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텅 빈 장롱을 찾아서
권민화(울산 양지초 특수교사)
“선생님,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첫 학교에서 두 번째 학교로 옮길 때 들었던 말이다. 분명히 근처에 근무하시는 선생님께 어떤 학교인지 들리는 소문은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내가 놓친 사실이 있었던 걸까. 오랜만에 심장 떨어지는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전임자와 통화할 때 얼핏 장애가 좀 심한 신입생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났지만 그 당시에는 '장애가 심해도 학생인데, 크게 어려움이 있을까? 내 몸 힘들고 말지.'라는 생각에 더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신입생이었다. 왜 늘 중요한 것은 놓치는 걸까.
강이와의 첫 만남은 4월 입학 적응 활동에서였는데 그즈음 학교는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는 학생이 아무도 없을 때였다. 나는 강이를 처음 보고 꽤 괜찮다고 느꼈었는데 강이가 스스로 실내화도 갈아 신을 줄 알고 심지어 마스크를 쓴 채 교실에 들어와 물건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수교사라면 저 정도 모습에 다들 감동한다. 다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있다. "강이는 자조기술이 좋네요."라는 내 말에 어머님이 의아하면서도 뿌듯해하시는 모습. 조심스레 추측하건대 교육 기관이나 시설에서의 강이는 늘 문제행동으로 인해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내 반응이 생소하셨던 것 같다. 감당 불가능할 것이라는 걱정을 씻어버린 첫인상은 5월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학습 취약계층인 우리 반 학생들은 대면 교육이 가능했고, 평소보다 조용한 학교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으니 강이가 문제행동을 해도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등교 날 강이가 의자에 앉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며 장난감을 휘두르고 나서 매트로 숨는 모습을 보고 알아채야 했을까. 각 학년별 등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강이의 문제행동도 떠올랐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행동의 시작은 통합반에서였다. 1학년이 등교한 첫 주는 강이가 나와 함께 통합반에 들어가 1교시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래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왔으니 같은 공간에라도 있어 보자는 개인적인 욕심에서였다. 내 욕심이 과했는지 첫 주가 지나기도 전에 강이의 걷잡을 수 없는 행동들이 튀어나왔다. 내가 자기 옆에 앉아 있는데도 자기 자리 앞 복작거리는 친구들 사이로 가 친구의 얼굴을 할퀴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아닌가. 처음 겪는 유형의 행동이었지만 늘 있는 일인 냥 강이를 따라가며 붉어진 얼굴을 반절이나 가려주는 마스크에 감사했다. 어느새 중앙현관의 실내정원 흙을 파헤치고 있는 강이를 쫓아가 저지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난 아직 이 학교랑 친하지 않은데, 교장 선생님이 자랑하신 중정인데, 난 특수교사인데, 얼른 문제행동을 중재하는 모습 보여줘야 하는데….’ 오만 가지 생각이 났다.
강이가 통합반을 뛰쳐나온 5월 29일, 이날을 기점으로 강이의 행동은 서서히 달궈져 한여름의 폭염과 함께 폭발하였다. 강이의 감정이 널뛰면 문제행동도 같이 움직였다. 어떤 날은 왜 그랬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자기 머리를 양손으로 때리며 울 때가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자기를 때려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나에게 달려들어 손톱과 이를 드러내며 공격했다. 나는 여름 동안 팔에 시퍼런 멍들을 달고 다녔고, 어떤 날은 손등을 긁히고 꼬집혀 피딱지가 앉았다. 한 번도 몸싸움을(남동생 빼고) 해본 적이 없던지라 강이가 나를 공격하려는 마음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사정없이 쿵쾅거리고 피가 빠르게 도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겁먹지 않고 무심한 태도로 대처할 수 있을까, 혹시나 얕보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보냈다. 마음의 짐은 강이가 공격을 멈춰도, 강이가 집으로 돌아가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모든 생각이 강이로 끝났다. 하필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방영해서 드라마 속 인물과 강이를 맞춰보고, 쇼핑을 해도 강이가 폭발할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 물건을 찾게 됐다. 뜨개질을 해도, 책을 읽어도 결론은 똑같았다. 그래서 이 시를 보고 나와 같다, 강이와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신 생각
이종원(경복초등학교 5학년)
집안에 틀어박혀
방문을 쾅 닫고 목검으로 벽을 때린다.
텅 빈 장롱 속으로 들어가
테이프 자르는 칼로 가장자리를 긁는다.
마음속의 스트레스가
오늘
폭발했다.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엮음, 《쉬는 시간 언제 오냐?》, 나라말아이들, 2007
이 어린이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지만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깊이 느껴졌다. 다른 시선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기특하게도 스스로 화를 푸는 법도 알고 있지 않나. 화가 났을 때 목검으로 단단한 벽을 때리며 목검에서 어깨까지 짜르르 올라가는 타격감을 노리다니, 효율적이고 수용 가능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장롱과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화를 폭발시키는 모습은 화가 나면 교실 구석으로 들어가는 강이를 떠올리게 한다. 커터 칼이 위험해 보이지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긁는다니 이것 또한 지나치지 않다. 심지어 시 쓰기를 통해 묵힌 감정을 어느 정도 풀지 않았을까? 어떤 연유로 화가 났는지 썼다면 더 좋았겠지만, 쓰지 않은 걸 보니 시를 쓸 당시에는 아직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게 얼마나 강력한 대나무 숲이 되는지 느껴진다. 동시에 아쉬움도 따라오는데 내가 가르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어린이처럼 시를 쓰며 ‘자신 생각’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전 학교에서는 운이 좋아 학생들과 말과 글로 소통했지만 이번 학교에서는 학생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몸짓으로, 내가 만들어준 그림 카드로 서로를 알아가니 새로운 문화권에서 새로운 언어로 소통하는 기분이다. 우리 학생 입장에서는 남들이 다 쓰는 무기를 혼자 쓰지 못한다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기도 하다. 강이가 보기에 나는 자기 영역을 침범한 외계인일 수도 있다. 다행히 지금은 서로의 몸짓을 잘 알기에 강이와 나는 나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자부한다. 강이는 표현 수단이 별로 없어 답답할지 몰라도 나는 이제 강이 눈만 봐도 컨디션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서로 익숙해진 만큼 내년에도 반을 바꾸지 않고 함께 하기로 했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처럼 자유롭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강이만의 텅 빈 장롱 만들기이다. 내가 시 쓰기와 같은 효과를 지닌 표현법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강이가 할 수 없는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혼자 폭발시키는 내가 양보하고 더 힘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