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죽음, 에서와 야곱의 출생
1절.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
아브라함이 후처(히. 잇솨. 아내)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그두라입니다. 역대상 1장 32절에는 “소실(첩)”이라고 부릅니다. 사라가 죽고 이삭이 결혼한 후 취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사라가 죽기 이전 시기에 있었던 일로 봅니다. ‘후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죽고 난 이후의 일로 보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2절.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 이름입니다. 6명입니다.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3절.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
6명의 아들들 가운데 욕산의 자손을 언급합니다.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습니다. 앗수르 족속과 리두시 족속과 리움미 족속은 드단의 자손입니다.
4절.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
미디안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5명입니다.
5절.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줍니다. 이삭이 자신의 공식적인 상속자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삭은 언약의 아들입니다. “하늘”과 연관된 상속자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29절에 예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인 상속자가 됩니다. 누가복음 13장 16절에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16장 22절에 거지가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삭개오를 누가복음 19장 9절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라는 말은 로마서 8장 17절에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입니다.
6절.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
아브라함은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었습니다. 그의 생전에 한 일은 그 서자들로 하여금 이삭을 떠나서 동쪽 땅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동쪽 땅은 아라비아 땅일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그의 아들 이삭과 그들을 분리시키는 일을 행합니다. 이삭만이 “하늘”과 연관된 진정한 상속자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7절.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
아브라함의 향년(인생의 연수)이 175세입니다. 아브라함은 주전 2166년에 태어나 주전 1991년쯤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조선 시대에 해당되는 시기입니다. 그때 이삭의 나이는 75세이고, 야곱의 나이는 15세입니다(21장 5절. 25장 26절).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100년의 삶을 산 것입니다.
8절.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아브라함은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었습니다. 욥기 42장 17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그는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신 32장 50절. 구약에 10번 나오는데 모두 모세 오경에만 나오는 표현이다.). 창세기 15장 15절에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0절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을 보면 그는 나그네로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는데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땅의 고향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지고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명예롭게,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9절.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
아브라함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습니다. 막벨라 굴은 사라가 죽어서 장사 된 곳입니다. 이스마엘은 비록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 살았지만 아브라함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그 역사 아브라함이 아들이었습니다.
10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에 해당되고 그곳은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장사 된 곳이라고 소개해줍니다. 비록 무덤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덤과는 다릅니다. 그 무덤은 부부의 ‘믿음’을 말해주는 무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말해주는 무덤입니다. 본향을 사모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무덤입니다.
11절.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24장 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다고 했는데 그 하나님의 복이 이삭에게 이어집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을 계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습니다.
12절.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
12-18절은 이스마엘의 족보입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에게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이삭에 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먼저 이스마엘의 족보를 언급합니다.
13-15절.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
이스마엘의 12명의 아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장자는 13절에 느바욧입니다. 후에 에서는 느바욧의 누이와 결혼을 합니다.(창 36장 3절)
16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
이스마엘의 아들들은 열두 지도자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창세기 17장 20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은 열두 두령을 낳을 것이다, 그리하여 큰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의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17절.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
이스마엘은 137세를 살고 죽습니다.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습니다(창 35장 28절).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빨리 죽었습니다.
18절.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16장 7절) 퍼져 있었습니다.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NIV는 “형제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거주하였다”고(they lived in hostility toward all their brothers) 번역하였습니다. 형제들과 대적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16장 12절에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맞은 편에 거주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19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 백성입니다. 이삭은 그 언약 백성의 계승자입니다.
20절.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밧단아람의 아람 족속이었던 리브가가 어떻게 이삭에게 오게 되었는지는 24장에 길게 기록하였습니다.
21절.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라도 그 고통을 겪었던 여인이었습니다(창 11장 30절).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어떤 사람은 점을 치러 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시대에 사용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첩을 두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포기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어떻게 합니까?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26절에 리브가가 임신을 할 때는 이삭의 나이 60세 때입니다. 40살에 결혼하여 60세 때 아들을 낳습니다. 거의 20여 년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리브가의 임신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요? 이삭을 훈련시키는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십니다. 둘째, 생명의 주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고대에 임신은 생명의 문제였습니다. 특별히 25장에는 아브라함의 죽음이 나오고 이삭의 아들의 출생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명을 주관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셋째, 이삭의 기도는 분명히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를 둔 기도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 약속의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더 깊이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더욱 더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새겼습니다. 넷째, 그는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인내하였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인내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배웁니다. 자녀를 얻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입니다(시 127편 3절). 이삭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더욱 의지하는 인내를 배웁니다. 이삭의 기도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신앙의 성숙을 이루도록 이끌었음이 분명합니다.
22절.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
리브가의 태 속에는 쌍둥이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태 속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서로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리브가가 느꼈습니다. 리브가는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어찌해야 할까? 괴로움, 고통을 느꼈습니다. 리브가 역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기도합니다. 이 일이 어찌된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십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습니다. 그것은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국민이 태중에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주 특별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 상속법에는 일반적으로는 어린 자가 큰 자를 섬겨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와는 반대가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고 은혜의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로마서 9장 12-13절에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를 합니다. 그것이 가족 내에서는 충돌이 될 것임을 예고해 줍니다.
24절.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
태에 쌍둥이가 있었고 그 해산 기한은 찼습니다.
25절.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 옷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서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털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의 별명은 30절에 에돔입니다. 에돔은 붉다는 뜻입니다.
26절.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그가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속임수로 이기려고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마치 씨름할 때 상대방의 발꿈치를 잡아서 넘어뜨리는 것 같이(카일․델리취).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 이삭의 나이는 60세입니다.
27절.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
그 아이들, 즉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이 장성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다투었습니다(25장 22절). 성경에 형제들 사이의 다툼이 자주 나타납니다. 가인-아벨, 이스마엘-이삭, 에서-야곱 등. 에서와 야곱은 서로 대조가 됩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사냥을 하는 전문가가 된 것입니다. 그는 들 사람이 되었습니다. 들은 그에게 익숙한 활동 공간이었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용하다’는 말은 ‘순전한’이라는 뜻도 됩니다. 야곱은 장막에(가정) 거주하였습니다. 장막은 야곱에게 있어서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한 태에서 나왔는데 서로 달랐습니다.
야곱이 ‘장막’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와 대화할 시간을 많이 가졌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야곱은 그들로부터 에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28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
편애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서를 사랑하였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습니다. 리브가에게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장 23절)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29절.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
야곱이 죽을 쑤었습니다. 그때에 에서가 들에서 돌아왔는데 심히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피곤함에는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굶주림도 함의가 된 것 같습니다.
30절.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
에서는 야곱에게 자신이 피곤하다고 하면서 ‘붉은 것’(히. 아돔)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붉은 것은 붉은색의 콩죽 같습니다. 렌틸콩으로 만든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에돔”이라고 설명합니다. 에돔은 ‘붉다’는 뜻에서 온 말입니다. ‘먹다’는 말은 꿀꺽 삼키는 개념입니다. 그만큼 배고픔이 크다는 것입니다.
31절.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
야곱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신속합니다. 계속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고 요구합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장자는 부모의 유산을 두 몫(신 21장 17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 관습이었을 것입니다. 일반 세상에서 말하는 장자는 부모의 유산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받는 ‘장자’는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복이 중심에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라고 하신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언약의 계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장자의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중요하게 받아들였습니다.
32절.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
에서는 말합니다. “오늘 내가 죽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과장법적인 표현입니다.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로 죽을 것 같으면 죽 한 그릇으로 그 죽음을 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에 대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집안의 장자가 된다는 의미에 대한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장자권을 무시하였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소중하게 생각한 것과 대조가 됩니다.
33절.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
야곱은 자신에게 맹세하라고 합니다. 맹세는 영구적인 구속력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에서는 맹세를 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팝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언약을 가볍게 여긴 행위입니다. 야곱은 기회를 이용해서 장자권을 취한 것인데, 그것 때문에 야곱이 이삭을 계승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셨고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카일․델리취는 “그가 자신의 장자권을 팔아 버린 경박함은 그를 약속된 은혜의 상속자와 소유자가 되기에 부적합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34절.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
야곱은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줍니다. 팥죽에 대해서 “완두콩으로 생긴 작은 1년 초 식물로 끓이면 붉은 갈색이 된다.”(NIV 스터디)고 설명합니다. 에서는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갑니다. 그의 행동에 대해서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고 하십니다. 망령된 짓은 하나님이 없이 사는 태도입니다. ‘가볍게 여기는 것’은 ‘무시하다, 경멸하다, 무가치하게 여기다’는 뜻을 가집니다. 우리 시대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주신 선물인 교회의 직분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는 망령된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