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유학 온 인인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도 다문화, 다문화가정이란 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도 여러 나라 민족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언어는 달라도 느끼는 감정이나 즐겁고 슬픔을 나타내는 것들은 하나같이 똑 같아서 눈빛만으로도 서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창한 외국어가 아닐지라도 우린 마음만 있다면 손짓 몸짓으로도 가까워 질수도 있고 함께 할 수 도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인인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 한국 대학생이다.
그 녀는 일찍부터 중국국가의 사회복지에 대한 부족함을 인식하고 현재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원래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위해 영어를 공부하면서 미리미리 준비를 해 왔다는데 영국은 중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가까운 한국을 택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는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으로 인인 역시 형제가 없고 자신 하나이기에 부모님은 멀리 보내지 못하고 가까운 한국을 택해 유학을 보낸 것이다.
한국에 유학 오기까지는 아빠의 반대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그래도 꿈이 이루어졌기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아빠는 방송기자, 엄마는 가정주부로 우리나라 일반가정과 거의 비슷하지만 인인은 자신이 한국에 처음 오는 날 아빠는 ‘자신이 선택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셔서 혼자 한국에 오면서 무척 겁도 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다른 애들은 다 들 부모님이 따라 왔는데 자기는 혼자서 왔다는 것에 대한 한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기숙사를 배정 받는 날 부모님이 따라 온 학생들은 이미 부모님이 좋은 자리를 선택 해놓고 청소도 하고 짐도 정리 해 주었는데 인인은 마지막 남은 자리 하나를 택했어야 할 때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서 지금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는걸 보며 나도 가슴이 뭉클 해졌다.
낯설기만 했던 한국, 문화가 다른 한국, 모든 것이 익숙지 않았고 밥 대신 온통 라면으로 매일 먹다보니 어느 새 몸은 뚱뚱해졌고 한국에 와서 맨 처음 느낀 것은 여자는 예쁘게 화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인 역시도 다른 애들처럼 온통 화장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같이 온 친구가 쌍꺼풀 수술을 하자고 했을 때 부모님한테 물어 봤는데 안 된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부모님이 못하게 해도 해 버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 쌍꺼풀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인인은 차마 부모님을 속여 가며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얼마동안 아침이면 화장하기에 바빴고 저녁에 화장을 지우고 나면 내가 아닌 것처럼 아주 미워 보일 때 정말 언제까지 내가 이런 가면 속에 살아야 되냐고 혼자 반문하면서 고민 끝에 자기 본 모습으로 살기로 하고 결심하고 대신에 자신의 능력을 키우면서 당당하게 살자고 다짐하며 다이어트를 하기위해 먹는 것은 조금 줄이고 틈만 나면 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뚱뚱한 딸이 창피했는지 아님 걱정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지방 흡입 수술이라도 해 보라고 권하시는데 인인 자신은 절대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한국에 온 것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러 왔는데 자꾸만 자신이 흔들리려고 할 때가 괴롭다고 하면서 중국 대학생들은 별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에 대학생들은 공부를 참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유학 온 친구 중에는 놀기만 하고 한국 말도 못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한국에도 중문학과를 다니면서 중국어 한 마디도 못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면서 한국에 여자 대학생들은 교양으로 학교를 다닌다고 들었다고 말 할 때 나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몇 몇 학생이 그런 것 같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어야 했다.
인인은 복잡한 서울보다는 공기가 좋고 한산한 광주가 참 좋다고 한다. 졸업 후 한국에서 취업이 되면 봉급이 많아서 좋을 것 같은데 중국으로 돌아가 할 일이 많다면서 다만 ‘중국에는 봉급이 많지 않아요.’ 한다. 그러나 한국의 좋은 문화, 복지, 사회를 배워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서 그 때를 위해서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식당에서 일 할 때 그 많은 수모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고 또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기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면서 지금은 그런대로 의사소통이 된다고 자랑을 한다.
한국에 3년 차 살고 있는 인인,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한국인 친구가 없단다. 그리고 한국 가정집을 한 번도 방문한 적도 없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인인을 위해 집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 외롭게 한국에 있는 그녀가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일까!
어느 날 나는 인인을 집으로 초대를 했다.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는 그 녀, 한국에 불고기를 좋아하는 그 녀는 온통 자기 집에 온 것 같다며 즐거워했고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 후 인인은 집이 그리울 때, 힘들 때, 문자도 하고 자주 만나면서 나는 한국의 문화를 조금씩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다이어트에 좋은 간단한 음식 만드는 법도~
참 자신의 꿈도 야무진 인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란 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관이 확실하고 당당한 인인을 나는 좋아한다. 키도 크고 체구도 상당하지만 때론 소녀처럼 해맑은 그의 웃음에서 귀여움과 순수함을 느낀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22살의 나이 그러나 그녀의 꿈이 헛되지 않고 꼭 이루어지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곧 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얼마간 엄마의 사랑을 받고 오겠지!
때론 엄마로 때론 친구로 서로 다독거리면서 의지하며 그 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
첫댓글 잉꼬님 유학온 인인을 엄마처럼 먹이고 친구처럼 고민 상담도 해주시면서 문화가 다른 이국생활의 어려움에 잉꼬님의 사랑으로 덜어 주시네요. 우리나라 홍보대사입니다. 진장한 애국자이십니다.
요즘 젊은 애들 같지 않게 바른 생각을 하고 사는 인인 같습니다.낯선 나라에 유학와서 입에 맞지 않은 음식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겪는 애로사항들도 많을터이지만 잘 견뎌 내고 벌써 3년차가 되었다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네요.혹시나 여건이 된다면 하하에 한 번쯤 나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면 어떨까요?
나이를 보니 우리애들과 비슷해서 왠지 다독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에서도 이런곳에서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구요
유학생활 중 잉꼬님 같은 분을 만난 중국유학생 인인, 크나큰 행운입니다. 한국인 친구 하나없는 인인에게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주시는군요.잉꼬님 저도 영주씨처럼 유학생 인인과 하하에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네! 하하님들 마음 잘 알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이야기 해 볼께요.
잉꼬님!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중국 훈밍 선교사로 가 있었고 그곳 대학교에서 한국어교수로 봉사하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초청으로 중국으로 가서 그 대학교의 한국어 강의를 수강하고 대학생들에게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우리나라로 3명이 유학왔지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갈 때는 보리차를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저는 잉꼬님처럼 대접도 못했습니다만 정말 부끄럽습니다. 진정한 애국자이신 잉꼬님! 중국의 유학생 인인의 건강을 빌겠고 좋은 엄마 같은 사랑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