 이미지를 다시 입히면 재미도 없고 선선하지도 않다.
그런데 상상을 통해 고양이에게 전혀 다른 존재의 이미지를 입히면 새로운 시가 된다.
‘내 고양이는 한 권의 책이다’ ‘몸 안에 발톱 같은 문장이 넘쳐난다’
‘고양이가 내 옆에 앉아서 불면을 할퀸다’ ‘고양이라는 결말 속엔 외롭지 않다는 문장이 웅크리고 있다’라는 식으로
고양이에게 책 이미지를 입힐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존재에게 동물 이미지가 녹아있게 하는 방법도 좋다.
예를 들어 ‘고독은 바깥을 향한 발톱이 없다’ ‘적막의 심장은 고요할 때조차 세차게 뛴다’
‘어둠이 깔리면 덩굴줄기 속에서 뱀들이 쏟아져 나온다’
‘동물성을 먹고 쑥쑥 자라는 콘크리트’ ‘의자가 낙법을 품고 있다’ 등처럼
상상이 가미된 구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듯 동물 이미지는 상상을 통해 무한대로 확장이 가능하다.
그러니 동물 이미지를 나타내는 단어를 평소에 많이 메모해 놓았다가
이질적인 것과 접목하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
동물 이미지와 관련된 단어만 가지고도 상상을 적용할 수 있다.
번식, 자생, 야생, 야만, 동물성, 천적, 낙태, 포식, 피식, 송곳니, 반려, 회귀, 야행성 등의 단어가 있을 경우,
그 단어를 동물이 아닌 존재와 결합시켜서 상상을 확장할 수 있다.
(예시, 슬픔이 번식한다. 고독이 자생한다. 나의 외로움은 야생이다. 일요일은 야만이다. 등)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출처가 비슷한 광기들이 모여
하나의 혁명을 구성하려 할 때
거대한 짐승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참는다
광기는 그저 혼자일 때만 완전하고 안전하다
그러니 자정 무렵 허름한 주점을
혼자 가는 일 따윈 피해야 한다
미치지 않기 위해 포즈를 취하며
병을 깨고 달려드는 초보들이 있으니
방심하면 멱살을 잡고 전부를 그을지 모르니
환절기 땐 특히 기분을 재구성하며
먹구름을 견뎌야 한다
혼자, 아주 철저히 혼자 1인용 의자에 앉아 독주를 마실 때도
벌컥벌컥 튀어나오려는 무책임한 선언을 삼켜야 한다
이것은 흔해 빠진 자격증이나 면허증 같은 것
우리는 각자 테이블에만
신경 쓰는 옹졸한 계급을 획득한다
그런데 저기, 피도 철철 흘리지 않고
광기 한 마리를 만지작거리다
마흔을 넘긴 사내가 운다
퇴직자도 미취업자도 이혼남도 아니다
단지 마흔에 들어섰을 뿐이다
감자처럼 웅크린 자세로부터
소리 없이 비굴이 빠져나온다
이것이 진짜 기형이다 광기의 완성이다
―「광기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광기」, 『서민생존헌장』, 천년의시작, 2015.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광기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광기」는 광기를 한 마리의 살아있는 짐승으로 보고 창작한 시다.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은 저마다 몸속에 광기를 가지고 산다.
그 광기를 다스리면서 사느냐, 광기를 조절하면서 사느냐,
광기가 밖으로 나와서 활개 치게 방치하느냐 등 각자만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세 가지 경우 중에서 광기를 조절하면서 사는 중년들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중년들은 대체로 자신이 광기에 잡아먹히지 않게 하려고 ‘모범적’으로 생활한다.
잘 참고 잘 버틴다는 뜻이다.
“출처가 비슷한 광기들이 모여/ 하나의 혁명을 구성하려 할 때” 중년들에게도
“거대한 짐승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중년들은 쉽게 짐승을 실천하지 못한다.
비굴한 모습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주체성마저 결여된 것만 같다. 세상에게 지고 사는 것만 같고, 소심하게 사는 것만 같다.
그런 묘한 심리 상태를 이 시는 반영한다.
따라서 이 시의 장점은 바로 그런 묘한 심리 상태를 동물적 이미지인 짐승에 빗대어서 표현한 점이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에 활용된 객관적 상관물은 짐승 이미지다.
짐승 이미지를 통해 광기의 본질을 생동감 있게 부각하려고 했다.
거대한 짐승 한 마리의 이미지와 그 짐승을 만지작거리는 사내 이미지,
“감자처럼 웅크린” 짐승의 몸에서 “소리 없는 비굴이 빠져”나오는 이미지가
모두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에 적용된 상상적 체험은 중년 사내들의 심리 상태를 부각하는 데에 쓰였다.
필자도 ‘광기를 조절하면서 사는 중년’이다.
그렇다 보니 이 시에 나온 중년들의 심리를 잘 알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정 무렵 허름한 주점을” 가본 적 없고,
“혼자 1인용 의자에 앉아 독주를” 마셔본 적도 없다.
이것은 순전히 화자 입장에서 상상적 체험을 통해 얻어진 정황이다.
방심하는 사이 “병을 깨고 달려드는 초보들”이 “멱살을 잡고 전부를”
그어버린 상황도 상상적 체험 때문에 얻어졌다.
마흔이 어떤 나이인가?
모든 마흔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감자처럼 웅크린 자세로부터/ 소리 없이” 찾아오는 비굴을
조금씩 맛보게 되는 나이다.
마흔이 되어도 권력이나 돈이 없는 중년,
가장이 되어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중년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 그런 기분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런 마흔에 찾아온 광기가 오히려 ‘광기의 완성’에 가깝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비굴하지만, 기형이지만 안전하게 그 상태로 쭉 살다가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은 기재 생략함-옮긴이)
· 이승희의 ‘양의 집은 어디인가’ (《공정한시인의사회》 2018년 3월호)
· 이주송의 ‘풀씨창고 쉭쉭’ (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이삼현의 ‘각시거미’ (2017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직접 써 보세요 >
* 아래에서 제시한 구절이나 문장처럼 이미지와 이질적인 것이 결합된 구절이나 문장을 만든 다음,
그 문장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해 한 편의 시를 창작하시오.
반드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쓰시오.
- 예시 구절이나 문장: ‘고독은 바깥을 향한 발톱이 없다’ ‘적막의 심장은 고요할 때 세차게 튄다’
‘어둠이 깔리면 덩굴줄기 속에서 뱀들이 쏟아져 나온다’
‘동물성을 먹고 쑥쑥 자라는 콘크리트’ ‘의자가 낙법을 품고 있다’ ‘내 고양이는 한 권의 책이다’
‘몸 안에 불편의 페이지가 넘쳐난다’ ‘사생아처럼 태어난 문장이 밤을 할킨다’
‘고양이라는 결말 속엔 외롭지 않다는 문장이 웅크리고 있다’ 등.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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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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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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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4.1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38) 시 쓰기 상상 테마 4 - ① 동물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