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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여행
2019.5.31. 장유경
5월도 한참 깊어지니 큰 나무들에 흰 꽃들과 작은 나무들에 분홍 꽃들도 다 지고 나무는 더 짙어진 나뭇잎으로 겹겹이 옷을 차려 입는다.
금요일 퇴근하고 안동 가는 열차는 저녁 7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였어도 한참을 달려도 날이 훤했다.
산은 지난번 순천 갈 때보다도 더욱 살이 두툼하게 올라 운동선수 근육이 오른 듯 튼튼해 보인다.
천안 즈음 평야들엔 모내기를 하려고 물을 가득 대어놓았고 그 조각난 논들이 아이들 그림 도화지 같다. 사방에 늘어선 나무들과 집들, 그리고 좀 떨어진 산들 조차도 그 도화지 안에 그림이 되어 머물고 있다. 신기하게도 햇빛이 있어 해의 반대방향 그림자로 머무는 게 아니라 거울처럼 그저 논 가까이 표정들을 방향성 없이 모두 비추이고 있는 게 아이들이 집도 나무도 다 누워있게 그려놓은 그림 같아 신기해서 얼굴이 KTX 유리창을 뚫고나가도록 쳐다보았다. 간혹 집을 찾아가는 새들도 그 도화지를 뚫고 지나간다.
오늘은 여고 절친들 끼리 안동의 묵계종택에서 머물려고 여행을 떠나는 길이다.
서울역에서 3명 퇴근 후 열차 떠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하여 출발한 팀과 울산에서 한명 KTX를 타고와 동대구역에서 대구 사는 친구가 몰고 온 승용차를 탔을 즈음엔 이미 어둠이 짙어있었다. 그래도 문명의 도움 고속열차 덕에 일마치고 여행지까지 가서 친구들과 하룻밤을 더 지낼 수 있다니 참 좋다.
대구 사는 필옥이 이틀간 먹을 간식과 간단한 아침꺼리, 그리고 이틀 앞당겨 할 내 생일파티 준비까지 장을 봐서 미리 차에 실어두었다.
묵계종택에 도착하니 개구리 소리 쩌렁쩌렁하고 머언 산에서 들리는 소쩍새소리에 하늘은 별을 가득 담아 우리들의 탄성도 함께한다.
우리가 묵을 곳은 안채가 아닌 손님 접대에 사용되었을 사랑채 보백당<寶白堂>이다.
‘우리 집안에 보물이 될 것은 청렴이다’라고 했다는 안동김씨 김계행의 뜻을 받아 이름 지었다고 했다.
우물마루 너른 4칸짜리 대청마루에 앉아 친구가 엊그제 일본 여행가서 사온 사케 와 예쁜 잔을 하나씩 나누어 들고 간만의 만남을 기뻐하며 또 내 생일을 미리 축하하며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반질반질한 나무 마루에 앉아 작은 찻상위에 물에 띄워놓은 백작약은 향기도 은은하게 밤기운 속에 스며들어 나고, 소쩍새도 우리 이야기 듣느라 소리를 줄이고 별빛도 초롱초롱함을 줄여 내다보니 먼 산에 누운 반달도 우리 이야기를 엿 듣고 있었다.
우리들의 이 여행 이야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이후 겨울 방학이나 여름 방학 때 산자락 근교로 여행을 가곤 하다가 결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기 바빠 만남이 뚝 끊기거나 하진 않았다. 오래된 기억이라 세세히 기억나진 않아도 옛 사진을 보면 내가 전라도 광주에서 근무할 무렵 임신한 배로 대전 코엑스 앞에서 친구들과 찍힌 사진을 볼 수 있다.
그 사진 속에선 각자 다른 지방에 살다가 대전에서 모인 것인데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짙은 밤색의 항공 잠바 같은 웃옷을 다 입고 나타나 무척 우스웠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았는데 다 어디다 맡기고 나타났는지 나이가 더 들어보니 좋은 남편들과 좋은 시어머님 덕이었으리라.
또 춘천에서 근무할 1995년 겨울엔 내 딸아이 생일 축하 케이크에 불을 끄는 장면이 담긴 사진 속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도 유성에서 만났다. 나만 차를 몰았을 시기인데 차도 없이 돌도 되지 않은 아이는 업고, 네 살 전 후의 아이들을 하나씩 데리고 안동, 포항, 부천에서 유성까지 모인 것을 보면 딸아이와 둘이 새 삶을 시작하게 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모여 내 딸아이 세 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에도 내가 군 휴양소가 있는 유성콘도를 예약하고 여행 스케줄을 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친구들 집 근처로 한번은 안동, 다음은 포항, 다음은 부천 이런 식으로 돌아가며 아이들을 우르르 끌고, 혹은 혼자서 얼굴을 보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어져온 친구들이다.
오히려 아이들 사춘기 시절이 되니 집을 비우기도 어려워 여행은 몇 년에 한번 정도로 갔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 위주로 보았다. 지금처럼 규칙적으로 일 년에 두세 번 이상의 여행을 가게 된 건 친구의 아이들 중 가장 어린아이가 고3을 탈출한 4,5년 전 즈음부터가 된다.
함께 베트남 캄보디아, 대만을 다녀왔고 지난 겨울 인도를 다녀왔다. 긴 시간을 내어 해외를 같이 가기에는 너무 얼굴을 뜨문뜨문 보게 되고 나와 선생님 직업인 두 명 때문에 무지 덥거나 너무 추울 때 시간밖에 내지 못하여 늘 여행은 아쉬웠다. 어느 봄날 누런 밀밭이 바다가 되어 출렁이는 변산 반도에서의 1박2일도 알차게 보낼 수 있음을 알게 된 후부터 KTX를 활용한 주말여행이 시작되었다.
종택에서의 첫날 아침 창호지를 통해 먼동이 밝아오기도 전에 멀리 힘없는 닭이 “꼬오끼오”하며 서너 번 울더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온갖 새들이 합창을 하기 시작한다.
파랑새, 검은등뻐꾸기, 꾀고리와 호반새, 팔색조, 휘파람새 등
아직 일어날 시간은 멀었건만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졸음이 쌔록쌔록 쏟아져 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고 깨어보니 거의 다들 일어나 어제의 잔해를 치우기도 하고 아침 단장중인 친구도 있다. 난 더 뒹굴다가 제일 늦게 일어난다.
이 친구들과 있을 땐 난 제일 게을러져도 좋다.
창호지 문을 열어 공기를 마시고 파자마 차림으로 부스스 마당을 나서니 밤에 들어올 때 보이지 않던 종택의 사랑채 앞에는 넓게 백작약이 가득하다. 그 향기에 취해 정원을 도니 오래된 향나무들이 멋들어지게 있으며 회향목 사이 반짝이는 곤충이 한 마리 있다. 너무 예쁜 빛나는 금빛이 도는 초록, 금색, 주황빛으로 치장한 가운데 손톱만한 크기의 곤충이다. 궁금함을 못 참는 우리들은 폭풍 검색에 들어가 ‘큰광대노린재’라는 이름을 지닌 아이란 걸 알아차린다. 백작약 뿐 아니라 자주달개비 그 흔한 노란 고들빼기에게도 우리들은 모두 관심을 갖으며 감나무에서 미색 꽃을 피워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감꽃을 주워 차탁위에 치장을 해 놓는가 하면, 꽃을 끼워 팔찌를 만들려고 경희는 어느새 끈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요플레와 오트밀, 견과류에 과일을 곁들여 아침을 먹고 서로 서로 고데기로 머리도 만져주고 편한 차림으로 숙소를 나선다.
주변의 지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너른 낙동강 물이 굽이굽이 안동호와 이어지고 그 옆 임하호도 만나고 도 다른 이어진 한 줄기로 강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변도로는 다른 차들도 없고 오랜 침식과 상승작용인지 강변에 절벽들이 병풍처럼 드리운 절경 길로 드라이브를 한다.
“아! 저기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병헌과 김태리가 처음 만나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장면의 그 절경이네” 하자 아무도 그 드라마를 소문은 들었고 어쩌다 지나치며 한두 장면 보았을 뿐 나처럼 본방사수 한 친구는 아무도 없단다.
아무도 그 감흥에 동조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다 같이 내려 강변을 보며 나는 이리 저리 카메라를 들이댄다.
우리가 잔 곳은 동 안동 쪽이다. 도산서원은 북쪽에 있고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은 서안동이다. 우리는 예전에 이미 서 안동을 다 여행했는지라 바삐 다니지 않도록 하며 여유로운 여행을 하기로 했다. 한번쯤은 다 가본 도산서원을 다시 가기로 했다. 이번엔 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여 느긋하게 걷기로 한다. 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여 세세히 본 도산서원은 많이 달랐다.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을 감독하였다는 도상서당은 공부하며 선생이 기거하는 서당 공간과 학생들의 기숙사 공간 두 동으로 되어 있으며 거처하시던 방엔 책을 사방에 드리우고 책을 둔 공간의 1/5만한 공간을 뒤에 두어 칸을 나누고 책을 피해 딱 한 몸 뉠 공간으로 야박하게 쉬는 공간을 두었다. 선생의 제자가 된 양 마루에 앉아 사방 트인 공간으로 불어오는 강바람을 받으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반면 학생들 기숙 공간엔 하늘에서 보면 한자 ‘공부 工’글자 모양이 되도록 지었으며 창문도 중도를 지키라고 ‘가운데 中’자가 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현판은 일부러 잘 못쓴 아이의 글자처럼 재미난 한자형태의 글로 써서 달아 친근감이 일어나게 하였단다. 설명을 듣고 머물며 찬찬히 본 기숙사 농운정사는 건물도 아기자기 예뻤다. 학습하는 동편 시습제는 담과 이어진 벽면의 나무 창문을 열고 우물자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창은 창틀에 앉으면 산과 들을 배경으로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우리는 옛 건물의 서까래, 대들보의 자연스런 모습도 보고 이방 저방 들어가 보기도 하고 450년 된 기둥과 툇마루 나뭇결을 어루만졌다.
안동 시내로 이동하여 안동에서만 한다는 잉어찜을 먹으러 갔다.
긴 타원형의 도자기 접시에 30cm는 됨직한 잉어와 그 옆 작은 가물치가 한번 튀겨진 후 붉은 양념을 쓰고 누워있다. 생선의 살을 발라내어 양념과 데쳐서 따로 나온 콩나물과 함께 버무려 먹는 것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민물고기를 그다지 즐기기 않는 내게는 그냥 한번 먹을 만한 특이한 음식이었다. 잉어의 가시가 매우 강하니 먹을 때 찔리지 않도록 주의를 요했다.
우리가 묵었던 종택 건너 계곡 쪽으로 종택의 주인 김계행이 사색과 독서를 즐겼던 만휴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 또한 드라마에서 이병헌과 김태리가 “LOVE합시다!” 하며 악수를 하였던 나무다리로 유명해진 곳이다. 드라마를 볼 때 저런 절경은 어디에 있는 곳인가 하였더니 바로 이곳들이었다.
만휴정에 다다르니 물은 줄어들었지만 역시나 너럭바위 계곡에 산으로 둘러싸여 저절로 독서가 됐음직한 곳이었다. 우리는 너른 바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한가한 시간을 누렸다. 5시부터 종택을 민박집으로 운영하는 경북미래문화재단 산하 놀몸문화예술배움터에서 “참 좋다”라는 감성프로그램을 너럭바위에서 한다기에 참가했다. 노래도 듣고 해가 질 때까지 만휴정 앞 계곡에 머물러 있었다. 해가 지니 바로 산쪽 계곡에서 찬바람이 확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으며 배곯아 죽은 며느리가 새가 되어 저녁 시간이면 솥이 적다고 울어대는 소쩍새 외에 “쏙쏙쏙쏙....”하는 새소리가 들린다. 종택 관련 종가 어른이라는 분께 물어보니 요리하며 도마질하는 소리같다고 도마새라고 하신다. 집에 돌아와 찾아본 새 이름은 쏙독새였다. 해가지고 8시가 넘어 그림자가 생길 무렵 계곡에서 나왔다.
프로그램 신청자중 선택사항으로 묵계서원에서 같이 저녁식사와 뒤풀이, 그리고 선착순 15명은 묵계서원에서 잔다고 했다. 우리는 김밥과 두부김치로 나온 저녁 식사와 막걸리를 같이 나누어 마시며 뒤풀이에 참여했다. 첫회 모임인지라 20명중 대 여섯은 그 모임 단체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두 명, 세 명 40 이상의 여성 여행객들이었는데 여고동창 다섯 명이 몰려다니는 것을 보고 매우 부러워했다.
“어떻게 이렇게 연락이 끊기지도 않고 이어져 그 나이까지도 함께 다닐 수 있어요?”라며
모두를 뒤로하고 우리 친구들은 사다놓은 안동 소주도 마셔야 하고 우리들만의 이야기 시간이 필요해 묵계서원을 나섰다. 깜깜한 시골길 찔레꽃들이 향기를 은은히 풍기고 가까이 개구리들이 고함을 질러대는 듯하다. 전날과 달리 구름이 살짝 끼어 별들은 나서지 않고 사박사박 발소리 들으며 종택에 도착해 다시 대청마루에 술상을 차렸다. 안동소주 호리병을 가운데 두고.
어둠이 내리며 울던 소쩍새도 짖어대던 개구리도 잠이 들 무렵이면 우리들의 이야기는 한껏 깊어진다.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친구들 다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일찍 이혼하고 혼자가 된 나, 간경화로 오랜 시간 병원을 드나들다 아들의 간이식을 한 남편을 둔 친구, 오랫동안 푼돈모아 노후를 위해 투자한 건물이 부도가 나버린 친구, 간암으로 몇 년간 투병하다 남편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낸 친구, 바람피운 남편을 목격하고 용서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은 친구, 친구들 개개인의 이야기는 지면상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밤 깊도록 속상했던 가정사 이야기랑 주변 사람들과 겪게 되는 마음 아팠던 이야기들도 그렇게 털어 내고나면 한결 가벼워지고 몇 시에 방으로 들어갔는지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아 모른 채로 잠자리에 든다.
구름이 낀 날이어서인지 전날 너무 늦게 잠들어서인지 둘째 날 새벽엔 새들의 어제처럼 합창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야 발견한 대청마루 커튼 뒤쪽에 드라마에서 김태리가 입었던 한복과 이병헌의 정장, 김민정이 입었던 개화기의 드레스들이 관광객 대여를 위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다른 종택 관계자들이 오기 전에 우리는 돌아가며 한복에서부터 갖가지 드레스를 입어보고 어느 의상이 누구에게 딱 어울리는지 깔깔거리며 포즈를 취하고 사진 찍으며 아침시간을 보냈다.
여유 있게 늦은 아침을 어제처럼 먹고 안동호 주변을 드라이브하고 안동호를 가로지르는 국내 최대의 나무로 된 다리의 한가운데 정자가 세워진, 야경이 아름다운 월령교를 향해 걸으며 ‘강가에 오래된 벚나무의 꽃이 필 봄날 저녁에 이곳을 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군데군데 안동댐 형성할 때 나온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아 언문으로 된 남편을 그리워하는 편지와 함께 남편의 무덤에 넣었다는 원이엄마의 사랑이야기가 월령교의 얽힌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안동시장으로 옮겨 원조집에서 안동찜닭을 맛나게 먹었다.
안동에서 유명한 ‘버버리찰떡’은 너무도 떡이 찰 져서 입에 넣으면 말을 할 수가 없어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 떡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줄 떡을 사고 동대구역으로 향한다.
동대구역에서 다시 서울로, 울산으로 기차를 타고 헤어지며 또 다음번 여행 갈 날을 핸드폰에 표시하고 서로가 우리 친구여서 참 좋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항상 계획세우고 모임을 진행하는 나, 묵묵히 먹거리를 준비하며 빈곳을 채우는 필옥, 늘 경쾌함을 전달하며 호기심 발동하여 걸음을 한 번 더 옮기게 하는 경희, 늘 허당처럼 굴다가도 지식이 발동해야 하는 곳엔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우리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순향, 오랜 세월 회계를 담당하며 일 년간 회비를 미루어도 한 번도 불평 없이 회비 걷고 여행 때마다 펑펑 쓸 수 있게 만드는 야무진 삼경. 우리 모두는 자연을 좋아하고 걷기를 즐긴다. 만난 지 37년째이지만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고 심지어는 누가 삐졌다고 달래줘야 한다고 했던 적도 없다.
어쩜 우리는 주변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물댄 논이 되어 친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면서 때로는 친구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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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택에 여유와 아직 가보지 못한 안동에 지형 소개가 구미에 당깁니다.
유경님의 잠시나마 고택의 주인 되신 느낌이 좋았을 것 같기도 하구요~
따뜻한 친구님들과 소풍같은 여행은 참으로 부럽습니다.
맑은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