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비우기
이사를 하기 위해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집이 깨끗하고 넓어 보여야 매매가 빨리 이루어진다는
말에 대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충 정리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곳저곳을
들쑤시다 보니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 묵은 물건들이 쌓여 있고 끼어 있으면서 제각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의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있던 것들이 먼지가 쌓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우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한곳에 모아 보니 그 양이 꽤 많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디오네스 증후군인 저장 강박증에 걸린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행히도 저장 강박증 증상으로 나타나는 극심한 자기 부정을 하거나 은둔하는 성향을 나타내거나 강박적으로 물건에 비축하는 성향이 없는 것을 봐서는 디오네스 증후군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재분류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을 나타내는 것을 보니 저장 강박증 정도는 아니어도 물건에 과다한 애착 증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렇게 집착 아닌 애착이라 말하고 있는 것들은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쓰지 않거나, 절대 꺼내지 않게 되는 물건임에도 미련이나 집착 혹은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책, 과거의 내 성장 과정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 가족과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와 같은 추억의 물건, 그리고 아들, 딸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배냇저고리, 천기저귀 등 유아용품이다. 사실 이것들은 그저 추억 때문에, 그리고 마음이 가는 물건이기에 가지고 있을 뿐이지 실생활에 사용할 일은 거의 없는 것들이다. 집안을 점령하고 있는 사물들은 실용성에 따라 비우거나 비우지 않거나 결정하면 되지만 사람과 연관된 것들은 단순히 실용성으로 따질 수
없다. 그렇다고 추억과 연관된 것을 모두 쌓아 둔 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것 중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것들과 크게 중하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나눠서 비워야 할 필요가 있어서 작업에 들어갔다.
대학생이 된 두 아이의 추억 상자 속에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그 안에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교복, 유도 품증이라든지 참가만 하면
주는 트로피, 학교 문집, 딸의 그림 변천을 알 수 있는 화집 등은 과감히 버리고 배냇저고리와 일기장 등 부피가 많이 차지하지 않는 것은 보관하기로 했다.
우리 집 작은방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책이다. 유난히 책 욕심이 많아 사면 버릴 줄 모른다.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않은 책이 수두룩하다. 제아무리 세계적인 평판을 얻은 저서들일지라도 다시 들춰볼 일이 없다면 한낱 진열품이요 지적 허영심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책을 모았다. 더는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을 선별하여 상자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을 상자에 넣기를 망설이는 책도 있었지만 점점 공간이 넘쳐나는 책꽂이를 보니 어떤 흥분(?) 아니 정신적인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다.
요즘 이렇게 비우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우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어느새 버려지는 물건과 함께 얽혀 있는 앙금 같은 미련과 지키지 못한 약속과 남의눈을 의식한 허장성세 따위가 깨끗이 사라져 정신과 몸이 좀 더 가뿐해진 느낌이다.
첫댓글 영화에 보면 할아버지가 물려준 시계 애인과 찍은 사진 어떤 순간을 나타내는 상징의 물건에서 영화가 시작되는 경우가 있지요. 버림도 어렵고 간직도 어렵더군요. 상징적인것 고르는 것도 인생살이입니다. 잘 고르시고 그리고 그 빈자리 또 채우십시요. 나는 아애 물건을 살때 많이 말설입니다. 그리고 여행가서도 사진 한장만 찍습니다. 추억은 마음속에 저장하고 상징은 한장이면 족하니까요. 가서 버릴것 주어담지를 않습니다. 해서 같이 여행간 사람들이 사진 안찍는다고 하던데 어짜피 버릴 것 담으면 무엇한데요. 비우면 다시 채워지고 채워지면 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몇일 전 한 지인이 말하기를 집안의 오래된 물건은 타인이 치워주고 버려주어야 버릴수 있다고 하는 말에 수긍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건의 주인은 그 물건에 대한 애착과 집착 때문에 과감해 질 수 없다는 말이었죠. 이것은 이러한 추억 때문에 저것은 한번쯤 쓸 것 같은 아까움때문에 온전히 버리고 비우기가 어렵습니다. 매번 버리기 위해, 비우기 위해, 내려놓기 위해 그날그날 노력하면 사는 것이 최선이라 여겨집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명언 중 한 구절입니다.
책장,옷장,이불장,냉장고 속,꽉 찬 냉동실...
머릿 속 잡념들은 어떻구요.정말 버리고 비우고 개운하게 살고 싶습니다.
때가 되었나 봅니다.
비움이란 다시 채우기 위함입니다.
어찌 저랑 같을까요? 저장성 강박증! 언제 필요할줄 몰라서, 추억이 있어서, 그 당시 비싸게 사서 입지도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점점 생활 공간을 잠식합니다. 심지어 마트에서 주는 비닐까지도 모았다 일만들어서 한꺼번에 버립니다. 병입니다. 저도 과감히 버려야겠습니다.
빡죽이의 호적초본을 띄어보면 이사한 곳이 백곳이 넘을성 싶습니다. 이사짐을 쌀 때에 이것을 버릴까 저것을 버릴까 망설인 때가 많습니다. 요즘에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지 않나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