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부탁 / 황현산(15)
공개 질문
지난 주말, 어느 디자인 학교에 들렸다가 그 뜰에 벚꽃이 만개한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비로소 우리 아파트에도 무슨 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고,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기까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벚꽃이 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입으로는 무슨 말 같은 소리를 하려 애쓰면서도 늘 이렇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너무 갑작스럽게 꽃을 피워버린 나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꽃을 보는데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꽃나무들은 내게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는 젊었을 때 마산의 경남대학교에서 여러 해동안 강의를 했다. 마산과 창원과 진해가 아직 통합되기 이전이다. 봄이면 진해 군항제가 화제에 오르곤 했다. 진해시는 해마다 3월 마지막 주와 4월 첫주를 놓고 축제 기간을 선택하느라 고심한다는 말을 들었다. 벚꽃이 만개한 시기와 군항제 기간이 일치하느냐 아니냐에 진해시의 한 해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해에 있어야 할 벚꽃이 서울에 있으니 군항제를 걱정하게 된다.
통영에서 마산까지 깊이 바닷물이 들어오는 진해만 연변은 벚꽃으로만 봄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고 물이 호수처럼 잔잔해 바다와 접한 산록의 진달래꽃이 산 그림자와 함께 물에 어린다. 나는 그 진달래 때문에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동료 교수의 차를 타고 마산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배둔으로 가는 길에 그 꽃 그림자를 보려고 잠시 멈춰 섰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마을로 들어간다. 차를 몰던 교수가 어디 다녀오시느냐고 인사를 했다. 군항제에 벚꽃 구경을 하고 오는 길이란다. 내가 여기 꽃이 더 좋다고 했더니, 노인네들은 아주 미쳤나보다고 말하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이제는 그 산 굽이굽이의 작은 만들이 메워져 봄 풍경이 예전 같지 않다고 들었다.
마산에서 통영으로 이어지는 버스길은 그 진해만을 빠져나가는 길이다. 어느 계절이건 그 길은 아름다웠다. 길은 산길에서 해안으로 해안에서 산길로 이어졌다. 차창 밖을 내다보면 왼쪽에서 보이던 바다가 오른쪽에서 보이고 다시 왼쪽에서 보였다. 이제는 고속도로가 생겼고, 여러 작은 만이 메워져 아파트가 들어섰으니, 버스는 산길로 가지 않으며 왼쪽 오른쪽 바다는 벌써 전설이 되었다.
한려수도는 한산도에서 여수로 이어지는 뱃길이지만, 진해만도 넓게 보면 그 뱃길에 속한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말해야 할 이유가 있다. 내가 읽은 생에 가장 아름다운 산문은 그 한려수도에 관한 것이었고, 그 글과 똑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진해만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처럼 1950년대 초등학교에 다닌 사람들은 6학년 1하기 국어책에 실렸던 그 유창한 글을 기억할 것이다. 그 산문은 글쓴이가 통영이라는 이름의 자기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투의 기행문이었다. 그는 한산도에서 여수로 배를 타고 가며 그 연변의 풍경을 묘사하고 국토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나는 그 글을 스무 번도 더 읽어 오랫동안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는 "유리알을 깔아놓은 듯 잔잔한 바다 위를 배는 망아지처럼 달려간다"는 한 구절이 겨우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글의 첫대목에서 그가 조카에게 등불 아래 지도를 펴놓고 남쪽 해안을 살핀 다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라고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는 보들레를의 시를 읽은 사람일 것 같기도 하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끝내는 시 <여행>에는 "지도와 판화를 사랑하는 어린이에게 세계는 그의 식욕만큼이나 방대하다"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짐작할 뿐이다.
보들레르를 읽지 않았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못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무튼 나는 그를 알고 싶어했으나 어태껏 알지 못했다. 노력은 하지않은 채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언젠가가 영원히 오지 않는 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래서 이 귀중한 난을 단 한 번 사적으로 사용할 결심을 한다. 그 글을 쓴 사람을 알려달라고 지혜로운 자들에게 부탁한다. (2014.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