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클 제707차 제6기 신곡 개관 및 단테와 성서 (17) 2018-05-19)
신곡(The Divine Comedy)
개관(Outline) 및 단테와 성서(Dante & The Bible)
강사: 이기언 선생
1.작품의 이해(Approaching the Work)
일반 독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엄숙성과 난해성이 있는 이 작품은 중세 유럽문화 백과전서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재능과 측량할 수 없이 깊은 학식을 가진 단테(Dante)가 혼신의 노력으로 13년간 완성한 것으로 작품구성의 우주적인 웅대함과 기하학적인 치밀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장엄함은 기독교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고전 작품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이어(Sayers)는 그의 작품 서문에서 “신곡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위대한 은유와 기독교 계시의 장엄함과 두려움으로 부터 인도된 큰 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 작품을 그렇게 쓸 수 없었다는 말이다. 신곡은 7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서구 사회의 모든 고등교육기관(Oxford, Cambridge, Harvard, Yale, Columbia, Princeton대학등)에서 주요 교과목으로 삼고 있으며, 수 많은 단테학회가 운영되고 있음을 우리는 인터넷(internet)을 통하여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단테의 신곡을 읽을 때 그의 생애와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대의 생활과 그 현장 속에 직접 뛰어들어 마치 내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상상하며 읽을 때 더욱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이어(Sayers)는 다시 말한다. “단테(Dante)의 작품에 피상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은 지옥편에 묘사된 지저분하고, 구역질나고, 더러운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 것은 마치 지하실과 하수관으로 연결된 지하세계를 며칠간 돌아보고, 큰 도시를 더럽고 침침하여 숨막히고, 쥐들과 악취로 어두운 인상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새벽에 찬란한 햇살로 잠에서 일어나는 도시의 환한 벽과 첨탑들을 위해서는 엄연한 현실의 하부구조(지하실과 하수관)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신학적 기초를 모르고 단지 현란한 구절과 서정적인 언어로만 이 작품을 읽는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며, 이 시에서 흐르는 전체 장관을 놓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2.생애와 시대상(Author & Environment)
단테(Dante)는 1265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수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2차 십자군 원정에서 무공을 세워 기사가 된 귀족으로 단테는 자기 가문을 자랑으로 여겼으나, 아버지대에 와서는 이미 몰락해 가는 가운데, 세상의 눈총을 받는 고리대금업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장남인 단테의 교육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직 정규학교가 없던 시절, 소년 단테는 성 프란체스코파의 산타크로체 수도원에서 성서를 비롯 라틴어, 고대신화, 역사, 지리, 대수를 배웠으며, 볼로나 대학에서 법률학, 철학, 천문학등을 공부했는데, 그당시 철학은 아직 미분화 상태로 의학도 포함되어 있었다. 단테(Dante)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아퀴나스를 탐구하는 피렌체의 시인협회(청신체파)에 가입하면서 더욱 철학과 신학에 몰입하게 된다.
(사랑)
단테(Dante)가 9살 때 가까운 곳에 살던 한 실업가의 딸 비체(Bice)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18세때 다시 만나 단테(Dante)의 마음속에 뜨거운 연모의 대상으로 깊이 자리잡았으나, 비체(Bice 작품 속에서는 베아트리체)는 바르디란 사람에게 시집을 갔고 그후 그녀는 젊음과 아름다움의 절정기인 24세에 요절하고 만다. 보카치오(Boccaccio)의 「단테의 삶」(Vita di Dante)에 따르면 비체(Beatrice)가 죽은 뒤 절망에 빠진 단테(Dante)를 보다못해 친지들이 억지로 젬마 도나티(Gemma Donati)와 결혼시키는 것으로 되어있다.
아무튼 베아트리체(Beatrice)는 단테(Dant)의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그에게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되어 그의 작품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정치사회)
그 당시는 14세기 중세문화의 암흑기로, 세상은 세속의 권력을 대변하는 황제와 교권을 대변하는 교황의 양대 권력이 세력다툼이 심했던 시기였다.
단테(Dante)는 24세 되던 해에 귀족의 후예답게 조국 피렌체를 위해 기병대의 일원으로 종군 하게 되고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1300년 그가 서두에 ‘인생의 반’을 맞이한 35세에 그는 도시국가 최고의 직위인 집정관(도시 6개 지구별 대표자 각1명씩 선출)에 선출된다. 14세기 초 정치는 교황파인 궬프당과 왕당파인 기벨리니당으로 나누어 다투었는데, 이탈리아의 모든 의회는 궬프당이 장악하게 되었고, 이 무렵 피렌체에서는 집권세력인 궬프당이 다시 백파와 흑파로 갈려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단테는 집정관의 임기가 끝나자 세 사람의 사절중 한 사람으로 로마에 사절로 파견되는데, 백파에 속한 단테(Dante)는 교황청과 단지오 왕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피렌체의 독립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는 영적인 일은 교황이, 세상세속의 일은 왕이 통치해야 한다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주의를 신봉했으며 로마 카토릭 교인으로 교회의 교리와 사후의 내세를 가르치는 교리를 지지하였다. 그사이 국내의 사태가 급전하여 흑파가 정권을 잡고 백파를 추방한다. 백파에 속한 사람들의 집들은 파괴되고 궐석재판에 회부되며, 단테(Dante)는 그리운 고국 피렌체를 두 번 다시 밟지 못하는 유랑의 생활이 시작된다. 단테(Dante)의 신곡(The Divine Comedy)은 이 시기인 1307년 그의 나이 42세에 집필을 시작하여 1321년(56세) 말라리아로 죽기까지 그 파란 많은 인생을 마감하는데 그의 필생의 대작 「신곡」은 죽기 직전에 탈고되었다고 한다.
3.작품의 특성(Character & Viewpoint)
(작품명)
단테(Dante)가 쓴 원작품의 이름은「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단테의 희곡)이었다고 한다. 보카치오(Boccaccio)가 그의 저서 「단테의 삶」(Vita di Dante)에서 작품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해 Divina(신성한)을 추가함으로 「신곡」(La Divina Commedia)라는 이름으로 고쳐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보다 이전에 이 위대한 작품의 예찬자들이 특별판으로 베니스에서 출판할 때 Divina를 붙였는데 그 것이 새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후자가 정설인 듯하다.
희극이라는 단어는 단테(Dante)자신이 그의 「서간문」(Epistole)에서 Happy Ending으로 끝나는 줄거리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듯 문학작품의 한 장르를 말하는 것으로 사실상 단테(Dante)의 「신곡」은 주인공이 지옥의 비참한데서 시작하여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됨으로 구원의 환희에 극치까지 이른다.
(작품의 주제)
이 작품의 주제는 「영혼의 여행」으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후의 생에서 그 업보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내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의적으로 자기의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자신의 선택이 영원한 것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신곡」(The Divine Comedy)은 엄밀히 말해 「영혼의 선택」이라는 드라마(Drama)이다.”라고 세이어(Sayers)가 한 말은 이 작품의 주제가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중요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작품의 언어)
단테(Dante)는 그 당시에 라틴어 이외의 방언으로 문학 활동을 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감정을 고상하게 하는 철학에 적합한 언어는 라틴어뿐이며 다른 방언으로 철학이나 문학을 논하는 것은 매춘행위로 간주되었다. 단테(Dante)는 인간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일반 대중들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모험을 한 것이다. 단테(Dante)가 사용한 토스카나 (Tuscan)방언은 현대 이탈리아 언어의 표준어가 되었다.
(작품의 구성 그리고 난해성)
이 작품은 성서와 그리스의 철학과 시(Aristotle의 윤리학, Plato의 공화국, Virgil의 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그리스 로마의 신화 등이 한데 어우러져 백과사전적 시가형태로 3위1체의 사상을 기조로 100곡(Canto) 3행(line) 1연(stanza)의 3 운구법(terza rima)으로 구성된 완벽한 운율이 흐르고 있어, 이 작품을 가르치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샤피로(Shapiro)교수는 수업시간에 이태리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원문으로 소리내어 읽어보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구조와 의미, 상징적인 에너지와 극적인 무게를 번역문에서는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곡은 문자 그대로 읽을 수도 있으나 그의 표현이나 등장인물, 이미지에는 다양한 상징과 비유적인 의미들이 함축되어 그 난해함은 수많은 독자들의 탐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작품의 내용)
단테가 33살 되던 해인 1300년의 성(聖)금요일 전날 밤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며 번민(煩憫)의 하룻밤을 보낸 뒤, 빛이 비치는 언덕 위로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野獸)가 길을 가로막으므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고 길을 인도(引導)한다. 그는 먼저 단테를 지옥(地獄)으로, 다음에는 연옥(煉獄)의 산(山)으로 안내하고는 꼭대기에서 단테와 작별(作別)하고 베아트리체에게 그의 앞길을 맡긴다.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된 단테는 지고천(至高天)에까지 이르고, 그 곳에서 한순간 하나님의 모습을 우러러보게 된다는 부활절 전후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이다.
단테와 성서(Dante & The Bible)
Peter S. Hawkins (역자 임세영 교수)
성서는 단테가 살았던 전 세계의 기반이었다. 당대 사람들은 성서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그에 합당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의 영감을 주어 쓰게 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인간이 쓴 글과는 다른 권위를 가졌다. 교회의 거룩한 경전으로서 성서는 훈화와 설교, 미술과 건축의 근간이 되었고 사회의 모든 계층이 공유하는 방대한 지적 상징적 연결망을 형성하였다. 단테의 전체 저작을 놓고 볼 때 기독교 경전이 어떤 다른 문헌과 비교할 수 없는 비유와 참고의 전거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저자가 한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곡에는 성서가 575회 인용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395회, 버질의 글은 192회 인용되었다.
중세 시대의 대다수 평민들은 귀로 듣거나 상징적 사건의 그림을 보는 것을 통해 성서를 접하였을 것이다. 당시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단테는 스스로 성서를 연구하였으며, 당대의 성서해석을 주도하였던 흐름과 접촉하였던 것 같다. Convivio 2. 12. 7에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죽은 다음 “종교와 철학자들의 논쟁이라는 학교”에 다님으로써 위안을 찾았다고 썼는데 이것은 아마 Santa Maria Novella에 도미니카파가설립한 수도원학교와 Santa Croce에 프란시스파가 설립한 수도원학교를 언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 곳 중 어느 곳에서나 단테는 수도사들의 생활의 일부였던 교리학습과 당시 신학연구의 최종단계였던 성서 강의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수도원학교의 학문적 교육과정은 유사하여, 성서본문보다는 자주 인용하는 성구의 연관관계 등에 강조를 두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성서 해석에 대한 분위기는 양측이 서로 달랐다. 아마 도미니카파로부터는 성경 구절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구성된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접했을 것이다. 프란시스파는 당시 Pietro Olivi(1248-1298)와 Ubertivo da Casale(1259-1325)의 영향하래 있었는데 이들은 묵시록 연구 및 묵시록의 당시 역사에 대한 적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신곡에는 양자의 신학적 성향이 모두 나타난다. 전자는 천국편에 주로 나타나며, 후자는 연옥편 마지막부분(특히 연옥편 29장)에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1300년경 성서학자들은 제롬 역 라틴어 성서(Vulgate)의 여러 가지 편집판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새롭고 중요한 것이 파리 대학이 펴낸 13세기초 편집판이었다. 이 “파리판” 성서는 간편하게 한권으로 편찬되어 대학생뿐 아니라 설교자들 사이에도 인기가 높았다. 중세 성서는 본문이 주석의 그물망 속에 얽혀 있는 모양으로 편집되는 것이 전형적이었다. 중간 중간 교부의 글도 인용되었고 당대 최근의 해석이 각 면의 난간과 행간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본문이 주석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본문과 직접 대면할 수가 없었다. 단테도 파리판 Vulgate 성서를 많이 활용하였으리라고 생각되지만 그가 자기 소유의 성서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아마 그가 플로렌스에 있었을 때나 망명지를 유랑하며 신곡을 집필했을 때에 해당지역의 교회나 그를 후원한 Verona나 Ravenna 시국(市國)이 소장하고 있던 성서 자료나 문헌을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성서 연구와 독서, 찬송과 기도문 등을 통해 성서의 중요구절을 상당히 암송하여 활용하였다는 것도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단테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구는 복음서, 시편, 이사야서 등으로 교회의 예배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었다.
성서인용의 횟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어떠한 맥락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가가 중요하다. 신곡에서 문헌 인용의 맥락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지옥편에서는 주로 고전적 문헌에 크게 의존한다. 성서본문의 직접인용 횟수가 지옥편에서 가정 적은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볼 수 없으리라. 그리고 천국편에서는 성서본문의 직접인용보다는 성서장면의 비유가 더 많이 나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신의 축복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 말씀을 자신의 언어속에 용해시켜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하나가 된다(천국편 4곡, 28행). 신곡중에서 성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바로 가운데에 있는 연옥편이다. 연옥편에는 성서의 직접인용이 30회에 이르고 성서에 대한 개괄적 비유적 언급이 40회에 이른다. 연옥은 시간과 변화가 존재하는 곳으로서 영혼들이 아직 영원한 운명에 도달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들은 아직 지상에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지도와 교육을 필요로 한다. 연옥에서 단테가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말씀이 회오자(悔悟者)를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주며, 간접적으로 삶을 위해 성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암시하는 것은 약간 놀랍다.
단테가 성서와의 “만남”을 차례차례 전개하고 있는 곳도 연옥이다. 이 연쇄의 제일 처음은 연옥편 제2곡 제 43-48 행이다. 축복 받은 영혼들을 실은 배가 산기슭에 도착할 때, 배에 탄 그들은 시편 113/114편 “애굽을 벗어나는 이스라엘”을 합창한다. 이것은 신곡에서 Vulgate 성서가 맨 처음 정확하게 인용된 곳이다. 이곳은 단테가 지옥을 벗어나 정화의 산으로 오르는 곳인 동시에 영혼이 육신의 “애굽”으로부터 벗어나는 출애굽의 주제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 출애굽이 바로 신곡의 저변에 깔려 있는 성서적 대주제다. 또한 이곳에서 인용된 시편의 성구는 성서 인용의 시작인 동시에 7가지 죄악의 정화를 위한 프로그램의 시작을 상징한다. 예를들어 교만의 죄를 정화하는 곳에서(연옥 제10-12곡) 단테는 겸손의 복을 누리는 성서의(또는 이방의) 인물 여러 사람과 교만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의 그림을 본다. 수태예고를 받아들이는 마리아(누가 1:26-38)와 하나님의 계명을 담은 궤를 메어 올 때 그 앞에서 기뻐 춤을 추는 다윗(사무엘하 6)이 각인되어 있는 그림이 나오며 회오자들이 거부해야 할 교만의 죄를 상징하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림이 나온다. 통로 바닥에 새겨진 사탄, Nimrod, 사울, 르호보암과 성서 밖의 인물도 보였다.
시인은 영혼이 정화를 위해 스스로 시편의 낭송이나 찬양 혹은 교회의 기도 등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들 자신의 말로써 성서를 해석하게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교만한 자들이 연옥 제 11곡에서 주기도문을 자신들의 말로 풀어 기도한다. 그것은 주기도문의 후렴귀 부분이다. 나아가 각 옥(獄)을 벗어날 때마다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의 축복(마태 5: 3-12) 중 하나의 말씀을 때로는 라틴어로, 때로는 이태리어 번역으로, 때로는 보다 정교한 해석을 담아 전한다.
연옥 제 29곡은 정화산의 마지막 단계와 에덴 동산 안을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단테는 성서 자체를 은유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그 성서의 행진은 24명의 노인들이 두명씩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 뒤에 4마리의 날개 달린 짐승이 광채가 찬연한 꽃마차를 호위하고 나온다. 그 뒤를 몇 명의 장로들이 또 나타난다. 처음 몇 사람은 낮아보였고, 마지막 나온 한 사람은 눈을 감고 있다. 이들이 모두 나타나면서 행진이 멈추고 제 29곡이 끝난다. 이것은 제 30곡에서 베아트리체가 등장하기 위한 배경을 이룬다. 단테는 그 상상의 행진 장면이 처음은 에스겔서의 천국 장면과 일치하고 나중은 요한계시록의 것과 일치한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상기한 두책과 관계될 뿐 아니라, 성서 전체를 상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단테가 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은유적으로 몸의 형태를 입고 현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나타난 창세기의 알파에서 요한계시록의 오메가까지를 상징한다. 맨 먼저 나온 24 장로는 Jerome이 그의 Vulgate 성서 서문에 열거한 24개의 히브리 성문서를 상징한다. 날개를 가진 4 마리의 짐승은 4 복음서를 상징하며 뒤에 따라나오는 것은 바울서신과 사도행전, 캐톨릭 서신(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요한1-3서 및 유다서)을 뜻한다. 맨나중에 나오는 것은 요한계시록을 상징한다.
단테가 성서와 관계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천국편 제 25곡 제 64-78 행에 나와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시편과 야고보서를 읽으며 받은 성령의 감화를 전달하는 "시인"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므로 그 자신의 일에서 그는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영감을 통과하여 마치 제3의 성서를 쓰듯이 신곡을 저술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영성에 대한 이 주장은 “Cangrande에 보내는 편지”에도 자신의 시를 읽으려면 성서와 마찬가지로 4 겹의 해석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로 암시되어 있다. 싯귀가 지닌 의미의 중첩성, 혹은 의미 수준의 복합성은 앞에서 언급한 시편 113편의 “이스라엘의 출애굽”이라는 장면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성서 해석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주석가들이 자주 예로 사용하는 부분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테가 성서를 은유적으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사건 기술 자체를 성서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이 신곡에서 기술하고 있는 여행을 출애굽 자체와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신곡에 나타난 단테의 주창력이 너무 강해서 독자들은 그의 권위가 그 자신이 창작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평신도였던 그는 교회에서 특별한 위치를 갖지 못하였다. 플로렌스로부터 추방당한 자로서 그는 어떤 정치 권력의 근거도 갖지 못하였다. 세상에서 철저히 주변부에 속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그의 확신은 그의 전 작품에 울려퍼진다. 예를 들면 지옥편 제 19곡 제 90-97 행에서 그는 교황 니콜라스 3세를 통해 교황직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것은 마태복음, 사도행전, 이사야서 및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종교가들에 대한 비난의 연장이다. 이것은 성서 진리를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위계질서와 조직이 복음을 금과 은을 위해 팔아먹는다는 것, 설교자들이 헛것을 위해 자신들을 망친다는 그의 신념을 보여준다(천국편 제 29곡 11 행, 제 11곡 133행-135행 참조). 단지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그는 그렇게 말할 권한의 근거를 삼는다. 마치 자신이 베드로의 후계자인 것처럼 그는 담대하게 사도와 같은 말투로 신념을 선포한다.
신곡을 보는 하나의 방법은 이것을, 예를 들어 이사야나 예레미야 혹은 에스겔을 예언자로 부른 소명기사와 같이 단테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인물들과 같이 단테는 처음에는 이 부름에 대하여 자신이 과연 자격이 있는지 걱정에 휩싸인다(지옥편 제 2곡 제10-42행). 그러나 보다 높은 목적을 위하여 천상의 힘에 의해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용기를 얻는다. 연옥 제 32 곡 제 103 - 105 행에서 베아트리체는 그에게 부과된 소명은 “악에 빠진 세상을 선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저세상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것처럼 자신이 본 것을 모두 기록한다. 단테는 제3의 천국에 올라간 적이 있는 바울과 자신을 비견하며(천국편 제 1곡 73-75행, 고린도 후서 12:2-4), 그의 조상 Cassiaguida가 그에게 지상에 내려가거든 그가 본 모든 것을 이사야 40:9에 나오는 것과 같이 산정(山頂)에 부는 바람처럼 외치라고 이르는 말을 듣는다(천국편 제 17곡 133-135행). 결국 단테는 바울이 자신의 소명에 헌신한 것 못지 않게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본 것을 전하기 위해 신곡을 저술하였던 것이다(천국편 제 27곡 제 65-66행).
유럽 문학에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테는 성서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재창조하여 그것을 자신의 문학으로 완성하였다. 그가 성취한 것은 성서적 인물, 일화, 유형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재창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출애굽에 대한 그의 재창조와 사도 바울을 천국을 여행하는 자기 자신으로 승화시킨 것 등이다. 우리는 신곡이 성서의 예언과 묵시를 어떻게 일인칭 화법으로 전개하고 있는지 말할 수 있고, 단테가 “지고(至高)의 주님에 대한 최고의 가인(歌人)” 오로 또 한사람의 시편 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방법으로 시인은 성서를 정확히 다시 쓰고자 하였다. 그것은 제 3의 성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한 신성한 시로서 완성되었다.
출전 : Richard Lancing(ed.)(2000), The Dante Encyclopedia, New York: Garland Publishing. pp. 100-103.
토클 제707차 제6기 신곡 개관및 단테와 성서(17)표지.hwp
토클 제707차 제6기 신곡 개관및 단테와 성서.hw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