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6월9일 일요일
오늘의역사 6월9일
1987년 6월9일...서울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당시 경영학과 2학년생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고,
도서관학과 2학년생이었던 이종창씨가 뒤에서 그를 부축하고 있다
1987년 6월 9일 학교 교문 앞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연세대 경영학과 2년 이한열이 전경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오늘의역사(1900년대)6월9일 🌹
🌳17년 조선총독부, 면 신설제도 공포(10월1일 실시)
🌳47년 치아의 날 제정
🌳54년 제3대 국회 개원, 의장에 이기붕. 부의장에 최순주, 곽상훈 선출
🌳54년 한국일보 창간
🌳06년 중립국 감시위원회 적성(공산권) 대표 철수
🌳58년 제4대 민의원 개원(의장 이기붕, 부의장 이재학 · 한희석)
🌳66년 민중당 박한상 의원이 괴한에게 습격당함 : 경찰, 범인을 조작하려다 물의를 빚어.
🌳67년 연세대에서 부정 선거 규탄시위 발생, 이후 전국으로 확산.
🌳68년 제2대 대법원장에 조용순 임명(16일 국회 인준)
🌳70년 서울지하철 건설본부 발족
🌳75년 서울남대문시장 화재 (800점포 전소)
🌳80년 중소기업 한달 동안 53개 업체 폐업
🌳81년 건설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전국 22개시 31개 지역의 346만 평을 고시
🌳81년 국가안전기획부, 일본 거점 간첩단 손유형 (52)등 6명을 검
🌳81년 미국 하바드 대학에 한국학연구소 설립
🌳83년 김영삼 전신민당총재, 민주화 주장하며 시작한 단식을 23일만에 중단
🌳87년 연세대 이한열 군, 교문앞 시위중 경찰이 쏜 최루탄파편에 맞고 부상, 7월5일 사망
🌳87년 서방 선진7개국(G-7), 서울올림픽공동지원에 합의(이탈리아 베네치아)
🌳87년 서울교육대 1∼3학년생, 구타를 이유로 학장 퇴진을 요구한 동료학생에 동조, 수업거부
🌳89년 부산지검 마약전담반은 445억원대의 히로뽕 밀매조직을 적발, 최재도씨를 구속하고 2명 수배.
🌳89년 문교부 감사에서 고려대 한림대 등 5개 대학이0 856명을 부정 편입학 시킨 사실이 드러나
🌳89년 전국교원노조 위원장 윤영규씨등 간부5명 구속
🌳89년 서울 25개 대학생 8000여명, 6·10 민주항쟁 계승·평양축전참가 결의 대회 경찰과 격렬한 투석전
🌳90년 월드컵, 한국예선탈락-이탈이라 월드컵, 서독 우승
🌳90년 한·소관계 정상화 후속조치 마련위해 청와대에 북방정책·남북관계·대소경협 등 3개 대책반 구성
🌳91년 부산 경남북 전남북 제주지방에 최고 205mm 까지의 폭우가 쏟아져 7명이 사망 또는 실종.
🌳91년 전국 교수협의회, 정원식총리 서리 폭행사건은 폭력정권 하수인에 대한 분노의 표시 라고 주장.
🌳92년 정부는 유엔평화유지활동 협력법안의 일본 참의원 통과에 `일본군의 해외파병 신중' 촉구.
🌳92년 서울시교육위는 오는 2학기부터 재학생들의 학원 수강을 전면 허용키로 확정.
🌳92년 국방부는 월남전 참전자의 고엽제 후유증 신청을 받은 결과 지난 5일 현재 모두 556명.
🌳96년 충북 진천에 보탑사 3층 목탑 준공
🌳96년 제35회 세계광고대회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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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9일 연쇄 살인범 유영철씨에 대해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역대 살인 사건 중 가장 많은 21명을 살해한 피고인은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으로 스스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해 개전의 정이 전혀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유씨는 이에 대해 "어떤 명분으로도 사람 목숨을 함부로 한 잘못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다만 저같은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유영철 같은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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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9일..경상북도에서 독도의 달을 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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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6월9일..태국 푸미폰 국왕, 즉위 50주년-살아있는 최장기 재위 입헌군주.
정략 결혼이 아닌,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여자와 결혼한 왕이 있습니다.
태국 전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라마9세1927~2016)입니다.
그는 관습적으로 후궁을 들이던 이전 왕들과 달리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했습니다.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있는 부처'라 불렸던 그의 사랑 이야기 입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실명, 옆을 지켜준 그녀
푸미폰 국왕이 운명의 상대 시리낏 왕비를 만난 건 스위스에서 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고, 그녀는 프랑스 주재 태국 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왔었습니다.
그러던 중 푸미폰 국왕은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치고 한 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병상에 누운 그. 시리낏 왕비는 밤낮으로 병문안을 가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푸미폰 국왕이 왕위에 오르기 일주일 전에 결혼했습니다.
당시 푸미폰 국왕은 국민들 앞에서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할 것’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는 2016년에 서거할 때까지 약속을 지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