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징검다리인 수요 말씀: 시편 묵상 이야기! ◈
핵심 주제: 왕의 왕!(6월 26일)
본문: 시편 21:1-13 주관&찬양: 백혜영님 가정/기도: 신양균님
대전제를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그건 ‘왕은 스스로 자신에게 왕관을 씌우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왕은 하나님의 어리석은 신하일 뿐’이라는 것이죠.
시편 21편은 왕의 즉위식에서 노래하기 위해 지어진 시 중의 한 편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즉위하는 왕은 다윗이나 솔로몬이 아니라 그들을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위한 노래라는 것, 즉 ‘왕 중의 왕’을 위한 헌시(獻詩)나 헌곡(獻曲)인 겁니다. 따라서
왕 자신이 우러름의 대상이 아니다. 왕은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 힘을 받은 사람이다. 즉 힘의 근원으로부터 사랑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왕은 자기의 힘이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힘에 의하여 왕이 된다.
하나님은 항상 왕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며, 왕은 그로 인해 기뻐한다.
왕은 언제나 절박함으로 기도했고, 기도는 그의 요구였으며, 이에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먼저 왕에게 아름다운 복을 허락하셨다.
왕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생명을 구하는 존재이나, 하나님은 불멸의 생명을 선물하셨다.
왕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항상 임재 하신다는 동행, 동반이다.
왕은 이스라엘(교회/가정/나라/모임)의 머리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머리이기 때문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왕은 왕이어서 힘과 부와 권력과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니라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에게 선택받고 위임받은 자여서 왕인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위임받은 것으로 자기를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 위임받은 것으로 인해 망가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승리는 자신의 승리가 아닙니다.
지혜도 자신의 지혜가 아닙니다.
대접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왕은 스스로 왕관을 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편 21편의 시인처럼 고백하며 살면 참 그리스도인에 가까운 존재임을 드러내는 겁니다.
시인은 1-12절까지 왕과 왕 중의 왕을 오가며 간구하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13절에 이르러 왕은 하나님에 의해 진전한 왕으로 추대되며, 왕이 가진 모든 힘은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에 의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 짓습니다. 즉 왕이 왕 된 건, 왕 중의 왕이신 분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죽어야 내가 사는 비법! 시늉이 아니라 진짜 죽어야 부활하는 진리!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게 힘들고 어려운 겁니다. 그 안에서 목사/장로/권사/집사/성가대/교사로 사는 것의 출발은 내 안에 왕 중의 왕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것임을 깨달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