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구려·백제·신라의 사람들이 삼국을 과연 동족국가로 인식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논란이 오간 문제입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삼국은 혈통과 언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동질감을 가졌던 듯 하나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짙은 동족의식, 민족의식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구속력이 그리 없는 다소 막연한 느낌 정도라고 함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우리의 삼국은 중국의 삼국시대처럼 하나였던 나라가 나뉘어서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거슬러보면 삼국은 크게 보아 고조선이라 하는 공동체에서 비롯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삼국의 개국 이래 수백년 동안 끊임 없는 싸움이 만들어낸 개별 국가 의식은 점점 더 확고해졌으리라 봅니다.
각기 다른 체제 속에서 다른 인문 자연 환경과 방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으니만큼 오늘날의 민족의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겠지요.
673년에 충남 연기지역에서 만들어진 계유명아미타불삼존사면석상에는 여전히 백제의 관등을 사용하면서 신라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 말기 집권력이 약화되었을 때 김 궁예 왕과 진 훤 왕은 고구려와 백제의 계승과 부흥을 내세워 지역주민들을 포섭할 수 있었지요.
이와 별도로 언어학적으로는 삼국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북한의 류 렬 박사가 쓴 "세 나라 시기의 리두 연구"라는 것인데 이것으로 보아 삼국은 분명 서로 말이 통하고 중국과는 구별되는 종족의식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고구려는 백제를 백잔으로 신라를 동이로 불러 자국과 차별화를 시도했는가 하면 백제도 고구려를 승냥이로 부른 적이 있고
신라도 당초에 '삼국 통일'이 아닌 '삼한통일'이라 하여 고구려의 영토에 대해 아예 차별화를 감행했던 것입니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삼국이 서로를 같은 국가라고 여겨본 적은 없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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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구려·백제 ·신라의 사람들이 삼국을 과연 동족국가로 인식했는가.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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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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