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로 사는 남자 / 서현 정정예
허공을 짚고 거미가 내려온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야 하는
거미의 산고로 꽁무니서 짜낸 진액이
가로세로 가로세로 정방향의 집,
정교히 그물을 짜놓고
중앙에 숨죽여 칩거 중이다.
한 사내가 밧줄을 타고 집수리하는데
여름 땡볕에 살타는 냄새나도록
돈을 벌었다.
허공 줄에 매달린 채
땀방울이 아득히 떨어져 내릴 때,
바닥으로 떨어진 땀방울은
먹빛으로 드러눕고
빌딩 줄 하나에 의지하여 일하던
사내가 폐암에 걸렸다.
정교한 거미줄에 바람도 걸릴 것 같은데
산고로 만든 길에 미동도 없다.
촘촘히 쳐놓은 거미줄에 아침이슬 영롱하지만
그는 이내 거미줄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거미로 살다 간 남자의 눈물만이
정방향의 거미줄에 걸려서
바람이 부는 대로 마냥 흔들리고
세상 아비들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