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선생의 '바람과 구름과 碑'는 구한말에 가공의 인물인 최천중이 혁명을 통해 새로운 이상사회를 만들려고 했다는 기발한 내용의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최천중은 밀려오는 외세 아래에서 역사의 조류를 읽지 못하고 권력쟁탈전과 백성착취에만 열중하던 무력한 이씨왕조와 족벌귀족층을 일거에 뒤집어버리고 새 왕조를 건설하려한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작가는 구한말의 의병장 '허위'로부터 주인공 최천중을 구했다한다.
입산 십 년 동안 관상과 사주를 공부한 최천중은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아들이 새 왕조의 임금이 될 것이라는 영감을 받고 왕재를 잉태할만한 여인을 물색하다가, 여주 신륵사에 불공 드리러 온 양근 미원(지금의 가평군 설악면)의 왕씨 부인을 사술을 써서 겁간하여 배태하게한 후, 이 왕재를 보필할 인물들을 전국에 걸쳐 선발하고 경기 광주 땅 삼전도에 모아 국가전복을 기도한다. 하지만 끝내 성공하지는 못하는 내용으로 끝남으로써 울화통 터지는 우리 근대사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한국의 사마천을 꿈꾸었던 작가의 역사의식과 작품성이 꽤 평가 받는 소설인데, 그런 건 차치하고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흥미있었던 것은 주인공 최천중이 전국 각지의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으로 바로 '관상(觀相)'이라는 인물판별법을 쓴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오래 겪어보지 않고도 그 얼굴 한번 보고나서 인품이나 역량, 그의 운명까지 알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기막힌 능력인가? 소설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누구나 가져보고 싶은 능력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사 전반에서 인간 개개인으로 옮겨간다. 살아보니 세상이 어떻게 될려고 이 지경이냐 하는 논쟁들이 세월 앞에서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터득하게되는 것이다. 대신에 사람들은 점점 자연이나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해타산으로 얼킨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 속에 살아오면서 신뢰와 배신을 경험해본 후에 터득한 나름의 인물판별법으로 그들 중 일부를 선택하여 자신의 중년기 이후 새로우면서도 보다 진솔한 인간관계를 꾸며가고 싶은 것이다. 그때 새롭게 형성되는 인간관계에서는 실패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 인물판별법 중의 하나가 관상(觀相)이다.
관상은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이전부터 유래되어 크게 유행하였다한다. 역사적 인물의 출현 스토리에 관상에 기한 인물평이 없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삼국지에서 촉의 제갈공명이 항장 위연의 반골상을 심복들에게 경계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중국의 상학(相學)은 남북조시대에 달마대사가 남긴 '달마상법(達磨相法)'과 송나라 때의 마의도사가 남긴 '마의상법(麻衣相法)'이 쌍벽을 이루며 크게 발전했고, 우리나라도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신라에서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상학이 크게 유행하였다한다.
서양에서의 관상학은 동양에 비해 많이 늦은 편이다. 16세기에 들어서야 프랑스의 바르텔레미 코클레란 학자가 '관상학자(Physiognomonia)'라는 저서를 통해 목판으로 된 수 많은 도해를 제시하며 입,눈,코, 치아,머리카락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는 관상학(Physiognomy)의 개념을 세웠다한다. 그 후 골상학과 함께 철학, 심리학이나 범죄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데, 동양의 관상학이 미래예측에 주안점을 두고 다분히 점술적으로 흐르는데 반해, 서양은 과거 경험을 통한 인물판단적 기능에 주안점을 두어 보다 통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찌 되었던 사람을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기법은 그 편견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인물판별의 유용한 도구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꾸준히 연구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관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상법 제목의 책을 몇 권 찾아 읽어보니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주석이나 사례 같은 객관적 체계 없이 저자의 주관만으로 쓰여진 흔적이 역력한데, 오관(五官)이니 십이궁(十二宮)이니 하여 사람의 이목구비를 나름대로 분류해 놓고 생김생김으로 길흉화복을 규정하려 든다. 어디가 어떻게 생겨서 귀상이라느니, 재물운이 많다느니, 단명할 상이거나 사내를 잡을 상이라느니... 그런데, 도통 논리가 취약하고 통계 근거가 미약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심지어는 일부러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싶게 난해하기까지 하다. 직업적으로 사람의 운명과 미래를 점치는 전문가의 일이니 그리 만만해 보여서 되겠는가. 돈과 명예를 떠나 한 개인의 인간성을 들여다 보고 싶은 나의 목적은 전혀 이룰 수가 없었다. 관상학 책은 그만 덮어버렸다. 그래서 점술은 잡술이다.
관상에 관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는,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 면접장에 관상가를 배석시켜 당락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수 많은 기업인들이 신입직원 채용 때 그를 따라 나름의 관상면접을 시행했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루에도 수 십, 수 백명을 상대하는 영업사원이나 장사꾼들은 거의 관상쟁이가 다 되어간다. 뿐만 아니라 처녀총각의 맞선 자리에서도 우리는 관상을 보며, 양가부모가 만나는 상견례에서도 겉으로는 온화한 미소들을 짓지만 실은 열심히 상대들의 관상을 훑어본다.
관상이란 얼굴을 보는 것인데, 사실 얼굴이라는 말이 '얼의 굴'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통로인 것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이나 분노 같은 마음상태가 드러나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람의 표정을 살핌으로써 그 사람의 현재 심리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의 틀, 즉 이목구비와 안면근육의 생김새로 그 사람의 유전적 특성과 건강상태, 인생역정이나 부귀 정도, 배려심이나 이기심, 성격이나 교양수준, 사기성, 심지어는 공격성향과 탐욕의 크기까지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관상으로의 합리적 접근은 바로 이 '얼굴보기'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미래의 길흉화복이란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결과일진대 어찌 이목구비의 모양만으로 단번에 예지할 수 있을까? 그건 점술이고 사술이며 편견의 위험을 크게 내포하고 있다. 오히려 세상살이에서 단 맛, 쓴 맛에 못 볼 꼴까지 웬만큼 본 중년 이상의 범인(凡人)의 눈으로 보는 '얼굴보기', 즉 '직관법'이 더욱 합리적인 관상법이 아닐까? 이것은 단순한 직관이 아니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경험으로 축적한 통계가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직관법에 의한 인상관찰(人相觀察)은 오히려 꽤 일리가 있고 일견통찰(一見洞察)의 묘미도 있다. 관상능력은 '얼굴보기'의 경험으로 키워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주장이다.
대폿집 주인이라는 직업상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다보니 재미 삼아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이 사람은 이런 관상을 하고 있으니 성격이 이럴 것이다, 저 사람은 또 저럴 것이다... 젊잖은 자리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라면 그리 관심을 가지고 '얼굴보기'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본 관상에 의한 인물판별의 '결과'를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폿집에는 '술'이라는 빠르고도 효과적인 진실의 무기가 있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들은 쉽게 본연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관상의 결과가 나타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얼굴보기' 5년 만에 제법 사람 보는 눈이 생겨간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고 속으로만 알고 말 일이지만... 그런데, 요즈음 나의 '얼굴보기'는 속관상을 파악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 사람이 생긴대로 노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관상의 묘미는 외모와 다른 내면을 읽어내는 데에 있다. 심상(心相)이다. 목자가 불량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어도 속마음은 솜털 같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 우아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어도 교활하고 시커먼 속을 가진 사람, 가끔 이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관상의 과정은 제법 스릴과 묘미가 있다. 세상이 깊은 통찰을 귀찮아하고 우선 보기 좋은 것만 추종하는 세태이니 이런 관상법의 습득은 내가 대폿집 주인을 그만 두더라도 인생을 깊이있게 살아가는 데에 꽤나 도움이 될 것 같다.
관상에 관심을 갖다 보니 TV에 자주 비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얼굴에 눈길이 아니갈 리 없다. 정치인들의 관상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개 불편상(不便相)이다. 불편상의 특징은 눈동자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지만 그 못지 않게 입매가 요란하다는 것이다. 속 다른 말을 많이 해서 그럴까? 방송계나 법조인 시절 좋은 관상을 갖고 있던 이들이 정치 입문 후 대변인을 단골로 거치면서 불편상으로 변해가는 것은 별스럽지도 않다. 정치인 중에 보기 드문 관상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은 사진으로만 본 백범 김구 선생(이승만 전대통령의 관상과 비교해보면 백범 선생의 관상이 얼마나 좋은 관상인지 알 수 있다)과 몽양 여운형 선생, 생존인물로는 민주당 김원기 전의원과 노무현 전대통령 정도이다.
정치인 관상의 특징 중 하나가 탐욕상(貪慾相)인데, 이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그럴 것이다. 보수성향의 사람들에게서 특히 더 많이 발견된다. 중앙정치무대 지방의회 가릴 것 없다. 탐욕상(貪慾相)은 눈가와 볼 살에 나타난다. 진보성향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율상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극우보수에 가까운 김용갑이나 조갑제 같은 사람들은 불편상이긴 해도 탐욕상은 아닌데 비해, 탐욕이 그득한 관상을 갖고 있는 이들은 대개 사이비 보수들이다. 요즈음 지방의회 의장직을 두고 돈거래를 한 지방의회 의원들이나, 쌀농사직불금을 타낸 고위공직자들의 관상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대폿집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평범한 개인들조차 보수적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진보성향을 가진 이들보다 더 이기적이고 탐욕적 관상을 보인다. 정치인들과의 차이는 그래도 이들에게는 불편상이 덜 하다는 것 뿐이다.
연예인들의 관상은 그들의 감성 만큼이나 다채롭다. 젊은 연예인들의 경우 감성은 뛰어난데, 대중의 인기가 거품인 것을 알면서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위태상(危殆相)으로 나타난다. 위태상(危殆相)은 눈밑이 어둡다. 연예인들이 위태상을 벗어나려면 일단 대중의 인기라는 덫에서 풀려나야 한다. 중견연예인들의 경우는 인기에서 떠나 하나의 직업인으로 서거나 예술혼으로 초월한 경우가 많아서 안정상(安定相)으로 자리잡는다. 젊은 연예인으로는 영화배우 김상경, 개그맨 김제동, 유재석 등이 좋은 관상을 갖고 있다. 중견에는 좋은 관상들이 많은데 어릴 적 기억의 영화배우 김승호씨,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특히 기억에 남고, 현역에서는 김민자, 김혜자, 노주현, 고두심씨 등이 편안한 관상들이다.
그런데, 시공을 초월하여 상학(相學)의 모든 해석을 덮어버리는 관상이 있다. 바로 '웃는 상(笑相)'이다. 아무리 밉거나 독사눈을 가진 사람도 웃는 모습은 보기 좋으며, 불행이나 슬픈 일을 당해도 웃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우는 얼굴 조차 웃는 모습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런 관상은 운명도 그 앞길을 막지 못한다. '웃는 상(笑相)'을 가진 사람은 얼굴 전체에서 광이 난다. 웃음전도사 황수관 박사의 웃고 있지 않는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괴롭다. 그의 눈매나 턱선이나 콧부리가 결코 좋은 관상의 요건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웃음으로 단번에 자신의 관상을 뜯어고쳤다. 결코 미인이라 할 수 없는 방송인 정은아는 웃는 상으로 뭇남성을 사로잡았고, 탤런트 전원주 역시 좋은 이목구비는 아니나 호탕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사람들 특히, 외모에 많은 관심을 쏟는 젊은 여자들은 돈과 위험을 감수하며 얼굴에 칼을 댈 것이 아니라 웃는 훈련을 해야한다. 웃자. 웃는 것만이 좋은 관상을 갖는 비법이요, 만병통치의 약이요, 행복한 노년을 맞는 최고의 비결이다.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어릴 적 이발소의 빛바랜 액자에서 '푸시킨'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했다. 그렇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정치판이 어지러워도 웃자. 시간은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2008.10월에 피플475에 쓴 글인데, 재미 없어서 별로 눈길을 받지 못한 슬픈 글입니당...^^)
첫댓글 '바람과 구름과 碑'는 저도 즐겨 읽었던 소설입니다.
문학사상에 연재되었었나요? 오래 돼서 가물가물하네요.
관상에 대한 말씀, 여러 모로 새겨들을 얘기네요.
웃는 상,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가장 명심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항상 웃어야겠어요. ㅎㅎㅎ
그렇죠 문작가님? 웃읍시다 ㅎㅎㅎㅎ 삶이 속일지라도 우리는 웃으리라~~~^^
저도 관상학에 관한 책 더러 읽었는데 에코님이 진작 이런 글을 보여주셨더라면 그 많은 책값 내버리지 않았을것을...... 무척 재미있는 글입니다. 해박한 지식에 놀랍고요.
쏘로우님도 '관상학책'이라는 덫에 걸린 적이 있군요^^ 사실 웬만한 독서가라면 한 번 섭렵해보고싶은 영역이니까요. 하물며 쏘로우님 같은 독서가야... 재미있는 글이라 칭찬해주시니 고마워요^^
수상보다는 족상, 족상보다는 관상, 관상보다는 심상이라고 하는데 생활에 찌들리거나 하면 얼굴의 상이 바뀌는 것을 봐서 심상과 관상은 같이 가는거 같아요. 求不得苦( 얻고자 하는데 못얻어서 생기는 고통)에서 벗어 나는 것은 욕심을 비우는 방법뿐이 없을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고 간다
심상이 관상하고 같이 가는 사람은 표리부동하지 아니하므로 내편 네편을 떠나 상대하기가 버겁지 않아요. 사실 생각이 나와 좀 다르더라도 세상살이의 한 모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겠소^^ 그런데, 제일 난감한 사람들은 심상과 관상이 다른 사람들인데... 비밀이 많은 사람들도 그렇고.. 이런 사람들하고는 술을 마셔도 도무지 술맛이 안납디다. 그 양면성이 신경쓰여서....ㅎㅎㅎ 좋은 글이라 칭찬해주셔서 고맙소..^^
디게 기네........
이런글을 쓰시는 에코님 존경합니다.
조용한 저녁에 다시와서 정독할께요. 감사
ㅎㅎ 자수정님 좀 장황하지요? 읽어주신다니 감사하고요... 우리 웃으며 삽시다~~
하하하하 웃고 갑니다~~ ^*^
ㅎㅎㅎ 저도 따라 웃습니다~~^*^
미아리 고갯마루에다 좌판을 깔아보심이 어떨른지요...ㅎㅎ 중국에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 하나는, 월나라 범여가 모든 권력과 부를 버리고 잠적한 이유는 월나라 구천왕의 관상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천하를 통일하게 되면 밑에서 수고했던 장수들이나 신하들을 가혹하게 탄압할 상이라고. 관상도 제대로 알고 실행하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토사구팽이라는말이 바로 범려가 구천왕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라지요.
참으로 현명한 범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꾸 웃으면 관상이 좋은쪽으로 변하기도 하나요?~내 관상이 어둡다고해서요 ㅠ..
그럼요 웃으면 좋은 관상이 된다고 제가 보증할께요.
그런데, 소피아님은 어두운 상이 아니고요... 정 많고 진실성도 많은 사람들에게 뜨이는 상이랍니다.^^
관상에 관해 통달하셨네요.
동교동 여사님도 관상을 중요시합니다.
동교동 24시를 써서 어르신을 힘들게 했던 함윤식이라는자가 운전사로 들어왔을 때 인상이 좋지 않다고 노하셨지요.
상현(김상현)이가 천거했는데 오죽 알아봤겠어요?
그럼에도 No 였었지요.
얼마나 사람관계가 힘들었으면 관상쟁이가 되셨겠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관상쟁이가 됐겠느냐는 말씀에 속내 들킨 사람처럼 가슴에 덜컹 소리가 나네요^^
역시 경륜이 풍부한 작가분들의 통찰력 앞에서는 감출 것이 없습니다.
이희호 여사께서도 별의별 인간들 다 모이는 정치판 뒷켠에서 얼마나 힘드셨으면 관상을 중시하셨을까요
배신과 변절이 다반사인 그 판에서... 외람된 말씀이지만 백번천번 이해가 갑니다.
마부님은 두 어른께 사심 없는 애정과 신뢰를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길어도 길지 않은 글입니다. 재미있습니다. 하다 그만 두셨다지만 공부가 꽤 깊으신 듯합니다. ㅎㅎ
웃음은 얼굴에 등을 켜는 것과 같아서 일단 밝아지죠. 어두운 생각이 머물 데가 없을 겁니다.
저는 역학 사주에 몇년 재미를 붙였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그가 속한 사회나 국가의 운명, 시대의 운명을 뛰어넘기 어려우므로
그것을 따지는 것은 사소한 오락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여기 필요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다소 무거운 일이 숙제로 여겨지더군요.
사실 그 숙제를 파악하지 못해 시간 허송하는 게 늘 죄짓는 마음입니다.
저도 한때 그 '시대'에 뭔가 기여해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정의라는 말에 한참 묶여있기도했고요^^
그런데 차츰 '시대'란 흐름 속의 한순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돌부리를 걷어차면서, 존재는 시대를 초월하고 더 나아가 존재 자체도 하나의 개념일 뿐이라는 자각이 오더라고요.
너무 부담갖지 마시길...^^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이 얼굴의 표정을 바꾸기도 하지만, 얼굴의 표정이 마음을 바꾸게도 합니다. 전 언젠가 들었던 40대 이후의 얼굴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 '그게 참 맞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가 걸어 온, 생각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배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