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하필이면, 이번에 재활에 성공한, 김진수와 강민영이 입대하네요. ,ㅡㅡ;..ㅠㅠ
저랑 친한사이 이승화형도..ㅎㅎ 잘 생긴외모 정보명 형도 입단 하네요...음..
다들 아쉽지만..가서 운동 열씸이 하셔셔...더욱 좋은 모습으로 다시 보았으면 합니다.
일단 정보명선수에 대해..(신인유망주)-(국가대표출신)
1997년 7월... 대구시민구장에서 있었던 제1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은 대구고와 순천 효천고의 대결로 압축되었습니다.
창단 후, 처음으로 전국대회 결승에까지 오른 효천고는 그 여세로, 우승을 넘보려 합니다. 당시 대구고는 에이스 김진웅을 내세웠고, 효천고는 특유의 짜임새 있는 야구로 대구고와 상대합니다만, 결국 이 대회 최우수선수상과 우수 투수상을 거머쥔 김진웅의 호투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효천고는 창단 후 전국대회 첫 준우승에 만족하는 분위기였지만, 남몰래, 땅을 치며 화를 삭히던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선수는 바로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자이언츠의 신인 내야수, 제1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미기상을 받은 "정보명" 선수입니다.
이듬해 1998년 6월... 제53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정보명 선수의 순천 효천고는 김주찬이 이끌었던 충암고를 2회전 상대로 만나지만, 그들의 활약은 2회전까지였습니다. 정보명 선수의 빛 바랜 홈런이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효천고는 다시금 9월에 열렸던 제52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청룡기의 2회전 탈락이 아쉬웠던 탓일까요? 순천 효천고는 황금사자기에서 당시 최강(1998년 전국대회 2관왕)이자 송승준이 이끌었던 경남고를 맞아, 정성기의 호투와 정보명 선수의 활약으로 7 - 2로 물리치고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1999년, 같은 효천고 출신의 투수였던 정성기와 함께 동의대에 입학한 정보명 선수는 이때, 동갑내기 투수 양성제를 만나게 됩니다. 야구부 꽃미남이라 불리우던 이 동갑내기 동급생들은 반드시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자고 다짐합니다.
정보명 선수가 입학한 1999년... 김민호 감독이 조련하는 동의대는 청주구장에서 열렸던 제33회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5일째 준준결승에서, 홍익대를 맞아 이 동갑내기들인 정보명의 홈런(1점)과 양성제의 만루포 2방(대단합니다... 양성제 선수.. 타자로 전업해도 좋은 활약을 펼칠거라 예상됩니다)을 앞세워 8강에 안착합니다.
1학년을 비교적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던 정보명 선수는 2학년과 3학년때(2000 - 20001년)도 좋은 활약을 펼칩니다. 전국대학야구추계리그와 대통령기에서 잇단 홈런을 쳐내며, 동의대의 거포로 확실히 자리 매김 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동기인 양성제 선수는 아무래도 본업인 투수보다 타격에 더 매력을 느낀 듯 합니다. 정보명 선수가 홈런을 치면 양성제 선수도 꼭 홈런을 쳐냈으니까요... 정보명 선수가 좀 더 많은 홈런을 뽑아내긴 했지만, 양성제 투수는 타격에 뛰어난 자질이 있는 선수임은 분명합니다. (이승학, 송승준, 추신수...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선수들이 이 시기에 활동한 타격이 너무나도 좋은, 투수였던 선수들이지요..)
대학야구에서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3학년이던 2001년, 정보명 선수는 대만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야구선수권(3월18∼26일)과 세계선수권대회(11월8∼28일ㆍ월드컵)에 참가할 국가대표 27명중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이때, 국가대표의 명단은 역대 최고는 아니지만, 화려했는데요... 잠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쉬운 것은 양성제 선수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인데요... 공격형 투수(?)였던 양성제 선수 대신, 정보명 선수와 같은 고교출신인 정성기 선수가 선발됩니다.
국가대표로 활약을 한 정보명 선수는 이듬해인 2002년(4학년), 동대문 야구장에서 있었던 제52회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서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을 맛보게 됩니다. 동의대 김민호 감독의 기쁨이야 말할 수 없이 컸겠지만, 그 핵심에 양성제 선수와 정보명 선수가 있었습니다.(다른 수훈선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자이언츠에 입단한 선수를 부각하는게 좋겠죠... (-_-;;))
2002년 8월 2일.. 이탈리아 메시나에서 개최된 제 1회 세계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게 된 정보명 선수는 비교적 국가대표 경험이 적은 선수들과 (이때, 양성제 선수도 대표로 뽑히게 됩니다) 함께 호흡을 맞추며 좋은 활약을 펼칩니다. 그것이 바로... 8월말, 청주에서 열렸던 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강호 연세대를 꺾는 중심에 정보명 선수의 활약이 자리잡은 밑거름이 되었던 거구요...
올해, 정보명 선수는 대학동기인 양성제 선수와 함께, 자이언츠에 입단했습니다. 야수와 투수의 차이는 계약금에서 먼저 차이를 보였지요.. 아쉽게도 억대 계약금을 받은 양성제 선수(1억 5천만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수라는 핸디캡이 그에게 준 것은, 2천만원 이라는 초라한(?) 금액이었습니다.
양성제 선수가 - 투수라는 보직의 특성상 - 1군 경기에 꾸준히 나오며,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순간에도 정보명 선수는 묵묵히 2군에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자이언츠의 모든 선수들이 그러하듯, 이른바 적응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정보명 선수가 다시 고교시절... 대학시절... 그 기량을 회복해서, 자이언츠의 확실한 영건(Young Gun)이 되는 날... 자이언츠는 또 다른 유망주를 맞이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갈마에 올리신 글 중에 롯데의 영건(Young Gun)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오정권 선생님의 의견과도 일치된다고 보여집니다. 비싼 몸값에 비해, 활약이 없었던 역대 신인(新人)들을 개탄하셨죠...
아직은 너무나 경험이 부족하고, 기존선수들에 비해, 노련함도 없지만 정보명 선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팬으로써 지켜보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정보명 선수의 글을 쓸 때는 좀 더 많은 자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활약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수비 범위가 넓고,(외야, 내야 가능) 타격 좋은 정보명 선수의 훌륭한 성장을 기대해 봅니다....
거인의 부활을 기원합니다........
강민영 선수- (만년기대주)
1998년 고교야구에서 경남고의 이름을 빼놓고 말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을 것입니다. 1998년 한해에만 전국대회인 청룡기를 비롯 제28회 봉황대기전국고교야구대회의 우승트로피를 차지하며 그 명성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경남고 에이스 송승준의 뒤를 받치며, 봉황대기 수훈상을 수상한 경남고의 또 다른 에이스... 바로 강민영 선수가 그 중심에 있었음을 부인하는 전문가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고교시절, 줄곧 국가대표로 활약한 강민영 선수는 고교 3학년이던 1999년 제18회 IBA ‘AAA’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8월5일 ∼ 14일)에서 마일영(대전고) , 이승호(군산상고) , 조규수(천안북일고) 등과 더불어 좋은 활약을 했으며 주니어 국가대표로 맹활약을 하여 확실히 " 강민영 " 이라는 이름 석자를 야구인들에게 각인시키게 됩니다.
이 당시 신인드래프트의 고교최대어 3인방은 군산상고의 이승호(SK)와 천안북일고의 조규수(한화) , 그리고 경남고의 강민영 선수였습니다. 롯데구단과 중앙대라는 양자를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강민영은 대학진학을 권유한 학교측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졸 최고대우를 약속한 롯데구단에 2억 8천만원이라는 금액(1년 전 김사율의 기록을 경신합니다)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직구 145km의 강속구와 제구력을 바탕으로 교교시절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강민영 선수는 롯데구단의 좋은 대우에 만족하고 프로에서의 활약을 다짐하며 맹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법칙은 강민영 선수를 절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우완정통파였던 강민영은 일본 가고시마에서의 전지훈련 도중 오른쪽 어깨의 통증을 호소합니다. 이미 그 전에도 신인들의 어깨부상으로 고액 신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전력이 있었던 롯데구단으로서는 강민영 선수의 부상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깨탈구증세로 정밀진단을 받아야 했던 강민영은 이 때문에 시즌 초반 출장이 어려웠고, 재활과 경기등판을 번갈아가며 하던 프로 첫해, 강민영은 승리 없이 2패, 37.2 이닝동안 거의 원포인트 릴리프라는 성적을 받아들게 됩니다.
프로 통산 3년간 아직 승리를 신고하지 못한 강민영 선수.. 2001년 6월 5일, 강민영은 현대와의 수원경기에 심정수에게 왼쪽 광대뼈 골절상을 입히며 위축되었고, 2002년 6월 왼쪽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재활훈련을 해야만 했던 강민영 선수는 너무나 아쉬운 선수입니다. 아직까지 제 기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고, 번번히 크고 작은 잔부상에 시달리며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민영 선수는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부지런한 선수입니다. 자신이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에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노력하는 강민영 선수는 분명 후반기, 그리고 다음 시즌 롯데 마운드의 핵으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승화 선수-(백인감독이 아끼던 유망주)
이승화 선수 기복이 없어 보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며, 파이팅도 넘치는 선수 입니다. 이번년도 23경기 나왔네요.
타율 214리에 12안타,병살타는 하나도 없네요. 사구가 10개나 돼군요.
안타와 2개 차이. 하하.
부산상고 시절, 타자에서는 이승화 선수가 빛을 냈습니다.
빠른발, 정교한 타격 그리고 2번타자나 9번 타자로서, 좋은 할략을 기대 해죠.
다만, 여기서 이승화와 더불어 김경언 선수가 있었죠.
이승화와 김경언을 저울질 하다가, 결국 이승화는 뽑았죠.
하지만, 지금 둘의 선수 활략이 너무 비교 돼네요. 역시 롯데 스카우트 눈은 좀 그런가봐요. 아무튼 잘 다녀 오시라요.
김진수선수-고교시절 당시 최고 포수.
고교시절 당시 최고 포수 였죠. 1998년도 경남고를 졸업하고 입단.
지금 현대에서 할략중인 이택근 선수를 안 뽑았던 것도, 바로 김진수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프로에선 들어와서 잔 부상에 씨달리며, 결국 첫해는
타석도 없이, 포수로만 3경기 나와서, 타율이 0이군요.
그뒤요 2000년까지 1군에 무대를 한번도 못 밟았네요.
2001년도 24경기 나와서 211리의 타율 4안타. 역시 기대에 부흥 못 하네요.
그 뒤로도 1군에 못 나와고요. 재활성공 했다던데, 아쉽군요.
하필이면 군대를 가다니..어차피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게 좋을지도 모르죠.
김진수, 이승화, 강민영, 정보명선수 잘 다녀 오셔요.
김진수는 제2의 진갑용,최기문으로 변신해주세요.
이승화는 제2의 정수근,강동우으로 변신해주세요.
강민영은 제2의 정민태,이승호으로 변신해주세요.
정보명은 제2의 김종국,박종호으로 변신해주세여.
첫댓글아.. 강민영.. 롯데의 마무리 후보 중의 한명인데.. 으음.. 근데.. 김사율 선수는 군대 안가나?? 이승화 선수.. 왼손외야수라는 점에서 손인호 선수를 생각나게 하는데요..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많은분들이 거포로 지목하는 김진수 선수의 입대는 조금 아쉽구요... 최기문, 허일상, 박경진으로 당분간 버텨야 할듯...
첫댓글 아.. 강민영.. 롯데의 마무리 후보 중의 한명인데.. 으음.. 근데.. 김사율 선수는 군대 안가나?? 이승화 선수.. 왼손외야수라는 점에서 손인호 선수를 생각나게 하는데요..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많은분들이 거포로 지목하는 김진수 선수의 입대는 조금 아쉽구요... 최기문, 허일상, 박경진으로 당분간 버텨야 할듯...
포수는 어차피 경험이 밑천이기 때문에 일찍 상무갔다오는게 나을수도 있습니다
박종윤은 언제 재대합니까?
박종윤은..1년이 지났으니..아마 2-3년 정도. 제가 군데를 안 가따와서, 잘 모르겐네여 ㅎ
근데..정보명 선수는..국가대표 출신인데 왜 가죠????
포수는 최기문 주전에 허일상 백업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요..그리고 프로 선수중에 아마 때 화려한 경력이 없는 사람이 드물죠..어떻게 보면..상무에서 손인호처럼 업그레이드되서 돌아오면 좋겠네요...강민영은 상무에서 몸 좀 만들어가지고 돌아오면 좋겠네요..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 강민영... 상무에서 김광삼처럼 구속이나 더 올리고 왔으면 합니다...
제가 볼때는, 너무..체격이 말란거 같아요 ㅎㅎ..체중을 늘렸으면 하는데. 너무 허약해 보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