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친구처럼 느껴지는 남편과 목포 완행열차를 타 보기로 하다.
순천에서 몇십 년을 살았지만 목포행 기차는 처음이다.
김밥을 싸서 가방에 넣고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설렌다.
남편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순천행 오전 9시 38분
출발하는 기차에 올라타고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는 간이역마다 정차하는 것이 참 재미있다. 시골길을 여유로이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겨울의 들판은 한가하고 바람을 가르고 기차는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도 지척인 거리도 십 여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메마른 나뭇가지는 앙상한 몸으로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고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듯 즐거워하다.
벌교10시02분
벌교를 진입하니 아직 허허벌판 같은 벌교에 장미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지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라고 고개를 돌려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벌교 역 작은 지붕에 얹은 기와의 모습이 단아하다 작은 마을의 기와집들이 옛날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예당 역 10시 20분
비닐하우스가 눈에 많이 띄어 시골 농가의 마을답게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이 엿보이다.
득량 역 10시 27분
작은 역일수록 벤치는 나무로 이루어져 낡아서 앉을 수나 있을까 할 만큼 초라하게 보인다.
반면 행정복지센터건물은 기이한 모습의 건물로 지어져 있다. 겨울 땅도 놀리지 않기 위해 개간을 하는 듯 붉은 황토가 건강하게 쌓여 있다. 대나무 숲들이 언덕을 차지하고 안락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둘러싸인 산들은 어머니 가슴에 안긴 듯 포근해 보인다.
골짜기마다 하냔 눈 골이 되어 겨울의 정취를 한껏 만끽하다.
보성 역 10시 50분
파드닥 작은 날개 짓하는 산새들이 귀엽게 재잘거리다. 겨울 한낮 들판이 한가롭고 자유롭다.
이양 역 11시 05분 능주 역
고속도로 주변 적벽 산이다. 강줄기 타고 흐르는 화순 적벽 들이 고고한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화순 역 11시 28분, 효천 역 11시 45분, 서광주 역 11시 50분, 송정 역 11시 56분,
광주는 대 도시답게 산업단지 건물이 눈에 많이 띈다. 겨울의 눈을 마다하지 않는 도시처럼 지붕 위에 하얀 눈이 이불처럼 덮이다.
나주 역 12시 15분, 다시 역 12시 21분, 함평 역. 무안 역 12시 37분, 순천에서 구경할 수 없는 눈이 이곳에 오니 하얀 겨울이 시작되는 것 같다. 눈이 부시다. 몽탄 성당에 사목 하시던 베드로 신부님이 이런 추운 곳에서 사목에 전념하셨던 곳이었구나. 이런 곳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음이 느껴져서 신부님을 위해 화살기도 드려본다.
일로 역을 지나 마지막 목포 역에 13시 05분에 도착하다.
목포 역에서 택시를 타고 목포 유달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다.
케이블카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갑자기 무서움이 느껴졌다.
손잡이 봉을 꼭 잡고 아래로 보이는 푸른 바다를 구경하며 가슴을 진정시켜 본다.
친구같이 동행해 주는 남편이 옆에 있어서 든든한 마음이어서 반려자의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어디를 가든지 관광지는 한쪽에서는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제 내렸던 비로 인해 질퍽거리는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니 바닷가 아래로 해안 둘레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운치 있고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손색이 없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는데 저만치 ‘오늘을 기억해’라는 글귀가 환영이라도 해주는 듯 반갑게 맞이한다.
유달산 정상은 다 오르지 못하고 다시 하산하여 기념품코너에서 마른안주거리를 한 봉지 사들고 목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목포 안녕 다시 올 것을 다짐하며 손을 흔들었다.
목포 완행 열차를 타고 추억 같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기에 행복한 하루에 감사했다.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