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통과 코뚜레 / 류영택
죽통을 들고 앞서 걷는다. 내 뒤를 따르는 돼지는 쉬이 따라오지 않는다. 길을 벗어나 긴 코로 언덕을 후벼 판다. 나는 자리에 앉아 양은죽통을 바닥에 툭툭 친다.
아침 식전에 집을 나섰다. 돼지를 교미붙이기 위해서다. 돼지우리 문을 반쯤 열고 죽통을 들이민다. 냄새를 맡은 돼지는 코를 벌렁거리며 죽통을 향해 달려든다. 꿀꺽 서너 번 죽을 넘길 쯤 나는 죽통을 낚아챈다. 그러고는 산 너머 마을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죽통을 든 내가 앞장서 걸으면 그 뒤를 돼지가 따라오고 행여나 엇길로 갈까봐 가느다란 회초리를 든 아버지가 돼지 뒤를 따른다.
하지만 좀처럼 돼지에게 죽을 먹이지 않는다. 죽통은 돼지를 유혹할 뿐 빈 통이나 다름없다. 약발이 떨어져 길을 가다말고 자꾸만 엉뚱한 짓으로 시간이 지체되면 그때 맛만 보인다. 그것은 죽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돼지에게 길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죽에 정신을 팔다보면 길을 익히는데 방해가 된다. 제 발로 걸어야 길을 잘 기억한다.
돼지에게 굳이 길을 익히게 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 한 번 교미로 일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손가락을 잘못 짚어 날짜가 어긋나거나, 틀림없이 그날인데 수퇘지의 컨디션이 안 좋아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갈 때는 힘이 들어도 올 때는 쉽다. 굳이 내가 앞장을 서지 않아도 돼지는 집을 향해 잘도 걷는다. 꼬챙이 하나만 들고 돼지 뒤를 따르면 된다. 다음번엔 죽통을 앞세우지 않아도 큐비트의 화살처럼 수퇘지의 집을 향해 암퇘지는 쏜살 같이 달려간다.
아내를 태우고 집을 나섰다. 아들이 일하는 가게에 가기 위해서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취직을 못하고 몇 달째 집에서 빈둥빈둥 놀기가 뭣했던지 아들은 시너를 파는 가게에 일을 하게 됐다. 오늘이 첫 출근 날이다.
옆자리에 탄 아내는 들떠 있었다. 아내는 생각할수록 아들이 대견스러운 모양이다.
"여보, 우리 아들 잘하고 있겠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아내는 김밥집 앞에서 잠시 내려달라더니 금세 말아놓은 김밥을 샀다며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아들에게 야식을 먹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치 군에 간 자식을 면회 가는 여느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다.
아내는 아들에게 첫 개시를 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시너가게 안으로 차를 몰아넣었다.
내일 아침이면 볼 텐데 저렇게 호들갑을 떨까. 아내는 아들의 목에 자신의 목에 두른 목도리를 감아주며, 손은 시리지 않느냐, 혼자 밤을 새우려면 지겨울 텐데 책이라도 가져왔느냐? 잠시도 그냥 있지를 못했다. 그러면서 배고플 때 먹으라며 잠시 전에 산 김밥을 내놓았다.
아내는 갈 때와 달리 기분이 쳐져 있었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아내가 불쑥 말을 던졌다.
"동창회다 뭐다 밤을 낮 삼아 쫓아다니더니 아들 취직자리 하나 부탁 할 때 없어요!"
나는 아내의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소군지' 사전적 의미는 '소고(小鼓)' 악기의 이름이지만, 우리고장에서는 코뚜레를 하기 전에 소의 입에 고삐 씌우는 것을 그렇게 불렀다.
젖을 땐 송아지는 더 이상 어미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제 멋대로 돌아다니며 남의 집 콩밭을 헤집어놓기 일쑤다. 아직 덜 자란 송아지의 코에 구멍을 뚫을 수는 없고 고육지책으로 소군지를 씌워 붙들어 맬 수밖에 없다. 그러다 때가 되면 코에 구멍을 뚫는다. 곪지 않고 상처가 잘 아무는 '도리깨 열나무'로 두 콧구멍 사이에 있는 막을 뚫어 코뚜레를 채운다. 그리고는 강변 모래사장에 끌고 가 쟁기질을 시킨다. 처음에는 소의 고삐를 잡고 사람이 같이 걷는다. 소이까리로 등을 후려치며 '자라, 자라, 어띠로' 주인의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려면 수많은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몇날 며칠 넓은 강변에서 쟁기질을 하다 보면 소는 길들여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말을 알아듣고 혼자 나아간다. 하지만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잠시 쉬었다 다시 일을 시키기 위해 소를 강가에 끌고 가서 물을 먹이려 해도 목이 마르지 않으면 소는 물을 먹지 않는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주둥이에 끈을 묶어 아무리 잡아 당겨도 뒤로 물러날 뿐 앞으로 당겨오지 않는다. 평소보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죽으로 유혹하는 게 낫다.
취직을 못 한 게 어디 아들의 잘못이겠는가. 나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노릇을 다 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소군지가 필요할 때는 아내와 맞벌이 하느라 옳게 돌보지 못했고, 끼니 걱정을 겨우 면하고부터는 바깥일로 날을 지새웠다. 코뚜레를 할 나이, 내가 아들에게 한 것은 제때 공납금 준 게 전부였다.
그림자는 실체를 따라 움직인다. 내가 자리에 앉으면 그림자도 자리에 앉고 내가 뛰면 그림자도 따라 뛴다. 아들에게 있어 나는 그 그림자의 실체였다.
지금처럼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더라도 금세 직장을 구했을 텐데. 나는 아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게 지난날 돼지를 몰고 갈 때 죽통으로 길을 유혹 했던 것처럼 길을 인도 하지 못했다.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아내의 모습처럼 아들도 컨테이너 박스에 쪼그려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이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억지로 시켜 될 일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고삐를 붙들고 물을 먹이려고 애를 쓰는 농부처럼, 공부 좀 해라 잔소리라도 할 것을. 아니면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공고에 가게 했거나 전문대에 보낼 것을, 신화 속 고래가 물을 만나지 못하고 해변에서 몸을 허우적거린다.
첫댓글 고인의 작품을 읽으니 마음이 짠합니다.
류영택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진솔한 분위기에 저절로 빠져들어 마치 목성균 선생님의 수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떠오른답니다. 100세시대라는 말과는 달리 한창 작품을 쏟아낼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