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가져다 준 유익
어제는 홀로 메모해 둔 수첩의 낱장을 넘겨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수첩에는 떠 오른 시상을 메모해 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상당히 많은 페이지에 번호를 붙여가면서 기록을 남겨둔 것이 쾌 여러장 눈에 띄었다. 이것은 언젠가 나의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도에서 제법 상세하게 적어 놓은 글이다. 그렇게 대단한 내용도 아니다. 그러나 그 글들을 보면서 내가 시도한 것 중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것들이 턱 없이 많다는 것을 보고 잠깐 당황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시도를 한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이 1차의 능선을 넘서서지 못하고 2차 시도에야 비로소 이루어 진 것들이 대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하기 보다는 노는 일에 정신을 팔렸던 모습, 아마도 가난이 징그러워서 어쩌면 그로 인한 주눅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누구간에 의해서 평가를 받고, 상대적인 비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조직생활을 싫어해서 나온 성향 탓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래서 항상 또래 친구들과 동시에 하교하지 못하고 남아서 숙제를 하든지, 선생님이 내 준 문제를 다 풀고 나서야 하교를 하곤 했다. 중학교 시절 연합고사전 날 밤, 부모님의 말 다툼으로 사춘기의 영역에 있던 나는 가츨하여 친구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 식사도 걸은 채 고사장으로 가서 시험을 봤으나 결과는 실패, 후기 시험을 통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2시간여 거리를 통학해야만 했던 시절, 대학교를 가겠다고 공고에 자퇴원서를 제출하고 검정고시 학원에 입소하여 3개월의 과정 후 치룬 검정고시의 실패, 그 다음 해 4월에 합격하여 학력고사를 준비하던 차에 그 해 11월 시험을 보고, 그해 대학입시에 또 실패,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하여 업무를 하던 차에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대학원을 진학한다고 시도했다가 또 한 번의 실패 후 한국외국어대대학원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향해 첫 번째 관문을 제대로 통과한 것보다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결코 늦어진 것도 아니다. 과정을 보면 남들보다 쾌 많이 늦어졌을 법도 한데, 그들보다 빠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늦어진 것도 없음을 본다. 숫자적으로 보면 늦어진 일부분의 현상이 보이기는 하나 알고보면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으며 내실있는 삶의 열매를 끌어안고 제 속도로 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실패가 가져다 준 긴장감이라고 본다. 그 긴장감은 내게 삶을 성실한 태도로 임할 수 잇도록 독려하는 무언의 교훈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 성실은 시간관리를 견고하게 하여 후회나 아쉬움속에 세월을 적시지 말라는 간곡한 멘토의 역할로 다가왔다고 보여진다.
이제는 지난 나의 실패의 작은 흔적까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만큼 조숙한 인생의 위치에 와 있으며, 돌아보니 괜찮게 살고는 있다는 스스로의 안위를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그러나 결코 자만하려고 발설한 지난 날의 과오가 아님에는 틀림없다. 결코 교만해 질 수 없는 성질의 소유자이기에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는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하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능력도 지니지 못한 채 인기를 위하여 진실치 못한 말을 내뱉는 그런 성질의 소유자도 못된다. 그렇다고 앞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이 단체 저 단체의 조직원을 통솔하면서 우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가져 본적 없는 오직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 속사람으로서의 변화와 영향력을 은근하게 전해주려고 노력하는 소시민적 양심주의자 일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남들은 이곳저곳 잘 도 옮겨 다니는데, 나에게는 그럴 용기도 그렇다고 능력도, 주변머리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 직장에서 뿌리를 내리곤 한다. 그 원인을 최소한 서너 가지로 고백할 수 있다.
첫째는 특별한 능력을 배양하지 않은 한 그 어느 곳이든 나의 능력과 위치에 맞는 여건과 금액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지 능력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무턱대고 많은 금액을 제시할 바보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새로이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쏟는데 투자할 노력과 시간을 남겨서 자신의 여가를 위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생각에서다. 세 번째는 익숙한 것과 곳 사람들 가운데 머문다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고, 비전에 대한 깊이있는 사색의 시간을 벌어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을 자아낼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이다.
남들이 볼 때면 그냥 발전지향점이 흐리기 때문에 한 직장만을 고수하는 것인가다라며 조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다. 충분히 자신의 역량과 비전을 발견하기까지는 익숙한 그곳에서 자기 계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백번 천 번 옳은 처사임을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
이렇게 하여 얻은 결실을 하나 둘 고백하면 첫째는 다작을 통한 작품활동을 왕성히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의 자료를 축적시키고 자아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훈련의 과정으로써 독서에 투자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여러 맨토들과 삶의 동역자로서의 좋은 분들과의 교분을 두텁게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고, 무엇 보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신뢰성을 구축해 올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소득이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이 수필의 연장선에서 실패하던 순간 순가의 경험을 좀 더 세심하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다만 실패가 결코 부끄럽거나 숨기거나 자신감을 감축시키려고 하는 도구가 아닌 바로 자신있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마다 자신의 실패의 경험을 수치스러워 하지 말고 누구에게든지 자신있게 고백하고 그 실패감을 딛고 보란 듯이 살아내는 용기 있는 결단을 지니기 바란다.
자신이 경험한 것보다 귀한 자산은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좋은 경험, 실제적인 경험이라면 그 어떤 교보재 보다도 훌륭한 자료가 된다는 것을 기억한다.
필자는 강의를 하거나 때론 주례를 서거나 사회자로서의 특정 멘트를 할 땐 이 모든 것이 나를 나이게 하는 소중한 자료임을 알리기를 좋아한다. 그런 자존감 넘치는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오늘 하루 주어진 인간관계의 리모델링을 새롭게 하기로 약속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