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친구가 오수에 있는 시골집에 가서 놀다 오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코로나로 거리두기를 하게 되면서 카페나 식당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집안에만 있다가 모처럼 나들이 가는 기분에 설렜다.
5인 이상 모임 금지로 부처님오신 날 경축 행사도 금지되어 국도는 한산했다.
오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여왕의 계절답게 쾌적하고 화창했다.
하늘은 푸르고 나뭇잎은 살랑거렸다.
친구 부부와 이런저런 가정사와 세상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골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신선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했다.
친구가 밭에 심어놓은 머위대를 채취하자고 하여
남편은 낫으로 베고 나는 잎을 따서 가지런히 그릇에 담았다.
친구 집 마루는 부근에서 날아온 송화 가루가 쌓여 노란 물감을 들인것 같았다.
친구는 우리를 앉히기 위해 걸레질을 하느라 분주하고
주인장도 그동안 비워둔 집 둘레를 정돈하느라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그러는 사이에 친구가 점심을 먹자고 불렀다.
이른 아침을 먹었기에 점심도 빨리 먹어야 한다며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으로 안내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맛깔나게 구워낸 고기에 상추쌈을 하다 보니 집에서는
다 먹지 못하는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식사를 마친 후 솥단지를 걸고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서 머위대를 삶았다.
바람이 불어대니 불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불을 땔 줄 모르는 남편을 보고 있는 게 안타까워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잔소리하는 입장이 되었다.
보자니 답답해서 직접 아궁이 앞으로 다가갔다.
나뭇가지를 정리하여 불을 지펴보려 했지만 연기와 화력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옆에서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직접 불을 때보니
이론적으로 아는 방법과 실제는 너무 달랐다.
나도 잘하지 못하면서 남편에게 참견했던 게 미안했다.
그러는 사이에 잘 삶아진 머위대를 친구가 집게로 조심스럽게 건져냈다.
우리는 타고 있는 나무에 물을 뿌려서 불을 끈 다음 함께 머위대를 샘가로 옮겼다.
수북히 쌓인 머위대 앞에서 언제 저걸 다 까고 집에 가나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서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머위대가 바닥이 보였다.
허리는 아팠으나 한 동안 먹을 수 있는 싱싱한 나물을 보니 수고의 댓가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시장에서 구입하여 조리만 해 먹던 머위대를 직접 채취하여
뜨거운 물에 삶고 껍질 벗기는 일도 처음인지라 수고로운 기쁨이 컸다.
시골 아낙들이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골 공기는 신선하였고 신비로움 으로 다가왔다.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자연의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을 맛본 하루였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제비가 지지배배 처마 밑을 분주히 오가고,
참새들은 호들갑스럽게 짹짹거리며 날아다니고
뒷산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조용한 마을의 수장처럼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연 속에 앉아 있으니 맑고 신선한 공기와 바람이 온몸을 맛사지 해주었다.
그래서 힘은 들어도 피곤함을 잊고 농사를 짓고 사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땅은 부지런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정성어린 손길에 보답하듯 신선한 먹 거리를 내 주는 것이리라.
가볍게 시골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는데 한나절 동안 세상을 다 얻은 마음으로 값진 체험을 했다.
색다른 경험들이 자연 안에서 포근한 어머니 의 고향 집에 온 느낌으로 힐링 하기에 충분했다.
거짓말하지 않는 땅 덕분에 부지런한 농부의 정성과 자연의 섭리를
소중하게 느끼며 꾸밈없는 소통과 진실의 대화를 이루어낸 날이었다.
인간과 자연은 떼어 내려 해도 뗄 수 없는 공생 공존의 관계다.
자연의 풍성함과 농촌 보존사회를 지켜가려는
농부의 꿈과 소망은 본디 인간의 본향 같은 곳이리라 생각하며 귀가 길에 올랐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