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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주장
한민족 역사 중 가장 자랑스러운 시기로 인식되고 있는 고구려사가 통째로 왜곡될 위기에 처했다. 최근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흡수하기 위한 다각적인 시도를 벌이고 있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 고대사 체계가 뿌리부터 뒤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평정한데 이어 영토 범위가 비슷한 고조선과 발해 역사까지 중국의 역사로 치부해 버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사의 무대는 한반도 대동강 이남 지방으로 축소될 가능성마저 있다.
지난해 7월 9일. 중국 장춘에서는 100여명의 학자가 참여한 대규모 세미나가 열렸다. 무려 5일 동안 계속된 세미나에서 중국학자들은 고구려에 관련된 논문을 70여편이나 쏟아냈다. 90년대 이후 중국학자들이 발표한 고구려 관련 논문은 전체 목록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국 정부와 학자들은 구체적인 연구 성과를 외부로 공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중국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수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중국의 연구 내용은 지난 6월 중국 '광명일보'에 게재된 논문이나 한국 역사학자들이 개별적으로 얻어낸 단편적 자료를 통해서나마 알려지고 있다. 중국학자들은 고구려사를 훔쳐가기 위해 어떤 주장을 하고 있을까.
중국학자들의 고구려 연구는 한국사의 일부 또는 한·중 공동의 역사로 인정받던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완전 편입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고구려를 설립한 민족을 한민족과 분리시켜야 한다.
고구려는 한민족(韓民族)의 조상인 예맥(濊貊)족이 세운 나라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중국학자들은 예맥족과 한민족의 연관성을 없애기 위해 "예맥족은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인 '상인(商人)'의 후손"이라는 가설까지 만들었다. 중국의 의도대로 예맥족이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되면 고구려 왕조 역시 독립왕조가 아닌 중원왕조와 종속관계를 갖는 중국 지방 정권 정도로 추락하게 되고, 한국사와의 연관성이 사라지게 된다.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가 현재 중국의 국경 내에서 건국되었다는 점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 중심의 역사 기술이 아닌, 현재 중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역사 기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셀 수 없는 소수민족의 역사가 중국 역사로 편입됐다.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한민족의 역사였던 고구려사를 새삼 중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원왕조가 고구려의 세자 책봉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도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킬 때의 주요 논거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왕들이 중원왕조에게 공물을 바치고 인질을 보내 스스로 중국의 변방 정권을 자처했다"는 주장한다.
중국의 '고구려 흔들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27년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상황을 두고 중국 학자들은 "현재의 중국 영토 바깥으로 고구려사 중심이 옮겨졌지만, 여전히 고구려는 중국 변방의 역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 학자들은 고조선 이후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민족의 역사적 근거는 대동강 이남에 국한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영토에서 벌어진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한다"는 그들의 역사 기술을 원칙을 깨뜨리면서, 중국의 역사 범위를 한반도 북부 지역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그 밖에 중국 학자들은 수·당의 고구려 원정 성격에 대해 "침략 전쟁이 아니라 고구려 지배층의 실정을 응징하기 위한 소수민족 통제과정"으로 포장하고 있고, "고구려 멸망 이후 유민들이 대부분 한족(漢族)에 흡수됐다"며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심지어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게 아니다"며 송나라 '고려전' 등 자국 역사서의 내용까지 부정하는 생떼를 쓰기도 한다.
중국은 중국 국경 내에 있는 고구려 문화유적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해 "고구려 유적은 중국 안에 있다"는 사실을 세계적으로 공인 받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은 고구려 첫 도읍지 졸본성(卒本城)자리인 랴오닝(遼寧)성의 환런(桓仁)과 두 번째 도읍지 국내성(國內城)터인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일대의 고구려 유적군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2년 유네스코 총회에 평양의 고구려 벽화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려 했지만 결국 중국이 이의를 제기해 실패했다. 한국외국어대 여호규 교수는 "중국이 북한 지역의 고구려 유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을 막은 것은 자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등록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며 "중국이 의장국 지위를 이용해 고구려 유적을 중국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면 세계적으로 '고구려 문화유산이 중국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국의 입장
올바른 한·중 관계 정립을 위한 한국사 관련 학회 공동성명
중국은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왜곡을 즉각 중단하라
지금 중국은 2002년부터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국책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동북지방(만주지역)의 역사와 제반 현상에 대한 연구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고구려사를 비롯해 고조선사와 발해사를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어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고구려사를 일방적으로 중국사로 귀속시키는 한편 고구려의 활동무대였던 한반도 북부까지 중국 고유영토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나아가 고조선사도 인정하지 않고, 발해사를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에 불과하고, 공간적으로는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 국한된다.
그렇지만 고구려사는 엄연히 한국의 역사이다. 우리 민족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농경을 영위하던 예맥족(濊貊族)과 한족(韓族)을 근간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이들은 고조선 멸망 이후 만주와 한반도 각지에서 다양한 정치체를 이루다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으로 정립되었고, 통일신라와 발해를 거쳐 고려로 통합되었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중북부를 활동무대로 삼아 고조선에서 삼국을 거쳐 통일신라·발해로 이어지는 한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방치한다면, 한국사의 근본 체계가 흔들리고 민족 정체성마저 상실할 위험이 높다. 민족사와 민족 정체성의 상실은 결국 민족의 존립마저 위협할 것이다.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 역사왜곡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서술해야 한다. 사실을 왜곡한 역사는 허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사료를 왜곡하고 심지어 억지 주장까지 늘어놓고 있다. 고구려의 족속 계통은 중국 한족(漢族)과 명확하게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한족(漢族)의 한 갈래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을 중국 고유영토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수 양제나 당 태종의 고구려 침략을 중국의 통일전쟁이라고 미화하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애국주의 역사관이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이는 명백히 패권주의 역사관의 발로이다. 패권주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서술하면 주변국의 역사를 왜곡하게 된다.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제(日帝)의 침략을 미화한 결과, 한국사와 중국사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었던가. 이에 한국과 중국은 한·중·일 우호관계의 훼손을 염려하며 강력히 항의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는 중국이 과거사를 왜곡하여 더 이상 한·중 우호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과 중국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우호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 이러한 우호 협력관계는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굳건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로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과거와 현재는 별개가 아니라,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 만약 중국이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왜곡을 계속 추진한다면, 상호 불신만 깊어지고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왜곡의 또 다른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우리는 한중 양국이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상호 신뢰와 우호관계를 정립하기를 바라며 양국 정부에 다음 사항을 촉구하는 바이다.
첫째, 중국 당국은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하여 추진하고 있는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왜곡을 즉각 중단하라.
둘째, 외교통상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시정을 즉각 요구하라.
셋째, 교육인적자원부는 고구려사를 비롯한 고대 동북아시아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연구센터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
넷째, 문화관광부는 북한이 UNESCO에 신청한 북한지역의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북한 당국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라.
2003년 12월 9일
경기사학회, 고려사학회, 대구사학회, 부산경남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전남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호서사학회 (이상 17개 학회, 가나다순)
고구려사와 한민족사를 분리시키기 위한 중국 학자들의 연구는 대부분 고문서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 고고학적 증거는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를 놓고 논증하다 보면 중국의 주장이 상당 부분 허구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최종택 교수는 "한족(漢族)과 고구려의 유물 유적을 비교하는 심포지엄을 검토하다 포기한 일이 있다"며 "중국 유물과 한민족 조상이 자리를 잡았던 중국 동북부의 유물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기원전 3, 4세기경 고구려 영토에서 나타나는 적석총(돌을 쌓아 만든 무덤)은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곽을 쌓는 기술도 완전히 달랐다. 한족과 한민족의 조상은 돌을 다루는 기술 자체가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중국이 문제삼고 있는 시기 중 하나인 고구려 건국 초기에는 고고학적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전주 우석대 조법종 교수는 지난 9일 열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학술발표회'에서 "고고학적으로 중국의 청동기문화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지석묘와 비파형동검문화 등 동북지역의 독자적 문화내용에 중국학계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중국문화와의 차별성과 독자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최광식 교수는 "고구려는 중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은 바 있다"며 "고구려가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의 정권이었다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고구려인들이 만주에 뿌려 놓은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고구려는 한민족의 조상임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 학자들이 현재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 유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 중국 당국은 한국 학자들이 만주 지역에서 고고학 연구를 하는 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하거나 아예 금지하고 있다. 만주를 찾는 한국 학자들은 주위에 행선지를 알리지 않거나, 친분이 있는 외국 학자들로부터 중국의 한민족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다행히 최교수는 "중국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는 상당 부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드러낼 필요가 없었던 자료들이 새삼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중국이 자국 영토에 있는 고구려 유물, 유적을 고의로 왜곡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교수는 이에 대해 "유물, 유적을 왜곡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고구려 건국 시기에 세워진 성 등을 보수하며 시멘트로 칠하는 등 졸속 보수가 이뤄지고 있어 우려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중국 학자들이 고구려 유적을 발굴하면서, 발굴 결과를 바로 보고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최교수는 "일반적으로 발굴 후 2년 정도 지나면 보고서나 나오지만 중국은 2년 이상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며 "발굴 결과를 어떻게 가공하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조사가 어려울 경우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북한에 있는 고구려 유적 연구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북한에 있는 고구려 유적 연구를 통해 고구려사와 한민족사의 연관성을 증명하고, 중국 주장의 허구를 밝혀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은 역사 교류에는 매우 우호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미 지난 3월 서울에서는 '특별기획전 고구려!-평양에서 온 무덤벽화와 유물' 전시회가 열린 바 있다. 내년에는 부산 전시회가 계획돼 있다. 최교수는 북한과 교류를 바탕으로 고고학적 증명은 물론 평양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의 대응 방안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내년 6월에 열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에서 중국 지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막는 것이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최광식 교수(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은 9일 열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학술발표회(이하 학술회의)'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다면 고구려의 역사가 마치 중국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될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이 신청한 평양의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평양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려 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당시 유네스코는 "북한의 유적은 접근성과 보존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선정을 미뤘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최종택 교수는 "북한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하지만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특히 남북 공조를 통한 대비를 강조했다.
"절실한 문제입니다. 북한 관광도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과 공조해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협의하고, 보존 작업에 도움을 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년 6월에 열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가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다는 점. 중국은 개최지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지안의 유적에 대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고대사학회 등 학자 집단은 국제 학술회의 등을 준비하며 쑤저우 회의에 대비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쑤저우 대첩을 준비하자"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학자들은 여론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외대 사학과 여호규 교수는 "정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국민들 사이에 여론이 형성되어야 정부가 움직임을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을 바탕으로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경희대 임기환 교수는 "중국의 경우 고구려사 왜곡을 위해 수백억 단위의 돈을 쓰고 있지만, 우리는 억 단위도 안된다"며 정부의 안이한 자세를 꼬집었다.
학자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고구려사를 비롯한 고대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기관이 만들어져야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호규 교수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힘으로 중국에 가서 자료를 수집한다"며 "국내에는 국내외 역사적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거나, 자료 수집에 도움을 주는 기관이 없다"고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광식 교수도 "연구센터를 설립해 고대 동북아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먼저 자료 수집 등 기본적인 연구작업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구심점이 생겨야 중국의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그들이 왜곡한 부분을 찾아내 사실을 규명해야 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뜻이 있는 일반인도 동참이 가능해 진다.
학술발표회에서는 "IT 강국의 이점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수백명의 학자들이 고구려사와 관련된 논문을 해마다 수십~수백 편을 쏟아내고 있는 중국의 학술적 인해전술과 물량공세에 대해 국제화와 정보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광식 교수는 "중국의 역사 왜곡 관련 홈페이지 하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중국의 역사왜곡실태와 문제점을 설명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IT강국의 면모를 살려야 한다"고 한다.
고구려사 연구결과를 영문으로 번역해 전세계 학자들에게 중국의 역사왜곡 실태를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학술발표회에 참가한 한 학자는 "중국이 정치적인 목적 때 억지로 역사를 왜곡하는 마당에 우리가 연구를 아무리 많이 해도 반응이 없을 것"이라며 "역사의 진실을 번역해 미국과 유럽 등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루투갈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구려사를 지키려는 노력은 성공할 수 있을까. 최광식 교수는 "우리의 연구 결과를 들고 중국과 맞붙는다면 해볼만하다"고 말했다. 최종택 교수 역시 "우리는 지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밀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여호규 교수는 "중국학자들도 실토하듯 과거의 역사를 현재를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이고,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관련 학자들은 국민적 관심과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명백한 진실을 주장하는 한국이 불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 여론이 부정확한 정보에서 비롯되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를 때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학술발표회에서 만난 한 사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라며 "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은 가벼운 분노가 난무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다소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 사학자는 "현재 연구 결과를 가지고도 충분히 중국의 역사 왜곡행위의 허구를 증명할 수 있지만, 조선족 문제도 중국의 눈치를 보는 마당에 우리가 아무리 진실을 내밀어도 효과가 있겠느냐"며 "국력의 문제, 인문학 홀대 문제가 겹친 총체적인 위기 국면"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학자는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는 만큼,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책들을 신속하고, 꾸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