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윤판기님의 작품세계
전시평문 한국의 자연미감과 작가의 감성을 담아낸 서체미학 -허재 윤판기 작가의 폰트체를 보면서-
정태수(월간 서예문화 주간)
1. 한국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다수의 미학자들은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자연미라고 일컫는다. 자연은 애써 치장하거나 꾸미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 순수한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미적활동, 예술적 표현으로 나타냈다. 플라톤에 의하면, 예술의 원리는 모방을 기초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렇게 자연을 모방해 미적으로 표현하였고, 예술적 활동으로도 전이시켰다. 동양정신의 근본이 자연주의라 하나, 우리나라는 특유의 한국적인 자연주의가 돋보인다. 초가집의 곡선은 한국의 둥글고 완만한 산의 모습을 닮았으며, 구불구불 흐르는 강물의 유장한 곡선은 전통한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우리의 산하를 보면서 성장한 허재 윤판기 작가는 오랫동안 붓으로 글씨를 쓰면서 드디어 우리의 자연을 닮은 글씨체를 만들어냈다.
한글은 전 세계 6천 여 개의 언어 중에서 12번째 큰 언어로써 21세기 신 한류의 중심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글은 우리문화의 그릇이며, 우리민족의 혼이고 생명이다. 이를 허재선생은 현대인쇄문명의 총아인 폰트체로 제작하여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일곱 번째 펼치는 이번 작품전에서 “붓으로 낙동강을 거닐다”는 주제를 내걸면서 한국의 아무르강으로 불리는 낙동강의 유장한 멋을 붓으로 묘사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유년시절 낙동강 주변에서 강물을 보면서 성장한 작가는 우리에게 강물의 흐름을 연상하게 하는 다양한 폰트체를 선보이고 있다. 물결체, 동심체, 한웅체, 낙동강체가 그것이다. 그에게 있어 낙동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다. 강을 보면서 꾸었던 꿈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겹겹이 겹쳐지는 가운데 느꼈던 추억을 예술로 승화시켜 그의 작품으로 발현시키고 있다. 이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의 예도는 순탄하지 않았다.
2. 지금부터 40여 년 전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도부에서 글씨에 소질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각종 서예대회에서 상을 독차지하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당시 시골에서는 모두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어서 1년 늦게 입학하는 사이에 한문서당에서 천자문 등을 잠시 공부하였고, 이 때 선비였던 백부님의 영향을 받아 서예가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그런 결정으로 인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서예특기 장학생으로 학업을 계속 하였다. 중등학교를 서예특기생으로 다니면서 학창시절 이미 서예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군 재대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서예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대한중기공업(주)에서 7년 근무를 한 뒤 공무원으로 스카웃되어 경남도청에서 28년 동안 근무하고 있으며 최근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성실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서예는 늘 지근의 거리에 있었다. 그 사이에 주경야독하여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경제학사, 국립창원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고, 1981년부터 경상남도미술대전에서 5회 특선으로 초대작가가 되었고, 공무원미술대전에서도 4년 연속 금상과 은상을 수상해 초대작가로 등단했고,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도 초대작가로 등단하여 서가로서 이름을 높였다.
서예자료가 흔하지 않은 시기부터 붓길인생을 시작한 작가는 법첩을 어렵게 구득하면 모서리가 닳도록 임서했고, 국전 도록이나 작품집을 구하면 역시 항상 휴대하면서 참고하였기 때문에 몇 번이나 표지커버를 다시 입혀서 보관해야 했다. 공자께서 주역을 너무 열심히 읽어서 위편삼절했다는 고사가 이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 만큼 그 시기에는 자료가 흔치 않고 귀했던 시절이었다. 특히 어렵게 구한 손재형선생의 한글작품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파격성과 창작성을 본받고자 하였다. 언젠가 작가 본인도 반드시 창작을 해 보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어렵게 구한 자료를 보면서 더욱 형임과 의임을 많이 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폰트체 개발에 이르게 된 것이다.
3. 이번 일곱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낙동강체를 비롯한 여러 폰트체는 이렇게 작가의 삶속에서 육화되어 나온 것으로 그 동안 다양한 고전자료를 소화한 작가의 미감과 자연에서 얻은 미감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 전시는 폰트를 개발한 후 처음 갖는 전시이므로 작가 본인이 개발한 폰트의 예술성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우리가 눈여겨 볼 작품은 100호 크기로 쓴 정일근 시인의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둥근어머니의 두레밥상>이다. 이 작품은 물결체와 낙동강체로 강약을 살려 꾸밈없이 휘호했는데 마치 물결이 흐르듯 유려한 맛이 일품이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낙동강 강둑에 앉아서 유장하게 흐르는 물결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또한 동심체로 쓴 김일태 시인의 <유물론>은 원필의 부드러움으로 판각체의 딱딱함을 상쇄시키고 있다. 김교한선생시 <대>는 한자의 전서체와 한글을 접목하여 작가가 창작한 물결체로 쓴 본문과 우리의 젖줄인 낙동강체로 쓴 낙관글씨가 조화를 잘 이루는 창작서체이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작가 자신만의 서체를 창작하기 위해 수없이 밤을 낮으로 삼아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해인 수녀님 시 <나를 키우는 말>은 우리 인간이 눈만 뜨면 사람을 만나고 살아가면서 하는 말 속에서 새의 노래와 꽃의 웃음에서 변함없는 진리를 배워야 한다는 새의 지저귐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작가의 문자조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여 우리의 고대역사유물인 광개토호태왕비를 자신들의 유물로 만들려는 이 시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웅위한 미감과 독창적인 문자양식을 지닌 광개토호태왕비를 정밀하게 연구하여 대한민국최초로 한자폰트를 만들어냈다. 소박하면서 장중한 멋과 억지로 꾸미지 않은 시골아이와 같이 우직함이 들어있고 고졸한 맛을 잘 살려냈음이 살펴진다. 이런 작품이 나온 것은 오랫동안 모필로 서예를 해 왔기 때문에 다른 도구로는 드러낼 수 없는 특별한 맛을 표현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작품들을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한글에서는 전통궁체에서부터 훈민정음, 석보상절, 용비어천가, 월인석보, 금강경언해, 두시언해, 여사서 등을 참고해서 궁체의 유려함과 판본체의 특징에 대해 상세히 공부했고, 한자서체에서는 유명한 예서와 해서법첩을 두루 섭렵했다. 그 위에 광개토호태왕비를 집중적으로 서사하여 그 형태미를 완전히 파악하게 되었다. 그런 뒤 한글의 창작서체에 낙동강의 자연미를 더해 완성하게된 것이다. 그리고 광개토호태왕비도 원래 이 비가 지닌 특징을 살려내어 독자적인 서풍으로 폰트를 개발한 것이다. 작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에 박수를 보낸다.
4.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그것으로 가야금을 만드니 아름다운 곡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고, 매화의 일생은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함부로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 老 恒藏曲 梅一生 寒 不賣香)” 이 말은 허재 선생의 좌우명이다. 오동나무 같은 삶과 매화 같은 절조를 지닌 작가로서의 삶을 지향하고자하는 의도로 항상 앉은 자리 우측에 걸어두고 보는 글귀다. 그는 독서를 통해 새로운 창작의 돌파구를 연다고 한다. 최근에는 안대희 선생이 지은 『선비답게 사는길』을 읽고 옛 선현들의 와유산수(臥遊山水)하며 지혜롭게 살아 온 모습을 상상하며, 틈만 나면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고자 노력하는 작가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작가의 계획은 가깝게는 한문 또는 국.한문 혼서 작품과 좀 더 활달하게 쓴 역사에 길이 남을 물결체 병풍대작을 할 작정이고, 멀게는 문인화에 서예작품을 곁들인 작품을 제작하는 새로운 도전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끝없이 노력하는 작가상을 보여주는 허재선생은 다시 새로운 서체개발을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한다. 한국적인 미감과 자신만의 감성이 들어있는 새로운 창작서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는 그의 말이 큰 메아리가 되어 귓전에 맴돈다. 선생의 소리로 인해 매미소리가 유난히 작게 들리는 여름이다. 부디 소망을 이루길 기원드린다.
2012년 여름 장마철에 삼도헌에서
나를 키우는 말, 70x30, 화선지에 먹과 채색, 2012
허재(虛齋) 윤판기(尹坂技) Yoon pan-gi
ㅇ 55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 ㅇ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졸업(경제학사) ㅇ 국립 창원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석사) - 논문 : 지역문화행정의 발전 방안에 관한 연구(경상남도를 중심으로)
개인전 7회
ㅇ 제1회 개인전(1995. KBS창원방송총국)-윤판기 서집 ㅇ 제2회 개인전(2001. 성산아트홀)-묵상의 여백 ㅇ 제3회 개인전(2004. 대산미술관 특별초대)-간화묵선 ㅇ 제4회 개인전(2007. 대한민국경찰청 특별초대)-묵천여정 ㅇ 제5회 개인전(2012. 챔버갤러리 기획초대)-득어망전 ㅇ 제6회 개인전(2012. 한전아트센터갤러리 중견작가 초대전)-필묵세연 ㅇ 제7회 개인전(2012.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한글정예작가초대전)
초대전 및 그룹전 300여회
ㅇ 대한민국서예전람회,서울미술대상전,부산서예전람회,경남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 ㅇ 한글서예의 오늘과 내일전 초대(’96예술의전당) ㅇ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서예로떠나는한국기행전” 등 초대(’01 ̄’09) ㅇ 한국서예박물관개관기념 한국대표작가 초대전(’08) ㅇ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초대작가전(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ㅇ 현대한글서예100인전 초대(’08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ㅇ 대한민국공무원미술대전 금상수상 및 초대작가전(정부중앙청사)
폰트개발
ㅇ 한글 : 물결체. 동심체. 한웅체. 낙동강체 ㅇ 한자 : 광개토호태왕비체 한국최초 폰트개발
ㅇ 대한민국 베스트공무원 선정(행정안전부 명예의 전당 헌액) ㅇ 중앙공무원HRD(인적자원개발데이터베이스) 핵심인재로 등재
현 재
ㅇ 경남도청 공보관실 홍보연구원 근무(1985∼) ㅇ 경남불교미술인협회 회장(2009~) ㅇ 한국노동문화예술협회 경남 상임고문(‘93~) ㅇ 한.일.프랑스 교류 크레아트(CreArt)수석부회장(‘02~) ㅇ 한국서가협회 이사 및 부산․경남지회 부지회장 ㅇ MBC문화센터 출강(2008~2011) ・ 국립 창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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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 슬로건-국민과 함께 세계와 함께, 감사원-聽乎無聲視於無形, 중앙선거관리위원회-天下憂樂在選擧, 람사르총회슬로건-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 대한민국경찰청슬로건-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 경상남도슬로건- 대한민국번영1번지 경남, MBC경남슬로건-경남의 미래 함께 열어갑니다, UN사막화방지총회 기념 퍼포먼스-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 2012 공명선거 기원 퍼포먼스-깨끗한 선거 대한민국의 얼굴입니다. 경남도청광장-경남탄생100주년 기념탑 도민헌장비,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 공명선거 표석, 경남지방경찰청-일등경남경찰 표석, 창원대도호부연혁비(남산공원), 단정 배중세 지사 순국기념비, 창원지방법원, 통영해저터널, 경상남도의회 각석, 자굴산, 한우산, 미타산, 남덕유산, 무룡산 정상 표석 등
주소 : 경남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동성아파트 114-1902호 모바일 : 010-5614-9599 이메일 : ypg55@daum.net
허재 윤판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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