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다,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문영재입력 2023. 4. 26. 08:58수정 2023. 4. 26. 09:01
때를 기다린 걸까.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잽을 맷집 하나로 버텨낸 알리가 오랜만에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주먹은 포먼의 턱을 강타했고, 그의 스텝은 꼬이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전개에 관중은 환호성을 질렀고, 앵커는 알리의 일격이 판도를 흔들었다고 격양된 목소리로 중계를 이어갔다.
부진의 늪에 빠져 있던 GM이 오랜만에 새로운 차,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며 다시금 기지개를 켰다. 출시 후 7영업일 간 거둔 계약대수는 1만3000여대. 출고만 원활히 된다면 현대자동차·기아의 빈틈없는 가드를 뚫을 만한 강한 ‘한방’이다. GM은 트랙스 크로스오버 시작가를 미국보다 600만원 가량 저렴한 2052만원으로 책정하며 저가 전략을 구사했고, 가격을 중시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이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값을 올리던 현대차·기아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터. 코나·셀토스 모두 트랙스 크로스오버보다 500만원 이상 비싼 상황이다. 언론은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며, 판이 바뀔 수 있다고 앞다투어 전했다.
“철저한 준비 끝에 내놓은 모델입니다. 저가 정책도 그중 하나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GM 관계자의 어조에서 열의가 느껴졌다. “기본 장비는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것들로 꽉꽉 채워져 있습니다. 웬만한 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이 차의 성공을 위해 생산공장 현대화도 진행했어요. 무결점 출시와 차질 없는 소비자 인도로 성장 모멘텀을 이어갈 겁니다”.
시승차는 주력 모델인 ‘액티브’. 계약자의 45%가 선택했다. 18인치 블랙 휠, 인조가죽 시트, 앞좌석 3단 통풍, 운전석 8방향 전동 조절, 11인치 터치스크린,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 스마트폰 무선충전 등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한 장비들을 기본 적용하고 시작가를 2681만원으로 묶었다. 비슷한 사양의 코나·셀토스 값이 3000만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경쟁력은 분명 충분하다.
강렬한 외모도 트랙스 크로스오버 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인 중 하나. 날카로운 램프, 예리한 칼날로 깎고 다듬은 것 같은 그릴·범퍼, 역동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면처리 등이 남다른 존재감을 발산한다. 실내도 인상적이다. 선명하고 빠른 8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11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를 넣어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패널과 패널을 꽉 맞물려 완성도 높은 조립품질을 드러낸다. 흠 잡을 데가 없다. 공간도 적당하다. 차체 크기는 전장×전폭×전고×축거 4540×1825×1560×2700(mm)로, 동급 중 가장 크다. 코나와 비교하면 전장과 축거가 각각 190mm, 40mm 길고, 셀토스와 견주면 전장 150mm, 축거 70mm 길다. 그래서인지 무릎·머리공간 모두 넉넉하다. 짐공간도 큰데, 6:4 비율로 접히는 2열 좌석을 모두 접으면 부피가 큰 짐도 실을 수 있다.
엔진룸에는 배기량이 1.2L에 불과한 직렬 3기통 엔진이 들어차 있다. 체구 대비 상당히 빈약해 보인다. 이에 대해 GM 관계자는 “토크밴드를 실용영역에 몰아 넣었습니다. 일상주행에서 출력부족은 느낄 수 없을 겁니다”면서, “유지비용과 세금 절감 측면에서도 매우 이로운 유닛입니다”고 강조했다.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자 엔진이 까랑까랑한 소리를 토하며 힘차게 회전했다. 디지털 계기판은 금세 세자리 숫자를 나타냈다. 시속 150km까지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 이상부터는 속도가 더디게 올랐지만, 일상에서 이 정도 가속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 안정성은 뛰어났고, 제동은 예상보다 강하게 걸렸다. 굽잇길에서는 차분한 거동을 펼쳤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64만원을 내고 추가해야 쓸 수 있다.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이외 전방충돌경고, 보행자감지제동, 저속긴급제동, 차선이탈방지, 차선변경경고, 후측방경고 등 주행에 필요한 장비는 기본으로 챙겨 넣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 쓰기 좋은 오토홀드는 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전용 장비다.
시승 후 얻은 평균 연비는 16km/L. 제원 상 복합 연비 12.3km/L보다 더 높게 나왔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6g/km로, 환경부 기준 제3저공해차 기준을 만족한다. 공영·공항주차장 최대 50%, 지하철환승주차장 최대 8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진입 문턱도 낮은데, 부가적인 할인 혜택 역시 상당하다. 여러모로 돈을 아끼는 차다. 불황 속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력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차이기도 하다.
알리 대 포먼은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라운드까지 경기를 주도하던 포먼은 종료 15초를 남긴 시점 알리가 쏘아 올린 어퍼컷에 얼마 안 가 무너져 내렸다. 상황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가 소형 SUV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모든 걸 뒤엎는 수준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평점 9/10
FOR 낮은 진입 문턱, 풍부한 기본 옵션, 강렬한 디자인
AGAINST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쓰려면 추가금을 내야 한다
글 문영재 사진 GM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