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을 마치고 쉬고 있는 중에 관장님이 다가오셨다.
“애들인데도 잘하죠?”
“그러네요. 역시 운동부라 다르긴 하네요.”
중학생 주먹이라 대부분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귓방맹이를 제대로 한 대 맞아서 아직도 턱 부분이 얼얼했다.
“제 후배들이라 한번 성인들이랑 연습해보라고 데려왔어요.”
“관장님도 청주남중 복싱부이셨으면 제 친구랑 운동 같이하셨겠네요? 저도 남중 나왔는데.”
“오, 정말요? 아 그렇겠네, 한 살 차이니까. 형님, 저 그때는 모르셨죠?”
관장님이 순간 놀라더니 조심스레 물으셨다.
“네, 여기 와서 처음 뵀어요.”
“아시면 안 돼요. 그 땐 좀 철없을 때라.”
“아이, 진짜 몰라요. 근데, 그, 허하늘이라고 아세요?”
허하늘이라는 이름을 듣자 관장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어, 형님, 하늘이 형이랑 친구셨어요?”
“친구는 아니고, 그냥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같은 반 몇 번 된 정도? 졸업하고부터는 연락도 안하고 근황도 몰라요.”
“아, 예, 모르는 게 나아요. 굳이 뭐 가까이 하지 마세요.”
모르는 게 다행인 사람. 친구라기엔 딱히 가깝진 않았던 사람.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굳이 사전적 의미를 붙이자면 동급생정도로 부르는 게 낫겠다. 하늘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1학년 첫 날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정말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모두가 초등학생이 된 첫 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 와서 입학식 행사를 하고 배정된 반으로 가며 부모님과 떨어지고 담임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시간을 갖고 어찌저찌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가는 그 정도로 어렴풋하게 보편적인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내가 그 전까지 살아온 세상, 특히 어휘의 영역이 비약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향해 확장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씨발.”
어떤 맥락이었을까. 담임선생님과 첫 대면을 마치고 쉬는 시간동안 잠깐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간 사이에 오늘 대부분 처음 만난 아이들은 다들 어색한 분위기에서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한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키는 굉장히 작았고 어딘가 전체적으로 꾀죄죄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다림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엄마는 빨래 후에 몇몇 옷들은 항상 다림질을 하셨다. 다림질을 왜 하는 것이라고 물으면 옷에 구김이 가니까 그렇다고 하셨다. 옷에 왜 구김이 가면 안 되냐고 물으면 보기 싫으니까 그렇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엄마가 항상 옷을 다려주셨기 때문에 구김이 간 옷이 왜 보기 싫은지에 대해선 알 턱이 없었다. 꼭 우리 집의 옷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입은 옷들을 봐도 구김이 없었기 때문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키 작은 아이의 옷을 보는 순간 8살 인생동안 갖고 있던 의문이 풀렸다. 아, 옷이 구겨지면 저런 것이구나. 옷에 빼곡히 구김이 져있는 저 옷을 보며 보기 싫다는 말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느꼈다.
다림질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긴 했지만 곧이어 그 아이는 나에게 새로운 궁금증 하나를 던져주었다.
“씨발.”
그 아이는 내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을 했다. 저건 무슨 뜻일까. 의문 자체는 얼마가지 않아 풀리긴 했다. 저건 나쁜 말이고 욕이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어른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전까지 알고 있던 세상에서 가장 나쁜 말은 바보, 멍청이뿐이었고 그게 내가 남에게 화를 내기 위해 쓰던 어휘의 전부였는데 씨발을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종류로 파생되는 욕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한 순간이었다. 여전한 의문은 왜 그날 하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을 한 것일까. 이제부터 12년간 진행되는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선 심정; 아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다, 공부라는 것을 앞으로 해야 하는구나, 대학까지 졸업하려면 총 몇 년이야, 앞길이 막막하다 진짜 등등 이런 복합적인 심정을 표출한 걸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이 사실들을 알았더라면 그런 욕 정도는 한번 시원하게 뱉으며 시작할 만하다.
내가 자란 동네는 총 4개의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그 중 2단지가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던 임대주택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다 안다고 하더라. 그리고 아파트에 따라 누구네 집은 가난하다며 놀린다는 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어릴 때는 애들이 순진한 건지 상황이 반대였다. 학교에 오기 전부터 유치원, 어린이집 등을 다니며 예의바르고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들 순수하고 온화했지만 2단지에서 온 아이들은 교육을 받았다기보단 길바닥을 통해 세상을 배워온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하늘이는 우리보다 일찍 씨발의 세계를 알고 있던 것일 테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어딘가 세 보이는 말을 쓰며 다들 앉아있는 와중에 규칙 따윈 무시하고 홀로 유유히 교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에 일단 대부분 기가 죽고 시작했다. 2단지의 아이들이라고 모두가 하늘이 같았던 건 아니었다. 우리 반에는 하늘이 말고도 2단지 아이들이 몇몇 더 있었지만 순한 친구들도 있었다. 다만 학년 전체로 넓혀보면 각 반마다 한 명씩은 하늘이 같은 거친 아이들이 남자든 여자든 몇몇이 섞여있었다.
그런 애들의 특징은 욕을 잘하는 것 외에도 뚱뚱한 체격은 거의 없었으며 하나같이 달리기가 빨랐다. 달리기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게 큰데 신기하게도 그 아이들은 다들 달리기가 빨랐다. 또 내가 학교에 가서 처음으로 본 것은 달리기를 할 때 신발을 벗고 뛴다는 것이었다. 2단지 아이들은 체육 시간이나 체육 대회 때 달리기를 하게 되면 항상 신발을 벗고 뛰었다. 이유는 당연히 그게 더 빠르다나. 달리기가 느린 나 역시 그게 비결이었구나 싶어 신발을 벗고 뛰어봤으나 예상치 못한 지압 효과에 발바닥이 아파 오히려 몇 걸음 뛰지도 못했다.
그때쯤 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이야기가 한 가지 더 있다. 너무 오래전 일들이라 매끄러운 서사를 가지지 못하고 띄엄띄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 부탁드린다. 하여튼 그 이야기는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고 그냥 전해 들었던 것인데 당사자들이 너무 덤덤하게 말을 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아있는 듯하다. 옛날 아파트에는 단지 내에 급수탑과 난방용 굴뚝이 존재했다. 급수탑과 굴뚝이라는 이름도 지금 내가 검색해봐서 아는 단어지 그 당시에는 그걸 그렇게 부르는지, 그런 용도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아파트 단지에 한두 개씩 아파트 못지않게 높이 솟아있는 정체모를 건축물이 존재했고 모양은 제각각 달랐지만 어떤 건 그냥 담배같이 일자로 뻗어있었고 어떤 건 맨 위 천장부분이 넓게 퍼져있어 매우 커다란 버섯 또는 자이로 드롭같이 생기기도 했다. 2단지에는 담배 같이 생긴 급수탑인지 굴뚝인지 모를 게 있었는데 꼭대기까지 연결된 사다리 역시 있었다. 어제 그 사다리를 타고 거의 중간 이상까지 올라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무덤덤하게 하던 친구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심지어 여자였다. 지금 대충 따져 봐도 아무리 못해도 아파트 5층은 될 높이인데 거길 초등학생 1학년이 사다리만 타고 올라갔다는 게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높이라면 바람만 좀 새게 불어도 날아가 추락할 법도 한데 말이다. 그 친구들은 2단지 아이들이었긴 해도 하늘이처럼 거친 축에 속하는 애들은 아니었고 적당히 착한 애들이었는데 그냥 평소에 하던 놀이마냥 그 정도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는 점이 지금 생각해도 기묘하게 느껴진다.
하늘이와는 끝까지 친해지진 못한 것 같지만 어쨌든 약간이라도 교감을 한 첫 계기는 컴퓨터실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살아온 환경이나 성향이 다른 걸 떠나서 애초에 강 씨와 허 씨가 번호순대로 자리에 앉다보면 학기 초에 친해질 일이 없었다. 학교 컴퓨터실은 하교 시간과 방과 후 교육으로 컴퓨터 반이 운영되기 시작하는 시간 그 사이에 게임방이 되었다. 주 이용층은 2단지 아이들이었다. 당연히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그렇게 개방을 해준 건 아니고 일종의 몰컴이었지만 딱히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방과 후 시간이 시작 됐을 때 나가기만 하면 되니 문제될 건 없었다. 나는 방과 후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수업이 시작되기보다 조금 더 일찍 와서 게임을 했다. 그 상황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일은 없었지만 안면 정도는 있었던 하늘이를 만난 것이다. 하늘이는 나에게 피카츄 게임이 하고 싶은데 알려달라고 하였다. 당시 나는 피카츄 배구와 포켓몬스터 골드버전(불후의 명작이다) 중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몰랐으나 아무래도 더 재밌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생각하여 막상 게임 내에서 피카츄는 만나기 힘든 포켓몬스터 골드버전을 설치해주었다. 역시 하늘이가 찾던 게임도 골드버전이었고 그때가 처음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서 친해지는 계기였다. 그 날 이후로도 건물 뿌수기, 소닉3, 스타크래프트 립버전 등 여러 게임을 깔아주고 같이 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을 좀 크게 건너 뛰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1학년 때는 딱히 담임선생님의 지도랄 게 없어서 하늘이는 그냥 욕을 내뱉으며 거칠게 다녔지만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한명 한명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대해주셨다. 학년 초에는 거친 모습이 그대로였다. 오히려 4년이란 시간동안 더욱 성숙된 모습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시비도 자주 붙고 그럴 때마다 거침없이 쌍욕을 했으며 안 밀린다 싶으면 바로 선빵부터 때리고 보는 모습은 여전했다. 키는 작아도 사람의 기세라는 게 있었다. 같은 2단지 출신이 아니면 두려워서든 더러워서든 하늘이랑은 대부분 거리를 두는 편이었고 나도 오래전엔 약간의 인연으로 조금 친했던 것 같지만 막상 다시 이렇게 만나니 친한 척하기도 애매한 사이였다. 담임선생님은 하늘이가 학기 초에 문제를 종종 일으켜도 화를 내며 혼내거나 벌을 주거나 때리지 않았다. 그냥 그래선 안된다고 부드럽게 타이를 뿐이었다. 이건 너무 이상적인 교육방식이 아니오! 그래서 애들이 알아먹을 것 같은가? 오히려 선생을 물로 보지. 이런 게 그 당시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사고방식이었다. 초등학생 애들을 회초리로 때리고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그런 식으로 학생들을 다루는 교사만 만나오던 중에 그런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놀라운 건 하늘이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간 맞아가면서도 교정되지 않던 말썽쟁이가 비폭력적인 선생님의 지도 아래 변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히는 듯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관된 자세로 하늘이를 대했다. 어느 순간 하늘이도 느껴진 걸까.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선생님의 마음을. 하늘이는 선생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하늘이에게 진정 필요했던 건 진심어린 관심이었을까. 하늘이가 변하기 시작하자 반 아이들과의 사이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공격적이고 서툴렀던 아이가 학년이 끝날 때쯤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글을 여기서 끝낸다면 불량 학생이던 한 아이가 선생님의 애정 덕분에 모범생으로 거듭난 훈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멈출 순 없다. 하늘이와 나는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다. 남자 중학교의 1학년 시기는 살벌한 서열 싸움이 벌어지는 야생과도 같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은 해당이 없지만 그쪽 세계의 노는 애들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이 서열은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일단 본인의 주먹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결정되진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일명 빽이라는 것이 있어야했다. 일찐 중에서도 탑 일찐은 이 주먹과 빽을 모두 겸비한 자가 되었다. 중학교가 초등학교 하나에서 그대로 건너왔다면 사실 서열 싸움이랄 게 있을 필요가 없지만 주변의 수많은 초등학교, 더 크게는 몇 개의 동에서 각자 한 따까리씩 하던 애들이 한 학교에 모이게 되니 난장판이 아닐 수가 없다
하늘이는 5학년 때의 그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 판에서 자기 위치를 잡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빽도 2단지에서 욕을 가르쳐 주던 형님들이 두둑히 있었는지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다 약간 결을 달리하게 되었는데 하늘이가 운동부에 들어간 것이다. 럭비부는 팀이기 때문에 쪽수가 많았고 태권도부는 럭비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복싱부는 우리 학년에서 하늘이가 유일했고 다른 학년을 따져 봐도 한두 명뿐이었다. 몇 명 없는 운동부라는 점에서 나오는 유니크함과 복싱이라는 투기 종목 자체에서 나오는 강함이 하늘이에게 적절한 서열을 부여해주었다.
실제로 하늘이가 싸움을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중학생 때는 다들 급격한 성장이 일어나는 시기이면서도 그 시작이 다 제각각이라 같은 나이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있다. 누구는 이미 중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180을 훌쩍 넘겨서 오는 거인이 있는 반면 하늘이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작고 말랐었다. 거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주먹 거리도 안되겠구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싸운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하늘이는 매년 열리는 전국 소년 체전에 나가서 자기 체급에선 항상 금메달을 따왔다. 당장의 피지컬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복싱 자체는 꽤나 잘하니 결과를 내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늘이의 복싱 실력을 암시하는 간접적인 사건이 몇 가지 더 있다. 시간을 또 훌쩍 뛰어넘어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또 나와 같은 반이 되었다. 미리 얘기하자면 초등학교 1학년 때와 5학년 때는 가까워졌던 때가 있었지만 중 3때는 결국 끝까지 애매한 사이로 지냈다. 이미 나와 하늘이의 삶은 너무나도 결이 달랐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3학년 때 이틀에 걸친 체육대회 날 우리 반은 최하위에 머물고 있었다. 아무런 종목에서도 순위권 안에 들지 못했고 응원상이라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씨바 응원할 맛이 나야 하는 거지 다 처참히 발리는 경기에서 응원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 쯔음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계주 달리기를 앞두고 그 전 경기로 오래 달리기 시합이 있었다. 우리 반의 대표는 하늘이었다. 누가 정하는 절차도 딱히 없이 너무 당연하게 정해져 있었다. 출발선에 주자들이 나란히 서있는데 하늘이를 보니 이번에는 맨발은 아니었다. 경기를 시작하는 화약총이 쏘이고 하늘이는 시작부터 거의 전력질주 하듯 앞서나갔다. 우리 반 애들은 그 모습을 보며 몇몇은 환호하고 몇몇은 당황했다. 나도 당황한 편이었다. 저렇게 빨리 달려서 어떻게 8바퀴를 뛰겠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당연히 기우였다. 하늘이는 그냥 그 속도 그대로 계속해서 달렸고 3바퀴도 채 돌기 전에 이미 승자는 결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마지막에는 크게 힘든 기색도 없이 웃는 얼굴로 결승선을 들어왔고 우리 반에게 드디어 1등을 안겨 주었다. 안타까운 건 그렇다고 해서 순위가 변하지는 않았다.
3학년이 다 끝나갈 때 쯤 난데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늘이는 에어컨 뒤 구석에 숨어 제출하지 않은 핸드폰을 몰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다른 반, 옆 반도 아니고 저 멀리 있는 층도 다른 반의 럭비부 하나가 우리 반을 쳐들어왔다. 쳐들어왔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게 뒷문이 부술 듯이 발로 차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에 들어왔고 하늘이가 구석에 숨어있는 건 어떻게 발견하고는 곧바로 달려가서 때리기 시작했다. 럭비부는 굳이 설명안해도 되겠지만 당연히 등치가 크다. 그 커다란 사람이 쪼그만한 하늘이를 사정없이 패고 있는데 생각보다 하늘이는 침착하게 맞고 있었다. 그렇다고 맞서 싸운 건 아니고 침착하게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빽이었다. 정체모를 그 빽과 통화가 연결된 하늘이는 폰을 럭비부에게 건네주었고 럭비부와 빽은 통화하기 시작했다. 아 저도 누구 형이랑 같이 운동하던 동생인데요 하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 통화는 종료되었고 폭행도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냥 갔다. 평소에 갖고 있던 의문이 하나 또 풀리는 순간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했다. 하늘이는 막판에는 학교를 잘 나오질 않아서 유급을 당할 뻔도 했지만 결국 졸업은 했다. 하늘이는 체고에 갔다. 거기서도 복싱을 계속 했겠지 생각했다. 그 이후에는 소식을 들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이도 체고 가서 복싱하지 않았어요?”
“네, 그렇긴 한데 그 형은 중간에 탈출했어요.”
관장님은 탈출이라는 표현을 썼다. 얼마나 지독하게 운동을 시키길래. 묘한 표현이다.
“저도 하늘이 형이랑 같이 다닐 땐 좀 말썽 많이 피우는 애였는데 저는 체고 가서도 복싱 계속하고 그 형이 복싱 관두면서 저랑 멀어지고 저도 그런 생활에서 탈출 했죠.”
“뭐, 관장님한테는 잘 된 일이네요. 그럼 요즘은 전혀 연락 안하세요?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관장님은 약간 망설이며 말했다.
“아, 형이 잠깐 갔다왔어요.”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관장님을 빤히 바라봤다.“빵에.”
“아.”
나도 말문이 막혔다.
“어쩌다?”
“중고차 팔면서 사기 치다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그래도 요즘은 잘 살고 있어요. 결혼도 한다던데. 차도 BMW 하나 뽑는다고 그러고.”
“아, 그래도 이젠 좀 멀쩡히 사나 보네요?”
“네, 그냥 퀵 하면서 사세요.”
“퀵으로도 BMW를 뽑을 수 있나보네요.”
“꽤 버나봐요. 근데 부럽진 않아요.”
“네, 저도 딱히. 목숨 내놓고 하는 건데 다.”
그들은 어디로 갔고 이들은 어디서 왔는가. 갖고 있던 의문이 또 하나 풀리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