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
1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이 후”는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여 돌아온(14장) 후입니다. 아브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임합니다. 환상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계시하시던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민 12장 6절). 환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데 아브람과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의 심적 상태가 두려움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임하셨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인간이 설 때 오는 두려움입니다. 둘째, 북방의 연합군이 다시 쳐들어올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는 네 방패”라고 하십니다. 방패는 공격용 무기가 아니라 방어용 무기입니다. 전쟁을 할 때 적군의 칼, 창, 활 등을 막아주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방패시라는 것은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시편 18편 2절에 “여호와는 … 나의 방패시요”라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지키신다는 확신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또한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賞給)”이라고 하십니다. ‘상급’은 ‘보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상이라고 하십니다. 작은 상이 아니라 지극히 큰 상이십니다. 앞에서 아브람은 전쟁에서 얻은 것을 하나도 갖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것 갖지 않아도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에게 큰 상이라고 하십니다.
2절.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라고. 1절에 하나님께서 상급을 말씀하시자 묻는 것입니다. “큰 민족”을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창 12장 2절) 그것은 어찌 되었는지 묻습니다.
“나는 자식이 없습니다.”고 자신의 현실이 그렇다고 말씀드립니다. 이 얘기는 단지 지금만 없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속자를 제안합니다.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롯은 아닌 것 같고, 상속자를 다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람의 조급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조급한 것이 아닙니다.
3절.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
아브람은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드립니다. 주께서 “큰 민족”을 약속의 말씀으로 주셨는데 현실적으로 그 큰 민족으로 나아갈 씨를 주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큰 수확을 약속하셨는데 종자는 하나도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 계속해서 묵상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아브람은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제안을 합니다. 아브람의 집에서 태어나서 길린 자, 아브람에 의해서 양육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12장 7절에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언급하고 있는 씨는 단지 자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도 포함이 됩니다. 존 E. 하틀리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아브람의 말은 자식이 없는 부부가 노후에 그들을 부양하고 사망 시에 제대로 장례를 치러 주며 가족묘를 돌보아 줄 수 있도록 아들을 입양했던 고대 관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입양된 아들은 그들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렇게 아브람은 이미 엘리에셀을 입양했거나 그를 입양해 상속자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4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얘기하고 있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브람의 상속자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기른 자를 상속자로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아브람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브람의 자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브람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고 하십니다.
5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환상은 밤에 본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가 밖으로 나가 별을 본 것도 환상 속에서만 이루어진 것인지. 하늘의 뭇별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자손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다고 하십니다. ‘믿다’는 말은 굳게 신뢰하였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4-5절에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데 그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 그 믿음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는 것이 함의가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은 것은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람의 행위를 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의 행위는 완전하지 못한 면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브람 역시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로마서 4장 1-3절에 이 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의롭다 하심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4장 19-22절에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겼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현실은 아브람의 몸도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견고하게 섰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의로 여겼다고 하십니다. 우리 시대에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따릅니다.
존 E. 하틀리의 설명입니다.
「나아가 아브람의 불만은 때로 믿음의 사람이라도 낙심하고 좌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이런 감정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대답을 들은 즉시 계속 믿음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그때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종종 믿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아브람이 경험한 일이 바로 그러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나안의 이웃에게 들려주었더라면 그들은 아브람을 실성한 사람처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물리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가 약속을 믿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광대한 하늘의 별이라는 상징으로 자신의 약속을 재확인해 주셨지만, 가까운 장래에 그 일을 이루겠다고 확답해 주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계속 믿음을 행사하라고 요청하셨다. 브루그만의 말을 빌리자면, “그럼에도 약속을 믿고 황량한 현실에 맞서 희망을 품는 사람은 그 황량한 현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7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역사적인 서술을 합니다. 고대에 언약을 맺을 때 쓰는 방식입니다. 출애굽기 20장 2절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시기 전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람에게 주시어 소유로 삼게 하려고 아브람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냈습니다(창 12장 1절. 느 9장 7절). 아브람이 스스로 살 길을 선택해서 우르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우르를 떠나야 했던 것도 하나님의 역사이고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온 것도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다는 것은 이미 하신 약속인데 다시 그 약속을 확신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큰 민족을 이루실 것입니다. 아브람을 이끌어내시면서 이미 그 큰 민족을 위한 계획의 실행을 시작하셨습니다.
8절.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
하나님께서 7절에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7절에 하나님의 주권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두 가지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내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는 특성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입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의 요구는 불신앙이라기보다 확증을 요구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냥 “주시는가보다” 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냥 그런가보다, 그렇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관자적으로.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무관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확증의 표를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9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동물들은 아브람이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많은 동물들을 목축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0절.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중간을 쪼갭니다. 소, 염소, 양의 중간을 쪼갭니다. 새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동물의 중간을 쪼개는 것은 고대에 언약을 맺는 방식입니다. 언약 체결 방식입니다. 예레미야 34장 18-20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언약을 어기면 그 어긴 쪽은 죽임을 당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을 가져다가 중간을 쪼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동물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당시 풍습을 따라서 동물을 둘로 쪼개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언약을 맺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11절.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
‘솔개’는 후에 ‘부정한 동물’에 속합니다(레 13장 13절. 신 14장 12절). 솔개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언약을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적대 세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웬함은 애굽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맞닥뜨릴 적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언약을 맺는데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12절.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
해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큰 흑암이 임했습니다. 어둠, 연기,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17절). 하나님의 임재로 두려움도 함께 임하였습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반드시 알라”고 하시면서 아브람이 알아야 할 내용을 가르쳐주십니다.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체류 외국인)이 됩니다. 이방 사람을 섬기게 될 것이고 이방 사람은 400년 동안 아브람의 자손을 괴롭힐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40절에 430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의 자손은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23-24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된 노동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소리는 고통 소리였습니다. 그때에 “그의 언약을 기억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이방 나라는 애굽임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
“그들이 섬기는 나라”라고 했는데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부려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화시킨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징벌하겠다고 하십니다. 크게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후에 애굽에 내리신 10가지 재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역사를 행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자손은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옵니다. 출애굽기 12장 35-36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은금 패물과 의복 등을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마치 전쟁에서 이기면 전리품을 취하듯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여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5절.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장수를 약속하십니다. 창세기 25장 7절에 175세를 삽니다.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16절.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어가실 역사에 대한 조감도를 주십니다. 아브람의 자손이4대 만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고 하십니다. 4대에 대해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애굽에 내려갈 때부터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예로 레위-고핫-아므람-모세(출 6장 16-20절. 민 3장 17-19절. 26장 57-59절)를 듭니다. 그렇게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아모르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하였다고 하십니다. ‘아모리 족속’을 언급한 것은 딱 아모리 족속만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모르 족속은 큰 족속이고, 가나안 땅 족속을(15장 19-21절) 대표해서 언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당시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 옆에 살고 있었습니다.(창 14장 13절) 시간이 지나서 오랜 후에 가나안 땅 거주민들의 죄악이 많아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질 것입니다(레 18장 24-25절). “가나안 정복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얘기해줍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17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연기, 불’은 하나님의 현현의 모습입니다. 타는 횃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출 3장 2절. 13장 21절).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만이 지나가는 모습입니다. 8절에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확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면 동물처럼 쪼개질 것이라고 삶과 죽음의 약정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겠다는 뜻입니다.
언약은 첫째,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맺으십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로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약속의 내용이 주어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하셨습니다.
18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십니다. “내가”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그 경계도 가르쳐주십니다. 애굽 강은 팔레스타인 남쪽 경계라고 볼 수 있고 큰 강 유프라테스는 팔레스타인 북쪽 경계로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 전역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경계까지 거의 얻습니다(삼하 8장 6절. 14절. 왕상 4장 21절. 24절. 대하 9장 26절).
19-21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10족속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모두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이 그들 족속들을 볼 때에 어떤 관점으로 보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관점을 가지고 보게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들이 땅을 차지하여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간직된 유업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땅보다 더 엄청난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늘과 땅 전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