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69) 이미지, 비유, 차이성 - ① 이미지와 상상 2-2/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이미지, 비유, 차이성
Daum카페/ 이미지트레이닝과 상상의 힘(시크릿)
① 이미지와 상상 2-2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체험을 수용하고 재구성하며 살아간다.
이미지를 통해서 독자는 자신의 체험과 연결되는 반응을 하게 되고,
이러한 반응들은 시의 새로운 이미지 체계를 요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요구들에 시시각각 답하는 정신작용이 상상이다.
상상이란 ‘지금 여기’와는 다른 시공을 예측하는 인간의 본성적 에너지이며,
인류문명의 원천적인 동력이기도 하다.
시 쓰기는 왕성한 창조적 상상 발산의 행위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다 보니 실제 언행보다 미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적극적일 수 있고
리듬과 이미지라는 물리적 자극을 통해 정동(情動)의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상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선행 경험을 재현하는 데 불과한 심리 활동을 기억이라고 하거니와,
이 기억을 마음에 떠올리는 경우, ‘재생적 상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상은 이미 경험한 것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상황에 부합하는 맥락으로 재구성된다.
이를 ‘연합적 상상’이라 한다.
특정의 대상, 관념, 혹은 정서에 이미지들을 연계시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연합적 상상에 다른 선험적 경험들이 덧붙여져,
실재하지 않는 새로운 경지에 이른다면 이때는 ‘창조적 상상’, 또는 ‘생산적 상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창조’라거나, ‘생산’의 기준이 시시때때 다른 것이고 보면
시는 ‘발견적 이미지의 연합’에 의한 상상행위라는 정도의 규정은 가능할 것이다.
경험에 의하지 않는 이미지,
예컨대 ‘세계의 황제로 천하를 다스리는 나’나 ‘코끼리를 이고 가는 나비’ 따위의 이미지들,
이런 가공의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따로 공상, 환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상(空想)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이고
환상(幻像)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난 적도 없는 비현실적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수많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차이 나는 시공으로 가고자 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상상행위의 하나라 할 것이다.
저녁 시간은 넉넉한 거니? 끊임없이 붉은 원숭이처럼 다가오는 사과의 사과. 너에게 말을 거는 존재는 이불을 뒤집어쓰면 보이는 거인의 홍채. 그 속에 빛나는 설국. 고요 속에 빛나는 태양. 누군가의 손이 이불을 벗기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이비 베이비 나의 베이비 이불 밑은 뜨거웠어.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츠려드는 꽃잎들. 저녁 식탁의 불빛에 은은히 비치는 백자꽃병은 깨어지기 쉬워. 거인의 입안에 들어간 엄마의 반지처럼 굴러다니는 포도알 한 방울의 눈물로 가득 채워지는 꽃병 속의 물. 옴비사르카다비카 옴비사르카다비카 비의 겨드랑이여! 주문을 외는 마녀는 어김없이 죽음의 비를 부르고 녹물은 흘러내려 분홍빛 패랭이 접시의 찢어진 가로의 시간을 항문부터 물들인다.
저 년 시간은 넉넉한 거니?
―송진, 「분홍 패랭이꽃 접시에 담긴 호박고구마 3분의 2의 알몸, 반쯤 짓이겨진 딸기 그리고 스물 네 개의 포도알」 전문
제목부터 남다르다.
「분홍 패랭이꽃 접시에 담긴 호박고구마 3분의 2의 알몸, 반쯤 짓이겨진 딸기 그리고 스물 네 개의 포도알」이라, 마치 말 안 되는 이미지들의 유희 같다.
그래도 뭔가 맥락이 잡힐 듯한 걸 보면 극히 비밀스런 체험의 전의식적 이미지들이
환상처럼 나열된 것이 아닌가 싶다.
수록된 시집 해설에 의하면, 이 시에서는 스토리텔링보다 언어적 수사가 빛나고 있고
〈이불을 뒤집어쓰면 보이는 거인의 홍채, 그 속에 빛나는 설국 고요 속에 빛나는 태양〉 같은 이미지들이
성폭행사건이라는 현실 의미를 환상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미지로써 무의식의 어두운 심연과 의식의 태양 지평 사이에 통로를 뚫으려고 노력한 시라?
하지만 이 시의 중심 계기(Leitmotif)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첫부분
〈저녁 시간은 넉넉한 거니?〉와 화자가 주목하는 ‘너’라는 2인칭,
그리고 끝부분의 〈저 년 시간은 넉넉한 거니?〉의 언어 체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과의 사과, 이불을 뒤집어 쓸 때만 보이는 홍채,
그 외 퇴폐적 관능이 이미지들에서 불륜의 성애(性愛)에 대한
화자의 관음적(觀淫的) 폭로라는 독특한 맥락을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그러니까 짐승 같은 육교(肉交)에 빠진 ‘저 년’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남성에 대한 관망적 폭로가 상상의 동인(動因)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특정의 경험이 의식 혹은 의식·무의식 속에서 변형되거나 현실의 특정 계기에 의해 재구성될 때,
시 쓰기는 시작된다.
용광로 속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상상할 수도 있고,
사다리를 놓아 구름산의 수돗물을 먹는 자동차를 그릴 수도 있다.
말이 안 되더라도 시인은 상상을 따르며 따를 뿐 아니라 가공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이리저리 흩어놓기도 하고 이것저것 중첩시키기도 한다.
현재의 일반 의미나 문법도 고집할 것이 못된다.
새로운 상상의 결과인 시는 새로운 의미가 이끄는 새로운 문법, 새로운 질서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새로움은 혼돈과 망측(罔測)과 충격적 정황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관되게 겨누는 초점이 없다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가공할 만한 다탄두 포(砲)도 목표 없이 발사된다면 흉기나 위험물에 불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낮에도 뻘 속 같은 지하방
창문 사이로 간신히 들어오던 햇빛도 꺾여
게 구멍만 한 빛을 방바닥에 떨어뜨린다
그 따스함 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데
빛은 내 몸을 밀어내기만 하는데
―목포 뻘 낙지가 왔어요
펄펄 살아 있는 세발낙지요―
조용한 골목 안으로 낙지 장수 아저씨
세발 낙지를 풀어 놓는다
귀가 근질근질하다 빨판의 힘만으로
벽을 당기고, 밀며 경계를 넘어오는 낙지들
몸속 구석구석 꼬물대며 기어 다닌다
캄캄한 마음의 뿌리 헤집으며
줏대 없는 내 뼈들을 먹어치운다
살아남기 위해
천지사방으로 휘어질 수 있는 다리를 얻기 위해
그들은 뼈를 버리고 먹물을 얻었다
척척 들러붙어 느리게 움직이는 빨판 속으로
게 구멍 같던 햇빛마저 빨려들어 가고
바닥으로 가라앉은 나를 지우며
창을 넘어간다
밖은 그들이 게워놓은 먹물로 벌써 어두웠다
―채수옥, 「낙지」 전문
‘지하방, 게 구멍만 한 빛, 몸을 구겨넣다, 밀어내기만 한다, 냉기 피하기, 꼬물대는 낙지,
줏대 없는 삶’ 등등 어두운 이미지들이 연합하는 참담함,
그리고 낙지의 생명력, 빨판의 힘, 먹어치우는 힘, 거역할 수 없는 먹물 등의 이미지들이
참담한 비극을 먹물 같은 구제불능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모순의 언어들 이면의 맥락은 정연하다.
비극에 비극이 덧쌓이는 먹물 같은 밤 막다른 골목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가라앉는 나를 지우며’ 일어나는, 의외의 의지마저 읽게 한다.
이런 육화된 이미지는 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무 때나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타자 사이에 쌓이고 쌓인 이미지들이 시인의 열망과 열린 의식에 의해 두엄과도 같이
곰삭힌 상상력, 이미지는 곰삭힌 두엄에서 나올 수 있고,
식지 않아 거북한 냄새가 나는 오물상태에서 나올 수도 있다.
두엄을 토양으로 채소를 키우는 농부처럼 곰삭은 상상력을 가진 시인은 실한 결실을 맺게 되지 않을까 한다.
덧붙여, 상상이란 삶으로부터 일어나며 상상은 다시 삶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시인과 독자, 우리네 삶이 언제나 현재보다는 높은 단계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영원한 또 하나의 실재를 향한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시의 이미지란 파편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시 속에서 어떤 계기로 기능하느냐에 따라
방향과 수준이 가늠된다.
시에서의 상상력이란 이미지와 특정 경험의 남다른 연동 능력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
< ‘차이나는 시 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3. 9. 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69) 이미지, 비유, 차이성 - ① 이미지와 상상 2-2/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