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64) 시 합평의 실제 4 - ⑮ 윤성관의 ‘부끄러운 까닭’/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4
네이버블로그/ 가을꽃 쑥부쟁이에게 부끄러운 까닭
⑮ 윤성관의 ‘부끄러운 까닭’
<원작>
부끄러운 까닭/ 윤성관
도서관 구석에서
벌건 눈 껌뻑이며 시험공부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옥상에 올라
삐라도 뿌리고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며 짧은 생을 마쳤다
수십 년이 지나
술을 걸판지게 마시고 매운탕으로 속을 달랠 때
누군가는 까마득한 철탑에 올라
부당해고에 항의하고 법을 지켜라 외치며 농성하고 있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누군가 희생할 때
한 터럭 관심도 주지 않다가 시와 수필을 끙끙대며 써봐도
구멍 숭숭 뚫리고 찬바람 불어 도무지
온기(溫氣)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합평작>
부끄러운 까닭/ 윤성관
도서관 구석에서 벌건 눈 껌뻑이며 시험공부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옥상에 올라가 삐라를 뿌리고 독재타도를 외치다가 짧은 생을 마쳤다
술을 걸판지게 마시고 매운탕으로 속을 달랠 때 누군가는 까마득한 철탑에 올라가 부당해고에 항의하고 법을 지키라고 농성하고 있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 희생할 때
한 터럭의 관심도 주지 않다가
시를 쓴다고 끙끙거린들
온기(溫氣) 한 방울 나눠줄 수 있을까?
<시작노트>
얼마 전,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가슴이 찡하면서 부끄럽고 미안하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학교 공부를 시작한 1970년부터 30년 동안은
떳떳하게 살기가 참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둡던 시절에도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희생하였고,
그 희생으로 주어진 온갖 혜택을
아무런 반성 없이 받아 누린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시라고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시론을 읽고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배운다 한들,
내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을까?
반성하는 날입니다.
<합평노트>
시인은 정치, 사회, 문화 현상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선구자적 양심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의롭고 양심적이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이 구현하는 고뇌는 시인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하는 여공들의 노동 개선을 위해 전태일은 한 몸을 기꺼이 불태웠고,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다가 죽어간 젊은이들이 있어 오늘의 삶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문제로 5.18민주화운동 때도 침묵했고,
수많은 인권운동, 노동운동에 앞장서지 못했지만 그들의 숭고한 정신까지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뒤늦은 짓이지만,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 가서 윤성원과 박기순을 만나고,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묘지에 가서 전태일, 노회찬 등 노동운동가를 만나고,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현장, 거창 양민학살현장, 산청·함양 양민학살현장을 돌아보며
대한민국 정치의 현장을 천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투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직시할 줄 알아야 서정시를 쓰더라도 시에 결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참여시’는 자칫 격앙되기 쉬워서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문학작품과 정치 선동적 구호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시인은 정치·사회 현상을 외면하지 말되,
작품은 시론이 요구하는 항목을 충족시켜줘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건이나 현상을 시화할 때 본질을 잘 파악하고 숙성시켜야겠지요.
좋은 예로, 신동엽의 「진달래 산천」이 있습니다.
신동엽은 피로 물들었던 6·25동족상잔을 노래했는데,
그 비극적 카타르시스는 연시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구체적인 합평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원작과 합평작을 대조해보시기 바랍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8.1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64) 시 합평의 실제 4 - ⑮ 윤성관의 ‘부끄러운 까닭’/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