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북리뷰] (나리쌤)
이것이 인간인가. 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예,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생각해보라 이것이 여자인지.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이름도 없이 기억할 힘도 없이 두 눈은 텅 비고 자궁은 한겨울 개구리처럼 차디찬 이가."
표지의 문장들은 책을 시작도 하기전에 마음을 아프게 한다. 현재형 종결어미의 담담한 문장들과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읽는 이를 순식간에 수용소로 초대해버린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소설이나 영화 속 아우슈비츠는 오히려 아름다웠구나 싶을만큼 작가가 직접 경험한 수용소는 처절하다. 과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토록 잔인하게 동물처럼 취급할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또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들 사이에서 인간은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 내일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내 배를 채우고 추위를 피하기 위한 도둑질, 거짓말, 사기가 휑휑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숨을 쉰다. 살아간다.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수용소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함께 읽은 독서모임 멤버들은 자살도 어느 정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한다. 극도의 우울증 상태에 있는 이들은 자살 시도도 쉽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수용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이들은 그런 상태가 아니었을까 한다. 자살할 에너지조차 없는 상태. 책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보여진다.
나와 비슷한, 수많은 다른 사람들 중에서 내가 시련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책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화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善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중략)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인것이 인간인가> p.187
수용소 안에서 '생존해야 할 가치'를 알게 해준 이는 민간인 로렌초였다. 그는 당시 불가촉천민에 가까운 포로들에게 빵이나 스웨터를 선물로 주면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은 행동들은 프레모레비가 인간임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줬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것. 결국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와 행동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하는 것은 결국, 선善이 아닐까 한다.
[출처] [북리뷰] 이것이 인간인가|작성자 나리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