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透明人間, invisible man]
영국의 소설가 H.G. 웰스의 작품인 《투명인간(1897)》으로부터 펼쳐진 공상과학소설의 한 주제. 이른바 방패막이류에 의해 육체가 보이지 않게 되는 전설이나 이야기는 예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있었는데, 이에 웰스는 체내색소 제거와 빛의 굴절률 조작 등 과학적 요소를 최초로 도입하였다. 이 소설은 또한 투명인간의 이로움보다 그 비극성을 강조한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색소 자체가 생명작용을 하고 있고 눈이 어둠상자와 수정체를 잃은 결과 볼 수 없게 되는 등 약점도 많아, 그 뒤 더 훌륭한 SF적 투명인간을 생각해내었다. 등 쪽에 쬐는 빛을 똑같이 앞쪽에서 복사하거나 4차원 공간으로 숨는 등 좀더 과학적인 공상도 있다. 투명인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생리기능을 이용한 것으로, L. 니븐이 쓴 《지구로부터의 선물(1968)》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초능력으로 동공을 강제로 닫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볼 수 없게 하였다. 또한 추리소설에서는 G. 체스터튼의 《보이지 않는 사나이(1911)》에서 범인이 우체부였기 때문에 목격자의 심리적 맹점에 들어가 버린다는 설정이 고안되었다.
투명인간의 비밀
투명인간은 영국의 소설가 H.G.웰즈(1866-1946)가 "투명인간"이란 소설에서 1897년 처음 발표하였다.
투명인간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남들을 보려면 눈이 있어야 하는데 눈에 비쳐진 사물들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투명인간이 식별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눈도 투명하다면 사물을 볼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눈의 렌즈를 통해 빛이 굴절이 되어 망막에 맻혀진 상으로 물체를 볼 수 있는데 투명인간은 빛이 굴절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투명인간의 모순이다. 투명해진 상태에서 남들을 볼 수 없고 그렇지 않다면 투명인간은 장님이다.
심해의 투명한 생물도 사물을 볼 수 있기 위해 눈은 불투명한 상태이다
타임―머신ː [ timemachine ]
타임―머신ː(time machine)[명사] 과거와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게 한다는 공상적 기계. [영국의 소설가 웰스(h.g.wells)가 지은 동명(同名)의 공상 과학 소설에서 온 이름임.]
시튼의 동물기
책 소개
야생동물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튼의 동물기, <내가 알던 야생동물들>, <동물 영웅들>, <회색곰 왑의 일생> 3권을 완역한 책!
가장 잘 알려진 '늑대 왕 로보'의 이야기부터 '회색곰 왑'등 총 17편의 이야기가 5권에 나누어 실려 있다.
새의 깃털 수를 일일이 세어서 4,915개라는 것을 알아낼 정도로 꼼꼼했던 시튼이 오랜 기간동안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여 동물들의 삶을 그려내었기에, 이 작품은 동물 문학의 정수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 특히나 이 책의 주인공들이 모두 실제 있었던 동물이란 점도 작품의 사실성과 감동을 높이고 있다.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차게 싸우고, 상처받고, 서로 사랑하는 동물들을 통해 자연과 동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시튼이 직접 그린 삽화는 야생 동물의 생생함을 그대로 전달시켜 줄 것이다.
저자소개
어니스트 톰슨 시튼(삽화가): 자신을 스스로 '검은늑대(black wolf)'라 불렀던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세계적인 동물학자이며 동물문학가이다. 그리고 박물학자이며 화가이기도 하다. 1860년 영국의 사우스 실즈에서 스코틀랜드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 여섯 살 때 캐나다로 이주하여 토론토대학과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튼은 어려서부터 대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장차 박물학자가 되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그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가가 되길 원했다. 그리하여 그는 영국에 유학하여 그림을 공부한 후 파리의 살롱에 그림을 출품하는 등 화가로서도 얼마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 들어가는 삽화를 모두 직접 그렸다.
시튼은 화가로 어려운 생계를 꾸려가면서 험한 산들이 첩첩이 쌓인 로키산맥으로 들어가 야영생활을 하면서 야생동물을 관찰하는데 몰두, 1898년(38세)부터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소설 <내가 아는 야생동물>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동물기>를 잇달아 내놓아 세계적인 동물학자 및 동물문학가가 되었다.
1900년, 그는 단순히 동물문학가에 머물지 않고 급진적인 환경보호주의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자연친화적인 단체 '우드크래프트 인디언 연맹'을 창설하고, 베이든 파월 경과 함께 미국의 보이스카웃을 창설하여 1910년부터 16년 동안 그 단장직을 맡았다.
또한 생태계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인디언 보호구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보호공원의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으며, 1930년에는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 페에 '시튼 빌리지'를 세워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북미 인디언 문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중심지를 만들었고, 미 의회에서 조류 법안이 통과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46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튼은 그곳에서 동물연구와 인디언 문화 보존에 온 힘을 바쳤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저자): 자신을 스스로 '검은늑대(black wolf)'라 불렀던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세계적인 동물학자이며 동물문학가이다. 그리고 박물학자이며 화가이기도 하다. 1860년 영국의 사우스 실즈에서 스코틀랜드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 여섯 살 때 캐나다로 이주하여 토론토대학과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튼은 어려서부터 대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장차 박물학자가 되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그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가가 되길 원했다. 그리하여 그는 영국에 유학하여 그림을 공부한 후 파리의 살롱에 그림을 출품하는 등 화가로서도 얼마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 들어가는 삽화를 모두 직접 그렸다.
시튼은 화가로 어려운 생계를 꾸려가면서 험한 산들이 첩첩이 쌓인 로키산맥으로 들어가 야영생활을 하면서 야생동물을 관찰하는데 몰두, 1898년(38세)부터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소설 <내가 아는 야생동물>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동물기>를 잇달아 내놓아 세계적인 동물학자 및 동물문학가가 되었다.
저자의 말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다. 비록 많은 대목에서 약간의 가공을 하긴 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했던 동물이다. 그들은 내가 묘사한 대로 살았으며, 그들이 보여준 영웅적인 행동과 개성을 다 표현하기에는 내 글재주가 턱없이 모자랐다. 이 책의 동물 이야기들이 모두 비극인 것은 실화이기 때문이다. 야생 동물은 언제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법이다.
이런 동물 이야기 모음집은, 지난 세기였다면 교훈이라고 불렸을 진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내비치는 법이다. 나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입맛에 맞는 교훈을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성서만큼이나 오래된 교훈, 즉 우리 인간과 동물은 친척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동물도 조금은 가지고 있으며, 동물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들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동물들은 정도만 다를 뿐, 우리처럼 욕구와 감정을 가진 생물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권리를 가져야 마땅하다. 백인종의 세계에는 이제야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것은 이미 2000년 전에 부처가 강조했던 점이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
(2000-01-17) - 국민일보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소설가, 화가로 이름 높은 어니스트 톰슨 시튼(1860∼1946)의 동물기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논장 출판사에서 완역, 출판됐다.시튼 동물기는 책 한 권으로 출간된 것이 아니라 1898년 '내가 알던 야생 동물들' 이후 시튼이 평생동안 쓴 40여 편의 동물 이야기를 총칭한다.
이번에 소개된 것은 중 전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내가 알던 야생동물', '동물 영웅들', '회색곰 왑의 일생'등 3종으로 5권 짜리로 묶였다. 책의 주인공은 모두 실제 동물들. 동물의 삶을 통해 야생의 지혜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배울 수 있다.
시튼의 동물이야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커럼포의 늑대왕 로보'이야기와 어미와 형제를 잃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회색곰 왑의 일생을 그린 '고독한 회색곰 왑의 일생' 어리석은 주인에게 버림받고 증오심으로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 '양치기 개 울리'의 사연 등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을 원래 문장대로 읽을 수 있다.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된 10여종의 시튼 동물기는 초등학생용으로 분량을 3분의 1 이상 줄이고 쉽게 고친 축약본인데 반해 이번 책은 원문의 맛을 살린 최초의 완역본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출판사는 "그 동안 완역본이 소개되지 않아 시튼의 꼼꼼한 묘사나 동물에 대한 애정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원작을 통해 아이들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우정 등에 대해 느끼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2000-01-28) - 조선일보
동물들도 기뻐하고 슬퍼할까? 사람처럼 생각하고 마음이 있을까?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박물학자, 소설가인 어니스트 톰슨 시튼(1860~1946)은 그렇다고 말한다.
동물도 사람처럼 생각하고 고통과 기쁨을 느끼고, 때로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텁수룩한 머리에 초라한 옷차림, 스케치북과 공책을 들고 이 산 저 산을 떠돌아다니며 시튼은 동물들?? 관찰했다.
새의 깃털이 4915개라는 것을 알아낼 정도로 꼼꼼했다. '시튼 동물기 1~5'는 사랑을 바탕으로 동물 이야기 17가지를 담았다.
사랑하는 엄마와 형제들을 잃고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회색곰, 귀향의 기쁨을 안고 본능에 의지해 계속 날아가는 비둘기 아노스 등 냉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야생동물들의 몸부림을 그렸다.
사랑하는 친구 블랑카가 죽자 분노와 슬픔을 가슴에 안고 인간이 덫을 놓아둔 목장으로 가는 늑대왕 로보, 낮에는 충직한 양치기 개이지만 밤에는 피에 굶주린듯 닥치는대로 양을 죽이는 울리 등에서는 인간의 배신이 동물을 어떻게 분노시키는가를 묘사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이 동물기의 삽화는 시튼이 직접 그린 것이다. 시튼은 이렇게 말한다. "동물도 인간과 똑같이 자연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 이준호 기자
야생의 순례자--시튼
우드크래프트의 인디언연맹
1900년에 나는 인생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때의 꿈이란 열에 아홉은 누구나 품어 보는 흔한 꿈이었다. 그 당시 운 좋게도 나는 뉴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농장하나를 구입할 수 있었는데, 언덕과 바위와 울창한 나무와 작은 목초지가 있고, 오리나무 습지로 개울이 흘러드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오리나무 습지는 호수로 이어지고, 습지 가운데에는 새들과 야생동물의 작은 천국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작은 오두막을 짓고, 농장 주위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막기 위해 3미터 높이의 철망을 치고 그 꼭대기에는 가시철조망을 쳐 놓았다.
나는 주로 여기서 지내며 자연보호와 복원을 위한 일을 시도할 작정이었다. 이곳에서는 어떤 종류의 야생 생활도 할 수 있었기에 나는 꿈이 실현된 기쁨에 파묻혀 있었다. 내 윈시림이 한없이 자랑스러웠으며, 그것은 나만의 숲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소년들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이고 훼방꾼일 뿐이었다. 그들이 나무열매를 따고 소풍을 가고 땔감과 건초를 얻었던 땅에 담을 쳐 놓은데다 사냥철에도 그 숲에서 다람쥐와 멧도요를 사냥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년들은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나를 몰아내기로 결의하고는 내가 배겨나지 못하게 만들어서 쫒아내려고 했다. 가들은 울타리를 부수고 동물들을 쏴 죽이고 대문에다 난잡한 그림을 그렸다.
여름 내내 울타리를 고치고 동물들을 새로 들이고 문에 칠을 다시 해야 했다. 나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참는 것만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고, 밤마다 파괴행위는 계속되었다.
나는 이들을 상대하지 않아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 중에는 시골에 집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 경험이 많은 한 친구가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방법은 딱 한 가지 뿐이야. 그 깡패들을 모조리 체포해서 협박을 하라고. 그러면 겁먹고 증언하는 놈이 있을 거야. 그때 주동자를 감옥에 처넣어버려." 나는 깜짝 놀라 이렇게 대답했다. "애들을 감옥에 넣으라고? 기껏해야 장난에 불과한 일 갖고 범죄자의 낙인을 찍으란 말이야? 그 나이 땐 나도 그런 일을 했을 텐데 그것 때문에 애들을 새장에 가두라니 말도 안 돼! 지금까지는 되도록 상대하지 않고 타이르려고 했는데 안 먹혀들었으니 이젠 다른 전략을 세워야겠어. 최면술이라도 써볼 수 밖에."
나는 아침 일찍 마을에 있는 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5분간만 얘기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내가 말했다. "너희들 가운데 열두 살 넘는 학생은 모두 일어나 볼래?" 그러자 열두 명이 일어났다.
"오늘 다 출석했니?"
"아뇨. 세 명인가 네 명이 결석했어요."
"좋아! 그만하면 됐어. 여기 서 있는 너희들 모두와 오늘 결석한 아이들을 초대하고 싶구나. 다음주 금요일에 수업이 끝나면 내가 사는 인디언 마을에 와서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야영을 하면 어떨까? 보트와 카누도 있고, 텐트와 괜찮은 인디언 티피도 있단다. 침낭에는 밀짚도 가득 넣어 놨고, 장작도 충분하고, 먹을 것도 잔뜩 준비해 놓을게. 너희들은 담요 두 장씩만 들고 오면 돼. 단 권총이나 성냥, 담배나 술은 절대 안돼. 어때, 올 생각 있니?"
그러나 대답 대신 쥐죽은듯한 정적만 흘렀다. 대답하려는 낌새도 없을뿐더러 흥미를 보이는 아이도 없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 인디언 마을이 금지된 곳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곳에 왔던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들이 내 초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말했다.
"내 말은 주말에 자유롭게 야영을 하자는 거야."
아이들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심지어 알아들었다는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차라리 "싫어요"라거나 다른 질문이라도 했다면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침묵의 벽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난처해져서 가까이에 서 있는 키가 훤칠하고 눈이 착하게 생긴 아이에게 물어 봤다. "숲으로 소풍가고 싶지 않니? 모든 건 다 갖춰져 있고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는데."
그 아이는 고개만 한 번 까딱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아이에게도 물어 보았다. 그 두 아이도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얘기를 끝냈다. "잊지마, 다음주 금요일 방과후다."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서 야영 준비를 위해 출발했다.
금요일이 되지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 오후 4시가 되자 나는 요리사와 함께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15분이 지나도 30분이 되어도 아이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자 맥이 빠진다는 듯이 요리사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그 놈들한테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녀석들을 위해서는 생가죽 채찍이나 준비해 두는 게 낫겠어요."
나는 말했다. "아니야 그렇게 해결하려 하다가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걸 많이 봐왔어."
나는 계속 기다렸지만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4시 45분이 되자 옛 동요가 귓가에 맴돌았다.
" 스마티씨가 잔치를 열었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네."
그러나 5시가 되지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작은 소동을 일으키며 아이들이 큰길로 떼지어 몰려왔다. 몰려온 아이들은 내가 본 열두 명도 아니고 준비한 음식에 맞는 열여덟 명도 아니라 자그마치 마흔 두 명이나 되었다. 모두 낡은 담요를 두 장씩 손에 들고 끝없이 몰려들어 왔다. 열여덟 명 초대했는데 마흔두 명이 찾아오다니, 대성공이었다.
미국 아이들답게 소년들은 금세 멋쩍어하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첫 질문을 했다. "저, 아저씨, 소리질러도 돼요?" "소리 지른다고? 그래라, 목청것 소리쳐라." 남자애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나중에 이웃 사람들은 3킬로미터 밖에서 괴성을 들었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랬을 거다.
그 다름 질문은 "저, 아저씨 옷 벗어도 되요?" 였다. "그럼, 모조리 벗어." 아이들이 허물을 벗듯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호수로 뛰어드는 것을 보니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숲을 마구 뛰어다니기만 했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마치 프랑켄슈타인을 데려다가 놓아 준 것 같았다. 그러나 벌거숭이 아이들은 숲을 불태울 수도 없고 재산을 크게 파손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단지 과정의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동물적인 힘이 발산되어 없어지기를 바랐다.
6시가 되자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아이들은 지치고 허기가 졌고, 모닥불을 활활 타올랐다. 요리사가 큰소리로 야만인들을 불렀다. "밥 먹어. 밥!"
그 소리에 사내아이들은 우르르 떼지어 몰려와서는 옷을 후닥닥 입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몰려갔다. 성서의 구절대로 "그들은 와서 먹기만 했다." 얼마나 먹어대던지! 기회를 놓치면 국물도 없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꿀맛이었다. 아이들은 마흔두 마리의 보아 뱀처럼 게걸스레 먹어치웠고, 월요일까지 먹을 음식을 하룻밤에 깨끗하게 비워버렸다. 다행히도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다시 장을 볼 수 있었다. 6시부터 7시까지 야영지는 아이들이 먹어대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다. 식사 후 포만감에 노곤하고 행복해진 아이들은 불가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기다렸다. 야만인 들과 사내애들은 무언가 통하는 점이 있다.
나는 좀더 심리적인 접근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환희로 가득한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자, 얘들아, 이 야영생활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너희들이 늘 하던 데로 실컷 놀기나 할까?아니면 진짜 인디언식 생활을 시도해볼까?"
나는 아이들의 분위기를 살펴보며 일부러 한 단 가지 답만 나오도록 유도했다. "인디언이요. 물어 보나마나 인디언이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좋아 그게 좋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인디언 부족이라는 걸 명심해라. 각 전사는 투표권을 하나씩 가진다. 먼저 추장을 뽑아야겠다."
그러자 아이들은 처음으로 나에게 예의를 갖췄다. 금세 끈끈한 일체감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은 말했다. "그럼, 아저씨를 추장으로 뽑을래요." 그러나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아냐, 나는 추장이 아니라 주술사야. 추장은 너희들 중에서 나와야 해."
행크가 압도적인 지지로 뽑혔다. 그의 지도력은 절대적이었다.
행크는 이 마을에서 악명 높은 소년으로 마을에서 벌어지는 못된 장난에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의 대담한 행동은 단순한 사내애들의 장난을 벗어나 범죄행위에 가까웠고, 그대로 두면 교도소로 갈 것이 뻔했다. 그의 뒤에는 이십여 명의 추종자가 있었다. 나는 행크 마틴이 두려웠다. 그는 패거리의 명실상부한 우두머리였고, 막강하며 신성하기까지 한 권위로 아이들을 다스렸다. 내계획을 수행하려면 행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 행크야, 친구들이 너를 인디언 부족의 대장으로 뽑았다. 명심할 것은 네가 며칠 동안만 대장노릇을 하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내린 결정은 너희들이 워하는 한 일 년 내내 실내에서든 야외에서든 계속 될 것이다. 네가 이 아이들 모두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나는 네가 아이들을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을 거라 믿는다."
행크가 대답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단지 말뿐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그게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행크는 그 전엔 어른들 눈에 늘 하찮게 비쳤기 때문에 추장 역할은 그에게 신선하고 유쾌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어른스럽게 자신의 새로운 책임을 다했다.
조직이 완성되자 나는 법률과 임시 헌장을 제시했는데, 미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 신속하고 세심하게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나는 이 법에다 실제 사회에서의 법률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규칙들을 끼워넣었다. 이 법은 평의회에 대한 반란을 금할 뿐 아니라 야영지 안에서 총기류나 인화성 물질의 사용을 금하고, 술과 담배는 물론이며 새나 다람쥐 죽이기, 게임 규칙위반, 무기 끝을 겨누는 것 등을 금지했다. 반면에 기사도 정신과 친절, 용기 등을 비롯한 기본적인 덕목을 존중하도록 했다. 이제 마을 소년들과 나 자신과 그 밖의 수많은 소년들의 세계에 신기원을 이룬 단체가 탄생되었다.
우리의 기치는 "가장 인디언답게!" 였다. 인디언 사회의 기발하고 좋고 안전한 것이라면 우리는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이 일은 내 예측을 휠씬 능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난폭하고 거친 사내애들은 선생님에게 대들고 어른들의 의견에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또래 친구들의 여론은 무시하지 못할뿐더러 신체적인 벌을 줄 수 있는 동료들을 얕보지 못한다.
이 규칙에 따라 우리는 함께 놀이를 했다. 월요일 아침이 되지 나와 내 집을 못살게 굴던 깡패들은 사라지고 대신 충실한 마흔 두 명의 친구가 새겼다. 프랑스에서 죽은 네 명을 제외하고 그들 모두는 아직도 내게 좋은 친구들이다.
나중에 가서는 이 사내아이들 중에 문제아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착한 아이들이 되었고, 현재는 안정된 위치에 있는 시민들이 되었다. 25년이 지난 뒤 이 첫 번째 야영에 왔었던 친구들이 다시 모였는데, 대부분 모임에 참가했다. 그들에게서 들은 얘기는 놀라운 것들이었다. 행크 마틴은 큰 자동차 수리회사와 버스회사의 사장이 되었으며, 맡긴 돈을 맘대로 써버렸던 어린 불량배는 지금은 전국적인 단체의지부에서 회계담당자로 있다. 고자질과 말썽을 몰고 다니던 꼬맹이 고자질쟁이는 자치시의 책임 변호사가 되었으며, 수영 말고는 제대로 하는 게 없던 뚱뚱한 녀석은 도시 근교에서 큰 고무회사 경영자로 성장했고, 밤마다 일어나서 파이를 훔쳐먹던 사내애는 상공회의소의 대표로 있다.
나쁜 길로 간 아이는 하나도 없었고, 모두 훌륭하게 자랐다. 자연을 이용한 방법 대신 무력을 동원하여 강제적으로 아이들을 다스렸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친구의 충고를 따라 어리석은 판사 앞에 아이들을 내몰았더라면 그 판사는 어리석은 법에 따라 단지 사내 녀석들의 심한 장난에 불과한 행동에 범죄자의 낙인을 찍었을 것이고, 건실한 시민으로 자랄 아이들을 영원한 범죄자로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뒤 우드크래프트 인디언 단체인 인디언 스카우트는 급속히 성장했고, 수많은 명망있는 교육자들이 조직의 운영실태를 보려고 찾아왔다.
출처 - 야생의 순례자 시튼,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작은우주 옮김, 발췌
시튼 동물기
큰 아이에게 책을 사 주고 싶어서 어릴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시튼 동물기를 사 주었습니다. 제 욕심이 좀 앞섰는 지 던져 놓고 읽질 않습니다. 글자도 많고 소재도 우선 눈길을 끌지 못하나 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자극적인 소재의 만화에 익숙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가 던져 놓으니 아이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사 준 제가 멋쩍어서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늑대왕 로보"나 "고독한 회색곰 왑"의 얘기는 다시 읽어도 새로웠지만 제가 모르고 있던 다른 얘기들도 많더군요.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아내와 아이가 놀립니다. 아이 읽으라고 사준 게 아니고 아빠가 읽고 싶어서 샀다고 핀잔을 줍니다. 사실 장난감을 사 줄 때도 제가 갖고 놀고 싶은 걸 사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부모의 독선일테지요. 그래도 아이에게 제가 어렸을 때 했던 좋은 경험을 나눠주고픈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여튼 책을 다 읽고나니 감동이 봇물처럼 밀려옵니다. 모든 얘기가 어느 것 하나 빠트릴 것 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얘기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목도리 들꿩 레드러프"의 얘기를 읽고나서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레드러프는 목도리 들꿩 중에서도 유별나게 강인하고 잘생긴 녀석으로 12마리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미 들꿩은 자식들을 지혜와 용기로 키우지만 자연의 법칙은 냉혹한 것, 형제들은 하나 둘 먼저 세상을 뜹니다.
숫놈 들꿩은 다 자라면 본능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 짝짓기에 들어갑니다만 레드러프만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아가씨 들꿩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보통 숫들꿩은 짝짓기가 끝나면 가족들을 내 몰라라 하고 떠나는 게 정상인데 레드러프만은 떠나지 않고 남아 아내와 함께 자식들을 키웁니다.사랑스런 아내 브라우니와 열마리의 자녀들과 보내는 숲속의 생활은 꿈결처럼 행복한 시절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브라우니가 사냥꾼 커디 영감의 총에 맞아 죽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죠. 깊은 슬픔을 삼킨 레드러프는 아내를 대신해 살아남은 자식들을 키웁니다. 유달리 강인하고 책임감이 강한 레드러프는 놀라운 용기와 지혜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뚫으며 자식들을 보호하고 가르칩니다. 레드러프의 영웅적인 자태와 행동은 숲의 전설이 됩니다.
커디 영감은 레드러프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레드러프는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지만 하나 둘씩 자식들은 목숨을 빼앗깁니다. 마침내 모든 자식들이 죽고 혼자 살아남은 레드러프 또한 커디 영감의 올가미에 걸리고 맙니다. 올가미에 걸려 이틀 낮과 밤을 고통 속에 퍼득이던 레드러프는 마침내 부엉이 부리에 영원한 안식을 얻습니다.
레드러프가 사라진 그 숲엔 그 이후로 들꿩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시튼은 동물들에게 인간의 감정을 불어 넣습니다. 동물들도 인간과 같은 희노애락을 느끼는 존재임을 담담한 문장과 직접 그린 멋진 삽화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도 자연 속의 동물과 같은 존재로서 웃고 울며 살며 사랑하는 것이 모두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튼 동물기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크나큰 우주의 흐름 속에서는 한 줄기 미풍 보다도 더 작은 일이며 따라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만이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줄 수 있음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레드러프의 일생을 읽으면서,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고독한 책임감 속에 살아오신 우리 아버지의 삶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대신 가장이 되어 8남매 동생들을 다 훌륭하게 성가시키고 당신 스스로도 자수성가 하신 분입니다. 그래선지 작은 아버지와 고모들도 아버지를 친자식 이상으로 공경하고 따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저도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제 나이였을 때의 아버지를 떠 올리곤 합니다. 아버지가 제 나이였을 때 당신께서는 잔업수당을 더 받기 위해 잠을 안자고 일하셨습니다. 한마디 푸념조차 않으셨지만 신경성 위염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해 찡그린 얼굴로 야간근무를 들어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단 한 분 존경해야 할 분이라면 저는 아버지를 떠 올립니다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레드러프와 아버지처럼 책임감 있게 살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하는 제 모습에 화가 나 울었습니다. 행여 아내나 아이들이 볼새라 몰래 울면서 그 때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더 울고 말았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저는 어떤 아버지의 모습으로 남을 지 두렵습니다.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어니스트 톰슨 시튼(Wild Animals I Have Known/Ernest Thompson Seton)
음...단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정말 잼있다...누구든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우리는 들어봤을것이다. 시튼의 동물기라고...그러나 이것은 책후기에서 이야기 하듯이 아마도 일본녀석들이 시튼이 쓴 동물이야기 중 일부분을 모아서 만든 책 제목일것이라고 하는데...진짜로 동물기라는 책을 읽으면 여기서 나온 이야기들도 나온다...
작가가 젊은 시절 사냥꾼으로 그냥 여행객으로 여러 곳을 돌면서 동물들을 본 내용을 적은 것이다. 영리하고 지혜롭게 사냥을 하다 부인을 읽고 외로워 하다 죽은 늑대왕 로보, 무리끼리 대화를 나누고 어린 까마귀들을 가르쳤던 지혜롭고 영리한 은점박이 까마귀, 자신의 약함을 지혜로 이겨내?? 몰리, 그리고 그것을 갈래귀 자식?“? 가르쳤던 솜꼬리 토끼, 개와 인간은 친구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야성의 습성도 가지고 있던 괴짜친구 빙고, 자식이 잡히자 매일 먹이를 가져다 주고, 사슬을 풀어주려 해 주었지만 안되니깐 자기 자식을 죽인 모성애의 여우, 거친들판을 가르는 진정한 리더 야생마, 야성의 습성을 감추고 지내는 영리함을 보니다 죽음을 당한 양몰이개 울리,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슬픔의 메추라기 빨간목깃털 등...동물들을 묘사한 부분이 어찌나 그렇게 섬세하고 재미있게 써있는지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것이다... 글이 넘 재미 있어서 개인적으로 톰슨의 책을 한권 더 샀다...더 긴내용은...그저 말주변없는 본인의 수다밖에 되지 않아서 더 적지는 않겠다...
혹시, 요즘에 서점에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한다면...바로 이 책을 사서 읽거나...선물해 주세요...정말 좋아할 거예요...
어니스트 톰슨 시튼(1860-1946); 자연사학자,화가,작가
186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시턴이 6세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1866년 가족들은 모두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들은 캐나다와 미국 국경 사이에 있는 5대호 근처에 장엄하게 펼쳐진 원시림에서 개척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시턴은 그 곳에서 자연스럽게 갖가지 야생 동물과 자라게 되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연에 관심을 가졌던 시턴은 동물이나 식물, 지질 등을 연구하는 박물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시턴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이 그런 상스러운 학문은 할 수 없다며 반대를 하였다. 19세가 되자, 시턴은 아버지 뜻에 따라 런던으로 가서 미술 공부를 했다. 미술 공부를 하면서 생활비가 부족하여 굶는 일도 허다했으나 시턴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학문을 계속했다. 그러나 결국 건강이 나빠져 공부를 중단하고 캐나다로 돌아와야만 했다. 휴양을 하여 다시 건강해진 시턴은 생활이 어려웠으므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캐나다 중부에서 개척 사업을 하는 형한테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시턴은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조류나 산짐승을 관찰하고 스케치도 하였다. 그가 이때 얻은 경험과 지식은 그가 후에 쓴 많은 작품들의 토대가 된다. 시턴은 무슨 일이든지 끈기있게 하는 강한 인내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야생 동물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어려운 일이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턴은 런던에서 미술 공부한 실력을 발휘하여 동물 그림을 즐겨 그렸다. 그 때까지 관심을 둔 사람이 없었던 ‘동물화’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턴은 동물화가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파리를 왕래하며 미술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시기에 ‘세트리 대사전’에 동물 삽화를 그려 넣기도 했다.
그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동물도 관찰하고 강연회도 했으며, 자신의 체험을 글로 쓰기도 했다. 처음 발표한 작품이 <카람포의 이리 왕 로보>였다. 이 작품이 호평을 받자, 시턴은 이에 용기를 얻어 1898년에는 여덟 편의 작품을 엮어 삽화를 직접 그려 넣은 ‘아름답고 슬픈 야생 동물이야기'(Wild Animals I have known)’ <원제:내가 아는 야생 동물>를 펴냈다. 이것으로 시턴은 ‘동물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 이후로 많은 동물 소설이 나오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카람포의 이리 왕 로보>와 <회색 곰 워브의 일생>이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1910년 미국 보이 스카웃의 모태가 된 위원회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으며, 시턴은 30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
그는 평생을 야생동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과 멸종해가는 동물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일을 하며 보내다 1946년 10월 23일 뉴멕시코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
어니스트 톰슨시튼/ 장석봉 옮김/ 푸른숲 2000년
‘독자에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다. 사실 그대로의 순서를 엄격하게 지키지 못한 부분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 실린 동물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했던 돌물들이다. 그들은 이 책에서 묘사된 그대로의 삶을 살았지만, 사실 내가 쓴 것보다더 훨씬 더 영웅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성도 더 강했다.(중략)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는 점이 바로 왜 이 모든 이야기들이 비극인가에 대한 이유이다. 야생 동물들의 삶은 항상 비극적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떤 상식적인 생각, 즉 지난 세기에 도덕이라고 불려왔던 것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틀림없이 사람들은 저마다 도덕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성서만큼이나 오래된 하나의 도덕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와 야생 동물은 모두 친척이다. 인간에게 있는 것은 반드시 동물에게 적어도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동물에게 있는 것은 그 일부라도 인간에게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동물들도 비록 우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나름대로의 느낌과 소망이 있는 생명체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권리도 분명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제야 제대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모세에 의해서 처음 포고되었고, 2천여 년 전에 불교도들에 의해서 강조된 것이다.
이 책은 나의 아내 그레이스 갤러튼 톰슨 시튼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은 모두 내가 그린 것이지만, 표지, 표제면, 장정과 관련된 디자인은 모두 아내의 작품이다. 교정이나 인쇄 공종과 관련된 수고 역시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