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짐승
시/신석정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로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 해설 / 나태주 시인
부안 출신으로 중년 이후의 생애부터 전주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
난 시인. 지금은 전주와 고향 부안에서 시인을 기억하고 있어 사후
에 더욱 행복한 시인이 되었다.
내가 이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시인의 시집 두권을
함께 만나면서부터다. 중학교 시절 박목월 시인의 시를 읽고 시인
이 되고 싶었는데 신석정 시인의 시는 그런 나의 꿈에 기름을 부
어주었다.
‘난’은 시인의 따님 이름, 하지만 나는 시인이 애인과 함께 산 위에
앉아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걸로 읽었다.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래
서 나는 좋아한다던 여학생의 이름을 난이라고 부르며 시 쓰기에 열
중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