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평소 진주강문의 외손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자부심은 외삼촌으로 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외삼촌께서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육군 소령으로 전역하셨는데
저는 평소 외삼촌을 존경하였으며, 신길동에 있는 외가집에도 자주
갔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이던 어느 날, 외삼촌께서 가문의 역사를 말씀해 주셨고
소장하고 계신 문집도 보여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나 도서관에 가서 외가의 직계에 해당되는
족보 전체를 복사해 지금도 필요한 때 보고 있는 중인데 지금 생각하니
족보까지 복사하게 된 그 결정적인 동기부여는 바로 외삼촌이 주셨다고
믿습니다.
외삼촌이 별세하신 이후 그 허전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나 가문의
역사 만큼은 연구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문의 역사를 언론에 발표하는 활동도 하였는데 앞으로 더
보완해 다시 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카페에 올린 바와 같이 외5대조부이신 강동영 선조의
탄생 200주년을 추모하면서 그 생애를 쓸 생각입니다.
얼마전, 조선시대 고문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지인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외11대조부로서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셨고 병조판서의 증직을
받으신 강만석 선조와 관련된 문집이었습니다.
강만석 선조는 외삼촌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가문의 선조들중에 한분으로
외삼촌은 강만석 선조를 병판공으로 소개하셨습니다.
병판공은 강동영 선조의 9대조부가 되시는 분이기도 한데, 저의 지인은
국회도서관에 "사은재공유고(四隱齋公遺稿)" 제하의 문집이 소장되어 있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서지사항을 보니 저자가 강만석(姜萬碩) 으로 되어 있는데 휘 뿐만 아니라
한자까지 일치하는 점에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집이 혹시 그동안 전혀 몰랐던 병판공의 문집이 아닐까?
궁금하게 생각되었는데 하나의 변수가 간행연도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문집을 직접
확인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회도서관 홈피에 들어가서 "강만석"으로 검색하여 그 문집을
직접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문집에 있는 강만석 선생과 그 부친이신 강중헌 선생의 행장을 분석하여
그 계보에 해당되는 족보를 찾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강만석 선생은 저의 외21대조부이신 통계공 강회중
선조의 형님이 되시는 통정공 강회백 선생의 후손으로 특히 사숙재 강희맹
선생의 후손이 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강만석 선생의 호가 사은재인데, 이러한 호가 선조가 되시는
사숙재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사은재로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의 선조이신 병판공께서는 1622년생이시며 1699년 78세로 별세하신데
반하여 이번에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강만석 선생은 1676년생으로서 1750년
75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강만석 선생은 병판공보다 54세가 연하라고 할 수 있는데 같은
문중으로서 휘 뿐만 아니라 한자까지 일치한다는 점이 생각할수록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종현 여러분중에 사은재 강만석 선생에 대하여 아시는 분도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혹시라도 모르시는 종현님들을 위해 정보공유 차원에서 오늘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2023년 7월 26일(수) 문암 역사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