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井邑)에 가보니…
심명숙 (시인, 여행작가)
‘정읍 워케이션’ 팸투어 버스는 가슴에 풍선 하나씩 품은 기자들을 싣고 전라북도 정읍 종착역에 도착한다.
바람이 냉기를 풀어내는 입춘 절기의 햇살에 내장산(內藏山)은 아직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맑고 포근한 날씨가 고맙기만 한 날이다. 필자는 처음 입성한 정읍에 도착하자,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점심 맛집 ‘명인관’ 산채 만찬은 정읍의 따뜻한 인심이었다.
정읍시는 전라북도 남서부에 위치한다. 대부분 산맥(노령산맥)으로 경계를 이루어 천혜의 자연환경이 자랑이다. 면적은 692.78㎢이고, 인구는 11만 5977명(2015년 현재)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단풍 명승지로 꼽히는 내장산,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숨겨진 보물이 많아 역사의 높이와 깊이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내장산이 품고 있는 정읍은 풍류의 고장이라 한다.
2024년 2월 16~17일, 2일 동안 정읍 투어는 주최 측의 꼼꼼한 프로그램을 통해 정읍의 선조들이 지켜낸 역사·문화를 체험하고 배우며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특히 정읍의 자존심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자부심과 앞으로의 포부가 대단하였다. 여행객은 내 고향에 온 듯, 정답게 맞이해 주는 주민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또한, 정읍형 관광(농촌체험형)성지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시는 전주대학교 최종렬(연구책임자) 교수님과 관계 공무원들의 애향심에 성공을 기원하는 박수를 힘껏 보냈다. 이토록 내 고장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곧 정읍의 제일 큰 자원이 될 것임을 믿는다.
솔티숲 옛길을 걸으며
‘솔티’ 소나무 터를 줄임말로 ‘솔티숲’은 천여 년동안 정읍을 품은 정읍의 맑은 심장 같은 생각이 든다. 왠지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곳, 마음을 정제하고 걸어야 할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깊은 겨울을 인내하고 수염을 다듬는 선비 같은 대나무 사이에는 아직 떨치지 못한 그늘이 사리고 있다. 경쾌한 바람이다. 여기저기 발걸음마다 감탄에 실려 오는 매콤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아직 촌스러워서 좋은 길이다. 신발에 풋풋한 흙이 묻어나서 재미있는 길이다. 같이 걷는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들이 머지않아 파릇하게 피어날 계절이어서 좋은 길이다.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가슴을 풀어헤치고 싶은 운치가 좋은 길이다. 점잖게 뻗은 소나무 뒤에선 누군가 훔쳐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문일까. 우주의 미학이 법칙대로 흐르는 듯이, 곡선을 그린 초연한 밭둑길, 산길을 걷는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다.
날씨는 분명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말없이 걷는 저들에게도 들릴 것이다.
해설가는 쫄쫄 소리 내는 개울 옆, 짚으로 된 이엉 앞에 섰다. ‘초빈(草殯)’이다. 초빈은 사람이 죽어도 어떠한 사정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시체를 방이나 집안에 둘 수 없을 때, 밖에 의지할 수 있는 곳에 관을 놓고 이엉으로 덮어 눈이나 비를 가려놓았다가 매장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섬 지방에서 1차 적인 장례행사로, 여기처럼 산간지방에서는 드문 일이다. 지역에 따라 초분, 외빈, 초골장 등으로 명칭이 다르다.
옛길에서 찾은 또 하나의 신비로운 문화이다. 한적한 산골에 초빈에 누웠던 선조들의 명복을 빌며, 옛사람들이 살아가는 지혜의 원리가 아닌가 감탄을 한다.
“산 깊은 곳에 홀로, 낙엽마저 질퍽이는 먼 곳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원시적인 숲길에서 볼 수 있는 정통 역사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 내장산의 발등 같은 언덕을 오른다. 수북한 낙엽 밑에는 높이 763,5m 내장산의 대동맥이 흐른다. 봄을 꿈꾸는 나목을 툭툭 치며 깨워본다. 아마도 서래봉 월령봉도 사람의 온기 느꼈으리라. 역시 내장산은 우리가 모르는 생명들을 많이 숨기고 있는 듯하다. 푸석한 낙엽 위로 푸른 옷깃을 잡는 춘란이 나풀거린다.
겹겹 쌓인 것이 낙엽뿐이랴. 난세(亂世)에 흔들리고, 비바람에 흔들리며 쌓인 세월. 지친 듯 산속에 팻말로 서 있는 ‘빨치산 본거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아픔이 치유되지 않는 장소다.
솔티마을은 6·25전쟁 당시 빨치산 보급료였다고 한다. 낮에는 남한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마을 점령하여 힘들었던 곳, 아픈 광야이다.
씁쓸한 기분을 뒤로하고 말없이 걸어 내려오니, 하늘로 쭉쭉 뻗은 편백나무 길이 우아하다. 마음을 사로잡는 자태가 왠지 자연에게 대접받는 기분이다. 일행들은 반가운 듯 나무 하나씩을 끌어안고 사진 찍기에 환호한다. 허락된 여건과 시간을 즐기며 행복해하는 기자단들이 멋져 보인다.
화창한 날씨에 콧노래 절로 난다. 내장산 아랫자락에 꾸며진 조각공원 내 습지는 아직 잠자는 듯하고, 조각 작품들이 바라보고 있는 ‘내장호수’는 햇살에 푸르게 반짝인다.
내장 호수
심명숙
조용히 서서
마음을 아무리 가다듬어도
저 물빛처럼 맑지 못하네
태양이 가득 차고
바람이 가득 차도
저 기름진 물빛은 변하지 않네
이제 알겠네
호숫가 세상을 달리는 사람들
그들의 땀을 식혀주는 나무들
사계절 피부가 맑은
내장산이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네.
내장호에 떠도는 소문
천년의 사랑 응어리
서래봉 쌓아 올리고 올리며
흘린 눈물과 한숨 깊어
강을 이루고도
그리움으로 타는 가슴은
내장산을 붉게 물들이는
망부석이 된 여인,
안타깝게 지켜보는 내장산
호수에 그늘 내려주며
굳은 가슴 시켜라
그래도 그리우면
호수에 뿌리내리고
별이 영그는 나무가 되라고….
2024년 2월 16~17일
정읍 워케이션 팸투어
심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