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요 변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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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대중가요
대중가요가 대중의 삶을 반영하고 그들의 관심사, 욕구, 감각, 정서를드러내면서 연애 나그네의 서러움, 실향 등은 슬픔의 정서로, 자연, 봄등은 기쁨의 정서로 표현된다.
구름다리 넘을 때 몸부림을 칩니다 / 금단추를 매만지며 몸부림을 칩니다 차라리 가실 바엔 맹서도 쓸데없다 / 아! 부산차는 떠나갑니다 <눈물의 경부선>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 구진비 나리든 그 밤이 애절구려 능수버들 태질허는 창살에 기대어/ 어는 날짜 오시겠소 울든 사람아 <번지없는 주막>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 폐허의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이뤄/ 구슬픈 버레 소래에 말 없이 눈물저요 성은 허무러져 빈터인데 방초만푸르러 / 세상의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무엇 찾으랴 / 덧없난 꿈의 거리를 헤매여 있노라 <황성옛터 1,2절>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 고향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 호둘기를 꺾어불던 그 때는 옛날 타향이라 정이들면 내 고향 되는것을 /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타향> ( 1934,김능인 작사, 손목인작곡, 고복수 노래)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땅 밟아서 본지 십년 넘어 반평생 /사나히 가슴 속엔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어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어도 보네 낯 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가야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 새벽별 찬 소리가 뼛 골에 스미는데 /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 거냐 <나그네설움> ( 1940,조경환 작사,이재호 작곡,백년설 노래)
일제시대와 민중가요
신민요적 전통에 있는 민중가요
광범위하게 퍼진 <아리랑>등 일제시대의 현실을 담은 신민요들. 독립군 사이에 퍼진 진보적 신민요:<광복군 석탄가>,<광복군 아리랑>,<광복군 닐리리야>등. 창가의 전통에 있는 민중가요
당시 창가가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가질수 있는 노래였고 학교 혹은 비제도 교육에서도 가르치는 노래였으므로 나름대로 대중적인 노래의 틀이었다. 독립군 사이에서 퍼진 창가인 <압록강 행진곡>,<봉기가>,<최후의 결전>,<신독립군가>등의 노래외에도 이전의 창가중 <내 고향을 이별하고>(思鄕歌)등이 불리워 졌다. 만세 만세 함께 부르고 / 독립 독립 높이 외치자 이천만 한데 뭉쳐 나가는 곳에 / 최후의 승리가 오고 말리라 <작대가>1절
구전가요의 등장
이때 비로소 민요가 아닌 구전가요가 등장한다. 창작, 유통, 전승의 방식은유행민요와 거의 흡사하나 전통민요의 작품관행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시의 새로운 노래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일제 식민지배의 산물인 대중가요를 민중들 스스로 바꾸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대중가요의 패배의식과 한탄과는 그 정서의 질이 다르다. 일본갔다 조선 나와 돈벌이 없어서 / 중국집에 호떡집에 뽀이가 됐구나 - 중략 - 양복입고 괄세마라 니만 잘났냐 / 깡통들고 대머리까진 나도 잘났다 똘똘 궁그러가는 까만 기차야 / 연기뿜고 달린다고 니만 잘났냐 / 지게지고 산에가는 나도 잘났다
<구전가요> 해방 3년의 민중가요 45년에 좌우음악인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조선음악건설본부'(음건)와 프롤레타리아 음악동맹이 46년 여름 '조선음악동맹'으로 통합,정리됨. 일제잔재음악과 봉건제유물 음악 청산, 진보적 민주주의 음악문화의 건설을 내세움. 총 50명의 맹원이었고 김순남,안기영, 이건우등 당대 최고의 음악역량이 집결되었다. 그러나 워낙 짧은 시기였던 데다가 미군정의 탄압으로 활동이 어려워 성과는 많지 않다.
독립행진곡 (45년 박태원 작사, 김성태 작곡) - 우리가 '해방가'로 알고 있는 곡 여명의 노래 (45년 화암 작사, 이건우 작곡) 산유화 (46년 김소월 작시, 김순남 작곡) 인민항쟁가 (46년 임화 작사, 김순남 작곡)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보아라 /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 날을 시위자가 울리는 말굽소리와 / 미래를 구하는 아우성 소리 노동자와 농민들은 힘을 다하여 / 놈들에게 빼앗겼든 토지와 공장 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 / 제 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
<해방의 노래,김순남작곡>
해방 후 50년대까지의 대중가요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이인권의 <귀국선>, <울어라 은방울>등의 노래등은 위의 음악운동진영의 노래에 비해서는 해방의 감격이 서민적이나, 미래적 지향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미군정의 시작부터 이미 분단은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전쟁으로 더욱 굳어진다. 그리고 이는 대중가요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 아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이 고향땅을 오고 가는데 /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歎)한다 <가거라 삼팔선 >(46.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미아리 눈물 고개 / 님이 넘던 눈물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메일제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 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단장의 미아리 고개> (55.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 이 외에도 <굳세어라 금순아>,<이별의 부산정거장>,<한 많은 대동강>등 분단과 전쟁을 소재로 한 노래들은 많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고향상실, 혈육간의 생이별, 피난살이의 고통, 생활고 이러한 고통의 노래는 매우 절절하여 실제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했던 많은 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려면서 신파적인 뽕짝가요는 다시 한번 대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속 깊숙이 자리잡게 된다.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옵기에 /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오 / 가실 길에 내 갈길도 님의 길이요/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 길에서/ 홀로 가는 이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아내의 노래>(51. 유호 작사, 손복인 작곡, 심연옥 노래) 남편의 징집이후 아내가 부르는 노래, 마치 일제시대때 <지원병 장행가> 등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는데 어떻게 즐거움이 넘칠 수수 있을까?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눞는 귓가에 / 장부의 꿈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아 아아아 쓸어안고 싶었소 (중략) 방아쇠를 잡은 손에 쌓이는 눈물 / 손등으로 씻으며 적진을 노려보니 총소리 멎어버린 고지위에 꽃히어 / 마음대로 나부끼는 태극기는 찬란해 아아아 아아아 다시 한번 보았소 <전선야곡>(50.유호작사, 박시춘작곡, 장세정노래)
미국문화의 유입과 대중가요의 변화 찬송가와 창가 등이 들어오면서, <메기의 추억>등 미국민요라고 불리우는 노래들이 들어왔다. 이들 노래는 일종의 교양가곡 (예술가곡이 아닌)의 역할을 하였다. 제도교육 속의 음악교육을 통해 서양의 노래들은 유포되었다.
재즈 등 20세기 이후의 미국 대중음악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년대 말, 30년대이다. 당시에는 본격적인 재즈뿐아니라 미국대중음악, 라틴이나 샹송음악도 재즈송이라고 불렀다. <다방의 푸른꿈>(39.조명암작사, 김해송 작곡, 이난영노래)는 그 예이다. 그러던 것이 40년대 전쟁 막바지에 적국의 음악이라는 이유로 재즈 금지 조치가 내리고 미국 대중음악의 유입은 잠시 중단된다.
해방 후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면서 미국 문화의 유입이 이루어지고 대중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끼친 미군의 문화는 군대문화가 가지는 향락적, 소비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방송, 극장을 통해 널리 전파된 미국의 대중문화에 일차적으로는 충격을 받았고 AFKN과 미군 밤무대를 통해 팝음악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해방 후 대중가요에 미친 미국의 영향은 우선 미국을 비롯한 서양, 혹은 다른 나라의 풍경등을 상상적으로 형상화하거나 불필요하게 영어단어를 섞어 쓴 노래들에서 먼저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노래의 대부분은 미국의 팝음악 보다는 중국풍, 아라비아풍에 가깝다. <럭키 서울>(48.박시춘작곡,현인노래), <홍콩아가씨>(52.손로원작사,이재호작곡, 금사향노래), <인도의 향불>(52.현인),<아메리카차이나타운>(53.백설희)등등의 노래들이 이에 속한다.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 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로멘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샌프란시스코> 1절, 백설희 노래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 저 멀리 인디안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넘어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55. 김부해 작사,전오승 작곡, 명국환 노래)
부기우기, 블루스, 탱고, 맘보, 차차차등 이전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리듬이 등장했고, 상당수의 노래가 5음계를 탈피해 선율과 화성이 서양화되기시작한다. 단조노래에서도 '솔'음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화성적 단음계를 쓰는일이 잦아졌고, 뽕짝식의 꾸밈음도 절제되어 60년대 스텐다드에 가까운 노래들도 등장했다. <고향만리>(48.현인),<나 하나의 사랑>(손석우작사,작곡, 송민도), <럭키모닝>(56.박재란), <청실홍실>(56.조남사 작사,손석우작곡, 송민도노래), <산장의 여인>(57.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권혜경 노래)등등의 노래들이다.
대중예술은 어느 예술보다 그 사회 대중의 개인적, 계층상승적 욕구,가장 최첨단의 유행을 받아들여 부유하게 잘 살고싶은 욕구를 민감하게 드러낸다. 가끔 그 중에는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내용성을 유행이상의 의미로 다루어낸 것도 있지만 또 그에 비해 많은 수의 작품들은 그저 유행처럼가볍게 소재주의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어단어,미국의 풍경이나 지명, 미국대중음악의 요소등이 가요에 드러나는 것 역시, 뭔가 미국과 관련된 것을 빨리받아들이는 것이 뒤지지 않는 것이라는 대중의 판단과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 올 내 청춘마시고 도 마시어 취하고 취해서 / 이 밤이 새기전에 춤을 춥시다 부기우기 부기우기 부기우기 부기우기 / 기타부기 <기타부기>(57.윤일로) 다른 한편 몇 편의 작품에서는 고향의 의미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고향이 아니라, 잘 살아 보려고 떠나왔는데, 세상만사 다 귀찮아서 편안히 되돌아가고 싶은 전원생활로서의 고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벼슬도 싫다지만 명예도 싫어 / 정든 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 /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물방아 도는 내력> (53. 손로원작사,이재호작곡) 이 외에 <마음의 자유천지>(56년 손록원 작사, 백영호 작곡, 방태원 노래)도 그런 내용이다. 전원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자의에 의한 이농과 도시에서의 삶이 대중가요의 대중들에게 많이 보편화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해방 직후부터 50년대가지의 시대는 이러한 시대였다. <인민항쟁가>와 <굳세어라 금순아>와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기타부기>와 <산장의 여인>이 공존한시기이다. 엄청난 격변기이면서 60년대의 새로운 대중가요의 틀을 예비하고있는 시대이다.
근대화 시대부터 우리 음악은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 형태가 다양해 지고 새로 운 음악의 형태가 생기는가 하면 음악을 통해 일제화 시대와 50년대의 시름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만큼 음악은 우리 생활에 밀접히 다가서 있으며 우리의 문화와 일상생활에 많 은 영향을 끼친다 하겠다. |
첫댓글 이첨지,, 집안 모두 별고 없어시제~???~
올 8월은 유난히도 덥고 비가 많고 태풍이 별라구먼~!~
덴빈 한번더 조심하시게나~!~항상 건강하고 가정이 가화만사성하시길 바라네~!~^^ ㅎㅎㅎㅎㅎ
유원장 고맙네 지금 부산에는 비는별로고 바람만 신나게불어데고있어 그리고 가정에는 항상
두루두루 편안하시게 ^^^^^^^^^^^^^^^^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ㅏㅏㅏ 자스기~~~~꼴에 안 어불리게 가는 말이 좋으니까 오는 말이 괜찮시럼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앙상테리블~~~!!!ㅎㅎㅎ
형님이 카페에 오시니까 류 선배님도 덩달아 신이 났는가 봅니다.
2~3일 사이에 무려 3건이나 글을 올리시고요...........진우 선배님께 형님 안부도 물어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15회, 혼자서 적적 하셨는가 봅니더!!!!! 좋은 말벗으로 두 분의 우정 더욱더 다져 지시길 기대해 봅니다........
후배 우리는 만나면 왠수같고 안만나면 보고싶어 난리부르스아이가 그래도 유원장이 요새 쬬갱이
철덜라카이케 한번두고 조용히 지내보자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대중가요 민중가요....가요의 변천사....저가 모르던 또 다른 공부를 하게 됨미다....ㅎㅎ
후배님 가요변천사에 대하여 공부를했다니 곱\맙군 ㄳㄳㄳ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