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60주년 기념 관광
1964년 3월초에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에 입학을 한다.
입학 당시 DB고등학교는 일제시 절간 터전에 창립한 것이며 한마디로 최하급(最下級)중에도 최하급이다.
고교동문도 거의 없고 오롯이 이 잘난 녀석뿐이 아닐까.
약학이라는 약학이 무엇이며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강건너 촛불이리다.
6.3 데모에 휩쓸려 서대문 큰 집에도 며칠 관람(?)도 한다.
입학년도 1964년부터 약사국가고사 치르기 전까지는 루비콘강의 뗏목 위에 주저앉은 처량함이 아닐까.
루비콘강을 헤엄쳐 건너서 약사고시 공부를 한달만에 합격 나팔를 가슴에 품는 순간이다.
입학 회갑이 지난 오늘도 병원 약제실 근무약사로 출근하곤 하는 무무의 일상이다.
무무는 누구를 뜻하며 어느 누구 인간의 것인가.
무무라는 단어가 가슴에 박히는 세월이 있다. 1990년대 후반일게다.
DB고교동기생의 등산대장을 자처하며 나선다. 그때 등산회의 참석인원은 15명 전후이리라.
20여년 이상 한반도 유명산은 물론이고 제주도부터 38선 이남까지 산세는 거의 훑는다.
등산회원들은 제대로된 등산로가 선택 기준이다.
등산대장이라는 명물아닌 맹물같은 녀석일런지 모르겠다.
길도 없고 길이 아닌 곳을 홀로 헤매는 것이 습관화 되기도 한다.
언제이던가 어느 험준한 산을 오르내릴 때이다.
" 등산로 없음 " 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 미친 놈들아 ~ 등산로 없는 곳이 어디에 있는가 "
" 없으면 돌아가던가 비켜가면 등산로가 되는 것이 아니냐 ~ ~ ~ " 거친 숨소리만이 산골짜기를 흔들고 있다.
지쳐버린 몸둥아리를 하늘같이 치솟은 바위 위에 걸터 앉는다.
" 不路有 無路無 "라는 글귀가 머리속을 환히 비춰주고 있다.
한 마디로 " 아닌 길은 있어도 없는 길은 없다 "가 아닌가.
수년간 길을 잃고 헤매고 나뒹글며 터득한 산행의 정답이리라.
순간적으로 無路無에서 無無(무무)가 아호(雅號)로 탄생하는 명작명(名作名)이기도 하다.
순간의 선택이 숙명적인 운명을 바꾸는 찰나이기도 하는 선물이 분명하다.
입학한 세월이 60년 하고도 2개월 그리고 20여일이 흐른 오늘인
2024년 5월21일(화)부터 23일까지 남해안을 순회 관광하는 날이다.
엄밀히 따지면 60주년인 이순(耳順) 육순(六旬)이기도 하지만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환갑(還甲), 회갑(回甲)이라고 함이 좋을게다.
입학 60주년이든 입학 회갑, 환갑이든 편한대로 부르리라.
인간들의 나이를 들여다 본다.
60세를 이순(耳順, 듣는 대로 이해 할 수 있게 됨), 육순(六旬)이라고도 한다.
61세는 만60세로 환갑(還甲), 회갑(回甲) 즉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왔음을 의미한다.
70세 고희(古稀)는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이다. 사람의 나이 일흔 살 또는 일흔 살이 되는 때를 뜻하며
당나라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요즘은 별 의미가 없으리다. 77세를 희수(喜壽), 80세는 팔순(八旬) ,산수(傘壽)로 부른다.
산수라는 표현은 일본 쪽발이들이 만든 단어이다. 팔순(八旬)이라는 한국식 단어를 사용함이 타당하다 할게다.
88세는 미수(米壽)로 여든여덟 살을 이르는 말,
99세는 백수(白壽)로 일백 백(百)에서 하나(一)을 뺀 백수(白壽)로 100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99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100세 이상은 상수(上壽)로 인간 수명중에 상급(上級), 120세를 천수(天壽)로 하늘에 오르는 타고난 수명(壽命)이다.
환갑날 아침 일찍 환갑을 맞는 사람은 사당에 들어가 조상의 신위에 환갑을 맞은 것을 고한다.
환갑상은 성대하게 차리는데, 하객들이 볼 수 있는 앞쪽에 여러 음식을 올리곤 한다.
상 앞에 환갑 맞는 사람이 앉으면 맏아들, 둘째 아들, 맏딸, 둘째 딸의 순으로 부부가 나란히 선다.
잔을 올리고 남자는 재배(再拜), 여자는 4배하여 헌수(獻壽)를 한다.
헌수(獻壽)란 환갑잔치에서 오래 살기를 비는 뜻으로 주인공에게 술잔을 드림을 뜻한다.
오늘날은 다같이 재배하거나 1배만 한다. 그 다음은 차례로 잔을 올린다.
어머니의 환갑이라도 아버지에게 먼저 잔을 올린다.
부모 중에 한 분만 살아 있다면 1잔만 올린다.
악공(樂工)과 기생을 불러 풍악을 하고 권주가(勸酒歌)를 부르는 등 매우 성대하게 치른다
환갑잔치는 에전에 우리들 부모님 시절 이전까지는 거창하게 치루어졌을 게다.
가족뿐 아니라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도 모두 참석을 했으리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차츰 환갑 칠순 팔순의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세대부터는 회갑도 칠순도 팔순도 별로 관심이 없지 않은가.
가족끼리만 모여서 간단히 회식하면 전부일 따름이다.
자녀들로부터 두툼한 축하금을 받지만 그것도 전부 아내의 몫이리다.
1988년도에 성균관대학교 졸업 20주년 축하모임을 서울 강남구 라마다르네쌍스호텔에서 개최를 한다.
부부동반으로 1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으로 이민을간 동기들도 몇명 참석이다.
좌석이 꽉 차고 빈자리도 없다. 그 당시 회장은 무무 총무는 박병구이며 사회자는 유명한 코메디안이다.
계속 자신의 얘기만 주절이는 코메디안을 끌어내린다. 동기중에 한명을 다시 사회자로 진행이다.
내 아내도 모처럼 처음 부부동반에 함께 한 것이다.
회장으로 동기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술잔을 주고 받는다. 잠시 후에 아내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다.
거나해진 남편 모습이 보기도 싫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동기들과 졸업후에 부부동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가.
그때 총무이던 병구는 지금 어드메에 어떤 모습인가.
2년 6개월전부터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을 오가며 넋을 놓고 있다.
요즘은 경기도 하남인가 하는 요양병원에서 눈만 뜨고 있다고 한다.
답답하고 안타까움뿐으로 방법이 없다
하루 빨리 동기들 곁으로 회귀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동기회는 정기모임을 2018년부터 새로 출발이다. 이때 의견을 홍구 병구 길군 정남 네명이 합의를 한 것이다.
매월 세번째가 정기월례회를 갖기로 한다.
3여년전부터 성대약대 입학60주년 기념회비를 매월 갹출을 한 것이다.
동기들의 정성으로 2024년 5월 21일(화)부터 23일(목)까지 입학60주년기념 남해안 관광을 한다.
기껏해야 전부 10여명 정도 되리라고 생각을 한다. KOMERICAN 3명의 동기들이 합류를 하겠단다.
그것도 태평양 너울를 헤엄이라도 쳐서라도 참석한단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여객기 비용만으로도 얼마이던가.
뉴욕(LA)에서 대충 짐작으로 왕복 300 몇십만원일테고 시간도 30여시간은 소요되리다.
한정숙 이종환 이주혁이 바로 주인공이다. 너무 반갑고 신기하고 고마울뿐이다.
또 오랜만이고 그립고 보고픈 두명의 공주님들이 있다.
국내에 있으나 여러가지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어 몇년간 뜸하던 여성들이다.
그녀들 존함은 김계주 김양자 두명이 함께 한단다.
수년전부터 남편이 건강악화로 시름에 젖은 생활이다. 최근에 부군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신 것이다.
얼마나 애처럽고 슬픈 이별인가. 양자님의 남편으로 서울의대 출신 의사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서 온 몸을 다 주어도 아까울 게 없는 존재가 무엇이던가.
한마디로 자신이 낳고 기른 아들 딸 자녀이리라.
맏딸내미가 몇달전에 하늘로 솟은 것이다. 바로 계주양 동기생의 맏딸이다.
일본에서 대학원도 마친 딸이다. 항상 밝고 적극적인 자녀이다. 방법은 무엇인가. 그저 받아들임이 아닌가.
종환이는 그의 평생 삶의 동반자이며 첫 사랑 첫 여인인 하나뿐인 아내이다.
2024년 3월 20일 붙잡지도 막지도 못하고 영원한 석별의 종을 맞은 것이다.
그의 아내는 경기여고를 졸업한 수재이고 성대약대 12회 동기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름은 똑똑하고 어여쁜 김공자이다.
우리들의 동기들의 곁을 떠난 동기생들도 있다.
그들의 이름을 거론해 보면 어떨까. 최근에 홀연히 떠난 오승홍이다.
이번 입학60주년 기념 관광에도 합류한다며 회비도 보낸 동기이다.
그의 아내에게 회비를 반환하려 했으나 돌아온 답은 " NO THANK YOU "이다.
정낙소, 이효령, 유경한, 신충웅, 계충의,그리고 나의 재학시절 실습 파트너인 김영한이다.
그 이외에도 더 몇명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위에 거명한 동기 여러분께 무어라 드릴 말씀도 없다.
그저 머나먼 그곳에서나마 건강하고 편안한 영원한 새 삶이기를 기원드린다.
서울 수서역에서 5월21일 오전 9시 열차인 SRT 특실을 예약이다.
출발하는 좌석의 숫자는 14명이다.
동기들에게는 오전 8시 29분까지 수서역 매표소 대합실에서 만나기로 한다.
총무인 무무도 그전에 도착이다. " 아직 아무도 없지 않을까 "혼자만의 생각이다.
동기들 모두가 벌써 대합실과 열차 타는 곳에도 있다.
그중에 한 여성이 낮에 익기도 하지만 누구이던가.
" 혹시 ~ 동기생 한 ~정 ~ 숙이~~~ " " 그래 내가 한정숙이야 ~ " 말이 끝나기도전에 대답이다.
" 아니 ~ 어찌 체중이 많이 줄었구나, 당뇨병이라도 문제가 있는가 "`
반갑기도 보고픈 한정숙이다. 역시 그런 문제가 있단다.
그녀의 학창시절을 돌아보자. 약간 통통하면서도 활달한 여학생 숫처녀이다.
성균관대학교 신문을 발간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경기여고 출신이 아니던가.
60여년이 흐른 오늘 어깨도 약간 꺼부정하고 걸음걸이도 시원치 않다.
여타 동기들도 마찬가지의 세월이 아닌가.
파아랗던 은행닢이 누렇게 낙엽으로 떨어진다.
오가는 행인들의 발밑에 짓이겨지기도 한다.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이다.
저 머나 먼 하늘 위를 스쳐지나고 있는 구름이기도 하다.
인간백세여몽중(人間百歲如夢中)이란 한 마디가 실감이 난다.
누가 누구를 탓하리까.
출발 20여분 전에 일일히 거명을 하며 특실에 배치를 한다.
오전 9시에 부산역으로 출발이다. 2시간 10분 후 11시 10분에 도착이다.
부산역에는 전세로 2박3일 대절한 28인승 우등 고속버스가 대기중이다.
부산역 구내에 부산의 여행 가이드인 강주수 이명언이도 기다린다.
삼천포는 시의원도 몇번 의장 감사도 거치고 고문으로 거물급 인사인 김태웅 동기이다.
지금도 그곳에서 삼일 온누리약국을 개설코 있는 현직 약사이다.
진도에는 그 곳의 매력에 푹 젖어있는 동백섬의 주인이자 관리인인 박 영동기이다.
진도에서 펜션업소 10여개 이상 경영하던 것을 모두 타인에게 대여를 한다.
이곳중에 하나를 동기들 숙박장소로 추천한 박 영이다.
1964년 3월 입학동기이나 1학년 2학기에 군복무가 우선이다.
졸업은 1972년도라고 한다. 아내는 그곳에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약사라고 한다.
남해안 관광여행에 관여한 동기들 인원은 18명이다. 십여명도 아니될줄 알았는데 예상외이다.
참석 인원을 거명해도 좋지 않은가. 한정숙, 이종환, 이주혁, 김계주, 김양자, 강주수, 이명언, 김태웅,
박 영, 김병선, 김두원, 이성연, 임재명, 조홍구, 차기봉, 차낙규, 최정남등이다.
"아 ~ 차 아 암 ~ " 규상이도 이번 관광에 합류하겠딘다.
임규상은 수년간 동기회 두문불출이다. 자신과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 때문이라고 한다.
이 나이 요즘 세월에 너와 나는 어찌 되었든 동기동창이다.
누가 누구를 탓하며 무슨 이유 변명이 자존심이 필요한가.
만나면 마시고 웃고 떠들고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아니랴.
부산역에 11시10분 정시에 도착이다. 잊은 물건없이 다시 확인을 한다.
주수 명언이가 환한 모습으로 동기들을 끌어안고 반기고 있다.
부산갈매기 주수 명언이 두마리가 동기들이 도착하자 마자 점심식사를 하잔다.
" 점심은 오후 1시경이 지나야 하면 좋을거다 " 한 마디로 거절이다.
그것만 빼고는 부산가이드 니들 뜻대로 해라고 일임이다. 우선 영도다리로 향한다.
평생 영도다리는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이자 이북고향이 생각난다.
" 금순아 ~ 어데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 영도다리 난간 위에 ~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 ~ ~ " 1951년 1월4일 1.4후퇴로 이북 고향을 등진다.
3일후면 1주일후에는 아니면 한달후에는 반드시 고향땅으로 돌아간다는 풍문뿐이다.
아무 것도 없이 맨손으로 고향에 계신 할머님을 홀로 두고 떠난 것이다.
지금 세월이 73년이 흐른 요즘이다. 가슴에 맺힌 절절한 사연도 희미한 초롱불에 불과하다.
50살이 되는 자녀들도 손주들은 더 더욱 이북 고향은 관심밖이다.
"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무엇을 먹고 살건가, 고향땅을 찾기나 할건가 "
해마다 명절이면 대성통곡을 하시면 아버지가 그립다.
오마니 아버지 부모님도 저 멀고 머언 하늘로 떠나신지도 50년이 훌쩍 넘은 것이다.
답답한 마음은 접을 밖에 방법이 없다. 롯데몰 옥상으로 오른다.
국제여객터미널과 영도다리 부산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걸어서 남포동을 스치고 자갈치시장에 있는 횟집으로 들어선다.
푸짐한 회와 온갖 부식 반찬들이 식탁에 가득이다.
주고받는 오가는 술잔에 동기회 사랑의 이슬이 맺힌다.
회식비 650,000정도 주수와 명언이가 분담이다.
송도케이블카, 용궁구름다리, 태종대 등등을 거친다.
해운대 숙소인 송도탕(송도각) 도착, 짐을 풀고 저녁은 유명한 해운대 언양불고기집이다.
저녁을 마치고 해운대백사장으로 직행이다.
밤 하늘에 밤 바다 풍경이 새롭기도 하다.
하얀 물거품을 품고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해운대 바다 물결이다.
바다 저 멀리에는 많은 선박들의 불빛이 아롱아롱 거리고 있다.
근처에는 103층이나 되는 아파트가 시선을 끈다.
바닷물에 밀려서 주차장이 물바다가 되기도 했단다. 서울에도 기껏 높아야 45층 정도이다.
103층에 인간들이 주거지로 살고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어찔 어찔하다.
인구는 세계에서 출산율이 0.76인가 가장 낮은 대한민국이다.
30년 50년 후에는 주거지의 20% 이상은 빈집으로 전락하리라 믿는다.
그래도 자꾸 아파트도 상가도 신축하는 방망이 소리가 귀찮을 정도이다.
2~30대 젊은이들이 결혼은 뒷전이다.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에 빠져 헤매고 있는 청소년들의 미래가 아닌가.
대한민국 앞날이 걱정뿐으로 노객의 마음을 부축할 수도 없다.
개새끼들을 비좁은 아파트에서 한 마리뿐 아니고 두세마리 큰 놈들도 기르고 있다.
밤이면 개짖는 소리에 화들짝 놀래기도 한다. 똥 싸고 오줌싸는 똥개들을 품에 안고 기른다.
그런 인간들도 똥개에 불과하다. 개인 주택 마당이 있으면 얼마든지 찬성이다.
개인주택 2층 양옥집에 살때가 생각난다. 자녀들이 초등학교 초년생 때일 게다.
" 멍진이 또진이 " 암놈 숫놈의 이름이다. 이 녀석들이 새끼를 네마리를 낳는다.
초등생 아들 딸이 너무 강아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일기장에 그런 내용을 아들이 쓴 것이다.
" 어머님 ~ 강아지 한 마리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의 부탁이다.
시골에 시어머님 홀로 사시느라 외로워서 보내주려고 한다고,
흔쾌히 보내준 아내이다. " 엄 ~ 마 ~ ~ ~ 강아지 한 마리 어디 갔어 , 응 "라는 아들녀석이다.
아내는 사실대로 얘기할 밖에 어쩌나.
" 강아지 돌려주세요 "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에게 거듭 울며 재촉하는 아들이다.
선생님도 두손 두발을 들수 밖에 없었던 추억이 새롭기도 하다.
5월 22일 아침을 미포복국할매집에서 식사를 한다.
아침 8시 30분경에 삼천포 김태웅 동기에게 버스로 이동이다. 삼천포 경찰차가 앞에서 안내를 한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경에 유람선을 1시간 반 정도 승선한다.
일렁이는 다도해 파도에 유람선 승선은 얼마만인가. 난생 처음이렸다.
태웅이 자택도 경유하여 단체사진도 몇컷 찍는다. 아내도 친절하게 맞이 한다.
점심식대가 88만으로 푸짐한 점심뿐 아니라 일일이 동기들에게 선물을 한 팩씩이다.
팩속에는 일상에 필요한 의약품과 " 삼천포 예찬 "이라는 수필 한편도 있다.
고맙고 반가울 뿐이다. 오후 네시 조금 넘어 다시 버스에 오른다.
진도에 박 영 동기가 저녁은 진도가 아닌 목포 북항에서 베푼단다.
아마도 수시로 들리는 단골식당인 모양이다.
17명의 식탁이 신선한 회를 비롯하여 갖가지 곁들인 반찬이 넘쳐난다.
식대는 660,000원으로 특별히 김병선이 전액 희사를 한다.
밤 11시경에 진도 숙박지인 진도펜션골드마운틴하우스로 올라선다.
1층 2층으로 각자 취향대로 침실을 잡는다.
앞에는 바닷가 물결이 밤새껏 쉬지 않고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다.
아마도 처음 접하는 동기들을 환영하고 있는 사랑의 찬가이리라.
진도에는 생애 첫 방문이고 숙박이다.
진도군(珍島郡)은 전라남도 서남부 진도와 부속 섬을 관할하는 군(群)이다.
진도는 대한민국에서 세번째로 큰 섬이다. 45개 유인도를 포함하여 256개 섬으로 되어있다.
팽목항에는 세월호 참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곳이다,
인천에 고등학생들이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도로 향하는 세월호에 승선이다.
담임선생님을 비롯해 400여명이 탑승이다. 진도 팽목항 앞에서 배가 침몰이다.
" 가만히 기다려라 "는 선장님(?)의 개짖는 소리에 그저 배와 함께 침몰이다.
" 엄마 ~ 아빠 ~ 죄송해요 ~ ~ ~ 어~ 어 ~ 엄 ~ 마 아 ~ ~ ~ " 한마디 인사도 없다.
그대로 컴컴한 바다속이 학생들에게 마지막 행선지이다.
승객들을 버리고 이#석 선장등 선원 15명이다.
먼저 뛰쳐나온 선장인지 개장인지 된장인지 하는 인간이다.
사람도 아닌 어쩌면 개새끼보다도 못한 똥개녀석이 아닌가.
젖은 지폐를 말리노라 정신이 없다. 학생들은 뒷전으로 몇푼 돈이 우선이다.
202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단원고 희생 학생이 250명이다.
2014년 4월15일 오후 9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도를 향해 출발이다.
탑승자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인솔자 1명이며
일반탑승객 74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9명등 모두 476명이다.
4월 16일 오전 8시49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 조류가 거센 맹골수도에서 급격하게 침몰이다.
" 이동하지 말라 "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희생자는 295명, 실종자는 9명이다.
세월호는 199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건조돼 18년 이상 운항한 것이다.
이것을 2012년에 일본에서 수입된 중고품 선박이다.
제대로 선체복원을 부실하게 한 것도 큰 원인이기도 하리다.
세월호 선체 인양작업은 2017년 4월11일 참사 1,089일만에 목포신항 부두로 올라온다.
오늘날까지도 참사 발생원인 책임소재 진상을 제재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테이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추스리며 사고 현장인 팽목항을 향하려 한다.
하얀 장미꽃 한송이라도 명복을 빌고 싶었으나 시간관계로 포기할 밖에 방법이 없다.
언제 한번 찾아가리라 생각도 한다.
다음날 5월23일 마지막 날 아침이다. 박영이가 이끄는 식당으로 아침 허전한 뱃속을 채운다.
식사비는 박 영동기 몫이란다.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으로 들어선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485m)을 지붕으로 사방으로 수 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곳이다.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붙여진 것이다.
첨찰산은 바위산으로 백제시대로 추정대는 산성(山城)이 있다. 조선시대 설치한 봉수대 유적도 있다.
산 밑에 운림산방이 있다. 1981년 명승 제 80호로 지정된다.
조선후기 서화 예술가 소치 허련(小痴許鍊)이 말년에 고향으로 귀향이다.
이곳에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이다.
화실 안에는 허 씨 집안 3대의 그림이 복제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다.
새로 지어진 소치기념관에는 운림산방 3대의 작품과 수석, 도자기등이 전시되어 있다.
" ㄷ "자 기와집인 운림산방 본채와 초가로 된 사랑채, 신축된 유물보존각등 건물과 연못이 있고,
오각으로 만들어진 연못에는 흰 수련꽃이 피어 있다.
가운데는 직경 6m 크기의 원형으로 된 섬에는 배롱나무도 있다.
운림산방은 분위기 전체가 조선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차분한 느낌도 든다.
진도대교를 건너서 대교 밑으로 내려선다. 명량대첩지인 울돌목이다.
명량해전(鳴梁海戰)은 조선 선조 30년(1597)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水軍)이 명량에서 적을 쳐부순 싸움이다.
10여척의 전선(戰船)으로 왜놈들 함대 133척을 맞아 싸운다. 이놈들의 배 31척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둔다.
"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 이순신이 명량대첩을 앞두고 남긴 구절이다.
한 마디로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으려고 끝까지 버티고 싸우는 자는 반드시 살것이라는 명언이 아닐까.
동기 여러분들도 가슴에 깊히 새겨보심이 어떠실까.
울돌목 바다물 기슭에 이순신장군이 군복도 철모도 아닌 일반인들이 입는 복장으로 서있다.
손에는 무슨 책을 갖고 있는 모습인데 무엇일까. 무척 궁금하지 않으신가.
아마도 부산 갈매기는 당구책일 터이고 JLPT N2 한권으로 왜놈들의 언어를 끝내는 학습지가 아닐까.
상대를 알아야 무엇이든 이길 수 있으니까. 이순신의 머릿 속은 복잡키도 했으리라.
또 다시 침범할 때는 무조건 단칼에 일본열도를 휩쓸어 버릴 다짐일지도 모른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파도가 왜놈들과 싸우다 스러져간 군졸들인 모양이다.
이순신장군의 가슴 속엔 피눈물이 넘치고 있다.
" 너희들의 희생을 지켜주지 못한 이 못난 이몸을 절대 용서치 마라 "
먼저 간 병졸들의 명복을 빌고있는 애처로운 조사(弔辭)이리라.
울돌목 주차장에 있는 버스에 올라 목포 북항으로 향한다.
북항에서 무조건 케이블카에 올라 고하도로 향한다.
고하도 전망대는 이충무공이 명량대첩에서 승리 후 전열을 가다듬었던 곳이다. 고하도에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전망대다. 고하도에 아름다운 해상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 1층은 휴게공간, 2~5층은 전망대 및 목포 관광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이다.
임진왜란 이후 1597년 일본이 재침입했을 때 충무공은 명량대첩에서 13척의 전선으로 적함대 133척을 맞아 싸워 크게 이긴 후 그해 10월 29일부터 이듬해 2월 17일까지 주둔했다.
‘서북풍을 막음 직하고 전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다. 섬 안을 둘러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으므로 머물 것을 작정했다’고 난중일기에 고하도를 기록하고 있다. 107일간을 고하도에 머물며 53척의 배를 건조하고 수군을 2천 명으로 늘리는 등 수군재건의 토대를 마련하여 왜란을 끝내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용이 하늘로 오르기 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용오름’이라고 부르는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이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명량해전 이후 이 섬에 머물며 수군재건을 이뤄내 왜란을 끝낼 수 있었던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크고 강하고 곧은 기를 얻으려는 그대에게 고하도 여행을 권한다.
목포 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는 고하도는 유달산(높은 산) 아래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高下島)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나주목(羅州牧)에 속했는데 비문에는 고화도(高和島), 난중일기에는 보화도(寶花島)라고 표기했고, 그밖에 고하도(高霞島), 칼섬이라고도 불리는데 목포사람들은 친근하게 용섬이라 부른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2019년도 개통으로 북항에서 승차하여 유달산스테이션을 경유하여 고하도스테이션에에 도착한다
거리는 약 3.23Km이며 왕복운앵시간은 약 40여분이 걸린다. 객실 정원은 10명 일반캐빈 왕복 어른은 24000원
크리스탈 캐빈은 왕복 29000원이다. 크리스탈캐빈으로 할 것을 서드르노라 일반캐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