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 28일, 동대문구장에서 '96년 전국대학야구 봄철리그 겸 애틀랜타올림픽대표선수 선발전이 전국 19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졌습니다. 전통의 강호 연세대는 춘계리그에 유독 강한 면모(94,95년 연속 우승)를 보였으나, 박재홍(현대입단), 임선동(당시 법정소송), 이정길(LG), 강영수(OB)등이 빠져 전력이 약화된 상태였고, 에이스 차명주(롯데행)가 졸업한 한양대는 이경필, 라형진, 최동진 등이 이룬 투수진에 신입생 경헌호가 가세,여전히 강한 전력으로 무장했었습니다. 인하대는 국가대표 왼손에이스를 노리는 김영수(부활의 날은 언제일까요... 진정 안타깝습니다)와 95년, 광주일고 에이스로 활약했던 서재응의 강속구를 최대무기로 춘계리그 우승을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뛰어나고 안정된 전력을 갖춘 팀으로써, 전문가들에게 우승순위 1순위로 꼽힌 대학은 바로 고려대였습니다. 유격수 김종국(해태), 2루수 김선섭(쌍방울), 3루수 홍원기(한화 ; 비운의 선수로 항상 손꼽힙니다)의 졸업으로 공백이 예상되었지만, 손민한 - 김선우 - 김병준 - 김형기로 짜인 막강 투수진과 손인호와 김동주, 그리고 진갑용이 구성한 중심화력은 이미 우승후보로 손꼽히기에 손색이 없었죠..
이미 지난 대학 야구 얘기를 서두에서 꺼낸 이유는 다름 아닙니다. 제가 화두(話頭)로 던진 "손인호.. 거인의 차세대 클린업인가...." 의 실마리를 96년 전국대학야구 봄철리그 겸 애틀랜타올림픽대표선수 선발전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손인호 선수는 경남고 중심타자였던 자신의 과거를 제쳐 두고라도, 이미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 고려대의 클린업, 3번타자 였음을 돌이켜 보고자 한 것입니다.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던 손인호 선수가 3학년으로 재학했던 96년 당시의 고려대는 백호기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 3연패(94 - 96년)와 대통령기 전국대학대회 3연패를 달성한 막강한 팀이었습니다. 고교투수 톱랭커였던 김선우(휘문고 졸)가 4년생 에이스 손민한과 함께 마운드 쌍두마차를 형성, 일본 요미우리로 이적한 조성민의 공백을 거뜬히 메운 마운드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4학년 진갑용을 중심으로 손인호 , 김동주(이하 3학년)의 집중력 있고, 파괴력 있는 클린업 트리오의 활약이 고려대의 전국대회 제패의 중심에 있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손인호와 김동주가 4학년이 되던 해인 1997년, 고려대의 클린업은 졸업 후, 3억 8천만원이라는 당시 야수 최고의 계약금을 받은 진갑용(당시 OB 입단)의 빈자리를 신강희와 김상훈(플래툰 시스템이었죠)으로 메웁니다. 그리고 춘계리그와 천마기, 대통령기 등에서 손인호는 김동주와 막강한 타력을 유감 없이 뽐냅니다.
1997년 9월 29일...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손인호에게 벌어집니다. 8년 프로 8개 구단의 연고지 고교 및 대학졸업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98신인 1차 및 고졸우선지명이 9월 29일 마감된 것인데요.. 당연히 롯데가 1차 지명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손인호 선수는 지명 받지 못했고, 이 대신에 롯데는 마운드보강이 절실하다는 코칭스태프의 의견을 수용, 잠수함 투수인 임경완(인하대) 선수를 1차 지명한 것입니다. (註 : 이 드래프트에서, 고교졸업 출신 중 입도선매(立稻先賣)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태는 광주일고출신 최희섭을 1차 지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최희섭은 고려대로 진학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최희섭이 국내로 복귀한다면, 최희섭의 우선권은 그런 이유로 현재 기아가 가지게 됩니다. 해외야구 출신이라고 해도 무조건 연고지 우선권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연고지명을 받은 선수에게만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이죠.. 신일고 출신으로 서울연고구단인 LG와 두산의 연고지명을 기다리고 있는 조성민도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내심 실망을 한 손인호는 이에 시위라도 하듯이, 같은 해 10월 7일 열렸던, 제52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라이벌 연세대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칩니다. 이미 백호기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는데 있어, 일등공신(一等功臣)이었던 손인호는 이 대회 결승전에서도 홈런을 때려내어, 춘계리그 MVP에 이어서 또다시 이 대회 "최우수 선수상(MVP)" 을 받게 됩니다. 이미 4년간 클린업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김동주 역시 대학 마지막인 이 대회에서 타격상을 받음으로, 손인호와 더불어 대학 최강의 클린업이라는 명성에 빛을 더합니다. 당연히 이 대회의 우수 투수상은 당시 2학년이었던 김선우가 가져갑니다.
이 대회가 끝나고, 10월 29일에 열린 98년 신인드래프트 2차 지명은 97년도 순위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드래프트 방식의 특성상, 97년 8위였던 롯데(당시 담당 - 김태민 스카우터)가 1라운드에서 손인호 선수를 지명한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손인호 선수는 고려대에서 투수와 외야수(주로 외야요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야(이때부터 간간이 1루수를 보기도 했었죠)수비를 보았던 경험으로 효용가치가 높은 뛰어난 선수로 당시 평가 받았습니다. 618명의 드래프트 대상자를 놓고 각자 12라운드씩 총 96명의 신인 선수들을 뽑은 98년 2차 지명은 당시 "고졸풍년(豊年) 대졸흉년(凶年)" 이라는 시류(時流)를 반영하듯, 고졸 선수들이 많이 뽑혔습니다. 당시 롯데가 뽑은 선수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수준급 유격수인 상무(尙武) 서한규(2라운드)와 경동고(백감독의 고교 후배입니다) 투수 전용종(3라운드), 그리고 휘문고 유격수 손용수(4라운드), 엄정대(건국대 ; 5라운드) 등이 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자이언츠 선수명단에서 이름이 사라졌지만, 당시 롯데는 짭짤한 소득을 올린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계약금 1억 8천만원과 연봉 2천만원으로 입단 계약을 맺은 손인호 선수의 당시 스카우팅 리포트(Scouting Report)를 살펴보면, " 180cm, 83 kg의 좌투좌타인 고대출신 손인호는 찬스에 강한 중장거리타자로 주포 김응국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 시즌 대학선수권대회 및 봄철리그 MVP를 수상한 손인호는 타격자질이 뛰어날 뿐 아니라 시속 140km를 웃도는 빠른 볼을 갖고 있어 투수로의 변신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이 당시에도 롯데는 손인호에게 투타(投打)에 걸쳐 좋은 활약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98년, 나란히 롯데에 입단한 경남고 듀오 임경완과 손인호는 1군 투수코치였던 고(故) 김명성 감독에게 의외의 말을 듣습니다. 이미 2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1차지명 되었던 인하대 출신 임경완에겐 선발투수로의 임무를, 그리고 손인호에게는 집요하게 투수로의 전환을 권유한 것입니다. 같은 나이의 경남고 동기생 임경완과 함께 경남고 투수진의 한 축으로 활약했던 손인호였지만, 한사코 타자를 고집, 김명성 당시 투수코치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던 것이죠.. 김용희 감독은 손인호의 타격을 보고 투수전향의 권유를 그만두게 지시합니다. 이미 손인호의 타격은 투수로서의 재질을 없애 버릴만큼, 뛰어났으니까요..
그 때문에 이미 1997년 이종운 선수(2번타자의 교과서였죠)를 한화로 트레이드하고, 김종헌(중견수) 선수(LG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를 방출했던 롯데는 당시 김대익, 박종일, 김영일, 손동일과 더불어 새로 입단한 "타자고집" 손인호 선수.. 그리고 입단예정으로 교섭중이었던 당시 실업 현대소속인 조경환 선수까지 6명의 외야요원을 바탕으로 외야 라인업 구축에 행복한 고민을 합니다. 김용희 감독은 시범경기의 성적으로 선,후배에 관계없이 발탁하겠다고 천명, 선수들간의 경쟁심을 유발합니다.
1998년 6월 1일... 손인호는 한화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시즌 1호이자, 프로 통산 15호째 연타석 3루타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7월 19일, OB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자신의 첫 홈런포를 신고합니다(이 날은 손인호의 날이었죠... 동점 홈런에 결승타점까지 뽑아내는 등 혼자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전반기 27경기에서 2할도 못되는 타율에 실책까지 겹쳐 투수로의 전향의사를 은밀하게 밝혀오던 손인호 선수는 이 당시 감독대행으로 사령탑에 앉은 김명성 감독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었죠.. 투수전향의 권유를 거부하며 타자로 고집하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 투수로 뛰겠다던 손인호 선수의 정신력을 질타한 것입니다. 이 효과가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몇일 뒤, 손인호는 그렇게 홈런을 신고하며 타격페이스를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프로 첫해인 1998년을 0.278의 타율과 홈런 4개, 23타점으로 마감한 손인호 선수는 고려대 재학 당시, 막강 클린업의 일원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너무나 컸던 것 같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 팀 마무리 훈련때부터 조심스런 투수전향테스트를 받아 온 손인호는 당시 투수 인스트럭터(Instructor)로 활동했던 일본인 이케다 씨의 권유를 받아들인 김명성 감독의 최종 결심에 따라 투수전향을 꾀하게 됩니다. 투수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이케다 인스트럭터와 양상문, 윤학길 두 투수코치의 집중적인 지도아래 투수수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경남고 시절 임경완과 더불어 부산고 주형광과 함께 초고교급 투수로 쌍벽을 이뤘던 기대주였고, 대학 4학년때도 가끔씩 마운드에 올라 당시 구속이 145㎞를 웃돌았던 손인호는 이때, 자신이 평생 함께 해야할 배트를 구단 창고에 던져 버립니다. 타자로서의 욕심을 버리겠다는 결심에서였습니다.
일본 가고시마에 차린 훈련캠프에서, 중간계투로 몇 차례 등판하며, 보직을 검토 중이었던 손인호는 끝내, 1999년 시즌이 시작되자, 다시 외야수로 복귀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투수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동계훈련을 투수연습에 다 바친 손인호의 타자로서의 성적이 좋을 리 만무했습니다. 김대익의 백업으로, 그리고 박종일과 좌익수 경쟁을 하며, 주로 대타로만 출장한 1999년 시즌 그가 기록한 성적은 58경기에서 0.269의 타율과 13타점, 그리고 0홈런이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시리즈에서 손인호의 활약은 거의 제로(Zero)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2000년 시즌을 맞이한 손인호 선수의 마음은 편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동계 훈련시, 누구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고, 많은 운동량을 소화해 내었습니다. 게다가 동계훈련때, 요미우리 출신인 모토이(本井) 타격 인스트럭터로부터 몸 중심을 뒤에 놓고 손목을 활용해 스윙하는 방법을 배운 후 다시 장거리타자로의 복귀를 천명합니다. 손인호의 이러한 활약은 지명타자의 자리를 두고, 김응국과 조경환이 경쟁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이런 활약이 시즌까지 이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정규시즌이 시작된 후, 손인호 선수는 다시 장거리타자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합니다.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106경기)했지만, 1개의 홈런과 23타점, 그리고 0.274의 타율을 기록하게 됩니다.
선수협 사태의 여파로 2001년 1월 30일 원래 입대 예정이었던 손인호는 2월 19일, 우여곡절 끝에 상무에 입대, 2군 리그에서 계속 운동을 하게 됩니다. 입대하자 마자, 손인호는 맹활약을 펼쳐 제51회 전국 종합야구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계명대를 꺾고, 상무가 결승전에 오르는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이 당시 허일상이 있던 단국대와 결승전을 가집니다). 그리고 제대를 몇 달 앞둔 2002년 9월 12일, 김광삼(LG)과 더불어 선수협이 주는 선수상을 받게 됩니다.
2군에서 끊임없는 활약과 다시금 정신적인 재무장을 한 손인호 선수는 2003년 4월 21일, 상무에서 제대, 롯데로 복귀하게 됩니다. 복귀 후, 연패의 나락에 떨어진 팀에서 이적생 "박연수" 와 "조효상" 과 함께 클린업으로 재무장, 용병이 오기 전 거인의 부활에 선봉장 역할을 합니다.
현재 30경기를 출장해서 정규타석을 채워가고 있는 손인호 선수는 홈런 1개를 포함 0.311의 타율로 팀내 3번타자의 입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현재 손인호 선수는 백감독의 확실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상무 입대 전, 과거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의 능력을 프로에서 검증 받지 못했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승부처에서 좌완투수가 나오면 어김없이 대타로 교체되는 수모(?)를 겪고 있는 "아직은!!" 감독에게 확실한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손인호 선수....
이제 다시 저는 글머리에서 꺼낸 화두(話頭)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 손인호.. 거인의 차세대 클린업인가.... "
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렇다" 라고 하고 싶습니다.
지난 성적을 바탕으로 보면, 손인호 선수는 "아직" 클린업에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프로 입단 후 타자로 적응을 못하자, 투수로 전향했고, 투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자, 다시 타자로 전향한 소위 프로답지 못한 근성 없는 심지를 보여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난 99년 한국시리즈와 2000년 플레이오프와 같은 큰 경기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못 보여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손인호 선수는 클린업에 포진할 능력이 있는 차세대 거인의 클린업입니다. 과거, 고려대 시절 붙박이 3번 타자였던 손인호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 아닌 출루율과 선구안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손인호 선수는 정규타석을 채운 조성환 선수 다음으로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며, 찬스를 4번 타자에게 이어주는 훌륭한 가교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홈런을 포함한 28개의 안타에서 TB(Total Base)가 39루타로, 장타율이 0.433이 됩니다. 다른 선수보다 타수가 상대적으로 적음을 감안하면,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타구의 방향이 이른바 부채살 모양을 기록하고 있어(바깥공, 몸쪽공 모두 공략), 쉬운 승부의 대상이 절대 아닙니다.
3번 타자의 역할은 클린업에서도 가장 다양합니다. 진루타도 칠 줄 알아야 하고, 한방을 포함한 장타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전의 이해도가 가장 높아야 하며, 무엇보다 상대투수와의 대결을 오래 가져가야 합니다(4번 타자와의 대결에 앞서 투수의 공 배합을 끌어낼 수 있는 만큼 끌어내야 합니다).
아직까지 손인호는 "절대적"인 클린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 차세대 클린업임은 분명합니다. 세대교체의 바람이 부는 자이언츠의 타순을 보면서, 손인호는 3번이라는 자리에 고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나이, 29세..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 김주찬처럼 유망주라 부르기에, 그리고 이대호처럼 거포라 부르기에 그의 나이는 너무 많고, 그의 장타력은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3번 타자감이 "아직" 자이언츠에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그를 차세대 클린업이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전술한 것처럼, 그의 능력이 3번 타자의 전형에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3번이라는 자리 이외에 손인호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뜻입니다. 선수에겐 개인적으로 불행하겠지만, 손인호는 3번 이외의 타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사견(私見)도 덧붙여 둡니다..
아직 감독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당당한 자기스윙으로, 과거 막강 고려대의 클린업이었던 손인호 본연의 모습을 하루 빨리 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거인의 부활을 기원합니다.....
* 상무시절, 그리고 고려대 시절(아주 잠시죠) 1루 수비를 본 경험이 손인호 선수의 운용에 더욱 넓은 여유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내년 시즌을 대비하는 황이갑, 이대호 두 선수를 차치 하더라도, 지금의 롯데는 여유있고 안정된 내야진 구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손인호의 수비적 활용에 관해서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음을 덧붙여 둡니다..
손인호 선수 다듬으면 왕년의 김기태급입니다.좌타자 최다홈런도 경신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가 손인호 입니다.롯데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구요.갠적으로는 타율보다는 홈런을 많이 때려내는 타자가 되었으면 좋겠네요...손인호를 내년시즌에는 전경기에서 보고 싶네요.외야수비가 힘들면
객관적으로 손인호의 펀치력이 중심타선에 들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큼지막한 플라이를 때려줄 선수도 변변치 않은 롯데의 전력으로 봐선 중심타선에 우익수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고 충분히 해줄 능력이 있습니다... 페레즈는 일단 어느 정도 검증이 됐기 때문에 센터필더로 계속 기용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첫댓글 내야수들이 대체로 우타자인데다 롯데는 외야수인 이시온과 페레즈가 우타자이기 때문에 왼손외야수가 꼭필요하죠.
타선이 좌우균형이 잘맞으면 상대 허리진을 효과적으로 소진시킬 수 있으므로 중반이후 힘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이렇게 볼때 손인호의 분발은 자이언츠의 전력강화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가가합니다
예..저도 그렇게 생각함...하지만, 이시온은 퇴출인데..음; 3번이 좋겠죠? 4번은 마해영이 오면- 페레즈-5번
1999년 손인호는..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마무리로 나온 임창용을 두들겨 3점홈런을 뽑아내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죠.. 경기는 스미스의 끝내기로 끝났지만.. 손인호의 홈런은 매우 의외였죠... 그것남 기억이 깊이 박혀있네요~~
한편.. 김종헌 선수는.. SK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진지청년교수님이 직접 적으신건 아닌것 같은데 출처를밝혀주셨음 합니다..플레이오프에서 대타로 나와서 3점홈런은 그날경기를 잃었지만 그홈런을 계기로 임창용이 플레이오프에서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영향력을 미쳤다고 할수 있습니다..
손인호선수 잘생겼죠 ㅎㅎ;;;
손인호 선수 재능은 인정하겠는데 시즌중에 1사 3루,혹은 무사 3루에서 플라이 하나 못 때려낸 경우가 많은걸로 기억되네요...
공태랑님!!!!!!!!!!!!!!!!!! ^ ㅠ ^ 메렁!
박정태급 3번 타자가 딱 어울리는군요.제 생각엔. 1번 전준호 2번 이종운 3번 박정태 4번 김민호 5번 김응국 6번 박계원 7번 한영준(조성옥) 8번 김선일 9번 공필성 ...대략 92년도가 생각나네
클린업을 구성할 만한 좌타자가 없는 롯데에선 충분히 3번이나 5번을 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올해 보다 내년에 더 좋아질 선수라고 본다면 더욱 그렇고...
손인호 선수 다듬으면 왕년의 김기태급입니다.좌타자 최다홈런도 경신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가 손인호 입니다.롯데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구요.갠적으로는 타율보다는 홈런을 많이 때려내는 타자가 되었으면 좋겠네요...손인호를 내년시즌에는 전경기에서 보고 싶네요.외야수비가 힘들면
상무에서 내야수를 보았던 경험을 살려 내야 수비도 척척해내리라 믿습니다..아니면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투수로 전향했을때 처럼 다시한번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해도 좋을듯....
99년 시즌 시작전에 김명성 감독 권유로 투수수업을 받았다가 페넌트레이스에는 한번도 출장하지않고 시즌전에 그만 뒀습니다... 그리고 99년 플레이오프 1차전때 동점 스리런 홈런은 99년 손인호가 기록한 유일한 홈런이었기 때문에 더욱 의외였죠...
객관적으로 손인호의 펀치력이 중심타선에 들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큼지막한 플라이를 때려줄 선수도 변변치 않은 롯데의 전력으로 봐선 중심타선에 우익수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고 충분히 해줄 능력이 있습니다... 페레즈는 일단 어느 정도 검증이 됐기 때문에 센터필더로 계속 기용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아.. 이시온을 클린업에서 뺀다면.. 롯데의 클린업은 또 한번 볼만하겠군요.. 손인호, 윤재국, 페레즈의 외야에.. 김주찬 지명타자?? 이대호가 클린업에 들어갈라나?? 으음...
손인호는.. 서용빈형의 좌타자라고 생각하는데요... 전준호, 정수근 보다는 홈런이 많지만.. 홈런이랑은 거리가 좀 있는 선수 아닌가요??
제가 보기엔 손인호 선수는 분명 롯데의 좌타 라인의 핵이죠 시즌 타율은 2할8푼에서 3할2푼까지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선수라고 봅니다. 클린업 트리오에 들수 있느냐는 물론 올해 성적만으론 가능하다고 봅니다
3할 2푼은 좀 과한거 아닌가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