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정류장 ]
- 출근길 30분 동안의 여러 생각
* 2018.12.1 김영주
새벽 6시 40분, 버스가 오는 줄 알았다.
12월 첫날이다. 빨리 버스를 타고 싶은 조급증이다.
아파트 외벽 코너에 가려진 시야가 막힌 곳을 바라보고 있다.
길모퉁이를 돌아 나온 차는 소형 승용차였다.
사물의 크기라는 것이 때로는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크기대로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마술 같은 착시현상이다.
다시 버스를 기다려 본다.
같은 쪽을 보니 좀 전에 본 착시는 옆 아파트 하단에 걸린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암시하는 장식전구의 잔영이 지나는 차의 속도에 따라 꼬리를 물고 그려낸 가상의 버스그림자였던 모양이다.
아마도 서서히 진행되는 내 신체의 노후화가 가세된 그럴듯한 가상의 물체였던 것 같다.
“다 가짜다!”
기다리는 버스는 7분간이나 길의 사각지대에 시선을 머물게 했다.
진짜 버스가 나타났다. 막상 횡단보도 대기선에 있었다가 내게 오기까지 정류장에서 10여미터 남았을 때는 그 존재가 대수롭지 않았다.
무언가 바라고 기다릴 때만 실제보다 커진다는 것을 깨달은 날 토욜 출근길이다.
새벽은 생각보다 일찍 여기저기 빛으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아침은 계란에 구운 베이컨을 넣은 간단 토스트를 해놓고 나왔다.
이사 온 앞집서 며칠 째 버리려고 내 놓는 책이 계단에 쌓이고 있다.
책 더미 속에서 '인터넷 권력전쟁'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어 나왔다.
폐지가 될 책이다.
공짜 권력을 거저 얻은 듯, ‘인터넷 권력’을 꾀어 차고 노동자의 길을 간다.
회사 앞 알림 방송에 다급히 카드를 찍고 내린다. 득템이라도 한 듯 나는
유행하는 권력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드커버 뒷장 저자를 확인했다.
하버드대 교수 헉하며 뇌 찢어지는 소리가 우지직 나는 것 같다 .
쉬이 닿기도 어려운 권력을 괜히 주웠구나 싶었다.
2003년 첫 출간. 15년 전부터 잘난 사람들은 이런 권력의 중심에 있구나생각하면서 걷는다.
하긴, 인공지능,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분야가 시작되는 지금이라는 시점으로 보면 고전이다.
일단 읽어두자고 생각하며, 다시 품에 안고 빨간 신호가 파란 불(착각의 뇌-빨강의 반대가 파랑이라 초록도 굳이 오랜 세월 파랑으로 부르는 인간의 고집)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안전선 앞에 서있다.
그런데, 출근길 어둠이 걷히지 않은 6차선 도로는 마술처럼 이것저것을 발걸음 앞에 불러다 놓는다.
사무실이 가까워지자 어제 동료 말이 떠올랐다.
유치원 선생을 하다 들어왔다는 25살의 다중적인 성격(필요할 때만 살살거리고 차갑다. 때문에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 그런 성격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다)의 또 다른 동료에 대한 얘기다.
어제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나온 젊은 동료는 나의 퇴근 시간을 붙잡아 놓았다.
남은 연차를 다 써야한다며 달력을 들이댔다고 했다.
다 안 쓰면 돈으로 나오는데...
젊은 이들은 돈보다 쉬는 걸 더 좋아하는구나 했더니, 아닌 것 같다고 했다.
12월이 1년이라 곧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랬구나 생각한다. 떠날 곳에 대한 정보는 망각의 대상이 되기 쉬운 모양이다.
바뀐 업무 일정을 까맣게 잊고 출근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나는 퇴근을 못하고 기다렸다.
1시간 반이나 늦게 나왔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다만, 다음에 필요하면 자기가 늦은만큼 대근을 서 주겠다는 말은 했다.
매일 버스정류장에서는 다가오는 버스를 맞고 탄다.
버스는 미련도 없이 떠나보낸다. 필요가 끝난 것이다.
내일 아침은 또 같은 번호를 기다리는 단순 반복을 할 것이다.
버스정류장은 일종의 의식 속에 질서가 있다. 대단히 의지하지 않지만 믿고 기다리는 그런 현장이다.
믿음이 깨지어 시간이 흔들리면 일상이 다급해 진다. 뻔한 곳에 가는 노선이지만 일단 이동을 뜻한다.
그래서 인지 나는 정류장에 서있거나, 그보다 큰 공항에 서 있으면 평소보다
과하게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서 그냥저냥 살아남아 온 것은 노동으로 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연의 힘이었다.
생활은 늘 궁핍했다. 내가 호기심을 갖고 내딛은 숱한 길의 에너지였다고 잠시 회상한다.
궁핍한 중에도 얼마간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서면 돈을 쓰게 된다.
뭔가 변화를 꽤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의식에 도달했을 때 자연으로 갔다.
동행 길에 가끔 나는 말했다.
“인생의 길이 안보여 자꾸 길로만 나서나 봐요!”
보고 듣고 존재한 시간들이 내가 도회지의 척박한 네모 속에 자연이라는 무정형의 경계 없는 세계를 마음에 담았다.
땅으로 간 물리적 공간의 위에 있는 하늘과 뭍의 경계 밖 바다, 내가 살고 있는 실존은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꾸준한 생명유지 행동이라는 생각에 닿곤 했다.
하지만, 일단 나의 육체라는 존재자체가 늘 중요하다. 존재해야 줄로 이어진 인연들의 인생이 있다.
돈을 벌고, 그 궁핍을 구원도 못할 돈으로 핏줄이 생존한다.
때론 나름의 꿈도 꾼다.
지난 달 중순에 상전(딸)의 생활비를 전달할 겸, 나선 길에 동행을 자청한 친구에게 한 상전말이 생각났다.
우리보다 온화한 기후라‘11월 단풍 여행’이 픽크이다.
나의 속셈은 은행 수수료를 절감할 뚜렷한 목적여행이 이었다.
바쁘다며 좀처럼 시간을 안내주는 나의 때를 노린 친구는 안내자와 통역자를 달고 간 안정된 여행이니 두 사람의 목적이 융합된 여행길이었다.
첫날 선술집서 길동무 친구와 상전 두 술꾼이 나눈 얘기이다.
"지금 김 여사가 없으면, 내 인생도 없어요.
내 꿈도 없어요.
학비가 필요하니까.
김 여사가 없으면 나의 지금 현실도 미래도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어요.
그게 사실이에요.
저 여자 김 여사가 나에게 자기 인생을 다 줬잖아요.
너무 소심해서 안해주고 자기가 못 견디니까, 순진해서 바보 같아서 안타깝지만,
지금은 내가 딸이라도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데...그래서 바로 인턴이 되어 돈 벌려고요“
곁에서 술을 못하는 나는 맥주 한 잔의 반쯤 마시고 알딸딸해져 있었다.
그런 소리가 신식 노예제도를 외우고 있다고 생각하며 들었다.
배움의 기간은 길어져 학비는 더 드는 시대. 학비와 부모로 이어지는 서명 없는 노예문서를 내가 망각할까봐 나의 상전이 읊고 ‘계시구나’ 싶었다.
강하게 상전이 되새김질 시켜주는 현장의 낭독식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20대의 다중적인 성품의 동료처럼 상전도 때론 그런 모습을 내게 보였었다.
나는 속으로 편치만은 않았다.
상전과 눈빛을 교감하고 있던 주량을 모르는 두 술꾼 중 친구는 의도하지 않은 젊은 눈빛의 강한 어조에 다소 동요되고 있는 듯 보였다.
있시 살아 온 친구는 캐나다에 딸, 아들을 다 내 보냈다.
있시 사는 사람들에게 강한 맹세와 서약은 필요 없다.
길동무는 그 걸 알 리가 없다.
상전보다 더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는 자신의 자식들은 그런 강한 말투의 보은을 하지 않았겠지 싶다.
그냥 당연한 사실을 이어가고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상전과 나는 당연하지 않은 일을 애써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다짐이 필요한 것이었다.
남들이 안하는 강한 인식의 협약이 필요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상전이 그 효과에 대해서도 어필하는 바람에 있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잠시
우쭐해지는 시간도 갖았다. 졸업 전에 세계적인 기업의 인턴이 되어, 바로 김 여사의 노고를 갚아야한다는 식의 강하면서도 흥분된 짧은 연설이 몇 분간 이어졌다.
길동무는 일을 쩍 벌리고 듣고 있었다.
길동무도 듣고 있는 모든 말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말로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처음 본 젊은이의 뜻 있는 듯한 중얼거림이 여행길이라는 특수한 여건 하에서 고조되는 낯빛이었다.
다들 하룻저녁 도취상태에서 각자의 말을 떠들고 자기 포용력만큼 담거나 푸거나 두레박질이 이어졌다.
가끔, 길동무의 얼굴은 마치 내 고충이 다 갚아지는 축하의 현장에 초대된 손님 같았다.
현실은 어떠한가. 아무것도 없다.
충분치 않은 생활비를 들고 온 나는, 상전이 지난 봄 떠나온 날보다 더 늙수그레해진 작은 체구로 생활비를 건네는 손이 부끄러웠다.
경비를 아끼려고 친구를 달고 왔다는 것쯤은 상전도 다 간파했을 것이다.
첨보는 김 여사의 친구. 참 몰입력이 대단한 세대구나. 참 세월이 약이다 생각했다.
불과 한 두해 전의 상전은 내편인 사람들을 입시 전후로는 경계했다.
밥 해주러 오던 외할미까지도 적대시했다. 이삿짐 새 것 같은 다이어리를 메모라도 적을 겸 회사에 가져다 놨다. 두 쪽 쓰고 방치된 다이어리에 그렇게 써있었다.
차마 찢어 버리지 못했다.
추정 컨데 김 여사를 괴롭히는 못난 딸로 비춰질까봐 미리 자기 둘레에 결계를 쳐 놓고 방어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마간 자리가 잡히니, 이제 자신이 김 여사의 탈모된 머리터럭과 주름진 얼굴의 진원지인 것을 무마하려고 김 여사 편의 낯선 여행자에게 22살의 상전이 고도의 방어전술을 쓰고 있다.
에너지 넘치는 웃음과 톤 높은 음성을 내며 메에메에 엄마소를 맹목적으로 쫓아야 푸른 풀을 뜯을 수 있는 송아지처럼 나팔을 불어 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법 영특한 행동이었다.
나 김 여사의 친구에게 상전이 내세울 것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치장된 가상의 미래였다.
여행자에게 낯선 이문화권의 선경험자라는 우월한 위치를 피력하고 있는 듯했다. 일단 성공적이었다.
후줄근한 내 처지와 그 주원인 제공자인 상전이 모친인 나 김 여사를 갉아먹고 사는 처지를 잘도 포장했다. 표면에 광을 내는 작업을 해둔 셈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신호등 바뀌는 찰나에 슬라이드 필름처럼 지나가고
무사히 제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 얼마가 지났을까, 카톡이 와 있었다.
요즘은 흔치 않은 큰 조직의 토요일 출근. 어제 어느 계제에 안 지인의 안부 묻기 카톡이다.
아침에 누군가에게 카톡이 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출근하시었소?
이 몸도. 강남땅으로 나갈기요."
답톡을 보냈다.
-" 필승! 인자 막 커피내려 마시며, 미모를 다듬고 있슈.
청소하시는 60대 후반 선한 인상 아주머니한테
"봐주는 놈이 없으니 인자 눈썹 그리고 있슈.“ 했더니, 착한 양반이
“지보다 고우시네유
그랬드니 안 그려도 이뻐유“ 한마디 덕담하고 가시네...(미소이모티콘)"
지인은 전날 돈 때문에 벌이고 있는 소송 건을 이야기했었다.
스스로에게 힘을 주려고 내게 출근안부를 물어 온 것 같다.
그리고, 아래 답톡은 쓰다가 멈추고 못보내고 말았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동정은 없다.
아마 자기 것이 아니라 체감지수가 낮겠지.
반면,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
몸을 잃어버린 (상해, 성폭행, 몰카피해자)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을 향한 공감은 크다. "
지인에게 차마 보낼 수 가 없었다. 지난 십여년간 한 때 벌었던 돈의 유령을 쫓느라 10년째 소송에만 전념하고 있는 터였다. 그 삶의 척박함에 더 보탤 수가 없었다.
그냥 '필승'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듯 한 줄 바꿔서 보내주고 말았다.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조차도 이제 그만하자고 그 열정과 돈을 딴데 쓰라고 한단다.
내가 줄 곧 해오던 말이다.
그냥 돈이라고 실패한 사업이라고 생각지 말고, 집을 한 채 지었다가 10년 쓰고 낡고 흉해져서 그냥 부수고 재건축한다고 생각하면 맘 편히 멈출 수 있지 안냐고 해봤다.
'자존심때문에!' 간단한 말로 회피하고 마는 인사이다.
사람은 후에 자기 인생이 뻔히 보여도 어쩔 수 없구나 싶다.
주식에서 치킨게임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미 들어선 길에서 방향을 바꿀 수 없는 일을 겪어내며 뜀박질로 나선 닭이 결국 둘 다 벽에 부딪쳐 머리가 부서지는 달리기를 한다.
스스로는 한 번 뛰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닭의 뇌!
인간의 뇌 속에는 달걀의 껍질보다 더 단단히 고립된 치킨게임에 대한 조작을 품고 사는 구나 실감하고 있다.
남들 노는 토요일 출근길, 마포구 평지를 걸으면서 의식으로는 많은 계단을 허걱대며 올라와 겨우 사무용 책상이라는 정상에 오른 듯하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한 탓이다.
잠시 쉬어야 했다. 마치 몇날며칠을 걸어온 듯한 피로감이다.
왜냐하면, 이글의 대부분을 첫 번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폰 메모장에 썼다.
후반부는 건널목에 대기하며 쓰다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으며 썼다.
이게 나의 시간 쪼개쓰기 방식이다.
오늘 아침 나의 출근길 버스정류장에서 사무실까지의 30분 동안의 이야기이다.
때론 멍하니 그냥 발걸음만 앞으로 내닫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덮는다.
--- 이상 ---
첫댓글 진솔한 고백이 때론 낯선 골목길 같고 때론 수술칼을 든 집도의 같은 ...언어들....이 땅에 살면서도 이방인 같은 자아..
내려앉은 하늘은 언제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게 폭우를 쏟아내리라...그게 살아 있음에 통곡임을
😁 새벽에 간간히 저땜시
눈이 피곤하시겠어요.
알면서도 눈치보지 않기로 했어요.
어디 내놓을 데도 없는 글이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