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운날엔
나에게는 눈을 내려깔고 발밑을 자세히 살피며 걷는 버릇이 있다.
물론 길이 미끄러우니 부주의하여 넘어지지 않으려면
길바닥의 상태를 잘 살펴가며 걸을수밖에 없을터이지만
내게는 그것말고도 다른 이유가 하나 더있다.
그 이유는 미끄러운 길을 걷다 넘어질때 바짓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지폐나 동전 그외에 소지품들이 밖으로 튀어나올 확률이 아주 높을뿐 아니라
일단 길바닥에 넘어진 사람은 우선 쪽팔린 생각때문에 넘어진 자리를
두루 살필 마음에 여유를 상실하는 까닭에 재수가 좋으면 꽤 쏠쏠한 수입을
올릴수있다는 실제적으로 검증된 이론에 근거한다.
이런 버릇이 생기게된 근원을 유추하자면 나의 초딩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당시 나와 두살터울이었던 형과 세살터울의 동생과는 늘 어울려다니며
싸우기도 푸지게 많이 싸웠던......
한마디로 눈물겹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며 자란 동기간이었다.
그러기에 지금도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어린시절을 회고하면
아스라한 기억의 저편에서 깨알같은 추억의 보따리들이
한도 끝도없이 풀어헤쳐져 나오는......
아뭏든 그날도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미끄럽던 겨울날이었다.
형이 집에온 손님의 심부름을 해주고 얻은 5원으로 무엇을할까하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가 결국 5원으로 형제가 다같이 군것질을 할수있는
칡뿌리를 사먹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칡뿌리파는 가게가 있는 청주극장 사거리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나풀나풀 함박눈 흩날리는 보도위를 성큼성큼 앞장서서 걷는 형의 뒤를
종종걸음치며 뒤따르던 내 발길에 뭔가가 툭하고 채였을때
무심코 내려다본 내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지며 떨리는 손으로 집어든건
오~~!! 우째 이런 놀라운 일이......
꼬깃꼬깃 접혀진 십원짜리 지폐 네장이었다.
요즘에는 길거리에 십원자라 동전이 떨어져있어도 거들떠도 안볼테지만
그 당시는 십원짜리지페 한장이면 한나절을 군것질할수있는 돈이었다.
우리들 형제는 혹시라도 예기치않게 찾아든 행운을 놓쳐버릴세라
황급히 인근의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뜻밖의 행운으로 취한 십원짜리 네장을
어떻게 처리를 할것인가를 놓고 장시간의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두살 터울의 형은 그 사십원을 엄마한테 가져다 드려야한다는 의견이었고
동생은 우선 가게에 가서 뭣이든 사먹고 보자는 의견이었다.
결국 중간에 끼어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못하고 안절부절하던 나에게
결정권이 내려진 셈이 되었는데
오랜 마음의 갈등끝에 나는 슬그머니 동생의 손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왜 그랬는가 굳이 까닭을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 당시의 우리에게 맛있는것을 실컷 먹는것보다 더 강력한 유혹은 없었으니까....
상황이 그쯤에 이르자 형도 두말없이 우리의 의견에 동조하여
애초에 청주극장 사거리로 향하던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히 중앙시장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되었다.
중앙시장에 이른바 꿀꿀이죽을 파는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리라. 꿀꿀이죽이 뭔가를.......
미군부대 식당에서 병사들이 먹고남은 음식물을 수거해다가 음식에 섞여있는
불순물을 대충 거둬내고 재처리해서 판매하던......
그 눈물겹던 옛날의 쇠잔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먹거리말이다.
남이 먹다버린 음식물이 주재료였기에 꺼림칙한 기분이 없는것은 아니었으나
당시의 우리 형제들뿐이 아닌 우리들 또래의 세대들에게 소세지, 햄등
생전 처음 접하는 희귀한 고깃덩어리들이 무더기로 섞여있는 꿀꿀이죽의
맛이란건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가히 환상적인것이었다.
아뭏든 중앙시장에서 꿀꿀이죽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우리는
남은 돈으로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는 오랜만의 느긋한 호사를 즐기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에서야 만화방을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아마 그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처럼 무겁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을게다.
우연한 행운으로 주은돈을 흥청망청 써댈때는 즐거웠지만
왠지 뭔가 큰 죄를 지은듯한 느낌을 떨쳐버릴수가 없었으니까...
특히 엄마에게......
그때였다.
동생이 뭔가를 발견하고 형!!~하고 마치 절규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하얗게 쌓인 눈의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친것은......
희미한 가로등아래 분명하게 빛을 발하고있는 한장의 시퍼런 배추껍대기 !!
백원짜리 지폐였다.
오~~ 하느님 찬미하나이다.
이렇듯 가슴떨리는 기적을 하루에 두번씩이나 베풀어주시다니.....
만약 그때 하느님이 곁에 있었다면 귀여워서 마구마구 뽀뽀를 해주지않고는
못견딜것같은 심정이었다.
아마 그 당시의 백원이면 지금 만원의 가치를 훨씬 상회하지않을까 싶다.
그때 주운 백원짜리 지폐를 엄마에게 가져다 드렸음은 물론이다.
돈을 받아든 어머니께서는 그 돈을 잃어버린사람이 얼마나 애가탈까하시며
몇날며칠을 마음아파하셨지만
결국 그 돈은 우리형제의 학용품값으로 아주 값지게 쓰였다는것을
후일담으로 전해드리며 그 시절로부터 주마등같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눈이 내려 미끄러운 보도위를 주춤주춤 걸어갈때면
나도 모르게 눈을 내려깔고 발밑을 살피고있는 조건반사적 버릇이 붙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곤 씁쓸한 웃음이 지어지던것이다.
작년겨울에는 인근 사당동 남성시장골목에서 오천원짜리 한장을
주운적이있다.
첫댓글 하얗게 눈이 내리면 행복해지는데
횡재까지 했으니 얼마나 기분 좋았을꼬 ! ......
재수 좋았던 날
행복한 추억담 잘 보고 갑니다
재수좋고
기분좋고
대박나는
유쾌 상쾌 통쾌한 날 되세요
재미있는 글 감사히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