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뇌가 하나의 엔진으로서 어떻게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연구해 왔습니다. 뇌는 의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럼으로써 뇌는 의식적 느낌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도대체 뇌의 물리적인 움직임이 그런 의식적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는 전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빨간색을 보거나 소금 맛을 볼 때 그 경험은 너무나 분명합니다.그런데 도대체 그 분명함이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빨감이라는 것, 소금맛이라는 경험이 어떻게 우리에게 그렇게 생생하게 생겨나는 걸까요.
이 궁금증 이 생겨난 후로 저는 평생 뇌를 연구했습니다. 1972년에 뉴 사이언티스트 라는 학술지에 모든 것을 보는 눈먼 원숭이라는 제목으로 한 원숭이 사진이 게재 되였습니다. 헬렌이라는 교수는 제 지도교수였던 래리 실험실에 있었습니다. 헬렌은 뇌의 시각 피질이 제거된 상태였죠. 처음 시각피질이 제거되고 1년 정도 후에 제가 헬렌을 봤을 때 헬렌은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 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궁금증을 품었습니다. 포유류에게는 눈에서 뇌까지 정보가 전달되는 경로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물고기나 파충률로부터 물려받은 더 원시적인 경로로 중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 최근에 진화된 경로가 있죠..헬렌의 경우 피질 쪽의 시각 시스템은 제거 됐지만...더 원시적인 경로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파충류가 그 경로를 통해 사물을 보듯이 헬렌도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요..저는 이걸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헬렌과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줬습니다. 몇시간이 지나자 헬렌은 제가 가지고 있는 사과를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잡으로 오기 시작했죠.. 일주일이 지나자 작은 불빛을 만지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7년후에 헬렌은 복잡한 방 안에서 장애물들을 피하며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주울수 있게 됐죠.
헬렌이 활동하는 걸 처음 본 사람은
눈이 멀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와이즈크란츠와 저는 이제 수술 때문에 좌뇌의 시각피질을 제거한 인간환자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DB라고 불린 환자죠.. DB는 시각의 장에서 오른쪽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DB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뭔가를 볼수 있다면 뭐가 있는 것 같은지 추측해 보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DB는 사물의 위치와 모양을 추측할수 있었습니다. 자신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사물의 위치와 모양을 올바르게 말하수 있었죠.와이즈 칼나츠는 이 능력을 블라인드사이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블라인드사이트를 가진 사람은 빛을 통해서 전달되는 시각정보를....보이지 않는데 주변 사물을 안다. 감각이 없는데 지각은 있다는 퍼즐에 처해있는 거죠
그런데 이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저는 곧 깨달았습니다.진짜 퍼즐은 감각이 없는데 지각이 있는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경우 감각이 있다라는 거죠 만약 본다는 감각 경험이 없이도 사물의 위치와 모양을 느낄수 있다면 우리는 왜 무언가를 보는 걸까요? 블라인드 사이트를 가진 사람은 무어가라는 대상이 없어도 봅니다.
저는 이걸 nothing을 본다고 표현합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nothing이 아닌 something을 보는 걸까요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자극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각 경험에 시각 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에 대해서요왜 생겨나는 걸까요 ? 지각은 외부세계에 대한 것입니다. 반면 감각은 개인적입니다. 감각은 나에 대한 것입니다.
사과가 빨갛다. 바위가 단단하다. 이런 걸 인지하는 거죠..나에게 무슨 일을 일어나고 있으며내가 그걸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관련하여 고통은 내 발가락에 일어나며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빨간불은 내 눈에 들어오며 내가 그걸 자극적이라고 느낍니다. 철학자들은 이런 경험을 현상적 경험이라고 합니다.뇌가 나타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각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일어나는 일과 그것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바를 이게 무슨 소리냐면 감각 경험에는 두 단계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빨간색 네모를 본다고 해보죠. 그러면 첫째로 물리적 전달 과정이 있습니다. 눈에 도달 한 빛을 뇌가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는 거죠. 그리고 둘째로 인지적 작동과정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전달된 것을 현상적 빨감이라는 아이디어로 해석해 내는 거죠..
비유를 들자면 모비딕 이라는 책을 볼 때 글에는 작가가 쓴 언어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인지적 작동과정을 통해 그 책을 흰고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을 해내죠...여기서 중요한 건 모비딕이라는 물리적 책 자체에는 흰색도 없고 고래도 없다는 겁니다 .근데 우리가 해석을 통해 흰고래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거죠 마찬가지로 뇌가 물리적 빛에 반응하는 과정에는 현상적인 빨감이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일단 빛이 들어오면 그 빛에 뇌가 반응하고 그 반응에 대한 해석으로 저는 이런 관점에서 과연 진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외부자극에 대한 저는 이런 관점에서 과연 진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외부자극에 대한 인간의 해석방식이 즉 현상적 경험으로서의 감각이 어떻게 나나타게 됐는지 연구했습니다.
감각 경험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감각의 기원은 자극에 대한 반응 제 생각에 감각은 몸 표면에 닿은 자극에 대한 적극적 반응으로부터 생겨났습니다. 감각을 통해 우리가 something을 느끼는 현상이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생명체는 느낌의 능력은 갖고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특정 자극이 들어오면 특정한 방식대로 반응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아메바 같은 원시동물을 생각해보면 파도가 치고 화학물질이 달라붙고 빛이 비치는 등 다양한 외부자극을 마주했을 겁니다. 그 자극들 중 어떤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고 어떤 것은 방해가 됐겠죠...그리고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식대로 그리고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식대로 반응하는 동물이 자연선택에 따라 살아남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유해한 화학물질이 닿으면 피하려는 동물이 생존에 유리했겠죠... 그러다가 어느 단계에 피하려는 동물이 생존에 유리했겠죠... 그리다가 어든 단계이 이르면 외부자극에 대해 특정한 정신적 경험을 갖는 동물이 삶과 환경이 더 복잡해지면서 외부 자극을 정신적 형태로 보존하고
그걸 바탕으로 계획과 판단을 하는게 생존에 도움이 된거죠...자극이 들어오면 그냥 아무 내적인 정신적 과정없이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하는 게 아니라....외부 자극의 의미를 내적으로 만들어서 품은 후 그것을 바탕으로 반응을 할수 있게 진화가 일어난 겁니다.
제 생각에는 이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감각 경험의 시초입니다. 내적 반응과 외적 행동 내적으로 반응하는 것과외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분리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상적 감각경험이 생겨났죠..예를 들어서 이전단계에서는 동물이 불빛이 비치면 자동으로 수축하는 반응을 보였다면 이제는 빛이 비쳐도 수축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내적으로는 그 빛에 대해서 무섭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전에는 외부자극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모든게 끝났다면 이제 뇌는 외부 자극을 스스로의 내부에 계속 잡아두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속적인 내적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빨간색 상자를 보면 외적으로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도 내적으로 빨감을 경험할 수 있는거죠..그렇다면 이런 현상적 경험의 능력이 반드시 좋은 걸까요 ? 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 능력이 생겨난 걸까요? 의식의 존재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내놓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빨간 사과를 따 먹는게 생존에 중요한 지 빨감을 내적으로 느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요. 하지만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블라인드 사이트, 블라인드 터치 블라인트 듣기를 갖는다면 즉 모든 일이 다 현상적 경험없이이뤄진다면 지금 우리가 가진 것 중 뭐가 없어질까요 ? 저는 여기에 확신을 갖고 답합니다 .그 경우 없어지는 건 바로 나 자신일 겁니다.
블라인드사이트를 가진 환자들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시각경험이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느낍니다.
만약 우리가 그 어떤 감각에 대해서도 현상적인 무언가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경험도 내 것이라는 느낌이 안들 겁니다.
그러면 이미 나 자신이 사라질 겁니다.
만약 내 감각이 영원히 사라져서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되면 만약 내 감각이 영원히 사라져서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되면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수 없을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현상적 경험의 능력은 일단 생겨나고 난 후 부터는 심리적, 사회적 분수령이 됐을 겁니다.
현상학적 경험을 갖고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동물은 자신에 대해 더 깊은 중요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 혼자마나 그런게 아니라주변의 다른 동료들도 그렇게 자아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자신을 중요시하는 걸 목격하죠 현상적 경험을 가진 나는 단지 나 혼자만에 대해서 내적으로 경험할 뿐만 아니라다른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 느끼는 지도 경험할수 있습니다. 즉 현상적 경험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통로라는 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빨간색을 현상적으로 경험할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빨간색을 경험하리라는 걸 유추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여러자아가 맞물리며 살아가는 사회안에서 생활할수 있게 됐습니다. 인간말고 다른 동물은 어떨까요 어떤 동물이 현상적 감각을 가질까요 여기서는 뇌와 생활방식을 고려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내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뇌구조가 있어야 하고 현상적 경험이 생존에 도움을 주는 생활방식을 가진 동물이어야만현상적 경험을 진화적으로 발전시켰을 겁니다.
온형 돌물은 다른 동물에 비해 환경적 조건에 덜 영향 받습니다.체온이 변화하기 때문에 서식지가 상당히 제한됩니다. 그리고 주변의 온도변화 때문에 신체 활동도 크게 변화하죠 예를 들어서 도마뱀을 해가지고 온도가 떨어지면 체온이 떨어지면서 몸의 활동이 느려집니다. 반면 온혈 동물은 체온이 일정하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을 돌아다닐수 있고 밤낮과 계절을 가리지 않고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며 주변 동료와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수 있습니다.
온혈동물이 냉형동물보다 환경에 더 자유로우며 진화의 과정에서 자아의 감각도 생겨났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환경에 적응하는게 좋지만 온혈동물은 아니다. 뇌의 신경전달 속도는 온돈에 따라 상승합니다. 2. 더 빠른 뇌의 활동... 파충률에 비해 포유류나 조류는 체온이 월신 높게 유지되기 때문에 뇌 세포의 활동속도도 훨씬 빠릅니다. 이 때문에 정보 전달이 시간 딜레마가 줄어들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적으로 이어지는 내적 경험을 뇌가 만들어 낼 확률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저는 현상적 경험이 진화적으로 둥물들에게 큰 이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상적 경험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순수하게 느낌을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게 많이 관찰됩니다. 예를 들어 재미로 계속 썰매를 타는 개의 영상이 있는데요 아마 그 개가 즐거움을 현상적으로 경험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렇게 썰매를 타지 않을 것이다. 포유류나 조류는 다른 개체를 자아를 가진 대상으로 대할줄 안다. 자식을 돌보주는 침팬지는 자식이 행복을 느낄 거라는 걸 이해하고 있죠. 이런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동물들이 자아를 가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기계는 어떨까요 이미 보고 맛보고 느낄수 있는 로봇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수준에서는 그저 개구리처럼 블라인드사이트를 가질뿐이죠...그런데 가까운 미래에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로봇이 필요해지면 왜냐하면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로봇이 필요해지면 그 로봇은 현상적 경험의 능력을 갖춰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려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어야 할것이고 거기에는 자아감각이 핵심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요 아마 그런 필요성이 생기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뇌의 회로를 참고해서 내적인 감각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로봇의 구조를 만들어 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